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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7


    ​
    “…아이리스?”
    “응? 왜에?”
    ​
    ​
    아이리스가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우주가 담겨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리스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
   
   “자기 방에 가서 자야지.”
    “그렇지만… 혼자 자려니까 무서워서…”
   “그럼 릴리랑 같이 자는 건 어때? 내가 가서 부탁..”
    ​
    ​
    빠르게 침대를 벗어나려는데 아이리스에게 옷자락이 붙잡혔다. 끼긱하고 고개를 틀어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
   
   “안돼..?”
    ​
    ​
    아이리스가 눈물을 글썽거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가족인데 안될 게 어디 있어. 하핫.”
    ​
    ​
    미소녀의 눈물에 지독하게 약한 개그 주민은 결국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
    ​
    ‘맞아, 아이리스와 난 가족이니까!’
    ​
    ​
    머릿속으로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며 아이리스에게 등을 보이고 누웠다. 그러자..
    ​
    ​
    찰싹.
    ​
    ​
    아이리스가 등 뒤에 바짝 붙었다. 간지러운 숨결이 등 뒤에 흩어지고, 제스와 닮았지만 다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씻을 때 같은 샤워 도구를 사용하지만, 체향이 달라 맡아지는 향도 다른 것 같았다.
    ​
    ​
    “오빠, 추워.”
    “으응? 이불 하나 더 가져올까?”
    “아니.”
    ​
    ​
    스르륵, 아이리스의 손이 간지럽게 허리를 스치고 지나가 등 뒤에서 껴안았다. 몸이 밀착되자 나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
    ​
    “이렇게 자자.”
   “…그래.”
    ​
    ​
    나는 평범한 베개다.
    나는 숨만 쉬는 베개일 뿐이다.
    ​
    ​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리스에게까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이성을 꽉 붙들어 맸다. 
    ​
    ​
    ***
    ​
    ​
    아이리스가 고등학생 나이만 되었어도, 묘하게 끈적한 분위기가 길게 이어졌겠지만. 아이리스는 이제 막 중학생 나이대였기에 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듯 잠들었다.
    ​
    ​
    카르디샨을 떠나기 위한 준비로 혹사당한 덕분이기도 했다.
    ​
    ​
    “…”
    “오빠..?”
    ​
    ​
    아이리스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잔잔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조심스럽게 리안을 불렀다. 깊게 잠이든 리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
    “…”
    ​
    ​
    아이리스는 리안의 등에 귀를 붙인 채 쿵쿵쿵.. 뛰는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음미했다. 그녀는 투기장에서 벗어난 이후 거의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
    ​
    제 검이 리안의 심장을 꿰뚫고, 끝내 차갑게 식어버리는 꿈.
    ​
    ​
    쓰레기장 같은 시체 처리장에서 딱딱하게 굳은 리안을 내려다보며, 코가 썩을 것 같은 비릿한 향에 피를 토하듯 울음을 토했던 장면이 그녀를 괴롭혔다.
    ​
    ​
    그럴 때면 아이리스는 집착적으로 리안을 찾아갔다. 예민한 그녀의 감각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리안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
    ​
    아이리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
    ​
    리안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과 배가 작게 오르락 내리락거리고 느릿한 심장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
    ​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다가 눈동자를 굴려 살짝 위쪽에 자리한 리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옷깃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
    ​
    ‘기분 나빠.’
    ​
    ​
    카르디샨은 마왕이 지배하는 영지 중 하나다. 그 말은 곧 온갖 잔혹한 일이 일어난다는 말과 같다.
    ​
    ​
    일반적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더럽고 잔혹한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
    ​
    알아둬야 피할 수도 있을 테니까.
    ​
    ​
    어린 나이와 상식 부족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던 제스와 아이리스는 3년 사이 그러한 지식을 수도 없이 배웠다.
    ​
    ​
    그 중 ‘성교육’도 포함되어있었다. 
    ​
    ​
    평화로운 세계였다면 조심스럽게 이루어질 수업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납치당해 가축 취급당할지 모르는 카르디샨에선 상식적으로 배워야 하는 수업이었다.
    ​
    ​
    아이리스는 그 수업을 들었을 때 별생각이 없었다. 굳이 들었던 생각을 꼽자면 기분이 나빴다. 
    ​
    ​
    성교육 시간에 들었던 내용은 범죄를 대비하기 위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인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
    ​
    카르디샨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잔혹한 지식 중 하나일 뿐이었던 정보가 문득 떠오른 건, 교육 시간에 보았던 대충 그린 그림이 제스와 리안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
    ​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몇 번이고 강조했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성적 범죄를 당한다면 끔찍한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관계를 가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얻게 될 거라고. 
    ​
    ​
    그리하여 진정한 가족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
    ​
    ‘…내 오빠인데.’
    ​
    ​
    제스와 오빠가 가족이 된다면, 나는?
    ​
    ​
    그녀는 명치 부근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
    ​
    리안과 제스가 결혼하여 가족이 된다고 해서 아이리스와 리안이 남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이리스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리안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
