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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주사위 놀이를 해본 적 있나?”

        

       베라티가 처음 황제와 마주 앉았을 때, 죽음을 각오한 그녀에게 황제가 꺼내놓은 말은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주사위 놀이?”

        

       “주사위를 이용한 놀이라면 뭐든지. 보드게임도 괜찮고, 길거리 야바위꾼의 주사위도 괜찮겠지. 아니면 카지노에서 본 적 없나? 그런 도박이 있을 텐데.”

        

       “…….”

        

       베라티는 입을 다물고 황제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여우 가면을 쓰고 있던 그 변태 같은 복장의 여인이 나간 이후로도, 황제는 표정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한 명 한 명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성당 기사를 앞에 두고도 황제는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있었다.

        

       테이블 위의 가스등이 휘청이며 황제의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도 얕게 일렁였다.

        

       만약 누군가가 황제를 시해하려고 한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이리라.

        

       베라티는 따로 구속구를 차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황제가 이렇게 베라티와 일대일로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베라티 정도는 혼자서 제압할 수 있는 자신감의 표명이기도 했다.

        

       팬그리폰.

        

       그 신화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마치 그 근거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역대 황제들은 모두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혈통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 황제는 아이를 바꿔치기하거나 황실 내의 다른 이를 황태자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받기도 했다.

        

       그렇기에 법국에서는 실비아 팬그리폰이 황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던 건데—

        

       “모르는 건가?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를 겨루는 놀이다. 더 높은 숫자가 나오는 것으로 겨루기도 하고, 여러 개의 주사위를 던져 같은 숫자가 나오거나, 숫자 순서대로—”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경계하건 말건 자기 좋을 대로 말을 이어 나가는 황제를 노려보며, 베라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일국의 황제에게 보일만한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베라티는 그 태도가 더 짜증 났다.

        

       “그래, 그렇겠지. 모든 이가 돈을 걸고 게임을 하지는 않겠지만, 주사위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뒤, 다리를 꼬아 자세를 바꿔 앉았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애하는 손님을 대하듯 편한 자세였다. 물론 이 지하실은 그다지 편안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만약 상대가 이쪽의 속임수를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아니지.”

        

       황제는 비유가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하던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상대가 이쪽의 속임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기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야 당연히 쓰던 속임수를 계속 쓰겠지.”

        

       “상대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알고 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야 그렇겠지.”

        

       베라티의 대답에 황제는 만족스러운 답이라는 듯 웃었다.

        

       “귀공이 당하는 쪽이라면 어떻겠나?”

        

       “……상대를 어떻게든 묵사발로 만들어주려고 하겠지. 속임수라는 건 알고 있다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미 말했다만.”

        

       “속임수를 모른다는 뜻이지, 상대를 모른다는 뜻은 아니잖아.”

        

       베라티의 대답에 황제는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짧게 웃었다. 큭큭큭, 하는 그 웃음소리는 사악한 악당의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그냥 친구한테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중년의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상대가 여신이라면 어떻겠나?”

        

       “뭐?”

        

       “여신과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거다. 너도, 여신도, 같은 주사위를 쓰지. 네가 쓰는 주사위는 유리 주사위다. 너무 얇고 약하게 만들어져서, 한 번만 던져도 금이 가서 못쓰게 되어버리지. 겨우 결과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신의 주사위는 상아를 깎아 만든 고급 주사위야. 몇 번을 던져도 닳거나 부서지지 않지.”

        

       황제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의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놀이의 규칙은 간단하다. 주사위를 던져서 더 비싼 값이 나오는 쪽이 이긴다. 주사위는 몇 번이고, 마음 내킬 때까지 던질 수 있어.”

        

       “규칙이 엉터리잖아.”

        

       베라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쪽은 주사위를 한 번만 던져도 망가진다면서. 그럼 몇 번 던질 수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잖아.”

        

       “그래도 한 번 던진 것으로 눈이 12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지. 그리고, 그런 규칙으로 게임을 해야 한다면 애초에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잖아. 상대가 주사위 하나나 두 개를 더 추가하겠다고 하면 이쪽은 거부권은 있어?”

