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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

        “돌아가는 길은 조용하네요.”

        ​

        “오는 길에 겪은 게 있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

        여기까지 오면서 쌓인 내 명성은 녹림도고 사파고 뭐고 죄다 설설 기게 할 정도가 되었으니. 게다가 내가 마스터가 된 이상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면 나와 싸울 엄두를 내지는 못할 터였다.

        ​

        “은공이 초절정의 길에 들어섰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그러는 너도 그사이에 더 강해졌잖아.”

        ​

        “나도 강해지긴 했는데에~두 사람이 그러니까 저만 서운하잖아요.”

        ​

        이제 막 일류 중간쯤이 된 혜령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셋 중에 가장 경지가 낮은 게 많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네 나이에 일류면 충분히 대단한 거야.”

        ​

        “아저씨랑 저랑 몇 살 차이도 안 나거든요?”

        ​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내가 나이 강조를 많이 하긴 했지.

        ​

        내가 혜령이랑 나이 차이가 좀 났으면 그래도 이게 위로가 됐을 테지만, 나랑 혜령이의 나이는 채 두 살이 차이가 안 났으니 조금 기만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슬슬 야영할 곳이나 찾아보자.”

        ​

        어린애처럼 볼 좀 그만 부풀리고. 나는 혜령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러 바람을 빼고는 눈에 오러를 담아 주변을 살폈다.

        ​

        야영하기 좋은 곳이 어디 없을까.

        ​

        가능하면 강물이 있어서 간단하게 씻을 수 있는 곳으로.

        ​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청력까지 강화하고 나서야 괜찮은 야영장소를 찾아냈다.

        ​

        “저쪽으로 가자.”

        ​

        “네에~”

        ​

        “은공, 그쪽에 강가가 있습니까?”

        ​

        “어.”

        ​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은데…역시 초절정에 오른 무인의 감각은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이 단모 감탄했습니다.”

        ​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말하면 좀 쑥스러운데.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 나갔다.

        ​

        —————–

        ​

        “누가 머문 흔적이 있는데.”

        ​

        나는 야영지로 삼으려 했던 공터를 쓱 훑어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만 좋은 터는 아니었는지, 최근에 이곳에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은 인원이.

        ​

        “…이 근처를 지나가는 상단 같은 게 아니었겠습니까? 이쪽에 바퀴 자국도 있으니…”

        ​

        “떠난 지 꽤 된 거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요?”

        ​

        “문제는 없을 것 같네.”

        ​

        못해도 이틀 정도는 된 것 같으니 우리와 엮일 일은 없을 터. 나는 그간의 사건들을 떠올리다 한숨을 쉬며 짐가방 속에서 야영 장비를 꺼냈다.

        ​

        그래봤자 간단한 조리도구뿐이다마는.

        ​

        “아저씨, 저는 물 떠올게요!”

        ​

        “최대한 조심스럽게 떠와라.”

        ​

        “네에~”

        ​

        “저는 장작으로 쓸만한 나뭇가지를 구해오겠습니다.”

        ​

        “그래.”

        ​

        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빠르게 야영준비를 시작했다. 어두운 밤을 따뜻하게 밝혀줄 모닥불과 앉기 좋은 곳에 돗자리, 그리고 중간중간 마을에 들러 사 온 식자재 손질까지.

        ​

        하루를 마치기 전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돌아왔다.

        ​

        “오늘은 뭘 해 먹을까…”

        ​

        적당히 야채와 육포를 때려 박은 스프?

        ​

        아니면 주변에 있는 동물을 잡아서 구워 먹기?

        ​

        좀 귀찮긴 하지만 초절정이 된 신체 능력을 잘 활용하면 사냥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 지나가던 멧돼지를 잡아서 통구이를 해 먹는 것도 나쁘지 않고.

        ​

        …멧돼지가 있을 경우에 말이지만.

        ​

        나는 작은 칼을 꺼내 야채를 손질하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혜령이와 목경이는 금방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거들기 시작했다.

        ​

        “헤헤, 맛있는 냄새~”

        ​

        “은공이 만드는 요리는 언제나 기대가 됩니다.”