    ​
    아이리스는 좀 더 꽉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제스와 리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
    ​
    컴컴한 방안, 침대에 누워있는 오빠와 그 위를 덮친 제스.
    ​
    ​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리자 문득 ‘마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
    ​
    ‘마킹..’
    ​
    ​
    수인이 제 소중한 것에 남기는 흔적.
    ​
    ​
    수인인 아이들을 위해 몇 번 수인 수업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리스는 가만히 리안의 하얀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
    ​
    그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듯한 설원을 보는 것만 같았다.
    ​
    ​
    “…”
    ​
    ​
    스륵, 아이리스는 리안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손을 풀어내고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
    ​
    리안의 작은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이리스는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리안의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
    ​
    ​
    ***
    ​
    ​
    “나..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 너를 사냥하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목은 급소니까. ]
    “에이….아니겠지?”
    ​
    ​
    리안은 제 목에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피가 왈칵 쏟아질 정도로 깨물린 바람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
    ​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지겠지만, 워낙 아프게 물어 만들어진 상처라 평소보다 오래갈 것 같았다. 
    ​
    ​
    리안의 허벅지에 꽂힌 채 피를 촵촵 빨아대던 마검이 잔뜩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
    ​
    [ 자고 있을 때를 노린 것부터가 그런 의미가 아니겠나? 후훗, 이젠 밤도 안전하지 않겠군.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안고 자도록 해라! ]
    “왜 굳이 안고 자야 하는데?”
    [ 그래야 밤에 누군가가 습격했을 때 촤악! 촷! 하고 멋지게 등장할 수 있지 않겠나?! ] 
    “그럼 굳이 안고 잘 필요 없지 않아? 베개 밑에 넣어둔다거나..”
    [ 파트너가 잠결에 깜빡할 수도 있지 않나! 거기다 검을 안고 자는 검사라… 꽤 멋지잖아! ]
    “그래, 그래.”
    [ 이왕이면 앉아서 자도록! ]
    ​
    ​
    마검의 헛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거울 앞을 벗어났다. 방으로 돌아와 어느 순간부터 방 한쪽을 당당하게 차지한 구급상자를 열었다. 안에서 널찍한 반창고를 꺼내 목에 찰싹하고 붙였다. 
    ​
    ​
    잇자국이 워낙 커서 반창고 크기도 컸다.
    ​
    ​
    ‘나중에 떼어낼 때 안 아팠으면 좋겠다.’
    ​
    ​
    파스를 떼어낼 때의 고통을 떠올리며 반창고를 붙인 곳을 슥슥 문지르고 있을 때, 마검이 다급히 날 불렀다.
    ​
    ​
    [ 파트너! 드디어 생각이 났다! ]
    “뭐가?”
    ​
    ​
    아이들을 통솔하기 위해 아이리스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방안 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마음 편하게 마검에게 소리 내 대답하자 호들갑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파트너의 혈육이 목을 문건….이갈이 때문일 거다! ]
    “이갈이…?”
    [ 그렇다. 저번에 식당에서 빨간 머리 수인이 뼈로 이갈이를 하고 있지 않았나? 나이대도 비슷할 테니 둘 다 똑같이 이갈이 기간인 거겠지! ]
    “네가 말하는 저번이 3년 전이잖아.”
    [ 3년 전이면 어제나 다름없지 암. ]
    ​
    ​
    워낙 오래 산 탓일까? 
    ​
    ​
    마검의 시간 개념은 어딘가 뒤틀려있었다. 지금처럼 3년 전이 어제나 다름없다고 말할 때도 있고, 고작 하룻밤 밥 안 준 거 가지고 10년은 안 꺼내준 것처럼 날뛰기도 했다.
    ​
    ​
    ‘그냥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
    ​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진짜 이갈이인가?’
    ​
    ​
    아이리스가 이갈이할 시기는 한참이나 지났다는 걸 알지만, 그녀가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서라던가 암살하기 위해서 물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철 지난 이갈이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
    ​
    ‘이갈이 용품을 찾아봐야 하나?’
    ​
    ​
    리안은 속으로 끙끙거리며 익숙한 손길로 마검을 뽑아낸 후 역소환했다. 마검이 더 먹고 싶다고 칭얼거렸지만, 일주일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여정 준비를 끝내려면 시간이 없었다.
    ​
    ​
    리안은 허벅지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 걸 확인하곤 방을 빠져나왔다. 
    ​
    ​
    ***
    ​
    ​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
    ​
    무겁고 창백한 목소리가 커다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하얀 가면을 쓴 검은 머리의 소녀가 무심한 얼굴로 왕좌에 앉아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홀 가운데 한쪽 무릎을 꿇은 남자가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모노클을 쓴 장발의 남자는 나긋하면서도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
    “모든 준비는 완벽합니다. 그러니 -…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룰 것이며 대륙은 마왕님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
    ​
    남자는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환희에 잠긴 말을 뱉어냈다. 그의 모노클이 섬뜩하게 반짝거렸다. 
    ​
    ​
    “실수는 없어야 할 것이다. 에르보안.”
    “예, 마왕님.”
    ​
    ​
    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최강의 사천왕 에르보안이 뱀처럼 웃으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앙냥냥 물어버리기.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아이리스?”

