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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푸른 달을 처리하고 동굴 밖으로 나와서 보니, 호수는 멀쩡했다. 

    고요하고, 깨끗하고, 신비로운 호수 그대로였다.

    사실 이 호수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현상이라서 푸른 달이 파괴되면 당연히 없어질 줄 알았다.

    더 이상 수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말라버리거나.

    수장된 도시가 녹슬고 삭으면서 깨끗한 호수가 오염 돼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둘 다 아니었다.

    그저 소유권이 넘어왔을 뿐이다.

    양천구 호수는 그 모습을 유지한 채, 내 것이 되었다.

    오브젝트와 호수에 호의적으로 만드는 정신 오염 능력도 그대로 승계되었다.

    별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열화되긴 했지만 말이다.

    푸른 사신들은 호수가 생겨서 굉장히 기뻐 보였다.

    기운 넘치는 푸른 사신들이 나에게 호수의 관리는 맡겨달라길래, 맡긴다고 했더니 굉장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푸른 사신들은 벌써 모여서 각자가 맡을 구역을 나누고 있었다.

    왜 저렇게 좋아하지?

    그냥 호수가 좋은 건가?

    결국 푸른 달을 처치해서 얻은 능력은 두 가지였다.

    약간의 정신 오염 능력과 내가 정원처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의 추가였다.

    벌써 새벽이 다가오는지, 하늘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사건도 끝이 났으니, 정원으로 대피시켰던 연구소 사람들이 실린 유람선을 다시 호수 위로 꺼내놓았다.

    약간 핫초코 냄새가 나긴 하는데, 별문제 없겠지.

    새벽녘의 푸른 빛이 잔뜩 널브러진 연구소 사람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즐거운 파티를 벌이다 잠이 든 것처럼 흐트러지고, 비뚤어진 채 다양한 자세로 잠든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무지 배고플 것 같네.

    하지만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꽤 멀쩡해 보였다.

    미니 사신들이 계속 돌봐준 건가?

    황금 사신이 핫초코 같은 걸 먹였거나, 푸른 사신이 마법으로 뭔갈 한 거겠지.

    태양 빛이 점점 강해져서 갑판 전체에 따스한 황금빛을 드리우자, 연구원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갑판 중앙에 누워있던 세희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중얼거렸다.

    “끄으으. 벌써 아침인가? 도대체 언제 잠든 거지?”

    기지개를 켜면서 잠을 쫓아내던 세희는 어느새 아침 해를 반사하며 밝게 빛나는 호수를 보면서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약간 졸려 보이는 세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더니 잠에서 깬 표정으로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 거지?”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그런지, 세희는 꽤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세희는 오브젝트에 의한 사고로 보고, 김중뢰를 시켜서 사람들의 안위부터 챙겼다.

    “다치거나 사라진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히 잠들었을 뿐인 것 같습니다.”

    “하, 정말 다행이야. 놀러 와서 사고 터지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지.”

    갑자기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사실 때문인지, 갑판 위는 점점 더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

    “사신아. 호수에서 같이 신나게 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지나버렸네.”

    예린이는 휴가가 엉망이 된 게 슬픈지, 약간 우울한 표정이었다.

    예린이는 오브젝트 사고를 당해도 여전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남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놀자는 이야기와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연구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서로 대립하면서 결론이 안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말은 전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세희 연구소분들이죠? 오브젝트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양천구 호수 사태 관련 조사를 해야 하니,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세희를 포함해서 연구소 사람들은 모두 협회의 조사관에게 끌려가 버렸다.

    나는 유독 슬퍼 보이는 예린이를 간이 격리실 안에서 바라보며, 푸딩을 하나 집어먹었다.

    다들 늦게 올 것 같으니까, 먼저 세희 연구소로 돌아가 있어야겠다.

    히히.

    ***

    [양천구 호수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780여 명.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은 실종자를 합치면 수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희 연구소 보안실에 켜진 TV에서는 뉴스 속보로 양천구 호수 사태에 대해서 마구잡이로 떠들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한국 전역은 마치 최면에 빠졌다가 깨어난 것 같은 상태였으니까.

    마치 한국 전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국에 사는 누구라도 양천구 호수로 놀러 가고 싶어 했다.>

    <한국에 사는 누구라도 양천구 호수를 좋아했다.>

    <오브젝트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현재 여기를 보시면 텅 비어버린 배들이 엄청 많습니다. 이 안에 남겨진 즐거운 흔적들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파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텅 비어버린 선실 내부를 비춰주는 방송을 보고 있던 보안실 직원이 말했다.

