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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그 날의 생존자는 풍사율을 비롯한 몇 명의 문파원 뿐이었다.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롯이 하나였다. 천마가 그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시체로 가득하던 화산파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천마는 아직 명이 남은 이들이 있단 걸 알았으면서도 훌쩍 등을 돌려 떠나가 버렸다.

       

       풍사율은 여전히 천마가 왜 그들을 살려두었는지 알지 못했다.

       

       동료들의 생을 바쳐 명을 얻었기에 남은 삶은 떠나 가버린 동료들을 위해 살겠노라 결심했을 뿐.

       

       다른 화산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남은 생명을 화산을 위해 바치자는 데 동의했다. 생명이라는 빚을 생명을 통해 갚자고 맹세했다.

       

       허나 생명을 바치는 방법에 관해 생각한 것은 모두 달랐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거기서 결정을 맡은 건 당시 장로였던 풍사율이었다.

       

       그 날 풍사율이 내린 결정은 이러했다.

       

       ‘우선은 복수를 위한 힘을 기르며 화산을 재건한다.’

       

       지금 그들로써는 천마에게 복수를 할 수 없었다.

       

       화산의 모두가 달려들었음에도 승리하지 못한 게 천마다. 지금 그들이 달려든다 하여도 개죽음이 될 뿐.

       

       그래서는 안 됐다. 그래서야 그들은 복수라는 이름의 화려한 자살극을 써 내릴 따름이었으니.

       

       당장은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는 데 생존자들은 동의했다.

       

       그리 결심을 한 생존자들이었으나 그들은 얼마 안 가 벽에 부딪혔다.

       

       무를 알려줄 것이 없었다.

       

       천마는 화산의 모든 것을 부쉈다. 비급서도. 환단도. 귀물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화산의 무를 기억하는 사람이 풍사율이었는데 그의 재능은 미천했다.

       

       장로들 사이에서도 멍청한 주제에 공로만으로 장로에 올라섰다는 조롱을 받던 그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화산의 무를 재현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의지는 있었지만 세상의 일은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법이었다.

       

       모두가 깨달았다. 이대로 가면 복수를 이룰 수 없음을. 그러기는커녕 화산을 재건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그 때였다. 스스로를 혈교주라 칭하는 자가 모습을 드러낸 건.

       

       “무얼 그리 고민하십니까?”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풍사율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서 있는 것은 검은 면사를 쓴 사내였다.

       

       본 적이 있는 자는 아니었으나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강시 특유의 냄새가 그 정체를 증빙했다.

       

       “혈교주.”

       

       복수를 끝마친 천마가 자취를 감춘 후 무림에 새로이 등장한 악.

       

       죽은 자를 모욕하길 즐기는 미치광이이며 목적도 없이 그저 무림에 혼란을 퍼트리기를 원하는 자.

       

       그와 동시에 풍사율을 비롯한 화산에 이들에게 복수를 돕겠다 선언한 자.

       

       “표정이 안 좋으시군요.”

       

       강시의 몸을 빌린 탓인지는 몰라도 혈교주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 정도로 역겨웠다.

       

       “알 바 아니다.”

       “이야기 해주신다면 상담을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알 바 아니라 했다.”

       “어이쿠. 화가 잔뜩 나셨군요.”

       

       혈교주는 키득거리며 방 한 쪽에서 의자를 가져와 풍사율의 앞에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돌리죠. 요즘 성장은 어떠십니까.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그렇다.”

       

       풍사율은 혈교주의 힘을 빌려 성장하고 있었다.

       

       그 방식은 결코 바르다 할 방식은 아니었다.

       

       인신공양. 사람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내기를 얻는 주술. 사용하는 것만으로 영원히 지옥을 떠돌아다녀야 할 사악.

       

       풍사율도 이게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만약 혈교주가 죽어도 살아나는 유저를 이용한 인신공양을 내밀지 않았다면 그도 혈교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사술 중에서도 최악을 달리는 인신공양의 술은 풍사율에게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성장을 선사했다.