        

       “없지. 여신이니까.”

        

       “……그렇지.”

        

       황제의 대답에 베라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상대가 여신님이 맞다면, 이쪽이 당연히 숙이고 들어가야지. 애초에 이 세상의 주인이신 분과 게임을 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야?”

        

       “그런 건가?”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법국의 사람이야. 기사고, 수녀라고. 내 성격이 조금 망나니 같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흠.”

        

       황제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건데?”

        

       “글쎄.”

        

       황제는 조금 뜸을 들이듯 천천히 말했다.

        

       “그 여신이라고 짐작되는 이를 찾은 듯하다.”

        

       “…….”

        

       베라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뭐?”

        

       긴 침묵 끝에 그렇게 물었다.

        

       “자네들은 아마 믿지 못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허.”

        

       베라티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하고 싶다는 소리가 그거야? 여신을 찾았다는 소리?”

        

       “아직 증명된 것은 아니지.”

        

       “그래서, 증명해보시겠다?”

        

       “그래. 그러려면 법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뭐. 성녀라도 보내달라는 소리야? 여신과 마주 앉아서 ‘아, 이분이 진정한 우리의 여신이십니다’라고 하게 하려고? 법국이 그걸 허락하겠어?”

        

       “뭘,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자네가 가진 지보만 빌려주면 족하니까.”

        

       “…….”

        

       베라티는 입을 다물었지만, 황제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시간을 돌리는 이의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사위에서 갑자기 왜 말이 그쪽으로 튀는데.”

        

       “그 속임수를 증명할 방법을 찾는 법을 이야기하는 거다.”

        

       “…….”

        

       “예언이라는 생각도 해보고, 계산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지. 아니면 미래를 아예 미리 겪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셋 다 결론이 비슷하다는 것도 이해했지. 그렇다면 남은 건 증명해 보이는 거다.”

        

       “그 증명이 대체 뭔데?”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만한 짓을 내가 계획하는 거지.”

        

       황제는 즐겁다는 듯 설명했다.

        

       “자기가 원하는 값이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굴리는 자가 있다면, 그걸 증명하는 방법으로 주사위값이 고정될만한 일을 해보는 거다.”

        

       “그래도 상대는 다시 주사위를 던지면 되는 거 아니야?”

        

       “주사위를 던지는 시기가 바뀌겠지.”

        

       황제는 베라티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했다.

        

       “열 번 던졌을 때 반드시 값이 2가 나오도록 해둔다면, 상대는 그때 갑자기 주사위 세 개를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아홉 번, 여덟 번째에 주사위값을 조작하려 들 테니까. 그걸 확인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상대가 우리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볼 수는 있을 테니.”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저 계획만 해서는 안 되네. 내가 원하는 것을 그저 얻기 위해서, 탐욕스럽게 움직여야겠지. 상대가 가지고 싶어 할만한 물건이 있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가로채는 거다.”

        

       “하지만 상대가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대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상대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겠지.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한다면 나는 무척 기쁠 거다.”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세운 계획이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근거가 될 테니까.”

        

       “…….”

        

       베라티는 한동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어도,

        

       만약 살아 돌아간다면, 법국에 뭔가 보고할 건 있겠네.

        

       그 순간 베라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그런 사소한 것이었다.

        

       *

        

       “……즐거워 보이네요?”

        

       황제 뒤에 바싹 따라붙은 벨라가 물었다.

        

       “좋다마다.”

        

       “하지만 얻으려던 지보는 그 녀석이 가지고 도망가버렸는데요.”

        

       “지보는 어차피 모두가 모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물건이니까. 그보다, 내가 증명하려던 것 이상의 수확이 있었다.”

        

       황제는 우거진 숲속을 거침없이 걸어가면서 말했다.

        

       “상아 주사위도 부서지는 경우가 생기는군.”

        

       “……우리는 아직 그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요.”

        

       “그래?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만.”

        

       황제의 그 말에, 벨라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회수 100만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달리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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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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