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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이제 좀 진정이 됐어?”

       

       “훌쩍… 으응…”

       

       

       코맹맹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엘.

       

       나는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흐트러진 붉은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아직 울음기가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리엘은 내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마다 눈물을 삼키듯이 어깨를 떨었다.

       

       나는 정성스럽게 소녀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약하게 전하는 체열로서, 그녀의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다행히도 그런 내 마음이 통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엘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이성을 찾았다.

       

       

       “에고… 얼굴이 완전 엉망이네.”

       

       “……오빠 때문이잖아.”

       

       “그래, 그래.”

       

       

       칭얼거리는 소녀를 조용히 토닥인다.

       

       품안을 미지근하게 물들이는 온기.

       

       나는 그것이 전하는 울림을 가슴팍에 새기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정말 미안해.”

       

       “……”

       

       “내가 많은 걸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너무 바보 같았고, 너무 어리석었지…”

       

       

       사죄해야만 했다.

       

       내가 잔인하게 상처 입혔던 사람들에게.

       

       비록 비참한 슬픔을 계기로 손에 칼을 들게 되었다고는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휘두르는 순간, 모든 불행의 책임은 스스로가 지게 되는 것이다.

       

       

       흘러드는 바람조차 알고 있는 진리를.

       

       나는 그간 간과하고 있었다.

       

       비탄으로 눈이 멀어, 손에 들고 있던 자기혐오의 파편을 아무렇게나 그어댔다.

       

       

       ‘제국 최악의 망나니…’

       

       

       어쩌면 틀린 말 하나 없는 이명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답지 않은 상념들을 씹어삼켰다.

       

       그렇게 한동안 아리엘을 품은 채로 고요를 보내고 있으면, 이내 흐릿한 부름이 귓가에 닿는다. 

       

       

       “……오빠.”

       

       “말해.”

       

       “그러면, 이제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거야…?”

       

       

       머뭇거리는 물음은 불안을 표상한다.

       

       소녀는 선명하게 뚝뚝 떨어지는 미련으로서, 내 옷소매를 잡았다.

       

       

       “다시 죽으려는… 그런 건, 싫어…”

       

       “……”

       

       “오빠가 없으면, 나는……”

       

       

       기껏 내놓은 말이 자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이미 자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 어린 것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기억을 안겨주고 말았다.

       

       

       일렁이는 구슬픈 떨림이 목끝을 때린다.

       

       나는 휘청이는 감정의 중심을 애써 다잡고는,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언제나 너희의 곁에 있을……”

       

       

       아리엘의 애원에 답을 주려던 그 순간.

       

       닫혀있던 방문으로부터 작은 노크 소리가 넘어왔다.

       

       

       -똑똑…

       

       나직한 소음은 대화의 흐름을 끊어낸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입에 담았던 말을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결국 입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가씨… 안에 계세요?

       

       

       잔잔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미성.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와 아리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문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레이첼…?””

       

       

       우리가 멍한 반응을 흘리고 있는 사이.

       

       소녀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도련님께서 사라지셨어요.

       

       -침실에서도, 창고에서도, 서재에서도… 도련님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계시지를 않아요.

       

       -……아마, 저택을 떠나신 것 같아요.

       

       

       레이첼은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찬란했던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뒤덮이는 느낌이에요.

       

       

       담담하게 뱉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묘하게 물기가 묻어있었다.

       

       아마도 울음을 참고 있는 듯 했다.

       

       

       -아가씨께 가장 먼저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문을 두드렸어요.

       

       

       생기가 사라진 목에는 공허만이 남아있다.

       

       흐릿하게 울려 퍼지는 소녀의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보다 못한 아리엘이 문을 향해 걸음한다.

       

       거침 없이 나아간 적발의 소녀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아가씨께서는, 너무 힘들지 않게 도련님을 보내주셨으면……”

       

       “우리 오빠를 왜 보내?”

       

       

       문틈으로 드러나는 갈색 머리칼을 향해 힘차게 외치는 아리엘.

       

       

       “아, 아가씨…?” 

       

       “아직 오빠는 떠나지 않았거든?!”

       

       

       그녀는 얌전히 서있는 레이첼의 팔을 잡더니, 방안으로 잡아끌었다.

       

       그런 움직임을 따라서.

       

       소녀의 등 뒤로 가려져 있던 나와 레이첼의 시선이 마주친다.

       

       

       “도련, 님…?”

       

       

       투명한 눈동자는 시간을 멈춘 채로 나를 향해서 고정된다.

       

       놀라움을 담았던 시선은.

       

       얼마 가지 않아서 안도와 환희, 슬픔으로 수차례 번진다.

       

       어째서인지 몇 시간 전의 아리엘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 죄인이 맞으려나.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는, 애써 밝게 인사를 건넸다.

       

       

       “하하… 조, 좋은 오후…?”

       

       

       굉장히 볼품없는 대사였지만.

       

       레이첼은 마치 기적을 목도하기라도 한 사람 마냥 눈망울을 흐렸다.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뛰어들었다.

       

       

       “도련님…!”

       

       

       활짝 벌린 양팔로 나를 끌어안는 레이첼.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 역시 다시금 감정이 벅차오른 것인지, 우리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빠…!”

       

       “도련님…!!”

       

       

       이상하다.

       

       분명 몇 시간 동안이나 공을 들여서 아리엘을 달래놓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달래야 하는 사람이 두 명으로 늘어버렸다.

       

       

       나는 뱉지 못하는 한숨을 삼켰다.

       

       그래… 업보겠지.

       

       따로 누구를 탓하겠나.

       

       나는 결국 아이처럼 서럽게 울어대는 두 사람을 오랫동안 달래주어야 했다.

       

       

       .

       .

       .

