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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히히히힝!”

       “으앗! 진정해, 이놈들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마력석을 싣고, 헤카르테교 간부들을 태운 커다란 마차를 끌던 말들이 돌연 불안한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뛰었다. 

       

       “무슨 일이냐!”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말들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지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만 더 가면 가가레일 유적지에 도착하는데 코앞에서 갑자기 초를 치자 짜증이 밀려왔다. 

       

       ‘잠깐만, 아니지.’

       

       그를 지부장까지 올려 주었던 날카로운 직감이 경고를 보냈다.

       

       하필이면 코앞에서 갑자기 멈춘 게 아니라, 코앞이라서 멈춘 거라면?

       

       탓.

       

       지부장은 즉시 마차에서 내렸다. 

       

       가가레일 유적지는 이제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 있었다. 

       

       그는 땅바닥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려 보냈다. 

       

       “스캔.”

       

       파앗.

       

       땅 속으로 마나가 빠르게 퍼져 나가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모든 작은 소리들이 느껴졌다. 

       

       -쿠르르르르르….

       

       그리고, 아주 미세하지만 지속적인 떨림이 유적지 쪽,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 

       

       ‘이 소리는….’

       

       사실 유적지의 비밀통로 안쪽에서 나는 소리는 결계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게 정상이다. 

       

       ‘비밀통로 입구는 기척조차 차단할 수 있는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안쪽에 있는 강력한 골렘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고, 비밀 통로를 찾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만약 맨 안쪽, 파이어 브레이슬릿이 있는 공간의 결계가 왜곡되거나 해제되어 벽면 전체가 열린다면, 그 엄청난 진동은 주변의 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지금도 스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미세한 소리만이 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마차를 끌던 말처럼 본능이 발달한 동물들만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쿠르르….

       

       소리는 금세 멈추었다. 

       문이 다 열렸거나, 다 닫혔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도대체 누구지?’

       

       가장 먼저 든 의문은 그거였다. 

       

       가가레일 유적지의 비밀 통로를 알고, 결계까지 왜곡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 있었던가?

       

       ‘혹시 다른 지부 녀석들인가?’

       

       헤카르테교는 코크먼 지부 이외에도 몇 군데에 비슷한 규모의 지부가 있다. 

       

       만약 그들도 계시를 받았고, 자신과 똑같은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그들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타이밍에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리가.’

       

       코크먼 지부는 지부들 중에서는 재력이 꽤 빵빵한 편. 결계를 왜곡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석을 코크먼 지부보다 빨리 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우린 지금 무리해서 일정을 앞당기기까지 했어.’

       

       그러니 같은 지부 녀석들일 리는 없다. 

       

       ‘만약 안에 있는 놈들이 정말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손에 넣었다면….’

       

       그들이 그걸 갖고 도망치기 전에 유적지 입구에서 죽이고 빼앗아야 한다. 

       

       “워, 워! 드디어 진정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아래쪽에서 울리던 진동이 멈췄으니까.

       

       “바로 출발해! 목적지가 코앞이다!”

       “옙!”

       

       마차는 다시 최대 속력으로 가가레일 유적지에 접근했다. 

       그는 도착하기 전에 간부들에게 미리 일러 두었다.

       

       “잘 들어라. 지금 유적지 안에 누군가가 있다.”

       “예? 저희 말고 비밀 통로를 아는 자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 이미 놈들이 유물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높아. 우린 놈들이 그걸 가지고 도망가기 전에 반드시 잡아 빼앗아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저길….”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기회 말입니까?”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를 왜곡하기 위해, 놈들도 마력석을 잔뜩 가지고 들어가 소모했을 거다. 놈들이 유물을 가지고 나왔을 때 우리가 그걸 뺏을 수만 있다면….”

       “아아!! 저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마력석은 전부 아낄 수 있는 거군요!”

       “그래.”

       “이야, 벌써 그런 생각까지!”

       “역시 지부장님은 천재십니다!”

       “속 보이는 소리 하지 말고, 싸울 준비나 해라. 놈들도 골렘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 실력은 될 테니.”

       

       그리고 잠시 후.

       

       “엇, 저기 마차가 하나 있습니다!”

       

       유적지 근처에 세워져 있는 마차를 본 누군가가 소리쳤고.

       

       “지금 나옵니다!!”

       

       거의 동시에 유적지 입구에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쳐나오고 있었다. 

       

       “저놈들이다!”

       “고작 둘?”

       

       입구에서 나온 건 검사로 보이는 여자 한 명, 그리고 품에 웬 용족 마물 하나를 꼭 안고 있는 남자 한 명이었다. 

