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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어떻게 죽어야 할까.

       

       더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제. 시우에게만큼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 들켜버렸을 때.

       

       시우는 온종일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이 대해줬을 뿐.

       

       아마 배려였겠지. 그때의 나는 무언가 말한다고 한들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그러나 그런 배려를 받았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시우에게 비밀로 하고, 몰래 그의 셔츠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들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루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어떻게 해야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가장 아프지 않을법한 죽음은 약물을 사용한 죽음이겠지만···.

       

       내가 시우의 곁에서 벗어난다면 그가 걱정하며 따라올 테니 구매는 불가능했다.

       

       분명 처음에는 내가 시우를 감시하는 역할이었을 텐데, 언제부턴가 서로를 감시하는 느낌이 되어버렸네.

       

       

       “···역시 이 방법밖에 없나?”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교복을 바라보았다.

       

       이걸 잘 엮어서, 천장에 걸어두고 목에 매달기만 하면 콱 죽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아르테.”

       

       “···.”

       

       

       아니, 역시 너무 아프려나···.

       

       그렇다고 칼에 찔리거나 와이어처럼 몸을 자르기도 조금 그런데. 더 아플 것 같잖아.

       

       

       “아르테!”

       

       “아, 네···?”

       

       “뭘 그렇게 생각해? 계속 말해도 듣지도 않고. 무슨 고민 있어?”

       

       

       도로시와 아멜리아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말한 거로 짐작건대, 아마도 나를 여러 번 부른 모양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기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거고.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해?

       

       시우의 셔츠를 몰래 훔쳐서 끌어안고 만끽하고 있던 와중에, 시우가 나를 찾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걸 들켜버렸다고?

       

       그래서 수치심을 겪다 못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왜 부르셨나요?”

       

       “···너, 말 돌리기 잘 못 하는구나. 뭐, 좋아. 넘어가 줄게. 그게, 며칠 뒤면 중간고사가 끝나잖아?”

       

       

       계속 추궁했으면 조금 곤란했을 텐데.

       

       다행히도 아멜리아가 적당히 넘어가 줘서 살았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던가?

       

       중간고사에 대한 생각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멜리아의 말에 그제야 생각났다.

       

       슬슬 중간고사가 끝날 시기가 다가왔다고.

       

       

       “저희가 상위권인 건 확정 사항이잖아요, 아르테 양.”

       

       “그렇죠. 같은 반 친구들이 부러워하던데.”

       

       “운이 안 좋았던 거지, 뭐.”

       

       

       글쎄. 과연 운일까.

       

       다른 학생들이 초반에 여유를 부린 건, 빌런들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포인트를 얻고자 했던 행동이었다고.

       

       그런 그들이 포인트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빌런들 때문이었다.

       

       빌런들의 활동이 갑자기. 아주 갑자기 뜸해졌거든.

       

       이유? 그거야 당연히 나 때문이지.

       

       

       “아라크네가 갑자기 활동을 재개해서 빌런들이 꼬리를 말아버렸으니까.”

       

       “불쌍하네요, 빌런들도.”

       

       

       처음에는 사칭범 문제 탓에 활동을 재개한 거지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은 셈이다.

       

       시우가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아도 상위권에 안착했으니까.

       

       덕분에 한참 동안은 수업 없이 개인 훈련만으로 시간을 보냈지.

       

       

       “···그래서요?”

       

       “응?”

       

       “중간고사가 끝나는 건 그렇다 치고, 그걸 왜 굳이···.”

       

       

       솔직히, 중간고사가 끝나는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중간고사를 치렀다는 감상도 없는 데다가, 이미 1, 2등을 다투고 있잖아.

       

       심지어 그 순위를 다투고 있는 대상마저 눈앞의 두 명이다.

       

       팀이 아닐 뿐이지, 사실상 우리 넷이 다 해 먹었다고.

       

       초반에 벌려진 압도적인 격차 탓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이제와서 중간고사 이야기를 꺼내다니.

       

       

       “음, 그게···.”

       

       “그게?”

       

       “끝난 기념으로, 오늘은 조금 놀고 싶어서. ···안될까?”

       

       

       놀면 되잖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명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우도 가기로 했거든. 어때?”

       

       “···시우도요?”

       

       “응.”

       

       

       왜 두 명이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그 이유를, 나는 무심코 깨달았다.

       

       

       “어디로 갈 생각인데요?”

       

       “응? ···아니, 뭐. 별 건 없고. 상가에 쇼핑하러 가거나, 뭐 그런 거지.”

       

       

       역시 생각했던 대로다.

       

       별다른 계획 없이. 그저 놀러 가자는 권유.

       

       예전, 이 세계에 넘어오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가끔 친구들이 이런 식으로 내게 권유했더랬지.

       

       

       “좋아요.”

       

       “어? 진짜?”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두 명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여 살짝 상처받을 뻔했다.

