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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한층 밝게 타오르는 사람이 있다.

       

       본인은 부정할지 모르겠으나, 베니타스 베니베니 또한 그런 유형 중 하나였다.

       

       “부서져라! 끊어져라! 그리하여 들끓어라!”

       

       주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무가내인 내용. 하지만 베니에게 마법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애타게 갈망하며,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어 현실을 덧칠하는 기적.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는 그렇게 마법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을 도화지 삼아 칠한 마법이 베니의 가장 어두운 기억과 맞닿아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허공에 돌연 생겨난 거대한 고깃덩어리 주먹이 떨어지고, 반투명한 짐승의 아가리가 맞물리며, 바닥에서는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피 섞인 진흙이 들끓는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앞선 베니의 마법을 하나로 묶어 만든 것 같은 존재. 샤도우였다.

       

       -캬아아악!

       

       비명소리를 닮은 날카로운 괴성. 기존의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으나, 일부만 보면 어떤 생물과도 닮은 것 같은 괴생물체.

       

       아니, 과연 이 존재를 생물이라 불러야 할까.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내장은 하나도 존재 하지 않으며, 오직 적을 사냥하기 위한 기관만을 품고있는 존재.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지만, 몸의 절반이 증발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부글거리며 재생하는 현상에 가까운 존재.

       

       이는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벗어난 괴이이며, 보통 사람은 그러한 것들에게 거부감을 품는다.

       

       세상 사람들이 베니와 그녀가 다루는 샤도우를 보고 크리피 위치Creepy Witch라 부르는 것은 분명 그러한 이유일 테지.

       

       정작 모르가나는 그러한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기품 있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지만.

       

       “옛날부터 당신이 품은 가능성과는 별개로 당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답니다. 어쩜 이리 품위가 없는지.”

       

       우아하게 스태프를 흔드는 모르가나.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간이 일정한 규칙대로 정렬하기 시작하더니, 서로 연결된다.

       

       살덩어리 거인의 팔이 짐승의 아가리를 짓뭉개고, 피 섞인 진흙은 샤도우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적은 힘으로 베니의 공격을 고스란히 역이용하는 모르가나.

       

       마치 그 어떠한 더러움도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는 듯 고고한 태도는 흔히들 말하는 ‘마법사다움’의 체현과도 같았다.

       

       하지만, 베니에게 그러한 우아함은 쓸데없는 가식에 불과하다.

       

       마법은 갈망이고, 욕망이며, 희망이다. 그리고 이를 통틀어 기적이라 부른다.

       

       “지랄 마 이 노괴년아! 그 나이 먹고 젊음이 그리워? 네년이 그 고고한 체하는 낯짝으로 마탑의 남제자들을 따먹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년은 없어!”

       

       침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베니. 동시에 그녀가 중지를 높이 치켜든다. 놀랍게도 이는 하나의 수인이 되었고.

       

       바닥에 뭉그러진 살점이 꿈틀거리며, 그 속에서 하얀 뼛조각을 뱉어낸다.

       

       샤도우는 염산보다도 독한 피 진흙을 집어삼키고 한층 몸집을 부풀렸고.

       

       지금의 베니는 격리된 공간을 빠져나올 때처럼 순수한 힘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상대를 죽이기 위한 마법이었지.

       

       그리고 베니에게 가장 가까운 죽음의 이미지는 어릴 적에 형성되어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았으니.

       

       해체되고, 계속되며, 결국에는 진화하는 생명.

       

       그것이 베니의 전력이며, 밑바닥에서 퍼 올린 트라우마다.

       

       살점 속에서 태어난 뼈는 창처럼 날카롭게 날이 섰으며, 수십 수백개로 분열한 것도 모자라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린다.

       

       통로 전체를 가득 채울 듯 몇 배로 불어난 샤도우의 몸체에는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물거품처럼 들끓었다 터지기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바닥에 천천히 차오르는 산성 체액.

       

       역겹지만 효과적으로 주변 일대를 죽음으로 물들이는 베니.

       

       누구라도 몸을 떨만한 광경이었으나, 여전히 모르가나는 여유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마법이란 하나의 학문이고, 기술이며, 그렇기에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욱 촘촘하고 위력적으로 변모하는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모르가나는 오늘을 위해, 베니를 사로잡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갑자기 항상 가던 미궁 심부가 아닌, 2층으로 향했다는 소식에 급하게 결행하긴 했지만.

       

       그 탓에 멍청한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어쨌든 모르가나는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자신의 마법을 온전히 베니에게 쏟아부을 수 있었으니.

       

       모르가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베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가련한 짐승아. 내 너의 쓸모를 되찾아 주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모르가나가 스태프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툭툭.

       

       모르가나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마법진이 폭발적인 기세로 확장되며 하나의 영역을 만든다.

       

       룬 문자와 알 수 없는 도형으로 가득 찬 마법진 위로 반투명한 역장이 피어오른다.

       

       일체의 더러움을 허락하지 않는 영역. 마치 격리된 별개의 공간이 주변을 집어삼키는 듯한 광경이다.

       

       “이 미친년이….”

       

       상어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빠득빠득 갈아대는 베니.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샤도우가 기껏 조성해 둔 환경을 통째로 밀어내며 집어삼키고 있었으니까.