        ​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

        “하지만 내가 만들면 다 타버리는걸요…”

        ​

        “화력 조절을 안 해서 그래.”

        ​

        중화요리가 화끈한 화력으로 하는 요리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만들기에는 영 문제가 많거든.

        ​

        물론 혜령이가 요리 실력이 썩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점이 크지만.

        ​

        “그래도 불 조절은 어려운걸요!”

        ​

        “은공처럼 모닥불을 세심하게 조절까지 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

        야영 요리에 그 정도 정성을 들이는 인간이 드물긴 하지. 오러를 써가면서까지 불 조절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

        내 동기였던 놈 중 하나가 쓰던 비법 같은 거였는데.

        ​

         언제였더라, 죽기 전날쯤?

        ​

        내가 전에 알려달라는 걸 떠올렸는지 나한테 방법을 알려주고 다음날 전투에서 낙마당한 상태로 온갖 병장기에 쑤셔서 죽었던가.

        ​

        …우울해지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

        나는 국자로 냄비 속의 내용물을 휘휘 저으며 몸을 녹이고 있는 혜령이와 목경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피부색이 다르다 보니 불에 비친 둘의 모습은 상반된 느낌이었다.

        ​

        창백한 인상의 목경이와 활발한 인상의 혜령이. 

        ​

        어느 쪽이건 한 미모하는 인간들이라, 눈 둘 곳이 없을 때 적당히 바라보는 걸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

        그래도 멍하니 허공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낫지.

        ​

        흠, 슬슬 다 됐나.

        ​

        “그릇 줘.”

        ​

        “네에~”

        ​

        하루의 끝을 장식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난 잠시 수련 좀 하고 오마.”

        ​

        “아저씨…저,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돼요?”

        ​

        “뭘?”

        ​

        “검강이요!”

        ​

        혜령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

        검강이 그렇게 보고 싶은 건가? 검강이 뭐 별거라고.

        ​

        아니다, 별거는 맞구나.

        ​

        무림에서 검강을 쓸 수 있는 인간을 다 합해도 채 오십명이 안 될 테니.

        ​

        새삼 내 경지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체감이 되네. 내 위로 50명도 안 된다는 거 아니야. 

        ​

        원작에 나온 적들도 중반부 끝자락에서야 초절정에 도달한 놈들이 튀어나왔으니.

        ​

        그러니 한동안은 큰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터였다.

        ​

        “뭐 그 정도야.”

        ​

        “은공, 혹시 저도…”

        ​

        “따라와.”

        ​

        “감사합니다. 은공.”

        ​

        이쪽도 살짝 들뜬 목소리인 걸 보니 검강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

        우리는 야영지의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몇 개 더 넣어두고 강가로 향했다. 주변이 뻥 뚫린 강가가 수련하기 편하기 때문이었다.

        ​

        나는 강가 옆 공터에 우두커니 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

        내 애병인 롱소드.

        ​

        이 롱소드로 검기성강, 아니 오러블레이드를 펼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단장님이 봤다면 기뻐하셨을까.

        ​

        그리운 과거를 뒤로 밀어두고 양손으로 검을 쥔다. 살짝 거친, 하지만 친숙한 감촉이 손바닥을 감싼다. 손잡이의 감촉을 느끼며 마나코어를 깨운다.

        ​

        …근데 왜 마나코어지?

        ​

        문득 든 의문에 오러를 뽑아내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

        오러를 쓰는데 왜 오러 코어가 아닌 거지?

        ​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단어에 신경이 쏠리니 뭔가 기이함을 느낀다.

        ​

        이것도 초절정의 힘인가. 

        ​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

        “아니, 그냥 늘어난 내공에 적응 중이야.”

        ​

        적당한 대답을 던지며 오러를 마나코어에서 뽑아낸다.

        ​

        깨달음을 얻기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오러가 마나코어의 통제를 벗어나자 내 몸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근육과 마나로드에 스며드는 오러의 양을 확인하고, 천천히 오러를 검에 덧씌웠다.

        ​

        보다 선명해진 푸른 오러가 검을 감싼다.