       

       화경의 초입에서 가로 막혔던 그가 어느새 그 위의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다 인신공양 덕분이었다.

       

       “겨우 안부인사를 묻기 위해 온 것인가?”

       

       분명 덕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풍사율은 혈교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것도. 외부인과 본 무림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약탈하는 것도. 죽은 자를 모욕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는 있지만 풍사율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엔 혈교주의 목을 가져간 후 죗값을 치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료 분의 안부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네 놈과 난 동료가 아니다.”

       “그렇죠. 저희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한 배를 탄 동지니까요.”

       

       저희 사이를 그리 좋게 생각하실 줄 몰랐다며 너스레를 떠는 혈교주의 말에 풍사율이 입을 다물었다.

       

       더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플 게 분명했다.

       

       “더 하면 정말 검을 뽑아 드실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이 곳에 외부인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화산에 방문하는 외부인이 한 둘 인 줄 아는가?”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눈에 띄는 사람이라.”

       

       풍사율은 방금 전 자신이 내쫓은 여류무인을 떠올렸다.

       

       화산에서 수련을 하는 외부인들이 호들갑을 떨던 걸 보면 분명 그녀도 외부인이겠지.

       

       “모르겠군.”

       

       하지만 풍사율은 여류무인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경유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태항운의 유지를 이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혈교주의 손길이 닿는 걸 풍사율은 바라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면사 위로 드러난 혈교주의 눈이 좁아졌다.

       

       무언가를 눈치 챈 걸까.

       

       일순의 침묵 속에서 저 자가 캐묻는다면 어찌 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풍사율이었으나 혈교주는 그 이상 물음을 잇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저에게 협력하는 외부인들이 호들갑을 떨어대던데요.”

       “그 놈들이 헛소리를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인가.”

       

       외부인은 머리가 약간 빈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과정을 미워하고 결과만을 사랑하는 놈들.

       

       무에 관해 쥐뿔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편리만을 찾는 놈들.

       

       개 중엔 오늘 찾아 온 여류무인 같은 사람도 존재했지만 대개는 무인이라 칭하는 것도 아까운 놈들뿐이었다.

       

       멸문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끌어들였지만 풍사율은 외부인이란 존재에 자그마한 애정도 지니지 않고 있었다.

       

       “아니. 글쎄. 그 외부인은 검선의 인정마저도 받았다지 않습니까.”

       “검선? 그건 전설에 나오는 존재 아니었나?”

       

       풍사율도 검선의 이야기를 알았다.

       

       검을 다루는 무인 중에서 검선의 이야기를 모르는 자가 더 드물었다.

       

       자신의 검으로 태양을 떨어트렸다는 무인의 이야기는 어린 무인에게 동경을 심어줄만한 소리였으니까.

       

       너무 허황되었기에 단순한 전설이라 생각했거늘. 그 분이 진실로 존재한다고?

       

       “있습니다. 당장에 만나려면 만나는 것도 가능하죠. 저나 당신처럼 삿된 기운을 품었다면 만나는 순간 목을 베일 각오를 해야 하지만요.”

       

       검선이 실존한다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어째 외부인이 무림에 방문하고 나서부턴 상식이 자꾸만 깨지는 것 같군.

       

       검선의 인정을 받은 자라.

       

       말도 안 되는 재능이었다.

       

       그녀는 분명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육신은 이류에 불과했다.

       

       그런 몸으로 검선 같은 전설 속 존재에게 인정을 받았다니.

       

       부럽구나. 나에게도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이 놈 같은 쓰레기와 손을 잡을 일도 없었을 터인데.

       

       “어쨌든 그런 자가 저희를 막으러 온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상대할 준비를 해야겠군.”

       “그래주십시오. 저도 나름의 방비책을 세워뒀습니다만 준비라는 건 철저할수록 좋은 거니까요.”

       

       혈교주는 그리 말을 하며 자신의 품 안에서 구슬을 하나 꺼냈다.

