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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꿈 한번 살벌하네.”

        ​

        내 꿈이라기엔 오크샤먼의 기억이 나에게 보이는 듯했다.

        ​

        넓은 평원을 가득 채운 오크들.

        ​

        그리고 수많은 언데드들.

        ​

        아까 봤던 영혼의 모습을 한 오크가 중심에 서 있었다.

        ​

        “오크들이여! 적과 싸워라! 투쟁하라! 모든 걸 짓밟아라!”

        ​

        거센 포효를 흘리는 오크들은 지금과는 사뭇다른 모습이었다.

        ​

        온몸에 가득한 상처와 흉터.

        ​

        범상치 않은 눈빛.

        ​

        정광이 흘러나오는 것이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싸움꾼들을 연상케했다.

        ​

        “샤먼들이여! 신성한 불꽃을 피워올려라!”

        ​

        굴락이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주술.

        ​

        저것이 원형일 것이다.

        ​

        지금의 굴락이 하는 것은 나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을 테니까.

        ​

        오크들이 주문을 외우고 평원에 살기와 광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

        “많이 다르네.”

        ​

        기절하기 전에 오크들이 보여 준것은 날것의 느낌.

        ​

        지금 보이는 것은 훨씬 더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

        오크들이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고 투지를 즐기는 모습.

        ​

        이내, 내가아는 영혼의 모습을 한 오크샤먼이 나직이 읊조렸다.

        ​

        “오크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는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군.”

        ​

        뒤에 있는 샤먼들을 보고도.

        ​

        “샤먼들도 모두 죽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전쟁이 빠른 속도로 흘러 갔다.

        ​

        언데드를 상대로 우세를 보이던 오크들도 지치지 않는 그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

        분위기로 봐서는 이미 수도 없이 전쟁을 치른 듯한 오크들.

        ​

        그들은 지쳐 있었고, 세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 듯했다.

        ​

        “싸워라! 죽어도 명예를 지켜라!”

        ​

        처음 굴락을 만났을 때 말했다.

        ​

        오크는 명예를 안다고.

        ​

        그런데 그것이 정말일 줄이야.

        ​

        오크들은 싸우면서 사지가 찢길지언정 투지를 놓치지 않았다.

        ​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 움직이는 것.

        ​

        그리고 그때.

        ​

        꿈을꾸는 나에게도 느껴질 만큼 어마어마한 어두움이 휘몰아쳤다.

        ​

        내꿈이지만 이건 악몽과 흉몽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

        “저게 도대체 뭐야? 악귀야? 마귀야?”

        ​

        생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영혼이 너무나 어두웠다.

        ​

        사람이 광기와 원한에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온갖 원한들이 몸을 가지고 태어난 모습.

        ​

        “저게 마족이구나.”

        ​

        그들이 등장하자 오크들이 허무하게 쓰러져 나갔다.

        ​

        샤먼들이 움직이며 주술로 대항했지만 무언가에 막혀서 부서지고 있었다.

        ​

        어두운 마나를 쓰는 마법.

        ​

        그것은 단 하나의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저게 뭐야.”

        ​

        낡은.

        ​

        아니, 썩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넝마가 된 로브를 걸치고 있는 존재.

        ​

        사람의 이목구비를 가졌으나, 생기를 가진 살은 없고 뼈와 가죽이 들러붙은 존재.

        ​

        “망자도 아니고, 생자도 아닌데?”

        ​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었다.

        ​

        해골에 사람 가죽을 입혀놓으면 저런 모습이리라.

        ​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

        언데드 중에 저런 모습을 한 존재가 있다고.

        ​

        “리치…”

        ​

        존재감이 굉장했다.

        ​

        영혼의 크기마저 컸다.

        ​

        클로셀 영감님과 파라몬 영감님을 합쳐도 한참이나 부족할 정도로.

        ​

        “저런 게 세상에 존재한다고?”

        ​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

        마족처럼 어두웠으며, 오크보다 광기가 뚜렷했다.

        ​

        주술들이 모두 무너졌고, 언데드가 미쳐 날뛰었다.

        ​

        오크들이 쓰러지고 샤먼조차 몇 남지 않은 그때.

        ​

        한곳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

        그 빛의 느낌이 루나와 비슷했으니까.

        ​

        “성자…?”

        ​

        윤기가 흐르는 은발.

        ​

        그리고 손에 움켜쥔 내가 작두로 쓰고 있는 성검.

        ​

        전장을 주시하는 황금색의 눈동자.

        ​

        “눈이 있어?”