“응? 왜에?”

아이리스가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우주가 담겨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리스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자기 방에 가서 자야지.”

“그렇지만… 혼자 자려니까 무서워서…”

“그럼 릴리랑 같이 자는 건 어때? 내가 가서 부탁..”

빠르게 침대를 벗어나려는데 아이리스에게 옷자락이 붙잡혔다. 끼긱하고 고개를 틀어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안돼..?”

아이리스가 눈물을 글썽거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인데 안될 게 어디 있어. 하핫.”

미소녀의 눈물에 지독하게 약한 개그 주민은 결국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맞아, 아이리스와 난 가족이니까!’

머릿속으로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며 아이리스에게 등을 보이고 누웠다. 그러자..

찰싹.

아이리스가 등 뒤에 바짝 붙었다. 간지러운 숨결이 등 뒤에 흩어지고, 제스와 닮았지만 다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씻을 때 같은 샤워 도구를 사용하지만, 체향이 달라 맡아지는 향도 다른 것 같았다.

“오빠, 추워.”

“으응? 이불 하나 더 가져올까?”

“아니.”

스르륵, 아이리스의 손이 간지럽게 허리를 스치고 지나가 등 뒤에서 껴안았다. 몸이 밀착되자 나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이렇게 자자.”

“…그래.”

나는 평범한 베개다.

나는 숨만 쉬는 베개일 뿐이다.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리스에게까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이성을 꽉 붙들어 맸다.

***

아이리스가 고등학생 나이만 되었어도, 묘하게 끈적한 분위기가 길게 이어졌겠지만. 아이리스는 이제 막 중학생 나이대였기에 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듯 잠들었다.

카르디샨을 떠나기 위한 준비로 혹사당한 덕분이기도 했다.

“…”

“오빠..?”

아이리스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잔잔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조심스럽게 리안을 불렀다. 깊게 잠이든 리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아이리스는 리안의 등에 귀를 붙인 채 쿵쿵쿵.. 뛰는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음미했다. 그녀는 투기장에서 벗어난 이후 거의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제 검이 리안의 심장을 꿰뚫고, 끝내 차갑게 식어버리는 꿈.

쓰레기장 같은 시체 처리장에서 딱딱하게 굳은 리안을 내려다보며, 코가 썩을 것 같은 비릿한 향에 피를 토하듯 울음을 토했던 장면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럴 때면 아이리스는 집착적으로 리안을 찾아갔다. 예민한 그녀의 감각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리안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리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리안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과 배가 작게 오르락 내리락거리고 느릿한 심장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왔다.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다가 눈동자를 굴려 살짝 위쪽에 자리한 리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옷깃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기분 나빠.’

카르디샨은 마왕이 지배하는 영지 중 하나다. 그 말은 곧 온갖 잔혹한 일이 일어난다는 말과 같다.

일반적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더럽고 잔혹한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알아둬야 피할 수도 있을 테니까.

어린 나이와 상식 부족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던 제스와 아이리스는 3년 사이 그러한 지식을 수도 없이 배웠다.

그 중 ‘성교육’도 포함되어있었다.

평화로운 세계였다면 조심스럽게 이루어질 수업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납치당해 가축 취급당할지 모르는 카르디샨에선 상식적으로 배워야 하는 수업이었다.

아이리스는 그 수업을 들었을 때 별생각이 없었다. 굳이 들었던 생각을 꼽자면 기분이 나빴다.

성교육 시간에 들었던 내용은 범죄를 대비하기 위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인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카르디샨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잔혹한 지식 중 하나일 뿐이었던 정보가 문득 떠오른 건, 교육 시간에 보았던 대충 그린 그림이 제스와 리안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몇 번이고 강조했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성적 범죄를 당한다면 끔찍한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관계를 가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얻게 될 거라고.

