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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의 능력을 의심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이쪽 세상으로 오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소 의심하긴 했다. 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내가 알지 못하는 횟수 제한이 있다거나, 쓸 때마다 내가 나의 어떤 부분을 계속 깎아 먹고 있다거나.

        

       하지만 지난 10년간, 능력을 쓰며 어딘가 깎여나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람은 움직이면 지친다. 자지 않으면 졸리고,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르고,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는 다른 차원에 걸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돌리면, 아무리 지쳤더라도 다시 편안해졌고,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던 순간도 그렇지 않았던 순간으로 고스란히 돌아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의 기억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어떻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까?

        

       던전을 어떻게 나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중에 클레어나 앨리스 모두 나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무리 앞에서 앞장서고 있었을 뿐이고, 레오는 그동안 계속 얼어있었다.

        

       벨라는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우리 제일 뒤에서 걷고 있는 모양이었다.

        

       앨리스가 나를 부축했던가? 아니면 클레어가?

        

       그저 내가 뜯어진 나의 옷깃을 계속 만지고 있었던 것만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래. 지금까지, 나는 시간을 이동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럴 수도 없었다. 돌아간 시간 안에서 나는 그저 나였을 뿐이다. 시계태엽을 되감듯, 시간을 돌리고 나면 나는 그 시간대에 있어야 할 공간에 나인 채로 있었다.

        

       ……정말로 나인 채로 있었던 걸까?

        

       내 기억은 시간이 흘러간 채로 그대로인데.

        

       10년이 지나서야 그런 것을 의심하는 기분은, 솔직히 빈말로도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내가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던 능력이, 지금은 지독하게 의문스럽게 느껴졌다.

        

       저 멀리, 달빛이 보였다. 참 괴이하게도 던전 안으로 빛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오로지 지보에서 스며 나오는 빛만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고, 그렇기에 던전 입구이자 출구로 보이는 저 달의 모습은 깜깜한 방 안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검은 테두리의 그림처럼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한동안 넋 놓고 보다가,

        

       다시.

        

       시간을 돌렸다.

        

       *

        

       그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조바심이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내 성격대로라면 되돌리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황제는 나의 능력에 대해 갈피를 잡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한 정체를 밝히지도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황제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나의 능력을 들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언제나 그렇듯 나의 실수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무위로 만든다.

        

       그 인물의 가면이라도 벗기고, 황제 앞에서 말조심하고, 나를 잡아챈 손을 확실하게 떼어내고—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비아!”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깨진 공간 너머로 떨어지는 감각은 다시 느껴도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지는 감각. 이상한 부유감. 진공상태에 있다가 겨우 세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텅 비어버린 폐.

        

       아니다, 그냥 별로 좋지 않다고 하고 넘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최악이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적 있는 감각이라 그런 걸까. 내 머리는 더 냉정하게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별로 침착할 수는 없었다.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인물을 마주하던 순간과 나의 시간 사이에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부딪혔다.

        

       이번에는 벽이 깨지지 않았다.

        

       몸에 받은 충격에 몸이 떨렸다. 어떻게든 비어버린 폐에 산소를 다시 공급하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나는 나의 옷깃을 확인했다.

        

       여전히 뜯어진 옷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겨우 들어서 그자가 서 있던 곳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저기 서 있던 자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어.”

        

       “지보도…… 아마 그 사람이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아.”

        

       앨리스가 대답하고, 클레어가 보충했다.

        

       “…….”

        

       그 말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조금 전에도 나는 전투에 관해서 물어봤다가 그대로 황제에게 나의 능력을 들키고 말았으니까.

        

       “흠.”

        

       하지만, 게임에서 묘사되던 황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긴, 내가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해서 나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캐내지 못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는 나를 경계하고 있어서 적당히 풀어두었을 뿐.

        

       “아버지!”