        ​

        대대로 성녀와 성자는 육체의 눈을 잃었다고 했다.

        ​

        신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 했었던가.

        ​

        막상 샤먼의 영혼이 보여 준 장면은 전혀 달랐다.

        ​

        성자와 눈빛을 주고받는 오크샤먼.

        ​

        성자가 뭐라 말하는 것이 보였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뭐야, 갑자기 왜 이래?”

        ​

        촉이 왔다.

        ​

        저걸 들어야 한다는 걸.

        ​

        그리고 저 리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

        나의 촉인 것 같기도,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기도 했다.

        ​

        순간, 꿈속의 장면이 변하기 시작했다.

        ​

        겹겹이 쌓인 오크의 시체들.

        ​

        그 위에 서 있는 샤먼의 영혼.

        ​

        내가 기절하기 전보다 상태가 안 좋아진 모습이었다.

        ​

        낡고 지쳐 있던 영혼이 상처를 입은 모습.

        ​

        – …리는가?

        ​

        “….?”

        ​

        – 들….가?

        ​

        처음일 것이다.

        ​

        이곳에 와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혼을 만난 것이.

        ​

        꿈에서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어디인가.

        ​

        그게 오크라는 점만 빼면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많았으니까.

        ​

        “들려! 더 말해 봐!”

        ​

        – …랍군…. 혼의…리를…듣다니!

        ​

        영혼이 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

        그것뿐만이 아니라 놀라운 듯 주변을 훑어보기까지 했다.

        ​

        – …을….담는…릇인가?

        ​

        샤먼과 대화를 하려는 찰나, 녀석이 돌연 몸을 떨기 시작했다.

        ​

        나를 보고 있지만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

        ​

        어깨와 머리를 오가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있었다.

        ​

        – ….!!!

        ​

        천적을 앞에둔 초식동물이 저런 반응을 보이지 싶었다.

        ​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는 눈동자.

        ​

        언데드의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던 눈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

        “왜 이래? 어깨? 머리?”

        ​

        오래묵은 영혼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이유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

        거기다 내 어깨와 머리를 보고 떠는 것이라면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

        어깨와 머리 위는 신령님이 내려앉는 장소다.

        ​

        흔히 머리 위에 앉아 있다 혹은 잡귀가 어깨에 앉아 있다라고 말하는 곳.

        ​

        – ….치지 않는다! …안하다!

        ​

        샤먼의 영혼이 바닥으로 넙죽 엎드렸다.

        ​

        꾸짖음을 당한 듯 벌벌떠는 녀석.

        ​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잘못을 비는 모습.

        ​

        – 성…가 아닌데 왜…!

        ​

        억울한 듯 외치는 녀석의 목소리가 뜨문뜨문 이어졌다.

        ​

        – 정말…다! 해치..않…다!

        ​

        영혼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지금의 상황이 짐작이 갔다.

        ​

        나는 신가물이다.

        ​

        그것도 말도 안될 정도로 무당이 될 팔자를 타고난.

        ​

        신을 담는 그릇안에 들어온 영혼이 만날 신령님이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

        그것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주술적인 방법으로 침범한 것에 가깝지 않은가.

        ​

        “할머니 화나신 건가?”

        ​

        ***

        ​

        쉬이이익 –

        ​

        세 사람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

        클로셀과 파라몬, 그리고 드잔트.

        ​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하늘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

        “라몬, 자네 저런 것을 본적이 있는가?”

        ​

        “처음 보는군.”

        ​

        “드잔트, 자네는?”

        ​

        “오크가 저런 짓을 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

        클로셀이 기가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땟목을 타고 바다를 횡단하는 오크라니.

        ​

        어이가 없을지경이었다.

        ​

        클로셀이 딱딱한 얼굴로 목소리를 내는 파라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크리스가 있는 곳이 여기가 확실한 것인가?”

        ​

        “그러네.”

        ​

        클로셀의 눈이 슬픔에 젖어 들었다.

        ​

        평생을 함께한 친우.

        ​

        겨우 웃음을 찾았던 친우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

        크리스가 사라졌다는 걸 안 직후부터 저런 상태였다.

        ​

        드잔트도 그것을 알아챈듯한마디를 덧붙였다.

        ​

        “이제야 익숙한 얼굴이 되었군.”

        ​

        “쓸데없는 소리.”

        ​

        “어째 네놈은 인간인 주제에 그런 얼굴이 더 어울리는 것이냐.”

        ​

        드잔트의 핀잔에도 파라몬은 줄곧 무표정을 고수했다.