       

       

       상황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정리되었다.

       

       찬란한 햇살로 물들었던 창밖의 풍경도, 어느새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다들 울음은 그친 모양이네.”

       

       “나는 아직 더 울 수 있어…”

       

       “훌쩍… 저도요…”

       

       

       저마다 맹한 목으로 살벌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아리엘과 레이첼.

       

       나는 식겁한 마음에 둘을 막았다.

       

       

       “여기서 더 울면 쓰러질 것 같은데… 제발 참아주라.”

       

       

       다행히도 두 사람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안도로 짧은 날숨을 흘리고는, 소녀들은 나란히 소파에 앉혔다.

       

       

       푹신함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두 사람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나는 이마로 잔뜩 맺힌 식은땀을 거두고는, 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사이좋은 자매처럼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두 사람.

       

       한참 동안이나 눈물을 흘려댄 탓에, 눈가는 빨갛게 퉁퉁 부어있었다.

       

       

       “푸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었다.

       

       웃으면 안되는데.

       

       몽글몽글하게 물드는 마음 때문에 도저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도련님께서는 지금 상황이 즐거우신가요?”

       

       

       뾰로통한 말투로 쏘아붙이는 레이첼.

       

       그녀는 엉망이 되어있는 스스로의 몰골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여간 귀엽기는.

       

       나는 순간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삼켰……

       

       

       “하여간 귀엽기는.”

       

       

       어라.

       

       삼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뒤늦게 시선을 들어보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녀가 시야에 비친다.

       

       

       “에…?”

       

       

       물음표로 가득한 비음.

       

       새하얀 뺨으로는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중이었다.

       

       

       “어, 에, 으…?”

       

       

       레이첼은 한동안 고장난 반응을 보였다.

       

       이상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흐트러진 레이첼의 모습은 보기 어려운데, 지난 일들로 심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 걸까.

       

       나는 괜히 착잡해지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엘… 그리고 레이첼.”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녀들에게 발을 딛는다.

       

       그리고는 곧장 양팔을 크게 뻗어, 두 사람을 와락 끌어안았다.

       

       

       “오, 오빠…?”

       

       “도련님…?”

       

       

       아직 제대로 전하지 못한.

       

       너희에게 전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안해.”

       

       

       대체 어떤 부분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인지.

       

       그것조차 명확하게 하나하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지른 뒤였다.

       

       

       그렇기에 뭉뚱그려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에 담긴 진심마저 바래진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너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너희를 아프게 만들고 말았다.

       

       가장 처절하고, 잔학스럽고, 절망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자살을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찰나에, 너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얼마나 지독한 처절함과.

       

       얼마나 끔찍한 잔학과.

       

       얼마나 어두운 절망이 너희를 덮쳤을까.

       

       

       -흐끅, 오빠!! 안돼, 그러지 마!!

       

       -그,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요, 도련님…!!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니… 그게 무슨…!”

       

       

       그날 무너졌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부서지고, 흩어지고, 미워하며 한 줌의 재가 되어 날리는 동안에.

       

       너희도 나의 곁에서 함께 시들고 있었다.

       

       

       씁쓸한 입맛이 맴돈다.

       

       허나, 담담하게 걸어놓은 입가의 미소를 놓지는 않았다.

       

       

       이번만큼은 울어서는 안되었다.

       

       환하게 웃어야만 했다.

       

       그것이 나를 위해 수많은 희망을 꽃피워준 너희들에 대한 예의였으니까.

       

       

       “약속할게.”

       

       

       나는 꾹꾹 눌러담은 다짐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품속의 온기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따스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곱씹으며 두 사람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더 이상 도망치려 하지 않을게… 악착같이 살아볼게…”

       

       

       아까부터 계속 목이 메여왔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침에 창문 앞에서 슬픔을 게워냈기 때문인지.

       

       지금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시원한 청량감 뿐이었다.

       

       나는 나직이 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의 곁에 남아있어줄래?”

       

       

       너희를 상처 입히고, 아프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나를 애정한다면.

       

       내가 이 지독한 열꽃을 이겨내어, 겨울의 끝에는 너희에게 찬연한 봄꽃을 선물해줄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줄래…?”

       

       

       사실 너희가 부탁을 거절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죄인은 명백히 이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물음에 떨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응…!!”

       

       “훌쩍, 당연하잖아요…!”

       

       

       내가 너희의 헌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고마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준 아리엘과 레이첼.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에, 다시 한 번 소녀들의 몸을 부서질 듯이 끌어안았다.

       

       

       

       ***

       

       

       한편.

       

       리시트 공작가 근처를 잇는 도로.

       

       그곳에는 빠른 속도로 길을 가로지르고 있는 한 대의 마차가 존재했다.

       

       

       “제발… 제발…”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

       

       그 안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찬란한 백금발을 지닌 한 명의 소녀였다.

       

       

       바다를 닮은 벽안은 본연의 빛을 잃은 채로 흔들린다.

       

       붉은 입술은 손톱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다.

       

       흐트러진 몰골을 하고 있는 소녀는, 미친 사람처럼 홀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제발… 라이덴…”

       

       

       소녀가 찾는 것은 자신의 기사였다.

       

       

       “이렇게 떠나지 마…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줘…”

       

       

       울음과 애원이 섞인 목소리로 흐느끼는 소녀.

       

       거침 없이 도로를 달리는 마차, 그것이 향하는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리시트 가문의 저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여러분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저의 글로 위로를 받으셨다는 분들을 볼 때면.
    이상하게 그런 말들이 저를 위로해주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치 새벽마다 홀로 작업을 이어갔던 외로운 시절의 저를, 여러분이 보듬어주시는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항상 몽글몽글한… 이상한 감정에서 집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시 언제나 감사한 마음 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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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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