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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제가 원하는 걸 이뤄줄 수 있다고요?”

         

       일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래요. 저는 당신의 목적을 알고 있어요.”

         

       초월 마법사의 수작인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할멈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는 접근 안 한다.

         

       “제 목적과 원하는 게 뭔데요?”

         

       역질문. 소미레는 지금 무언가 듣고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공녀님에게서 벗어나실 거잖아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일단 여기서는 미끼를 던져서 좀 더 끌어내 볼까.

         

       “제가 왜 공녀님에게서 벗어납니까?”

       “당신은 그래야만 하니까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꾸 그렇게 나오실 거예요?”

         

       정확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알겠다.

         

       ‘초월 마법사가 살짝 언질을 줬군.’

         

       그 할멈과 소미레는 협력 관계. 심지어 대신 움직여서 프란체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나저나 초월 마법사가 여기까지 알고 있었을 줄이야.’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가늠이 잡히지 않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진 바렌베르크라는 인물에 대한 건 처음부터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회귀와 이동의 마법진을 새긴 건 초월 마법사다.’

       

       진이 회귀를 한 만큼, 그 마법을 새긴 초월 마법사도 회귀를 했겠지. 거기에 내가 빙의한 것과 초월 마법사와 진 바렌베르크의 계약.

       

       이 모든 걸 이어줄 하나의 퍼즐을 알 수가 없다. 정작 협력 관계인 소미레도 자세한 건 모르고 있고.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휙. 등을 돌렸다.

         

       얘기는 끝. 그저 초월 마법사에게 언질을 받은 거로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면 오산이지. 무엇보다 나는 프란체를 팔아넘기지 않는다.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

         

       이번엔 또 뭔 소리를 하나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계속 귀찮게 하네. 프란체가 기다리고 있는데.

         

       “반년도 안 남았죠?”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기선 최대한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주도권은 아직 내게 있다.

         

       “이번엔 또 무슨 소리입니까?”

         

       소미레는 싱긋 웃을 뿐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음, 저번에 반년이라 했으니 이젠 4개월하고 반 남았나?”

         

       내가 도망칠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일단 내가 프란체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걸 보면 동기화에 대해선 모른다.

         

       ‘더 찔러볼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반복하시는군요.”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다 알고 있는데?”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발끈하는 소미레.

         

       “다음 해가 되면 공녀님에게서 떠나실 거잖아요.”

         

       일단 내 계획과 시간은 알고 있고.

         

       “제가 그때 왜 떠납니까?”

         

       더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자세한 이유는 모르고 있다. 더 할 이야기는 없겠군.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소미레가 “아직 더 할 얘기가…!”하고 붙잡았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사용인에게 샴페인을 받아든 채 테라스로 나왔다.

         

       “늦었구나.”

         

       밤하늘 아래, 난간에 걸쳐서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며 싱긋 웃는 프란체.

         

       “이상한 날파리가 꼬여서요.”

       “날파리?”

       “공녀님께서 신경 쓰실 건 아닙니다.”

         

       나는 샴페인을 따서 잔에 따르곤 프란체에게 건넸다.

         

       “드시지요.”

       “고마워.”

         

       한 손에는 잔을 들고 초승달을 바라보는 프란체. 이러고 있으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난다.

         

       ‘프란체와 같이 파티장에 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네.’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내일 공작령으로 바로 돌아가자.”

       “행진은 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프란체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봐서 뭐 하니? 혈통을 중시하는 황실이 성녀라고 해서 평민과 황족의 결혼을 허용해 이중성으로 가득한 바보들의 행진인데.”

         

       그리 말하곤 샴페인을 들이키는 프란체. 아직도 속이 뜨거운 듯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쉬다가 돌아가자꾸나. 황실에 더 있고 싶지가 않네.”

         

       나는 “예, 그러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데아는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

         

       “황궁 구경 아직 못했는데…….”

       “그리 풀이 죽지 말렴.”