        

       황제가 검을 들어, 내 목을 겨누자 앨리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클레어는 순간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깜짝 놀란 듯 화들짝 손을 떼었다.

        

       하지만, 황제는 딱히 나의 목을 베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까 앨리스한테 총을 겨누던 손을 베어냈던 검기를 생각하면, 황제는 나의 목도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낼 수 있었을 거다. 내가 시간을 돌리는 것과는 별개로.

        

       두꺼운 검날은 생긴 것과 다르게 섬세하게 움직여, 나의 옷깃을 건드렸다. 그리고, 마치 찢어진 듯 불규칙하고 섬유가 삐져나온 단면을 더듬었다.

        

       “그냥 쓰러져서는 생길 수 없는 형태로군. 누가 잡아 뜯기라도 했나?”

        

       앨리스가 그제야 눈치챘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클레어도 마찬가지였다. 레오는 아직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가면을 쓰고 멀찍이 떨어져 이쪽을 보고 있는 벨라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옷깃뿐만이 아니라,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있군. 타박상인가?”

        

       황제의 한쪽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마치 웃기긴 하지만 다소 비도덕적인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 같은 얼굴.

        

       그렇기에, 나는 그 얼굴이 무서웠다.

        

       “타박상이라.”

        

       황제는 나의 목에서 검을 거두며 말했다.

        

       “그 실비아 팬그리폰이?”

        

       “…….”

        

       황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내 쪽으로 조금 허리를 숙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전에도’ 한 적이 있느냐?”

        

       황제가 말하는 ‘전에는’은, 나를 기준으로 한 질문이겠지.

        

       나는 확신했다.

        

       이 미래에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고.

        

       *

        

       결국 이후에는 처음과 비슷하게 이어졌다.

        

       황제는 결국 나의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한 듯했다. 그 원리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차렸는지, 그러니까 이 능력을 사용하는 나보다 더 깊은 곳까지 깨우칠 통찰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라는 것을 나는 피부로 느꼈다.

        

       앨리스, 클레어, 레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나의 눈치를 보듯 이쪽을 흘끗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벨라는……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 모습일 때면 내는 그 하이톤의 목소리로.

        

       “그럼, 다들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지보 하나를 도둑맞았는데도 황제는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즐거운 산책이었지만, 많이 지친 모양이군. 부디 남은 여행도 즐겁기를 바라마.”

        

       그렇게 말한 황제는 몸을 돌려 우리만 두고 걸어가 버렸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황제의 시선이 마지막까지 머문 곳은 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않겠어.”

        

       앨리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이었다. 그러니까, 노스우드에서 내가 지내기로 한 그 방. 앨리스가 쓰는 것과 동급으로 큰 방이었고, 실내장식도 비슷했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방에 있는 손님맞이용 테이블은 아니었다.

        

       나를 침대에 앉혀두고, 앨리스와 클레어가 나를 감싸듯 서 있었다. 레오는 없었다. 여자 방이라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 걸까? 레오라면 본인이 안 들어가겠다고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앨리스와 클레어는 잠깐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보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앨리스였다.

        

       “지금, 너는 무척 지친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모습은 처음이겠지.

        

       내가 지친 듯한 모습을 한 적은 있을지 모른다. 사실 어두운 던전 안을 걷는 것도 지칠만한 일이고, 눈 덮인 숲속을 걸어 다니거나 하수도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충분히 지칠만한 일이었다.

        

       내 체력이 무한하다는 생각은 앨리스도, 클레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도, 몸 여기저기에 타박상을 입은 채로.

        

       마치 혼자 그사이에 무슨 일을 겪은 것처럼.

        

       “일단은, 푹 쉬어.”

        

       도중에 끊어진 앨리스의 말을 클레어가 받아서 완성했다.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하자.”

        

       “…….”

        

       두 사람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나더러 무슨 능력을 갖췄는지 말하라고 협박하거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그 배려가 고마웠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고맙게 그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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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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