       

       타닷!

       

       지부장과 간부들은 순식간에 달려 나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들, 지금 유적지에서 나왔지?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고 하시나?”

       

       지부장의 말에 사역마를 안고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아, 잠깐 구경 왔는데 별게 없네요. 하하. 그래서 갈 길 가려고요.”

       “쀼, 쀼우!”

       

       사역마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사역마는 불안한지 남자의 옷 소매를 꼬옥 쥐었다. 

       

       “아하. 그랬군. 우린 볼일이 좀 있어서 찾아왔거든.”

       “그러셨군요. 빨리 비켜 드릴….”

       “그런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그 볼일을 너희가 먼저 본 것 같단 말이지.”

       “네…?”

       

       지부장은 남자와 사역마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래. 내 판단이 틀렸군. 인정하지. 진짜 조심해야 할 건 용사가 아니라 ‘용을 깨울 자’가 맞았어.”

       

       지부장의 입에서 나온 ‘용을 깨울 자’라는 말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지부장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네놈들 정도는 되어야 비밀 통로를 알아내고 유물까지 가져갈 만하지.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어.”

       

       지부장은 이를 드러내며 레온의 품에 안겨 있는 아르를 바라보았다. 

       

       ‘방금 반응으로 확실해졌다. 놈은 용을 깨울 자가 맞고, 저 조그만 건 해츨링이야. 설마 용을 깨울 자가 해츨링을 깨웠을 줄은 몰랐군.’

       

       게다가 해츨링의 비늘 색으로 보건대, 저건 천 년 전 최후의 은룡으로 불렸던 카르사유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았다. 

       

       ‘저것이 크기 전에 죽일 수만 있다면.’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빼앗아 용사와 드래곤을 대립시키고, 용을 깨울 자와 카르사유의 해츨링까지 이곳에서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면.

       

       헤카르테님은 물론, 다른 마왕님들, 나아가 마신 라데스님의 부활에 더 이상 걸림돌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을 인정받아 인간의 수명을 초월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거야. 이런 기회가 제 발로 굴러들어 오다니. 하늘이 나를 돕는군.’

       

       지부장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그는 레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죽ㅇ….”

       “블링크.”

       

       팟!

       

       그리고 그 순간, 실비아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카아아아앙!!!

       

       어느새 지부장의 코앞에 나타난 실비아의 검이, 지부장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너는….”

       

       지부장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놀란 건 지부장뿐이 아니었다. 

       

       “어떻게…!”

       

       실비아가 이를 악물었다. 

       방금 공격은 9성의 검사인 자신의 마나를 정교하게 압축해 담은 일격이었다. 

       

       이미 상대가 레온과 아르의 정체를 눈치 챘다면, 자신도 더 이상 정체를 감추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레온 앞에서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격이 막힐 줄은 몰랐다. 

       

       “크하하하!! 그렇게 된 거군! 우리보다 엘프 쪽에서 먼저 용을 깨울 자를 찾은 거였어.”

       

       지부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식이!”

       

       실비아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카아아앙!

       카아앙!

       

       온 힘을 다해 지부장을 공격했지만, 그를 감싼 방어막을 뚫을 수는 없었다. 

       

       ‘아냐, 분명 방어막은 박살나고 있어.’

       

       정확히는 한 번의 공격에 방어막이 하나씩 부서지고 있었다. 

       

       카가가강!

       

       “이런, 내가 아끼던 초고가의 아티팩트가 벌써 절반이나 망가졌군.”

       

       그가 착용 중인 아티팩트는 어떤 공격이든 충격을 흡수해 공격과 함께 소멸하는 방어막을 소환해 주는 아티팩트.

       

       얼마나 강한 공격이든 정해진 횟수만큼 막아 줄 수 있지만, 약한 공격에도 횟수가 차감되며 재충전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걸 눈치챈 실비아는 순식간에 연속 공격을 퍼부으려 했지만.

       

       “바인딩(Binding).”

       

       그보다 지부장의 영창이 조금 더 빨랐다. 

       

       파앗.

       보이지 않는 힘이 실비아의 팔다리를 감싸 움직임을 봉인했다.

       

       “이따위 마법쯤은…!”

       

       실비아는 곧바로 체내의 마력을 방출해 마법을 풀어 버리려 했지만.

       

       “못 풀걸?”

       “……!”

       

       실비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바인딩 마법은 뒤쪽 마차에 실려 있는 대량의 최상급 마력석과 연결되어 있었다. 

