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7

       *

         

         

         미래를 읽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5초 이내의 위험을 인지한다.

         

         따라서 이 순간 이그낙은 신경 가속을 두른 숙달된 초인처럼 싸울 수 있었다. 아무리 빠른 공격이라도 맞기 전에 알아채면 대응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차오르는 검은 마력과 함께 그의 몸이 점차 빨라진다. 더욱 정교해져 가고 있다.

         

         목덜미를 노리는 날카로운 검격, 비껴내고.

         가슴을 찌르는 검격 또한 튕겨내고.

         머리를 향하는 화염 마법은 고개를 꺾어 피하고.

         등 뒤를 후려치는 강맹한 도끼, 견갑으로 흘린다.

         

         

        -카앙! 카가가가각!!

         

         

         4명을 상대할 때에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압도하고 있었다. 더욱 강한 힘, 더욱 격렬한 마력으로. 애초에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꼬마들은 여물지 않았고, 심지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저 넷 모두가 너덜너덜해진 채 헐떡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흐려질 것 같은 촛불처럼. 매순간 힘겹게 전력을 다해 부딪쳐온다.

         

         하지만 촛불이란 본디 꺼지기 직전에 가장 밝은 법이다.

         

         

        -콰지익—!!

         

         

         처음으로 정타가 박혔다. 인지하고 있었으나 회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떨어진 도끼날이다.

         

         이그낙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애써 삼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콰직!

         

         

         그러나, 저지당한다. 분노에 찬 오크 전사의 강맹한 일격을 두 사람의 전사가 막아섰다. 이자벨과 오스칼이다. 그들은 에시디스를 향해 꽂히는 공격을 자로 잰 듯한 정교하게 맞물려 막아냈다.

         

         그리고, 다음 일격이 꽂힌다.

         

         

        -화르르륵— 콰앙!

         

         

         화염구가 이그낙의 머리를 노린다. 애써 고개를 틀었지만 이 자세에선 불가능했다.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지팡이가 끼인 자세에선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크르륵—!! 이 놈들—!!”

         

         

         이그낙의 입에서 피거품이 솟았다. 분노가 치밀어 눈앞이 어지러질 지경이었다.

         

         싸울수록 알 수 있었다. 미래가 보였으므로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었다. 툭 치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으로도 이를 꽉 깨물고, 온몸을 난자하는 고통에도 멈추지 않으며.

         

         동료를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던지고, 앞서나간 동료를 보조하기 위해 또 다른 녀석이 스스로 몸을 밀어붙이며.

         

         

        -콰앙—!!

         

         

         그렇게 앞선 동료들이 이그낙의 근력을 온전히 받아낼 때, 다른 한 사람이 일격을 꽂아 넣는다.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각도와,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그렇게, 이들의 ‘신경 가속’은 점점 더 빠르고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다.

         

         어느새 이자벨의 한계 시간이 지났다. 과부하된 신경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하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서서 일격.

         

         

         오늘 누구도 나보다 먼저 죽을 수는 없다. 결코 그리 되진 않으리라.

         

         

         이자벨의 푸른 눈이 별무리처럼 빛났다. 고통조차도 그녀의 인지를 흐릴 수는 없었다. 칼날이 마침내 이그낙의 옆구리를 깊게 훑고 지나쳤다.

         

         

        -스걱!

         

         

         핏물이 허공에 비산한다. 모두의 시간이 극도로 가속된 상태였으므로, 이것은 활강하는 파도처럼 보였다. 모닥불을 난반사하며 밤하늘 위로 치솟았다.

         

         비틀, 이그낙의 자세가 무너졌다. 지금인가? 아니, 아니다. 아직은 놈의 힘이 모두 소진된 것은 아니다.

         

         

         “크르르르륵!!”

         

         

         이그낙은 분노에 차 피거품을 물며 이자벨을 향해 팔을 후려쳤다.

         

         본디 오크와 인간의 육체 성능 차이는 동치에 두고 비교하기에 비겁할 지경이라, 이그낙에게 수십 번의 정타를 박아 넣어도 죽이기 어려웠으나, 이그낙은 단 한번의 일격으로도 이들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다.

         

         그러니, 공격 직후 자세가 무너진 이자벨은 다가오는 이그낙의 거대한 주먹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지켰…다!”

         

         

         약속을 지켰다. 누구도 나보다 먼저 죽지 않으리란 약속을.

         동료를 지켰다. 이 일격으로 놈의 자세를 무너트렸고, 거기서 놈의 공격을 받아냈으니 마무리는 동료들이 해주겠지.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아저씨의 안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

         

         부디 살아있기를. 부디 건강히 살아있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는 그 때에.

         

         

        -카아아앙!!

         

         

         칼날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이그낙의 주먹을 밀어냈다. 오스칼은 검을 쥔 오른손마저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리는 것을 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이 멍청이! 날 구할 시간에 공격을 했어야지!”

         “하지만 구했잖습니까?”

         

         

         이걸로 오스칼은 전력에서 이탈한다. 사실 이미 그랬어야 했다.

       

       

        이자벨의 경악 어린 외침에, 양손을 늘어트린 오스칼은 싱긋 웃으며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이그낙의 눈이 번들거렸다. 다시 한번, 이번에야말로 일격을—.

         

         

        -콰지익—!!

         

         “크허억!!”

         

         

        그 순간을 노려 등 뒤로 도끼가 박힌다.

         

         

        -콰아아앙—!!