         

       프란체는 라데아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황궁이 화려하긴 하지만 그뿐이야. 더 의미 깊고 좋은 곳을 데려가 줄 테니 아쉬워 말렴.”

         

       라데아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황실 주방장의 음식은 먹었잖나.”

       “그건 맞지만요.”

       “그럼 황궁 구경 다 한 거다.”

         

       케일의 위로 같지 않은 단순한 위로에 라데아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는 먹는 거에는 진심이시네요.”

       “…아저씨 아니라고 했을 텐데?”

         

       티격태격하는 케일과 라데아를 내버려 두고, 나는 난간에 걸터앉은 프란체의 옆에 앉았다.

         

       “이제 곧 모든 계획이 끝나갑니다.”

       “그러게. 남은 건 하나뿐이야.”

         

       우리는 조용히 초승달을 바라봤다.

         

       프란체가 가주가 되는 것. 이것만 끝나면 나는 떠난다.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피어나는 프란체에 대한 걱정.

         

       이 이중성이 충돌하며 나를 괴롭힌다.

         

       ‘복잡하군.’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곤 프란체를 불렀다.

         

       “공녀님.”

       “왜?”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쉽게 입을 뗄 수가 없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모종의 이유로 제가 사라지면 어쩌실 겁니까?”

         

       내 질문을 듣자 프란체는 한순간에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와 동시에 라데아와 케일도 잡담을 멈추고 침묵했다.

         

       “그건 무슨 의미니?”

       “단순한 상상입니다.”

       “…….”

         

       손가락으로 난간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프란체. 잠시 간의 고민을 끝낸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아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너를 찾지 않을까? 전 세계를 뒤질 거야.”

         

       꿀꺽. 침이 무겁게 넘어갔다.

         

       “만약 그래도 찾을 수 없다면요?”

       “…아까부터 자꾸 불쾌한 질문을 하는데.”

         

       프란체는 미간을 구긴 채 나를 째려보곤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상상도 하기 싫고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질문은 그만두렴.”

         

       나는 “죄송합니다.”하며 사과하곤 시선을 내렸다. 괜한 질문을 했군.

         

       이 와중에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케일과 라데아. 쟤들은 내가 떠날 걸 알고 있으니 그러는 거겠지.

         

       “이제 돌아가자. 파티도 즐길 만큼 다 즐겼으니.”

         

       프란체는 그리 말하곤 난간에서 내려왔다. 나와 라데아, 케일은 조용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 * *

         

         

       이튿날, 데카르트 공작저.

         

       나는 지금 창고만도 못한 숙소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얻어낸 게 별로 없어.’

         

       초월 마법사를 만나면 해답을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얻은 건 지금까지 유추했던 게 틀렸다는 것뿐.

         

       그나마 노예 각인이 쉽게 풀렸다는 정도인가.

         

       ‘이런 와중에 걱정도 태산이야.’

         

       내가 떠난 뒤의 프란체와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소미레.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초월 마법사.

         

       “흠…….”

         

       내가 만난 초월 마법사는 소미레에게 그다지 협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소미레가 내민 조건 자체도 흥미로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게 더 관심이 많았지.

         

       ‘모르겠네.’

         

       나는 허리를 일으켜 침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답답하게 고뇌해봤자 소용없다.

         

       “하기로 했던 거나 하자.”

         

       각인이 해제된 지금, 프란체에게 들키지 않도록 구속구를 숨겨야 한다.

         

       나는 연무장을 나와 공작저로 들어갔다. 현재 데카르트 공작가의 일원들은 결혼식으로 자리를 비운지라 사용인은 보이지 않았다.

         

       “공녀님, 들어가겠습니다.”

         

       시각은 이른 아침. 헬레나도 없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자고 있나 보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

         

       작은 숨소리를 내며 조용히 잠든 프란체. 나는 완전히 기척을 죽이고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갈색 서랍. 여기에 구속구가 있을 거다.

         

       “진…….”

         

       잠꼬대 소리에 움찔했다. 꿈에 내가 나왔나.

         

       “후우.”