       

       실비아가 체내의 마력을 방출해 바인딩 마법에 대미지를 가할 때마다 마력석에 들어 있는 마나가 그걸 유지하기 위해 뭉텅이로 빠져나갔지만.

       

       애초에 이 마력석들에 들어 있는 마력량은 무려 드래곤이 만든 결계를 왜곡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마력석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유물도 얻고 용을 깨울 자까지 죽일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은 싸다고 생각해야겠군.”

       

       가장 큰 방해꾼은 자신이 묶어 두었다.

       

       지부장은 바인딩 마법을 유지하며 간부들에게 외쳤다. 

       

       “저놈과 해츨링을 죽여라!”

       “예!!”

       

       간부들은 지부장의 명령에 일제히 레온과 아르에게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스 월!”

       “쀼우우우(플레임 캐논)!”

       

       레온은 방어 마법을, 아르는 공격 마법을 시전하며 간부들과 맞서 싸웠지만, 헤카르테교의 핵심 간부들 전원을 둘이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크읍!”

       “쀼우욱!”

       

       마법끼리 정면으로 맞붙어 이길 수는 있어도, 결국 여러 군데에서 날아오는 마법에 한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분산시켜야 했다.

       

       콰아아앙!

       

       “쀼우욱!”

       “아르야!!”

       

       레온은 마법을 온전히 상쇄하지 못해 일부 파편을 맞고 날아갈 뻔한 아르를 꽈악 안았다. 

       

       “콜록, 콜록. 아, 아이스 월!”

       

       콰아앙!

       

       레온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아르를 꼭 안았다. 

       

       “레온 씨! 아르야! 조금만…. 조금만 버텨 줘!”

       

       실비아는 온 힘을 다해 바인딩 마법에 자신의 마력을 부딪쳤다. 

       

       ‘조금만 더…. 제발!’

       

       어느새 마차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석은 절반 이상이 힘을 잃은 상태.

       

       지부장 역시 마력석이 소모되는 속도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뭣들 하고 있나! 어서 마무리해!”

       “예, 옙!”

       

       간부들 역시 남은 마나를 모두 짜내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안 돼!!”

       

       실비아가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바인딩 마법이 풀리기만 하면, 여기 있는 놈들 모두를 도륙내는 데에는 단 십 초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바인딩 마법이 풀리기 전에 레온과 아르는 죽는다. 

       

       그 이후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고통스럽게 죽겠지만, 실비아는 패배감을 안은 채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키지 못했어.’

       

       레온과 아르와 보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임무를 위해서였지만, 어느샌가부터 레온과 아르는 실비아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실비아는 그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런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비아의 심장 속, 아주 깊은 곳.

       마나의 근원이 끓어오르듯 심장을 데웠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모든 힘을 일시에 방출시켜 한계를 뛰어넘는다.

       

       힘을 사용한 이후 실비아의 심장은 터지고 말겠지만, 지금 실비아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구한다.’

       

       -그럼 저희, 다음 도시 도착하면 회식 하는 거예요?

       -당연하죠. 크게 쏘겠습니다.

       -헤헤, 기대할게요.

       -쀼우!

       

       ‘레온 씨, 미안해요. 회식은 참석 못 하겠네요. 제 몫까지 아르랑 맛있는 거 먹어야 해요.’

       

       실비아가 힘을 방출하려는 순간. 

       

       “삐유우우우우웃!”

       

       아르의 포효와 함께, 일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다. 

       

       “……!”

       “뭐,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간부들은 물론, 지부장과 실비아까지도 굳어 멈출 정도의 파동.

       

       그리고 그와 함께, 아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빛무리는 아르를 완전히 감싼 채 점점 커져 울창한 나무보다도 높이 솟았고, 이윽고 거대한 무언가의 형상을 띠었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그곳에는 은빛의 비늘을 가진 거대한 드래곤이 서 있었다. 

       

       “아, 아르야?”

       

       방금까지 아르를 안고 있었던 레온은 입을 떡 벌린 채,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시야 한쪽에 뜬 상태창의 메시지를 읽었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의 힘」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세월을 뛰어넘었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 이후의 모습으로 현현합니다!]

       

       과거 최전방에서 대륙을 수호했던 은룡.

       모든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전무후무한 최강의 드래곤, 카르사유의 피를 물려 받은 유일한 은빛 드래곤.

       

       그 존재가, 이 순간 완전한 성체의 모습으로 페룬 대륙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크, 크와아아아앙!!!”

       

       아르가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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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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