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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총장 대행 선거에 대국적인 협조를 결정하신 마리우스 교수님입니다~!”

       “마리우스입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크래프트 각하를 위해 힘쓰겠습니다.”

         

       박수! 박수!

         

       파스텔은 짝짝짝 박수 쳤다.

         

       호레이스 교수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내 이럴 줄 알았네만. 정의와 명분과 대의가 우리에게 있으니 순풍이 불 듯 술술 풀리는 걸세.”

       “그렇죠! 그렇죠! 아카데미를 정상화하는 데 일치단결한 마음을 지니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거예요!”

         

       파스텔은 말하곤 살짝 슬픈 표정이 됐다.

         

       “하지만 마리우스 교수님이 이대로 후보에서 사퇴한다면 단일 후보로 당선되는 거나 마친가지예요. 관권선거라는 잘못된 의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겠죠.”

       “허허! 관권선거라니!”

         

       호레이스 교수가 안타까워했다.

         

       “총장 대행을 선출하는데 무슨 개입이 있다고. 오직 교수진의 신망을 얻어 선출될 뿐이거늘.”

       “그러게 말이에요!”

         

       신문부도 좋은 얘기만 보도해 주고 있는데 무슨 개입이 있었다고 그런 얘기가 나올까.

         

       “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죠. 다수결로 선출하겠다 했으면 다수결의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게 맞아요.”

       “각하,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마리우스 교수가 진지한 표정이 됐다.

         

       “기존대로 공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한 승부를 하면 되는 거죠. 그러니 이참에 교수진 투표였던 선출 방식을 학생과 직원을 포함한 투표로 전환할게요. 조금 더 권위 있는 방식으로요.”

         

       기사단 견제를 위해 총장 대행을 서둘러 뽑으려 했던 건데 기사단을 손에 넣었으니 급하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보통 선거 말인가?”

         

       호레이스 교수가 의아해했다.

         

       “후배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무지몽매한 다수에게서 뽑히는 게 어떻게 권위 있는 방식이라는 건진 모르겠네만.”

         

       어라라.

         

       파스텔은 잠시 생각했다.

         

       “무지몽매한 다수가 아니라 고귀한 귀족 자제들이에요! 아카데미에 입학할 만큼 많이 배우고 똑똑한 학생들인 거죠!”

         

       마리우스 교수의 반마족 아젠다 형성하기 시도가 꽤 적중했는지 학생 사이에도 그런 분위기가 살짝 도는 감이 있는 거 같다.

         

       이대로 방치하면 엘리가 학교 다니기 곤란한 분위기가 될지도 몰라!

         

       이참에 우리가 압도적 승리를 해서 본인들이 소수의견이라는 걸 깨닫게 하고 핍박하기 부끄러운 분위기를 조성해야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좋은 세상을!”

         

       파스텔은 다음 날부터 친구친구들을 동원했다.

         

       교내 이곳저곳에 부스가 만들어졌다. 호레이스 교수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부스였다. 방문한 학생들은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험험! 좋은 일이군! 내 사비도 쓰겠네!”

       “역시 학생을 위하는 선배님!”

         

       딱히 대가를 바라고 주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학생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이었다.

         

       공정한 금권 선거……!

         

         

         

       #

         

         

         

       파스텔은 기숙사 앞에서 쿠키 봉지를 나눠줬다.

         

       “맛있게 먹어! 파스텔이 특별히 구운 거라구!”

       “잘 먹을게.”

         

       방긋방긋 웃자 동급생이 쑥스러워하며 받아 갔다.

         

       “파스텔 저기…….”

         

       다른 동급생이 반쯤 먹은 쿠키를 들고 다가왔다.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내 쿠키 뭔가 이상해. 쿠키에서 밀가루가 씹히는데……?”

         

       응응!

         

       “쿠키는 원래 밀가루니까!”

         

       파스텔은 손가락 브이를 만들었다.

