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7

        

         “…시발?”

         

         끔찍한 꿈을 꾸었다.

         한순간의 실수, 잠깐 절제에 실패했던 과거의 잔재를 낱낱이 들춰진 것 같은 불쾌감이 피어오른다. …심지어 사실과 거리가 아주 먼 과장까지 추가되어 어마어마한 왜곡이 가해진 것 같았다.

         

         “아니이……!!”

         

         그런 게 절대 아니었다고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싶어도 대체 누구를 설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존나 이상했다.

         

         이게 다 약 챙겨 먹고 고민하느라 싱숭생숭한 와중에, 별 거지같고 쓸데없는 범죄 행각에 휘말려 들어간 탓이 분명하다.

         안 그래도 중차대한 새 출발치고는 삐걱거리는 게 많아서 스트레스가 천장을 치고 있었는데 수면 장애까지 날 괴롭히다니.

         

         차라리 예의 미래 정보라도 좀 쪼개서 제공해주던가 할 것이지, 이게 뭔가?

         

         “…다 너 때문이야.”

         

         – …?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

         

         화풀이로 제로 녀석을 타박해봐야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이너스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실수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달래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올바른 교육법일리가.

         

         “……미안, 잠깐 착각했어.”

         

         참으로 겸연쩍고 볼품없는 사과였지만 그는 군소리 하나없이 다시 충실하게 대기 모드로 되돌아갔다.

         

         부디 삐뚤어지지만 말아 다오.

         

         스륵… 스르륵.

         푹신한 객실 침대에 돌아누운 상태로 알싸한 습포향이 감도는 몸 이곳저곳을 매만져서 확인해봤다.

         

         넘어질 때 부딪혔던 등과 어깨, 뻐근할 정도로 세게 권총을 쥐고 있던 손가락, 그리고 무엇보다 보기 흉한 피멍울이 들었던 배까지.

         

         돌아오는 길에, 의료실에서 슬쩍 꺼내서 붙인 타박상 패치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고통이라 표현할 만한 감각은 거의 남지 않았으나.

         또 그렇다고 누적된 피로가 다 사라지기엔 충분한 유예가 주어지지 않았다.

         

         “읏…차!”

         

         무책임하게 늘어지려는 근육을 채찍질해 몸을 일으켜, 뒤늦게 제공되었던 간편식(Cartridge Meal)에 딸려 나온 음료수를 낚아채서 입에 가져다 댔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탄산을 충전하건, 반쯤 옷섶에 흘리면서 들이붓건, 단순 변덕과 짜증의 표출로서 객실 가구에 끈적거리는 코팅층을 추가한다 해도 뭐라할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약간의 간식과 더불어 예의를 갖추어야 할 순간이었다.

         

         대담무쌍했던 강도 건의 사후 처리는 굉장히 신속, 정확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거리를 좁혀오던 기업 병력과 구조대, 철도 유지 보수 직원들이 쳐다보는 한가운데. 기막힌 탈출을 위해 하늘로 솟구친 범인들이 불행한 초열량 폭발에 녹아내려 사막의 영양분으로 변했다는 점을 제하더라도.

         

         여행 보험 자체가 지체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상액이 늘어나는 계약이라 했나?

         하여간 몇 년 만에 진짜로 손해배상을 하게 생긴 업체들의 분노는 꽤나 대단했다.

         

         국경 수비대가 승객들을 인터뷰하는 동안, 끌려온 기술자들은 선로와 기차에 달려들어서 파손부를 덮어버리기 바빴고 딸려온 공습 헬기들은… 정말 주변 일대를 이잡듯 뒤지는데.

         

         간간이 발포음이 울린 걸 보면 뭐 주워 먹을 게 있나 어슬렁대던 스캐빈저나 피냄새를 맡고 모여든 야생 동물들이 있던 모양인데, 잘못된 순간에 잘못된 자리에 있던 것만으로도 죽을 죄가 된다는 걸 재차 실감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블록형 장난감 끼워 맞추듯 준비해온 부품으로 선로는 복구.

         무슨 기묘한 거품 같은 스프레이를 분사해 차체에 난 구멍들을 틀어막은 기차는 겨우 다시 출발했다.

         

         …그럼 강도를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 깽판 친 내 인터뷰는 어땠냐고?

         기껏 ‘전 경찰로서의 임기응변이었다~’고 준비한 변명도 빛을 보지 못했다. 입을 열어 보기도 전에 먼저 다가온 책임자 씨가 직각으로 대가리 박은 뒤 떠나버렸으니까.

         

         “…….”

         

         후릅! 하고 톡톡 쏘는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지긋지긋한 유사流沙 지대는 지나친지 오래. 바깥 풍경은 통일성 없이 난잡한 가건물들로 도배되어 있었고.

         하베스트 플래닛이 그래도 장벽 안, 도시 내부에 난민촌을 수용하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외벽 언저리부터 자연스럽게 형성-기생-된 우중충한 마을이 방문자를 반겨주었다.

         

         사이버웨어로 유입되는 광고의 종류조차 그 차이가 극렬했다.