        ​

        검기 자체도 더 정교해졌군.

        ​

        감탄하며 오러를 한층 더 덧씌운다.

        ​

        한 번.

        ​

        두 번.

        ​

        세 번.

        ​

        네 번…

        ​

        반복해서 오러를 덧씌울 때마다, 검에 실린 오러의 크기가 불어난다. 못해도 네 척(120cm) 정도는 여유롭게 늘어나는 것을 보니, 작정하면 두 배 정도는 더 길게 만들 수 있을 법했다.

        ​

        “흠…”

        ​

        오러블레이드란 건 뭘까.

        ​

        단장님도 ‘오러블레이드는 압도적인 파괴의 결정체다’정도로밖에 설명 안 해주셨으니 감이 안 잡히네.

        ​

        나는 검에 맺힌 이글거리는 오러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

        마스터가 됐다고 해서 머릿속에 자동으로 오러블레이드 만드는 법 같은 게 떠오르지는 않으니까. 일단 생각해둔 방법으로 검강을 만들어내 볼까.

        ​

        나는 눈을 감고 단장님의 오러블레이드를 떠올렸다. 칼날 위에 거대한 칼날을 덧씌운 듯한 오러블레이드를.

        ​

        …단장님은 오러블레이드로 성문을 반으로 갈라서 돌격하셨지.

        ​

        그런 오러블레이드를 뽑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똑같이 정교한 칼날을 덧씌우면 되는 건가. 

        ​

        어떻게?

        ​

        압축인가?

        ​

        적당히 풀어놓은 검기를 천천히 압축한다. 작게, 그리고 정교하게. 

        ​

        나는 눈을 뜨고 점점 크기가 줄어드는 오러를 확인했다.

        ​

        모습이 작아질수록, 오러가 단단히 뭉칠수록 아지랑이 같던 오러는 잘 정련된 칼날 같은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

        “이게…”

        ​

        “이것이 검기성강(劍氣成罡)…”

        ​

        “아저씨, 대단해요!”

        ​

        내 칼날에는 단장님의 것보다는 작지만 형태는 비슷한 오러블레이드가 은은한 푸른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신비한 빛깔을 흩뿌리는 오러블레이드는 아름다웠지만, 이것은 파괴의 결정체.

        ​

        함부로 손을 댔다간 문자 그대로 찢겨나가리라.

        ​

        “아저씨, 한번 휘둘러봐요!”

        ​

        그래볼까.

        ​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당히 벨만한 것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다 내 눈에 띈 거대한 바위 하나.

        ​

        강가 옆에 있다기엔 뭔가 위화감이 있는 바위는 상당히 커서, 자르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

        후.

        ​

        심호흡하고, 팔을 들어 올린다.

        ​

        자연스럽게 검도 내 머리 위로 올라가, 눈앞의 바위를 베어버릴 준비를 마쳤다.

        ​

        그럼…

        ​

        하나.

        ​

        둘.

        ​

        셋.

        ​

        바위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정직한 세로로 벤다. 나는 손에 느껴지는 편안한 감촉에 감탄하며 반으로 갈라진 바위를 쳐다보았다.

        ​

        “저만한 바위를 한 번에…”

        ​

        “…손에 저항감이 거의 없는데.”

        ​

        이게 오러블레이드?

        ​

        이러니까 다들 초절정에 목을 매는 거구나.

        ​

        검기랑 차원이 다르잖아. 검기도 바위를 가를 수 있긴 하지만 좀 더 거친 느낌인데 말이야.

        ​

        나는 바위를 케이크 썰듯이 썰어버리는 오러블레이드의 위력에 감탄하며 잘린 단면을 살폈다.

        ​

        그리고…

        ​

        “음?”

        ​

        “아저씨, 왜 그래요?”

        ​

        “혜령아, 이거 뭘로 보이냐?”

        ​

        “…어…지하실 문이요?”

        ​

        “…숨겨진 비동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

        잠깐의 눈빛 교환.

       

       찰나였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

        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바위 밑에 있던 정체불명의 문을 열어 젖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끝냈다는 것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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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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