    “저런 위험한 호수를 가고 싶어 했다니, 안 가게 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이죠. 이번에 죽은 사람도 엄청 많다던데, 우리 연구소는 괜찮았다지만 좀 끔찍해요.”

    TV를 보면서 감자칩을 씹어먹던 직원은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했어요. 선배는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보안실 직원은 상상만 해도 무서운지 표정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혼자 사는 원룸에 돌아와서 샤워하고 나와 보니, 빨래가 모두 정리되어 있으면 어떨 거 같아요? 저는 아마 비명부터 지르고, 경찰도 부르고, 친구 집에서 잘 거 같아요.”

    “아마 나라면 야구 빠따 하나 들고 방을 샅샅이 뒤져보지 않을까?”

    “그렇죠? 엄청 무서운 게 정상이죠?”

    보안실 직원은 핸드폰을 뒤적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 면에서 ‘양천구 호수 사태’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네요.”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푸른 사신이 하는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무섭지 않고 귀엽기만 하지만. 만약 ‘양천구 호수’가 없었다면? 아마 엄청나게 놀라서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면 우리 마음이 여리고 착한 푸른 사신이는 그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그러니까 다행인 점이 있는 거죠.”

    “아… 그래?”

    남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충 맞장구를 쳤다.

    보안실 선임은 요즘 후임이 푸른 사신을 너무 좋아해서 거리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후임이 요즘 하는 일은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푸른 사신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는 푸른 사신을 어떻게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선배, 선배! 이것 좀 보세요.”

    “도대체 뭐길래 그래?”

    옴뇸뇸.

    선임이 다가가서 발견한 것은 후임의 손바닥 위에 다소곳이 앉아서 푸딩을 받아먹는 푸른 사신의 모습이었다.

    모자를 꾹 잡아서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푸른 사신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진심이 통한 거죠! 푸른 사신이는 제 마음을 알아준 거예요!”

    후임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푸른 사신이는 약간 물처럼 차가운 거 아세요? 아 귀여워.”

    푸른 사신의 모자 위를 쓰다듬으면서 후임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선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푸딩 하나를 챙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

    TV에서 히드라와 회색 사신의 전투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이 미국에까지 흘러들어오다니, 확실히 한국에서의 사건은 심상치 않은 면이 있었다.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오브젝트라니? 

    물리적으로 박살을 내는 오브젝트보다 인간 사회에 충격을 주는 오브젝트였다.

    그러던 중, 인기를 끌게 된 것이 회색 사신과 히드라의 전투 장면이었다.

    압도적인 파괴의 현장. 

    그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어 보이는 장소에서 무표정한, 오히려 지루해 보이는 표정으로 튕겨 다니는 회색 사신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리고 히드라를 압도적으로 제압하기까지.

    오브젝트를 일부러 파괴하거나, 제압하는 오브젝트는 드물어서 회색 사신의 특별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이제까지 회색 사신이 처리한 것으로 보이는 오브젝트들이 다수 확인되면서 더욱 그랬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는 회색 사신을 사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물론 단면만 보면 안 되고, 좀 더 신중하게 조사하자고 하는 신중론이 아직은 더욱 우세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과 여유로움 덕분인지, 미국에서도 나름의 팬층이 생기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저 동영상을 보자마자, 예린에게서 받아둔 연락처로 세희 연구소에 연락을 취했다. 

    결국 세희 연구소의 부소장과 협의를 통해서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결론지을 수 있었다.

    푸딩 홍보 모델로 ‘회색 사신’을 넣기로 계약한 것이다. 

    <회색 사신이 즐겨 먹는 푸딩!>

    이런 캐치프레이즈와 푸딩을 먹고 있는 회색 사신의 사진을 푸딩 포장으로 만들었다.

    오브젝트로 만든 푸딩이라는 이유로 꺼리는 사람이 많아서 매출의 증가세가 주춤해진 푸딩이니만큼, 파격적인 마케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물론 꽤 많은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다. 

    오브젝트에 비판적인 여론부터 시작해서, 정부나 여러 가지 규제들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제임스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임스의 손에는 푸딩을 손에 쥐고 먹고 있는 회색 사신의 사진이 그려진 신제품 푸딩이 들려 있었다.

    이름하여 <회색 사신 푸딩.>!

    제임스는 회색 사신 푸딩의 일도 있으니 조만간 한국으로 다시 갈 계획을 세웠다.

    회색 사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물건도 있으니 말이다.

    제임스는 또 다른 0번 유물이 보관된 가방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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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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