       

       필사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마법을 난사하고, 때로는 샤도우가 몸으로 버텨보려고도 했으나 결국 밀려나는 둘.

       

       베니가 약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염원은 강렬했고, 샤도우의 광기는 흉악했으나….

       

       문제는 모르가나가 이를 이미 알고 대응책을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오로지 베니와 샤도우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역. 그 안에서 주인인 모르가나의 힘은 증폭되고, 그녀의 적은 한없이 약해지리라.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마력과, 자꾸만 흐려지는 심상에 베니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인생 씨발.”

       

       체념. 그럼에도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오기로 가득한 베니의 눈빛.

       

       마안이 아니라도 서큐버스의 눈은 서큐버스의 눈이라는 듯 요사스럽게 빛나는 하트 모양 동공이 모르가나를 노려본다.

       

       물론, 모르가나는 코웃음 치며 넘길 뿐이었지만.

       

       “실험체가 머리가 높구나.”

       

       “누가 실험체라는 거야!”

       

       으르렁거린 베니가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어 피를 낸다. 그리고 이를 넓게 흩뿌리며 억지로 끌어올린 마나를 쏟아부었다.

       

       “시체를 먹고 피어나는 꽃이여!”

       

       순식간에 검게 썩어들어가는 핏방울. 그 안에서 작은 고름같은 것이 생겨나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부풀어 오른다.

       

       꽃을 닮은 형태. 하지만 퍼져 나오는 악취는 정신력이 고강한 마법사마저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나….

       

       모르가나는 이 또한 대비해 두었다.

       

       “네년이 쓰는 마법. 아니, 마법이라는 말도 아깝군. 기적이라 이름 붙인 생떼는 전부 파악하고 있다.”

       

       잘 깎인 다이아몬드처럼 다각도로 빛나는 스태프 끝의 보석. 그 광채가 미친 듯이 증폭하더니, 이내 베니의 시체꽃까지 닿는다. 그리고.

       

       철컥.

       

       쇠사슬 소리와 함께 그대로 굳어버린 베니의 마법.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쩍!

       

       수십, 수백, 수천…어쩌면 그 이상의 조각이 되어 산산이 부서지는 베니의 마법.

       

       그 조각마저도 부스러져 모래처럼 어딘가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베니가 자신의 생명력마저 대가로 바쳐 시전한 마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연한 태도로 스태프를 짚고 선 모르가나가 베니를 내려다본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눈빛이군.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늙지 않는다 하여, 죽지 않는다 하여 아무런 수도 쓸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니.”

       

       손가락을 까딱이는 모르가나. 그녀의 등 뒤로 반투명한 단두대 같은 것이 나타났다.

       

       “…공간 절단.”

       

       “그래. 짐승의 아둔한 머리로도 알 수 있는 공간 마법의 극의다. 그리고 네 년들을 박제할 핀셋이기도 하고.”

       

       공간 절단에 적중당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베니의 몸이 베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공간이 베이는 것이니까.

       

       그저 조각조각 난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모르가나가 죽음을 허락하는 순간까지.

       

       “나보다 더 징그러운 년이 있었네.”

       

       이를 악물며 비아냥대는 베니.

       

       아직 그녀의 모든 힘이 소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항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여 상황이 뒤집히는 것은 아닌데.

       

       요나를 올려보내긴 했으나, 이는 그 어린 남자아이를 살리기 위함이지 정말로 엘리를 데려와 도와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엘리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그만큼 모르가나의 마법은 특수했고, 그녀의 준비는 철저했다.

       

       “…샤도우.”

       

       -끄응.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는 듯 기세가 꺾인 샤도우. 녀석이 꼼질대며 베니의 곁에 따라붙는다.

       

       그래.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라 해도 손 놓고 당해줄 수는 없다. 적어도 저 재수 없는 낯짝에 손톱자국 정도는 새겨주리라.

       

       마지막까지 투쟁하리라 각오를 다진 순간이었다.

       

       “음? 암살자인가?”

       

       눈살을 찌푸린 모르가나. 이곳은 그녀의 영역. 아무리 뛰어난 은신 능력을 가진 이라도 주인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르가나가 베니의 옆, 텅 비어있는 허공을 향해 스태프를 겨누었다.

       

       투명한 광채가 번쩍이며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총탄이 쏘아진다. 그리고.

       

       파아앗!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돌연 막대한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순백의 영역을 물들이는 분홍빛 기운. 그 중앙에는 이미 떠난 줄 알았던 요나가 서 있었다.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라도 그대로 찢어발길 터인 공간 마법이 요나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에 닿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마치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공간 마법을 전면에서 부정한 요나. 그가 신성력의 광채와 똑 닮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입가를 반쯤 가리고 키득이는 듯한 몸짓은 덤이었고.

       

       “허~접. 허~접. 이런 것도 마법이라고 쓰는 거예요?”

       

       “…….”

       

       “허벌 술식! 마력 조루! 사과해! 마법의 신에게 이런 쓰레기같은 마법을 써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

       

       지금, 이 순간. 베니는 요나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몸에 두른 신성력은 무엇인지, 공간 마법은 어떻게 소멸시킨 것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아군임에도 꿀밤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끼야아악! 오스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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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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