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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빅토르는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부관에게 말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도록. 감시하되,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것 같으면 사정없이 오르간을 갈겨.”

       “얼마나 쏘면 되겠습니까?”

       “아예 이 놀이공원 전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기세로, 죄다 쏟아부어. 알겠나?”

       “알겠습니다.”

         

       마치 얼굴 형상이 들으라는 듯 빅토르는 부관에게 작지 않은 소리로 명령을 내리곤,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버섯이 노래를 부르는 곳에 도착하자 살짝 꺼려지는 듯 슬쩍 느려졌으나, 빅토르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듯 뚜벅뚜벅 걸었다.

         

       다 깨지고 낡아빠진 돌바닥과 군화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에 맞춰 버섯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 손님이 오시네~ ]

       [ 손님이 식사하러 오시네! ]

       [ 기대할 만할걸! ]

       [ 오늘 메뉴는 끝내주니까! ]

         

       시끄러운 것은 둘째치고, 가사가 사람을 신경 쓰이게 했다.

         

       “이봐. 저것들 좀 닥치게 해줄 수 없나?”

       [ 안-된-다네- ]

         

       그는 도저히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 형상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고기를 준비했길래 저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군.”

       [ 기-대해도-좋네. ]

       “쯧. 기대에 못 미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리고.”

         

       빅토르는 얼굴 형상을 흉흉한 눈으로 쏘아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굴 형상은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다 안다는 듯, 입이 위치한 곳에서 날벌레 사체를 토해내며 말했다.

         

       [ 걱정말-게- 인육 같은 것은 저어얼대 아니니까. ]

         

       빅토르는 얼굴 형상의 장담에 미심쩍다는 듯 쳐다보았다가 다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토르는 얼굴이 안내하려고 했던 곳, 대관람차의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이런.”

         

       도착하자 보인 것은 하얀 일렁임이었다.

       필요 이상의 빛을 뿜어내며 타오르는 대관람차는 고글에 부착된 카메라를 먹통으로 만들겠다는 듯 어마어마한 양의 빛을 내뿜었고, 밤에 활동하기 편하게 빛을 증폭시키는 기능이 있었던 카메라는 그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하얗게 물들 수밖에 없었다.

       빅토르는 시야가 가려지자 몸이 기억하는 훈련 내용대로 바로 고글을 원상복구 시켰고, 동시에 기감을 열고 자신에게 위협이 될 요소가 없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얼굴 형상 역시 얌전하게 둥둥 떠다니고만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하!”

         

       빅토르는 대관람차를 바라보자 탄성을 내질렀다.

         

       불꽃이 원을 그리며 땅에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그 어떤 연기도 내지 않은 채, 오직 붉게 타오르기만 하며 제 형체를 유지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한낮에 떠 있던 태양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옛날엔 사람이 탑승했을 장소는 작은 불덩이가 되어 태양의 일부가 되었고, 골조는 불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녹지 않은 채 그대로 형상을 유지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듯 하늘거리는 불꽃을 모으고 모아 거대한 불꽃의 바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는 곧게 서 있는 불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멀리서 보면 화염으로 만든 막대사탕의 형상일 것이오, 가까이 다가간다면 불을 토해내는 고문 바퀴처럼 보일 것이오, 빅토르처럼 이렇게 코앞에서 바라본다면 불기둥에 태양이 사로잡혔다고 느낄 것인즉.

         

       “끝내주는군.”

         

       이러한 광경을 사랑하는 빅토르에게 있어선 그 어떤 절경보다도 아름다운 볼거리라 할 수 있었다.

         

       [ 비-익-토르. 자네가 좋아할 거라 여겼지. ]

       “불꽃과 폭발. 그것이 바로 군인의 미덕이자, 장교가 사랑해야 하니까 말이야.”

         

       빅토르는 자신의 오른편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그 기괴한 소리에 날 것 그대로의 음성이 섞인 것을 느끼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러시아 기준으로는 어린애나 다름이 없는.

       아니, 동양인 기준으로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로브와 흡사한 형태의 천을 몸에 걸치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떡갈나무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었다. 또한, 그의 한 손에는 묘하게 열기를 뿜어내는 작은 흑요석 단검이 들려 있었는데, 타오르는 불꽃에 반짝이는 것인지 주황색으로 물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반갑네, 빅토르.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스미르노프. 내가 자네를 초대한 사람이며, 오늘 자네에게 음식을 대접할 보잘것없는 주술사이니. 어떠한가,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는가?”

         

       소년의 얼굴은 참으로 앳되어 보였다. 얼핏 보면 어린 토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으며, 어떻게 보면 강아지를 닮은 것 같은 모습 같기도 했다. 어리디 어린 새끼를 볼 때 보호 욕구가 솟아오르고 공격성이 낮아지듯, 빅토르는 소년의 얼굴을 보면 경계심 대신에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얼굴이 앳되다 한들 그 태도가 기묘하였으니.

         

       분명 소년임이 틀림없음에도 입에서 나오는 것은 늙은이의 어투요, 총기가 넘쳐야 할 눈에서는 심연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깊이가 보이고, 끓어오르는 혈기가 가득해야 할 얼굴에는 이성이 가득했다. 손짓과 표정에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그것이라.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하면 배우에 가까울 것이고.

       만약 연기를 배우지 않았다면 사람에서 멀어진 존재이리라.

         

       “그래. 얼굴 잘 봤다. 딱 봐도 주술사 같군.”

         

       그는 소년을 향해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소년은 그 말이 기껍다는 듯 흐릿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가 학교 공작시간에 웃는 가면이라고 만들어 온 것과 같아, 참으로 어설프면서도 사람의 불쾌감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식사는 아직 식지 않았네.”