         

       “맛있는 건 두 배로! 밀가루를 두 배로 넣어봤어! 밀가루밀가루 쿠키야! 맛있게 먹어! 더 달라고 말하면, 곤란하다구~!”

         

       동급생이 머뭇거리다가 쿠키를 본인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곤 미소 지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허억.

         

       엄청 맛있나 봐!

         

       나도 한번 먹어볼 걸 그랬어!

         

       같이 나눠주던 더스틴이 힐끔 바라봤다.

         

       “이래도 되는 거야?”

         

       파스텔은 웃으며 돌아봤다.

         

       “뭐가아?”

       “이래도 되는 거야?”

         

       으잉.

         

       뭘 물어보는 걸까?

         

       “내 지갑 사정이 걱정되는 거야?”

         

       파스텔은 방긋 웃었다.

         

       “걱정 고마워! 하지만 호레이스 선배님이 사비를 많이 써주셔서 난 큰 부담이 안 돼!”

       “그게 아니고.”

         

       더스틴이 안내 벽보를 바라봤다. 공정한 선거를 위한 소중한 한 표를 어쩌고가 적힌 내용이었다.

         

       “이 상황에 선물을 줘도 되나 싶어서.”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더스틴, 우리 총장님 뽑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러면 미래 총장님의 능력, 인성, 열정을 봐야겠지?”

         

       주변 학생을 슥 둘러봤다. 연호하듯 외쳤다.

         

       “학생을 위해 선물을 줄 만큼 착하고! 학생을 위해 자본을 준비할 만큼 능력 있고! 학생을 위해 사비를 쓸 만큼 열정이 분명한 분!”

         

       친구친구가 든 판자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호레이스 교수님입니다~!”

         

       귀족 자제의 환호 소리가 이어졌다. 난생처음 맛본 선거가 본인들에게 얼마나 좋은 방식인지 깨달은 광경이었다.

         

       와아!

         

       나 드디어 선진 문물을 전파했어!

         

       뿌드읏.

         

       뿌듯뿌듯.

         

       파스텔은 투표 당일 압도적 승리까지 만끽할 수 있었다.

         

       득표율 96%

         

       투표소 입구에서 아무 대가 없이 금화 하나씩 쥐어준 결과는 절대 아니었다.

         

       학생에게 사비로 금화를 뿌릴 만큼 참된 교수님!

         

       역시 존경할 만한 선배님이야!

         

         

         

       #

         

         

         

       엘리가 짧은 휴학을 끝내고 돌아왔다. 떠날 때와는 달라진 아카데미 분위기에 다소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무슨 상황이야?”

       “정의가 승리했어!”

         

       에헴.

         

       이걸로 파스텔은 착하다는 게 증명됐다.

         

       크래프트의 타이틀이 너무 무거웠지만 내 마음씨를 가리기에는 부족했던 거야.

         

       “마리우스 교수님이 압도적 득표 차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과격한 정책을 주장했던 입장을 철회했어. 너한테도 사과하겠다는데, 어때?”

       “그 교수님이?”

         

       엘리가 가죽 서류가방을 자기 자리에 놓았다. 마계에서 가져온 잡다한 사무용품이 꺼내졌다.

         

       파스텔은 눈치를 보며 다가갔다.

         

       뿌뿌 뿌뿌.

         

       “교수님이 크래프트 가문에 뭔가 심정적 충성심이 있으신 건지 한번 얘기를 나누자 바로 승복하셨어.”

         

       엘리가 말없이 묘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사실 마리우스 교수님이 반성한 건 아니야. 머리가 살짝 막히셔서 소통이 어려웠거든. 그래서 이리저리 회유한 다음 최소한 네게 겉으로라도 친절하게 대하라고 명령했어. 사과도! 물론 네가 싫다면 안 만나도 괜찮아.”

         

       이건 너무 시혜적 연민이려나?

         

       파스텔은 살짝 고민하다가 사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학생회의 주요 인력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은 상관으로서 곤란했거든. 수족이 얕잡히는 것도 불쾌했고 말이야. 그러니 앞으론 업무에 차질 있지 않게 이런 건 주저 없이 말해줘.”