         

         원래 성인 광고나, 상품 광고. 소비 장려형태의 홍보가 많았다면, 지금은 벌써 크레딧 대출이나 보험 서비스에 관한 명함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온다.

         

         그것들을 무시하고 전방을 바라보면 구름마저 꿰뚫은 채 창공너머로 치솟은 검은 기둥, 궤도 엘리베이터가 보였으며.

         중앙 발전소에서 뿜어진 은은한 녹색광은 인근 건물들에 반사되고 확산되어 왜 이곳의 별칭이 에메랄드 시티인지를 명백히 알리고 있었다.

         

         비단 출발할 때만 해도 쨍쨍하던 태양이 저버린 것만이 우중충한 분위기를 더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으니.

         

         여기가 바로 신 수도이자 피난처, 잘나신 인류의 지붕.

         굉장히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발은 처음 디뎌보는 복마전. 네오 헤이븐이 되시겠다.

       

         – 아스트라 익스프레스 A-185호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곧 도착지인 네오 헤이븐, 중립 구역(Neutral Sector) 6번역에 도착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

         

       

        

       

       

         “결국 오긴 했네…!”

         

         주섬주섬, 숙면을 위해 벗어 던져 놓았던 슈트와 군화를 다시 주워 입는다.

         

         드디어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딱히 준비해온 장기 계획을 시행하겠다거나, 도착하자마자 풀어놓을 비장의 수단이 있다는 뜻은 아니고 정말 하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꺼낸 말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빽은커녕 물건을 배달시키거나 취업하게 되면, 당장 거주지부터 남의 가정집 명의를 빌어 등록해야 할 판인데 함부로 사고를 쳐서야 쓰나.

         

         “유감스러운 사고가 있던 점, 직원 일동을 대표해 사죄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시길…!”

         

         “…항의 전화나 익명의 투서 같은 거 넣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만 일하러 가보셔도 돼요.”

         

         뻔뻔한 안내방송과는 달리, 친히 총질을 하고 다닌 일등석 손님을 그냥 보내기 깜깜했는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따라 나온 직원분에게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손을 휘저어주었다.

         

         이미 재량 내에서는 무슨 서비스던 제공 가능하다고 하길래 메리에게 줄 선물삼아 가방 한가득 과자를 눌러 받은 참이니 더 바랄 것도 없었고.

         

         까강… 캉!

         

         한 명과 한 드로이드가 내딛는 발소리만이 철제 플랫폼에 울려 퍼진다.

         무슨 하차 과정에도 차별을 뒀나 싶어 무지하게 뻘줌했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일등석 승객이 있었다 생각하면… 이렇게 따로 가는 게 서로에게 편하겠지 그래.

         

         “…!! —!”

         

         “오?”

         

         저어어어기 객실 창 너머로 임시 공동 전선을 펼쳤던 둘이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아시프와는 쿨하게 턱이나 한 번 까딱이는 걸로 퉁쳤고 로잘린은… 창문 반대편에서 그렇게 떠들어봐야 난 안 들리는데.

         

         내 미묘한 표정을 알아먹은 듯, 뒤늦게 의사 전달에 장애가 있음을 인지한 그녀가 크게 입을 뻐끔거렸다.

         

         어디… ‘다. 음. 엔. 안. 져. 요?’. …난 별다른 기억이 없는데, 선의의 경쟁이란 게 혼자서도 되는 거였나? 일단 알아들었다는 뜻을 담아 어색하게 웃어주고 작별을 고했다.

         

         진짜 게임 시스템의 보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속내나 호감도를 엿볼 방법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다 못해 나처럼 내일 걱정이나 하는 소시민 타입은 네임드 중에 거의 없어서 그런지, 끝없이 휙휙 바뀌는 장단에 맞춰주기 더럽게 힘들었으니까!

         

         “…크흠!”

         

         “아,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NHPD(Neo-Haven Police Department; 네오 헤이븐 경찰국)라는 약어가 멋들어지게 박힌 제복이 빛나는 경찰의 재촉 아닌 눈치를 받고 얼른 검문소를 지나쳤다.

         

         음… 내가 입던 진압복은 박힌 글자가 HPPD라 그다지 느낌이 안 살아서 외면했었는데, 또 저렇게 그럴싸한 예시를 보니 직업 재선택에 흥미가…… 별로 생기지 않았다.

         

         여기는 경찰조차 메가 코프 세 곳의 출자금으로 공동 운영되는 복잡한 동네라 정치 싸움까지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내가 미쳤다고 저기를 기어들어가겠나?

         

         그러니 먹어도 아무 탈 없는 깨끗한 돈만 좇는 프리랜서 용병이나 지향하는 게 속 편한 상책이리라.

         

         – 혹시 괜찮으시다면 가까운 정비소에 들렀다가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소모한 탄약 보충 및 장갑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

         

         “…불안한 건 알겠지만 지금은 안 돼. 원래 도착 예정 시각에서 세 시간도 더 늦어서 아까 마중 나오지 말라고 말씀만 드렸지, 전화하기도 무서운 상태라고.”

         

         괜히 꼬마 공주님을 위한 과자 종합 선물세트를 구비한 게 아니다.