        ​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꽉잡은 손.

        ​

        온몸이 당장이라고 검을 뽑을 듯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

        “라몬, 진정하시게. 크리스에게 별일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

        분명 파라몬 역시도 알고 있을 것이다.

        ​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클로셀의 생각이었다.

        ​

        애초에 파라몬이 미소를 되찾은 것은 크리스의 영향이었으므로.

        ​

        “….”

        ​

        “신이 돕는 사람일세. 성녀와 세레나양이 함께하고 있으니 별일 없을걸세.”

        ​

        클로셀이 마나를 있는 힘껏 움직였다.

        ​

        아무래도 친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

        억제하는 듯했지만 흘러나오는 살기.

        ​

        마치, 대륙전쟁 시절에 동료를 잃었을 때와 비슷했다.

        ​

        ‘라몬, 어찌하여 또….’

        ​

        크리스가 사라진 직후에는 이렇지 않았다.

        ​

        다만, 그에게 걸어놓은 마법의 위치를 발견하고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

        크리스를 찾아 날아가는 거리가 길어질 수록 파라몬의 얼굴은 점점 차갑게 얼어 붙었다.

        ​

        “로셀, 세레나양에게서 연락은 아직인가?”

        ​

        클로셀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

        지금의 파라몬과 같았다.

        ​

        세레나도 그저 크리스에게만 따듯할 뿐.

        ​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증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할 만큼 차가웠기 때문이다.

        ​

        그나마 위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랄까.

        ​

        “연락해도 받지를 않네.”

       

        ​

        “….”

        ​

        “별일 없을 것이네.”

        ​

        클로셀의 말과는 별개로 비행 속도는 더 빨라져만 갔다.

        ​

        밑에서 노를 젓는 오크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갈 정도로.

        ​

        “안개로군. 말도 안 될 정도로 짙은 안개일세.”

        ​

        클로셀이 주위를 훑었지만 마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

        그 말은 네크로맨서들의 장난질은 아니라는 말.

        ​

        “들어가겠네.

        ​

        이윽고, 사라지는 안개.

        ​

        그들이 본 것은 커다란 안개였다.

        ​

        세 사람이 날아가는 섬안에서 충격적인 광경이 보였다.

        ​

        그들에게만 보이는 풍경.

        ​

        “로셀.”

        ​

        “….”

        ​

        파라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흘러나오는 강한 살기.

        ​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베어낼 것만 같은 날카로운 예기.

        ​

        드잔트가 고개를 저었다.

        ​

        “인간이란 결국 변하지 않는 모양이군.”

        ​

        “이보게 드잔트, 라몬도 변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네.”

        ​

        파라몬이 살기를 흘리는 이유가 있었다.

        ​

        인간을 벗어난 감각을 가진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충격적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

        ​

        창백한 얼굴을 한 크리스였다.

        ​

        그것뿐이겠는가, 주위를 둘러싼 오크와 제국 북부의 정상에서 보았던 푸른 불길.

        ​

        “내려주시게.”

        ​

        세 사람이 내려앉은 곳에는 혼란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

        ​

        “인간! 침입이다!”

        ​

        “죽여 없앤다!”

        ​

        시뻘건 눈으로 날뛰는 오크들 중에 이성을 찾을 것은 굴락일 뿐.

        ​

        굴락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

        “모두 물러나라! 전부 죽는다!”

        ​

        “취이익!”

        ​

        “죽음의 예언이다! 죽어도 샤먼을 지킨다!”

        ​

        파라몬과 클로셀이 쓰러져 있는 크리스를 향했다.

        ​

        “….”

        ​

        크리스의 옆에서 울고 있는 성녀.

        ​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세레나.

        ​

        흉폭한 기세를 흘리는 오크들.

        ​

        파라몬이 검을 뽑아 들었다.

        ​

        스르릉 –

        ​

        “세레나양, 묻겠네.”

        ​

        “….”

        ​

        “크리스가 쓰러진 이유가 오크들 때문인가?”

        ​

        세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

        “다치지 않으니 걱정 말라 했어요.”

        ​

        세레나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

        오크들의 숨통을 조이던 살기도.

        ​

        당장에라도 무언가를 베어낼 듯한 예기도 사라졌다.

        ​

        굴락이 안심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

        “취이익…!”

        ​

        스르릉 –

        ​

        탁 –

        ​

        다시 검집으로 모습을 숨기는 검.

        ​

        파라몬이 입을 열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

        “허허, 또 그냥 기절한 것이로군.”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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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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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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