       

       “이건 무엇이지?”

       “가지고 계십시오. 저희가 산에 설치한 술을 발동시키는 기점이 되는 물건입니다.”

       

       그건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보라색 구슬에 불과했으나 풍사율은 어째선지 그 구슬에서 찝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절할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 풍사율은 자신을 바라보는 혈교주의 시선을 눈치 챘다.

       

       항상 짓던 눈웃음이 사라지고 자리 잡은 무표정한 시선을.

       

       “감사히 받지.”

       

       풍사율이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고 나서야 혈교주의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방금 그 시선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요.”

       

       혈교주는 그리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그가 사용하던 육신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애초에 죽은 몸을 억지로 살려 제 것마냥 사용하고 있었으니 버릴 때도 제 마음대로인 것이다.

       

       풍사율은 책상 위에 놓인 구슬을 만지작거리다 바깥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

       

       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혈교주가 준비를 해 둔 이들이 보였다.

       

       대충 보아도 수십은 될 것 같은 단체였는데 어느 하나 사기를 품지 않은 자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중간중간에 강시들도 여럿 끼어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알던 것보다 성능이 부족한 녀석들뿐이었다.

       

       저 정도라면 지금의 육신으로도 얼마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저들이 머무르는 공터의 바닥에는 붉은 색으로 그려진 진이 있었다.

       

       혈교의 건물에 가면 심심찮게 보이던 녀석이었다. 정확한 종류는 모르겠다만 좋지 않은 술법임은 분명했다.

       

       “저 거대한 도마뱀이 신령이 맞느냐?”

       “그렇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령은 그 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의식을 잃은 채 거친 숨만을 내쉬고 있는 신령은 언제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기이하군. 혈교주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근처에 동굴을 하나 파서 수많은 함정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어야 했는데 이런 공터에 신령을 내버려 두다니.

       

       무슨 수작일까. 아래에 그려진 진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이 곳을 지키고 서 있는 이들을 믿는 것인가.

       

       단순히 혈교주가 이 곳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이전 같았으면 별 생각하지 않고 이 공터 채로 전체를 날려 버렸을 것이다.

       

       무식해 보이는 방법이다만 혈교주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보다야 나은 방법이니.

       

       마음 같아서는 지금도 그리 하고 싶다만 문제가 있어 그럴 수 없다.

       

       육신이 모자라 예전처럼 숨을 쉬듯 한 장소를 초토화시킬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지금 내가 신령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란 것도 문제이니.

       

       어쩔 수 없이 혈교주가 준비한 것과 놀아주어야겠구나.

       

       “민가야. 계획이 있느냐?”

       “있지.”

       “무엇인지 설명해다오.”

       “정면으로 가서 박살을 내는 것.”

       “…그게 무슨 계획인가!”

       

       내 말이 황당한지 바루가 날 다그쳤지만 난 진지했다.

       

       돌아서 갈 이유가 없다.

       

       정면에서 부술 자신이 있다면 괜한 작전을 짤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냥 다 때려 부수어 버리면 그만이지.

       

       “최소한 어찌 저들을 상대할지 정도는 생각을.”

       “다 생각을 하고 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신령을 구하는 것 아니더냐.”

       “그래서.”

       “잠입이니 뭐니 귀찮은 짓을 할 바에 그냥 다 박살을 낸 후 구출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으냐?”

       

       이럼 신령이 당한 수작이라던가. 바닥에 깔린 혈진의 정체 같은 걸 캐물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질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게야?”

       “왜 패배를 생각해야 하는가.”

       

       지금 본인이 아무리 나약한 육신과 부족한 내공을 지녔다 하더라도 난 패하지 않는다.

       

       내게 패배라는 글자를 새겨줄 것이라면 검선 그 노친네 정도는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만한 수준의 무인이 어디 흔한 줄 아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길 자신이 있다면 정문으로 들어가는 게 제일 빠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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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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