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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거나 위해줄 때는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지만, 내 주변에서는 종종 본 적이 있다.

        

       아, 물론, 내 ‘주변’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를 뜻한다. 학교 내에서 내가 아무리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진짜로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에도 학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없는 사람’답게, 아이들은 내 옆에서 굳이 멀어질 필요도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걱정해주고, 축하해주고. 함께 웃고, 울고.

        

       그 모든 감정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화영 중학교였고, 사람의 서열이 돈으로 결정되는 곳이었다. 나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 서로를 구분 짓고 물어뜯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도.

        

       나는 부러웠다.

        

       내가 가진 관계는 어머님과의 관계뿐이었고, 그마저도 가짜인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그 아이들은 나에게 그런 관계를 내어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 부러웠다.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을 처음으로 대면한 내가 느낀 감정은 기쁨 같은 것이 아닌, 당혹감이었다.

        

       “…….”

        

       나는 유하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하기에는, 나는 고작 이 아이를 일주일 동안 알고 지냈을 뿐이다. 그냥 말로 표현할 수는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고맙고 기쁜 일이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실감하기에는 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가 나에게 남긴 말은 있어?”

        

       내가 기억을 잃은 그 3개월 동안 내 몸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나’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라는 실감이 없었으니까.

        

       내 물음을 들은 유하늘은, 잠시 고민하다가 괴롭게 털어놓았다.

        

       “만약에 ‘너’가 돌아오고, 자신을 만날 수 없게 되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쭉 친구로 지내줄 수 있냐고…….”

        

       그래.

        

       그랬구나.

        

       역시, 그런 말을 들어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버렸던 인간이다.

        

       그것도 어머님의 관심을 한 번이라도 끌어보겠답시고 목숨을 버렸다.

        

       그런 인간이었기에,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생 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니까.

        

       ……자신이 낼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주변 상황을 정리했다. 나를 무시하던 교사와 학생들을 어떤 방식으로건 설득해서 내가 평범하게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냈다. 나를 너무나도 좋아해 주는 친구를 만들고, 별다른 감정도 없던 사용인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

        

       재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재산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재보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어머님이 다시는 나를 해하지 못하도록 토대를 다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오로지 나 하나를 위해서.

        

       솔직히 나를 위해서 포기한 부분만 빼면, 나머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나처럼 어머님께 집착하지도 않는 성격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손에 들어온 패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할 법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나와는 다르게, 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루어둔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포기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듯.

        

       아, 안 되겠다. 사고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옆에 서 있던 유하늘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래서, 그 말대로 하려고 했어.”

        

       “…….”

        

       자신이 없더라도, 나의 몸으로 돌아온 다른 사람인 나를 위해 계속 똑같이 친구로 지내달라고.

        

       그걸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부탁을 받았었으니까.

        

       아마 이 아이는 그 사람을 아주 좋아했던 모양이다.

        

       같은 몸에 있는 나를, 그 사람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런데, 잘 안되더라.”

        

       마치 한숨을 토해내듯 그렇게 내놓는 말을 듣고도,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아이가 그 사람을 어쩌다가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까. 어쩌다가 둘이 그렇게 친해진 건지, 어떻게 고작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서로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어 본 것은 아주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 속에서뿐이었기에, 나는 그 감정을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미안. 미안해…….”

        

       유하늘은 그렇게 말하며 무너졌다.

        

       “참아보려고 했어. 너를 그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려고 했어…….”

        

       하지만 불가능했을 거다.

        

       나는 그 사람과는 명백하게 다른 존재였으니까.

        

       같은 몸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사고방식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하지만…… 미안.”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는, 정말로 미안해 보였다.

        

       그렇게까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데.

        

       “…….”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니라, 저 기억 속의 희미하게 떠오르는 나였다면 이렇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만 하지는 않았겠지.

        

       문득,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

        

       “무슨 일이라도 있어?”

        

       지난 일주일간 남들 같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생각보다 훨씬 쉽게 알아차렸다.

        

       지난 몇 년간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기만 했던 나는, 사람의 본성을 알아차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내 주변의 모두가 못된 사람이고, 속으로는 나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과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선 여전히 이 아이들을 의심하고 있다.

        

       당당하게 나의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명의 소녀.

        

       ……지난 일주일간, 나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하늘처럼 나를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들도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겠지.

        

       나는 대답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책상 곁으로 다가갔다.

        

       다시 기억이 돌아온 뒤, 책상 서랍 마지막 칸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쓴 유서는 아직 그곳에 있을까?

        

       어머님은 나의 얼굴을 보고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건 나의 유서를 읽고 난 뒤에도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일까? 내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별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내 곁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세 명의 아이는 그 유서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여기서 꺼내 본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도 않겠지.

        

       세 번째 칸을 열자, 내가 써둔 편지가 보였다.

        

       밋밋한, 장식도 없는 하얀 편지지는 고이 접혀 내가 쓰던 노트 위에 올려져 있었다.

        

       편지 봉투는 없었다. 그리고 약통도.

        

       분명 반 정도는 남아있었을 텐데.

        

       ……역시.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아이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신소희가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아냐, 그냥. 확인할 게 조금 있어서.”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평소랑 똑같이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을, 나는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기억을 잃은 나를, 나는 ‘나’라고 생각했던 걸까.

        

       어쩌면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은 것은 그저 어떤 충격 때문이고, 자살에 실패한 뒤 지난 3개월간, 나는 나 나름대로 노력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에서 빛이 쏟아지는 네 사람을 보고서도, 나는 무언가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거다.

        

       아니, 노력 정도는 했을까?

        

       ……그렇게 정확하게 필요한 부분만 바꿀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래, 지난 일주일간, 더없이 즐거웠다. 내 인생 중에서 제일 신기한 일주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인가?

        

       남이 구축해 둔 이 인생이, 정말로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아정체성이나 주체성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단순하게, 내가 이 인생을 마음대로 즐겨도 되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 그 사람이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가 끝낸 나의 인생과는 다른 삶이니까.

        

       미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더 이어갈 생각도 없는 삶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나, 나 말고 다른 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나.

        

       모두 내가 멋대로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날, 내가 약을 먹고 눕지 않았다면.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다른 사람을 바꾸겠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면.

        

       내 주변의 누구 하나라도, 믿을 수 있었다면.

        

       나의 인생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의 속박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되었을지도 몰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불행한 미래 따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 이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이다.

        

       다른 사람의 삶.

        

       *

        

       “……내가 생각해봤는데.”

        

       다음날, 또 수업을 빠졌다.

        

       선생은 나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에도 영향이 갈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시험을 보면 답을 제대로 적어 내지도 못할 텐데.

        

       그래서, 나는 그냥 시원하게 다시 한번 수업을 빠졌다.

        

       옥상 입구에 세워둔 신소희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어차피 매일 같이 있으니까’라고 말하며 유하늘에게 시간을 내어주었기에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제 슬슬, 이 세 사람을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뭐, 믿지 않아도 어쩌겠어.

        

       그 사람은 믿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기억을 찾은 것도 아니고, 그저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지만.

        

       이 세 명을 볼 때마다 ‘믿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이건 아마 그 사람의 마음의 파편이겠지.

        

       “나도,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졌어.”

        

       그래, 그래서 궁금해졌다.

        

       나의 삶을 대신 살았던 사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었던 그 사람을.

        

       나는 만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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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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