그리하여 진정한 가족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내 오빠인데.’

제스와 오빠가 가족이 된다면, 나는?

그녀는 명치 부근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안과 제스가 결혼하여 가족이 된다고 해서 아이리스와 리안이 남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이리스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리안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아이리스는 좀 더 꽉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제스와 리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컴컴한 방안, 침대에 누워있는 오빠와 그 위를 덮친 제스.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리자 문득 ‘마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마킹..’

수인이 제 소중한 것에 남기는 흔적.

수인인 아이들을 위해 몇 번 수인 수업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리스는 가만히 리안의 하얀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듯한 설원을 보는 것만 같았다.

“…”

스륵, 아이리스는 리안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손을 풀어내고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리안의 작은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이리스는 긴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리안의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

***

“나..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 너를 사냥하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목은 급소니까. ]

“에이….아니겠지?”

리안은 제 목에 선명하게 남은 잇자국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피가 왈칵 쏟아질 정도로 깨물린 바람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지겠지만, 워낙 아프게 물어 만들어진 상처라 평소보다 오래갈 것 같았다.

리안의 허벅지에 꽂힌 채 피를 촵촵 빨아대던 마검이 잔뜩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 자고 있을 때를 노린 것부터가 그런 의미가 아니겠나? 후훗, 이젠 밤도 안전하지 않겠군.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안고 자도록 해라! ]

“왜 굳이 안고 자야 하는데?”

[ 그래야 밤에 누군가가 습격했을 때 촤악! 촷! 하고 멋지게 등장할 수 있지 않겠나?! ]

“그럼 굳이 안고 잘 필요 없지 않아? 베개 밑에 넣어둔다거나..”

[ 파트너가 잠결에 깜빡할 수도 있지 않나! 거기다 검을 안고 자는 검사라… 꽤 멋지잖아! ]

“그래, 그래.”

[ 이왕이면 앉아서 자도록! ]

마검의 헛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거울 앞을 벗어났다. 방으로 돌아와 어느 순간부터 방 한쪽을 당당하게 차지한 구급상자를 열었다. 안에서 널찍한 반창고를 꺼내 목에 찰싹하고 붙였다.

잇자국이 워낙 커서 반창고 크기도 컸다.

‘나중에 떼어낼 때 안 아팠으면 좋겠다.’

파스를 떼어낼 때의 고통을 떠올리며 반창고를 붙인 곳을 슥슥 문지르고 있을 때, 마검이 다급히 날 불렀다.

[ 파트너! 드디어 생각이 났다! ]

“뭐가?”

아이들을 통솔하기 위해 아이리스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방안 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마음 편하게 마검에게 소리 내 대답하자 호들갑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파트너의 혈육이 목을 문건….이갈이 때문일 거다! ]

“이갈이…?”

[ 그렇다. 저번에 식당에서 빨간 머리 수인이 뼈로 이갈이를 하고 있지 않았나? 나이대도 비슷할 테니 둘 다 똑같이 이갈이 기간인 거겠지! ]

“네가 말하는 저번이 3년 전이잖아.”

[ 3년 전이면 어제나 다름없지 암. ]

워낙 오래 산 탓일까?

마검의 시간 개념은 어딘가 뒤틀려있었다. 지금처럼 3년 전이 어제나 다름없다고 말할 때도 있고, 고작 하룻밤 밥 안 준 거 가지고 10년은 안 꺼내준 것처럼 날뛰기도 했다.

‘그냥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짜 이갈이인가?’

아이리스가 이갈이할 시기는 한참이나 지났다는 걸 알지만, 그녀가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서라던가 암살하기 위해서 물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철 지난 이갈이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갈이 용품을 찾아봐야 하나?’

리안은 속으로 끙끙거리며 익숙한 손길로 마검을 뽑아낸 후 역소환했다. 마검이 더 먹고 싶다고 칭얼거렸지만, 일주일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여정 준비를 끝내려면 시간이 없었다.

리안은 허벅지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 걸 확인하곤 방을 빠져나왔다.

***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무겁고 창백한 목소리가 커다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하얀 가면을 쓴 검은 머리의 소녀가 무심한 얼굴로 왕좌에 앉아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홀 가운데 한쪽 무릎을 꿇은 남자가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모노클을 쓴 장발의 남자는 나긋하면서도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합니다. 그러니 -…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룰 것이며 대륙은 마왕님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남자는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환희에 잠긴 말을 뱉어냈다. 그의 모노클이 섬뜩하게 반짝거렸다.

“실수는 없어야 할 것이다. 에르보안.”

“예, 마왕님.”

마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최강의 사천왕 에르보안이 뱀처럼 웃으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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