         

       소년은 손을 들어 대관람차를 가리켰다.

         

       “보게. 저 찬란한 불꽃을. 저 타오르는 불꽃 속에 자네와 내가 나눌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소년이 허공을 쥐는 시늉을 하자 대관람차의 중심부에서 무언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허공을 가로지르듯 빠른 속도로 날아온 그것은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줄어들었고, 종국에는 거북이가 움직이는 속도로 느릿하게 허공을 날아 그들의 앞에 도착했다.

         

       고기.

       쥐인지 돼지인지 모를 형태를 한 통구이였다.

         

       “특이하긴 하군.”

         

       빅토르는 주술사가 계속 자신에게 말했던 식사가 비유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고기를 먹는 식사임을 깨닫자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싹 굳히더니 번개같이 검을 뽑아 주술사의 목에 겨누곤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개수작은 잘 봤으니, 이제 나에게 설명을 해줄 차례다.”

       “설명이라, 설명이라!”

         

       주술사는 자신의 목을 금방이라도 꿰뚫어버릴 것처럼 내민 검날에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의심하지 말게. 옛말에 이르기를, 첫 번째 만남은 우연이겠지만 두 번째 만남부터는 연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인연을 선연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선의로 대하고, 인연을 악의로 바꾸기 위해서는 악한 감정으로 대해야 하는 법인즉. 나는 오직 선함으로 다가가려 식사를 준비했을 뿐이네.”

         

       싸구려 극단에서 볼 법한 과장된 행동.

         

       “그래서. 우연히 만났지만 선한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 대접을 하시겠다?”

         

       아무리 주술사 중 괴짜와 기인이 많다지만, 이건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처음 만났는데 대접은 왜 하는 것이며, 빅토르의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는 의문을 담아 주술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주술사는 그의 말로 나오지 않은 그의 궁금함을 해결해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오, 빅토르. 기억이 나지 않는가?”

       “뭐?”

         

       소년 같은 천진함을 담아.

       진성은 웃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일세.”

         

       그 말과 함께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빅토르의 눈이 커지고, 사브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그의 허리가 슬쩍 비틀리고 팔이 번개같이 펼쳐졌다.

         

       푸욱!

         

       사람의 몸으로 총을 쏘듯 사브르는 진성의 목에 자그마한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을 만들어낸 검은 그의 목에서 난 피로 목을 축이듯 검날을 적시고, 검기로 구멍을 지져버리며 빠져나와 허공에 예기를 뿜어내었다. 그리고 점프하듯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는 제 주인과 함께 진성에게서 멀어졌다.

         

       진성은 자신의 목에 구멍이 뻥 뚫렸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런 것은 익숙하다는 듯 구멍에 자신의 검지를 넣었다.

         

       “성스러운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죽지 않으니. 이는 하루가 반복되는 것과 같으며, 태양이 영원불멸한 것과 같다.”

         

       진성이 주언을 외우자 대관람차에서 불꽃으로 세례를 내리듯 불똥을 진성을 향해 쏟아내었다. 그러자 불꽃이 전염되듯 진성의 목에 달라붙어 타오르고, 이윽고 불꽃은 살점이 되어 진성의 목에 난 구멍을 모조리 메꾸었다.

         

       “케페라(Kehepera).”

         

       불똥은 점과 같았다.

       흐늘거리며 피어날 불꽃을 위한 알.

       빛으로 이루어진, 불꽃이 잠들어 있는 알.

         

       “라(Ra).”

         

       불똥은 불꽃이 되었다.

       촛불처럼 솟아난 불꽃은 세를 불리며 진성의 목을 휘감고, 메꿔진 구멍 주위를 맴돌며 타올랐다. 살점이 되어버린 불꽃을 연료로 삼으려는 듯 뱀처럼 움직이고, 그의 목을 휘감고 그의 얼굴까지 오르며 그의 머리를 불꽃으로 뒤엎었다.

         

       “아툼(Atum).”

         

       그의 머리 전체를 뒤엎은 불꽃은 그에게 털끝만큼의 피해도 입히지 않은 채 다시 뱀의 형상을 이루었다. 미끄러지듯 그의 얼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며, 마치 제 허물을 벗어 던지듯 불꽃의 막을 사방으로 뿌리고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어린 태양이 늙은 태양이 되고, 늙은 태양은 휴식과 함께 다시 젊어져서 떠오르듯 불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불똥의 형태로 부유하며 때가 되기를 기다렸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열기로 밧줄을 만들어 대관람차와 연결되었다.

         

       이는 대관람차의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진성이 끊임없이 재생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군인들이 다연장 로켓으로 대관람차를 박살을 내거나, 빅토르가 힘을 제대로 쓰지 않는 한 진성의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진성은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몸을 활짝 펼치고 가슴을 드러내었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연이라. 다만 두 번째 만남은 연이니.”

         

       그는 자신을 경계하는 빅토르에게 말했다.

         

       “첫 번째 만남에 나는 자네의 관상을 보았지. 그리고 자네와 나의 연이 그게 끝이 아님을 깨달았고, 두 번째 만남에 내가 자네에게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 것 역시 깨달았으니. 이 자리는 그 때문에 성사된 것일세.”

         

       진성은 허공에 띄운 고기를 자신과 빅토르의 중간 지점에 살포시 놓았다.

         

       “나는 자네가 마침내 왕이 되는 것을 보았네.”

         

       그는 뚜벅뚜벅 걸어 고기 앞에 앉았다.

       그리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왕이 되기를 원하지.”

         

       빅토르는 그 말에 표정이 굳었다.

         

       “자, 이제 나와 이야기할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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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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