       

       내게는 그저 명목상으로 물어본 것뿐이었던 걸까.

       

       

       “아, 아니. 오해하지는 말고. 조금 의외였거든.”

       

       “···의외요?”

       

       “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정말 올 줄은 몰랐다, 뭐 그런 이야기인가.

       

       ···뭐, 나도 원래는 갈 생각이 없긴 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겠구나 싶어서요.”

       

       

       문득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의 일이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친구가 같이 놀러 가자고 가볍게 권유하는 것 같은 모습에 무심코 수락해버렸다.

       

       

       “그런데,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는 건 아니죠?”

       

       “응? 으음···. 지금 생각해볼까···?”

       

       “하아···.”

       

       

       일단 놀러 가자고만 말해놓고 대책이 없는 건 여기나 거기나 똑같구나.

       

       한숨을 내쉬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냥,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생각했다.

       

       그것뿐이다. 아멜리아와 도로시는 사람이 아니야.

       

       인형일 뿐이라고.

       

       문득 작가님이 그리워졌다.

       

       작가님이 말을 걸어줬을 때는 세상 사람들을 인형이라고 생각하기 참 편했는데.

       

       요즘은 점점 인형들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큰일이었다.

       

       

       

       ***

       

       

       

       “온대?”

       

       “응. 그런데 갑자기 왜 놀러 가자고 한 거야? 대충 얼버무리느라 힘들었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

       

       

       시우는 그 이상 이야기해줄 수 없었다.

       

       내 능력은 통제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으니까.

       

       직감은 유용하다.

       

       내가 위험하거나, 정말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미래 예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믿음직한 능력.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외의 일은 전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아르테가 내 옷을 훔쳤다.

       

       그런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지.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이렇게 불현듯이 무언가 떠오를 때가 있다.

       

       당장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거나, 누가 위험해 보인다든가. 그런 종류의 번뜩임.

       

       

       “뭔가, 이렇게 해야 좀 더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 같았어.”

       

       “···직감이야?”

       

       “응.”

       

       

       굳이 내가 가지 않고 아멜리아와 도로시만 간 것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무슨 핑계를 대야 할지 물어보는 두 명을 억지로 등 떠민 것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이 행동으로 도대체 무엇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시우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직감이 아르테에게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그렇다면야···. 오히려 잘됐네. 마침 줘야 할 것도 있잖아.”

       

       “아, 그랬지.”

       

       “딱히 수정할 것까지는 없어 보여. 잘 만들었더라.”

       

       

       아멜리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이런 장신구 쪽에 어느 정도 안목이 있을 테니까.

       

       그런 그녀에게 인정받았다면 괜찮겠지.

       

       

       “그런데, 이 실은 뭐야?”

       

       “실?”

       

       “응. 이 검은 실 말이야. 보색으로 하얀 실을 강조해준 건 좋은데, 어디서 구했어?”

       

       “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턱하고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그냥 궁금하니까 그래. ···재질 되게 부드럽다. 속옷으로 써도 되겠는데?”

       

       

       아멜리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고 말았다.

       

       ···들킨 건 아니겠지.

       

       

       

       ***

       

       

       

       “헤, 헤헤. 모았다. 모았다고.”

       

       

       넝마를 뒤집어쓴 소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소녀의 시야에 한가득 담겼다.

       

       마치 자신의 업적을 축하하는 것 같은 날씨에, 소녀의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전부 모았어, 미르. 동료들을 모두 모았어.”

       

       “잘됐네, 애니. 이제 복수하는 거야?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아직 아니야.”

       

       “···어째서?”

       

       

       후드를 쓴 소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겠지.

       

       홀로 말하고, 홀로 대답하고.

       

       그야말로 광인의 행동거지였으니까.

       

       

       “생각해 봐, 미르. 우리가 진 이유를.”

       

       “준비가 부족했어.”

       

       “그래. 준비가 부족했어. 사람이 모자랐어.”

       

       

       그러나 소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그 기괴한 모습에 당장 도망치려고 했을 테다.

       

       후드 속 소녀의 형상은 그야말로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이었으니.

       

       

       “부하가 필요해. 우리와 함께 싸워줄 부하가.”

       

       “···하지만, 애니. 우리는 기반이 없어졌는걸. 우리의 뜻을 따라줄 사람이 있을까?”

       

       “걱정하지 마, 미르. 걱정하지 마. 사람이 아니면 괜찮으니까.”

       

       

       수많은 동물이 얼기설기 섞여 있는 모습.

       

       두 눈에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광기가 스며들어있었다.

       

       이미 그것은, 인간이라고 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전선으로 가자. 그곳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동물 친구들이 있을 거야.”

       

       “마수를 말하는 거구나, 애니.”

       

       “응. 어때?”

       

       “정말 똑똑해. 역시 애니밖에 없다니까.”

       

       “···헤헤.”

       

       

       소녀, 아니.

       

       괴물은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괴물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적한 피가 바닥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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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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