         놀러간다는 약속도 안…? 아무튼 못 지킨데다가 오는 당일까지 기어이 지각을 일삼았으니, 삐지지 않았다면 다행인 수준이다.

         

         아니, 한창 하루하루가 새로울 어린애인데 반년 전에 일주일쯤 같이 지낸 나를 아직도 기억은 하려나? 최근에는 전화도 뜸하긴 했는데.

         

         부르릉…!

         덜컹.

         

         능숙하게. 사이버웨어를 통해 가까운 무인 택시… 그러니까 여기서는 운전자 부재형 영업차량(Driverless Cab)이라 표현하는 교통수단을 호출.

         목적지는 실비아 씨가 불러 주신 주소를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잘 입력했다.

         

         게임 UI가 사이버웨어나 비슷했던 게 이럴 때는 참 편하다.

         여유가 있었다면 네오 헤이븐 명물 지옥철을 이용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그럼 이제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보러 출발을….

         

         삐릭!

         

         [ 원활한 차량 운행을 위해 무게가 150kg이상인 짐은 트렁크에 적재해주세요! 또한 에너지 효율등급이 감소함에 따라 추가 요금이 부과됩니다! ]

         

         – …트렁크로 이동하겠습니다. –

         

         “……염병, 기다려 봐. 너도 수도 구경은 하면서 가야지. 금방 조작해 줄게.”

         

         

         

         정말 사소하디 사소한.

         만약 적발될 시 벌금보다도 조사 도중 받게 될 한심하다는 시선이 더 걱정되는 위법행위가 지나가고. 우리는 철마차에 실린 채, 중앙대로를 따라 이동.

         

         지금 보니… 택시는 지름길이나 골목은 내버려두고 철저하게 안전 구역 큰길로만 다니는 터라 특별히 구경할 것도 애매하긴 했다.

         

         물론 각양 각종의 자회사도 다 다른 가게들이나, 어지러운 스타일을 자랑하는 시민들.

         유명 랜드마크 체크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건 다 도시 네트워크로도 할 수 있는 만큼, 진짜 역사가 흘러가거나 흐름을 바꿀 만남. 음습한 작당 모의가 이루어지는 뒷골목이나 위험한 분쟁 구역을 제로가 바라봤으면 했는데 조금 아쉽다.

         

         …잠깐, 내 마인드-경향-이 너무 회색분자스럽나? 하지만 실제로 리스크가 없는 임무는 정비례해서 보상도 짰으니까,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음.

         

         [ 목적지, 일반 거주 구역 도버 스트리트 47번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분 이내에 정상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해당 차량은 가까운 인근 경찰서로 자동 운행을 시작하오니…. ]

         

         “지랄하고는 진짜.”

         

         추가금 포함 약 오천 크레딧 정도를 결제하고 재빨리 택시에서 뛰어내렸다.

         뭐, 해킹한 게 아니었냐고? 짐 치우라는 존중 없는 규제만 일시적으로 마비시켰지 요금 책정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동안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이것들은 보통 무인 서비스가 더 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엑사테크가 꽤 열심히 저가형 기계를 양산하는 데도 이 꼬라지인 걸 보면, 아마 서비스 요금이 비싼 게 아니라 최저 인건비가 더 바닥을 친 게 아닐까….

         

         …나, 기술직이라 다행일지도.

         

         “갈까? 맥퀸 일가 셋 데이터는 잘 등록됐지? 무례하게 굴면 안 돼.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제로의 긍정을 확인한 뒤, 짧은 층계참을 올라 나무랄 데 없는 외관을 가진 빌라 1층 초인종을 울렸다.

         슈나이더 씨의 저금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얼핏 봐도 이 정도라면… 내가 머물 방에 제로가 쪼그리고 앉을 공간은 있겠지.

         

         찰칵!

         

         손님의 방문을 예상한듯, 따로 질문도 없이 도어락이 해제되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현대 술집의 피크 타임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지금 집에 계시지는 않을 테니 분명 실비아 씨가 나오실….

         

         “언니야아아아아—!!”

         

         “으게흑.”

         

         문 앞에서 만면의 미소를 띠고 기쁘게 맞아 준 실비아 씨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 안에서 사출된 순항 미사일이 가차없이 내 배때기에 틀어박혔다.

         

         뒤로 꺾인 허리가 벌벌 떨리고 총알도 튕겨낸 무적의 복근이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할 거냐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렇다고 꼬마 숙녀분을 매몰차게 제지할 수도 없었던 건 납득해줘야 한다.

         

         나풀거리는 잠옷 차림으로 그 앙증맞음을 두 배는 증폭시킨 메리가 슈트에 신나게 얼굴을 부벼 대다가… 미지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

         

         어린애 특유의 직감으로 단번에 그 근원을 찾아낸 그녀는 제로를 한 번, 나를 한 번.

         또 다시 제로를, 마지막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초롱초롱하던 눈동자가 숫제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기까지 해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기 너무 쉬웠다.

         

         ……어허, 그거 너 줄 장난감 아니야. 너네 아버지도 싸워 보면 경악할 역전의 용사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생 끝에… 안아줘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에 추천까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나하나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