         

       짧은 시간 동안 서랍을 뒤진 끝에 구속구를 찾았다. 그런데…….

         

       ‘음?’

         

       문제없이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다. 각인이 해제되지 않았다는 소리.

         

       ‘뭔가 이상한데.’

         

       분명 초월 마법사의 힘으로 노예 각인은 사라졌다. 하지만 구속구는 여전히 빛내고 있다.

         

       ‘장난을 쳐뒀구나.’

         

       초월 마법사도 참 악질이다. 나는 구속구를 원래 있던 자리에 넣어뒀다. 그리고 조용히 나가려던 찰나.

         

       “진…?”

         

       프란체가 깨어났다.

         

       “말도 없이 들어오고, 무슨 일이니?”

       “…혹시 몰라 공녀님의 안전을 확인했습니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와 부스스한 눈. 아침에 일어난 프란체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곧바로 헬레나를 불러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흐아암, 하고 하품하는 프란체를 놔두고 방을 나왔다. 헬레나는 문 앞에 있었다.

         

       “헬레나.”

       “아…….”

         

       이전처럼 도망은 치지 않지만, 프란체의 명령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공녀님께서 깨어나셨어.”

       “네, 네!”

         

       잠시 기다리니 헬레나는 새하얀 수건과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왔다.

         

       “공녀님, 들어갈게요!”

         

       그렇게 헬레나가 들어가고, 나는 프란체가 준비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오시래요…….”

         

       헬레나가 나와 말을 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안으로 들어섰다.

         

       녹색의 펑퍼짐한 드레스를 입은 채 테이블에 앉아 있는 프란체.

         

       “앉으렴.”

         

       늘 그랬던 것처럼 프란체와 마주 보며 앉았다.

         

       “좋은 아침이구나.”

       “그렇네요.”

         

       새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조금 쌀쌀한 듯한 바람이 들어오는 가을. 겨울의 바로 직전.

         

       이번 겨울은 프란체와 맞이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계절이 될 예정이다.

         

       “공녀님.”

       “왜?”

       “가주 계획이 코앞입니다.”

         

       프란체의 얼굴이 차분해졌다.

         

       “말해보렴.”

         

       미소가 사라지고 근엄한 얼굴이 된 프란체.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곧 오는 재앙의 파도를 이용할 겁니다.”

       “재앙의 파도를 이용한다고?”

       “그렇습니다.”

       “어떤 얘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가주의 자리를 얘기하는 데 뜬금없이 나온 재앙의 파도. 의문이 가득해진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앙의 파도는 데카르트 공작가와 페르시아 공작가. 그리고 황실 기사단을 중심으로 세 개의 토벌대로 나뉘는 거 아시죠?”

         

       프란체는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계획의 핵심입니다.”

       “…응?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당연하지. 이제 초입에 들어온 거니까.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꾸린 토벌대는 재앙의 파도에서 부서질 겁니다.”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그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가문 전체가 타격을 입을 텐데?”

         

       나는 피식 웃으며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하고 대답했다.

         

       “지역 사수를 실패한 데카르트 공작과 소 공작은 신뢰를 잃을 겁니다. 공녀님께서는 그 틈을 타 후계자 자리에 들어가실 거예요.”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꽉 막힌 노인네들도, 가신들도 프란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가문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인데, 프란체는 이를 타개해줄 사람이니까.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작전을 세울 겁니다.”

         

       프란체는 “무슨 작전?”하곤 내 말에 경청했다.

         

       “케일이 절 대신할 겁니다. 공녀님 곁에는 라데아를 둘 거고요.”

       “그럼 너는 어떻게 하려고?”

       “저는 마수로 위장해 재앙의 파도에 참여할 겁니다.”

         

       재앙의 파도에서 내가 될 마수는 ‘혹한의 망령’. 마수 중에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보스다.

         

       “이를 이용해서 데카르트 공작가의 기사단을 물갈이하고, 공작과 소 공작을 가문 바깥으로 밀어낼 겁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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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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