         

       곤란곤란해.

         

       엘리가 옆머리를 만졌다. 검은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잡혀 늘어졌다가 놓였다.

         

       “그럴게.”

         

       엘리의 손이 서류가방을 뒤적였다. 사무용품이 꺼내졌다. 물품을 들고 고민하듯 만지작대다가 건네졌다.

         

       “선물이야.”

       “응?”

         

       파스텔은 만년필을 받아 들었다.

         

       오잉.

         

       “마계산 만년필.”

         

       오이잉.

         

       “깃펜이 불편해서 가져왔어.”

         

       분홍 눈동자가 본인 자리의 깃펜을 돌아봤다. 입이 심심할 때 우물거린 바람에 질척해진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매끄러운 광택의 만년필을 내려봤다.

         

       “으에에?!”

         

       문화 충격!

         

       기술 충격!

         

       이런 편리한 존재가 있는데 난 왜 여태까지 힘들게 깃펜을 사용했는가!

         

       “공학 기술력은 이제 마계가 앞서니까.”

         

       차분한 목소리에서 미처 억누르지 못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잉크병에 담그지 않고 그대로 쓰면 돼. 깃펜에 비해 관리가 까다롭긴 하지만 그건 내가 도와줄게.”

         

       마계 기술력 대단해……!

         

       만년필을 몽롱하게 바라봤다.

         

       “우와! 우와!”

         

       지켜보던 더스틴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꺼내지는 사무용품을 슬쩍 보고 파스텔의 만년필을 힐끔거렸다. 그리곤 슬쩍 엘리를 바라봤다.

         

       엘리가 한심해하는 눈빛이 됐다.

         

       “기사단 현황은 분석해 놨어?”

       “선거 활동이 바빠서…….”

       “그럼 지금 해.”

         

       시크한 턱짓에 더스틴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일하는 분위기가 되자 엘리가 서류가방을 치우고 자리에 앉았다. 처리해야 할 서류를 꺼내졌다.

         

       엘리는 파스텔의 만년필을 보다가 원래 쓰던 깃펜을 손에 잡았다. 깃펜이 잉크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파스텔.”

         

       깃펜이 유려한 글자를 적어갔다.

         

       “너도 어서 일해.”

         

       으에에!

         

       파스텔은 갑자기 서류 작업하기가 싫어졌다.

         

       내가 학생회에 이식한 문서주의는 일할 땐 매우 효과적이지만 막상 내가 문서를 만들긴 싫어!

         

       나는 매우 매우 중요한 고민을 해야 하는 권력자니까!

         

       자리로 돌아가 심각하게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책임감 백만 배의 표정.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심각한 고민 중.

         

       그러니까아 그러니까아.

         

       모든 마족의 하늘섬 추방을 무마시킨 부작용을 생각해 보자.

         

       악랄한 핍박 정서가 동기긴 했어도 애국자의 걱정까지 부정할 사안은 아니다.

         

       마족의 테러가 가시화됐으니 민간인으로 가장한 마족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모든 마족 추방이라는 과격한 주장도 했던 거겠지.

         

       딱히 공감되진 않지만 군사요충지인 하늘섬의 권력 심층부에 당도한 마족이 있다면 살짝 경계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축출까진 아니라도 최소한의 감시라던가.

         

       근데 내가 그런 정책을 펼 수 있는 경계 기조를 망가트렸으니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을까?

         

       마왕이 예언된 지금 같은 시기엔 더욱?

         

       오잉.

         

       분홍 눈동자가 맹해졌다.

         

       그 차기 마왕이 나였던 거임.

         

       오이잉.

         

       지금 스파이가 문제가 아니라 차기 마왕이 이미 군사 요충지의 단독 권력자가 된 상태인 거임.

         

       “아하하!”

         

       파스텔은 빵 터졌다.

         

       완전 크래프트식 조크!

         

       난 그냥 파스텔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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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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