         

         

        주춤 물러선 그의 머리를 향해, 거대한 얼음덩이가 망치처럼 내려 찍혔다.

         

         그리고.

         

         

        -스가아악.

       

       

        어둠 속에서 별빛을 담은 칼날이 부드럽게 유영한다. 황금색 머리칼이 너울지며 흐드러지고, 그 아래로 물결처럼 부드럽게 검을 쥔 팔이 바닥을 휩쓸었다.

         

         찰나간의 빈틈에서 자세를 다잡은 이자벨이 허리를 숙이고 칼날을 밀어 넣고 있었다. 양쪽 무릎 뒤가 길게 저며졌다. 핏물이 후드득 흘러내리며 이그낙의 자세가 크게 휘청였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공격들을 사전에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온다. 이그낙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애써 바닥을 짚고, 지팡이를 들어—

         

         

        -콰앙!

         

         

         순간 시야가 흔들리며 몸이 털썩 허물어졌다. 어? 하고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바닥을 짚고 있던 그의 팔뚝이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도끼를 든 에시디스가 그를 내려보며 다시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균형을 잃은 자세에서 머리에 화염구가 틀어박혔다. 시야가 검게 물들고 이명이 윙윙 울렸다. 뇌가 흔들린 탓인지 균형감각이 뒤섞여서, 이그낙은 바닥에 토사물을 뱉어냈다.

         

         

        -푸확—!!

         

         

         그런 그의 등판 위에, 칼 한 자루가 곧게 내려 꽂혔다.

         

         이그낙은 움찔, 몸을 굳혔다. 이걸로 끝났다.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늘어트렸다.

         

         

         “투모르여. 나를 평원으로 인도하소서….”

         

         

         이그낙은 핏물을 한움큼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우리, 우리에게도 천국이, 천국이 있다면. 형제, 형제들아. 영원히… 싸우자….”

         

         

         생기를 잃어 하얗게 뜬 눈으로 애써 시선을 올렸다. 그를 둘러싼 네 사람이 보였다. 그 위로 휘엉청 밝게 타오르는 달과, 달빛 아래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별무리가.

         

         용사.

         

         이그낙은 오래된 기억 속에서 이들의 얼굴을 더듬어낼 수 있었다. 그래, 그 저주받을 자들과… 이토록 닮았음에도. 어째서 떠올리지 못했나.

         

         증오가 치밀어오르고,

         만족감이 그의 가슴을 깊게 짓눌렀다.

         

         그는 용사와 손을 나눴다. 마지막까지 투쟁했으며, 전사답게 쓰러졌다.

         

         오늘의 패배를 투모르가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길. 당신께서도 당년 용사에게 패퇴했었으니.

         

         이그낙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눈이 다시 뜨이는 일은 없었다.

         

         핏물이 바닥을 짙게 적셨다.

         

         

         타닥, 탁.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급박한 전투 후에 찾아온 고요를 위로하고 있었다.

         

         

        *

         

         

         “이…겼다….”

         “다친 사람?”

         “나요.”

         “저두.”

         “그걸 물어봐야 알아?”

         

         

         오스칼은 피식 웃으며 덜렁거리는 팔을 흔들었다.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다. 죽을 것 같네요. 진짜 아파요.”

         “틸레스의 기사가 이 정도로.”

         “기사도 사람이거든요. 양팔이 부러지면 사실 울고 싶어지는데, 지금 너무 힘들어서 눈물도 안 나와요.”

         “참고로 저는 눈물이랑 피를 같이 쏟아서 앞이 잘 안 보여요. 이게 희생이란 거겠죠. 그리켄코스는 언제나 인간을 위해 희생해왔으니까요.”

         “난 너랑 대화할 때마다 내가 전혀 모르던 역사를 배우는 것 같아. 우리 세상 이야기가 아닌 소리도 막 들리고 그래.”

         “그건 인간다운 거예요. 배움이 짧은 것. 보통 수명과 배움이 둘 모두 짧은 편이죠.”

         

         

         이자벨은 엘피헤라의 말에 피식 웃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벨라…? 어디 가?”

         “아저씨, 구하러 가야지. 지금 어디에 나자빠져 있을지도 모르잖니. 에휴. 살아는 계시려나 몰라.”

         

         

         이자벨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을 걷기도 전에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어느새 그녀의 곁에 다가온 에시디스가 그녀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다.

         

         

         “아, 고마워.”

         “뭘. 나도 같은 이유인데 같이 찾아볼까?”

         “아저씨?”

         “응, 삼촌. 걱정 되잖아. 이쪽은 가족이라고.”

         “가아조옥…??”

         

         

         이자벨의 시선에 에시디스는 어른스럽게 웃어주었다.

         

         엘피헤라마저도 지금 일어서야 하나 고민하고, 오스칼은 그냥 될 대로 되라며 주저 앉은 그 때.

         

         

        -저벅.

         

         

         발걸음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그럴 필요 없다.”

         

         

         라는, 어쩐지.

         좀 익숙한.

         그래서 좀 불안한 목소리와 함께.

         

         

         “엑…?”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이자벨이었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흐릿했지만, 다가오는 그림자를 인식할 수는 있었다.

         

         힘겹게 떨리는 팔을 들어 눈가를 슥슥 문지르고,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정면을 보면….

         보면.

         

         

         “아저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7천자 넘길거 같아서 호흡 조절삼아 한 번 끊고 이어 갑니다! 바로 가요! 빠르게 가요!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