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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세상엔 정말이지, 끔찍한 우연이 다 있었다.

    너무나 말이 안 되어서, 누군가 운명을 갖고 장난을 치는게 아닌가 싶은, 그런 순간.

    그리고, 지금이 그에게는 그런 순간이었다.

    ‘어떻게 오늘같은 날 변기가 다 고장이 나지……?’

    말도 안되는 우연이다.

    도대체, 화장실이 모두 고장이라니…….

    시험 감독관을 몇번이나 해봤지만서도, 이런 극한의 상황에 처해본 적은 그녀로서도 처음이었다.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녀는 엘리베이터 한켠에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진짜 급한 모양인데, 어떻게하지……?’

    “어쩌지, 조금만 더 참을 수 있겠니?”

    “무, 물론.”

    루크는 상당히 유치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라? 

    물론 그러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크가 당장의 호기심을 참을 수 있을까?

    루크가 과거 호기심에 이끌려 행동한 적은 수도없이 많았지 않던가.

    가장 깊은 바다속을 탐험하고, 저 하늘을 넘어 새로운 차원을 열고, 별의 위치를 바꾸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루크의 마법적인 기행을 따지자면 가장 낮은 곳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그런 기행을 그만둔 계기는 그의 성격이 변했던 것이 아니라, 더이상 루크의 관심을 끌어 깊이 탐구할 만한 것이 더이상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않던가.

    그만큼 호기심이라는 것은 사실 그 예전부터 지금까지, 루크가 도저히 억누르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이 몸의 영향인지 호기심에 대한 충동이 더욱 강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래서 루크는 꾀를 냈다.

    ‘변기가 고장난 척을 한다.’

    루크는 몰래 마력을 조작해 환상을 만들어냈고, 루크가 조작한 환상은 ‘변기고장’이었다.

    변기에서 넘칠 듯 말듯한 물, 그것이 루크가 감독관에게 보여준 환상이다.

    고장난 화장실을 사용할 수는 없을테니, 변기 고장을 핑계로 마탑의 층층을 하나씩 올라갈 수 있었다.

    화장실은 보통 한 층당 한개였으니까.

    실제로 고장낸것이 아니니 시설에 해를 끼친것도 아니긴 하지만, 제 이익을 위해 마법을 악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당연히 부끄러울 일.

    루크는 당장 그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시선을 피하는게 고작이었다.

    ——–

    마탑학회란 마법사들이 자신의 발견을 공유하고, 발표하며,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 마법사들끼리의 교류를 담당하는 기관.

    따라서 현대 마법이론에서 깊은 부분을 탐구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또한 새로운 마법이론과 주문도 가장 먼저 발표되는 곳이니만큼, 수많은 ‘미분류 클래스’의 마법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당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저, 다른 화장실은 다 고장나서……. 어떻게 안 될까요?”

    시험감독의 확인증을 목에 건 여성 감독관과, 얼굴이 빨개져서 시선을 피하는, 화장실을 참는건지 주먹을 불끈 쥔 불쌍한 여자아이.

    정말 화장실이 급한 것 같기는 하다.

    “아, 그래도 민간인은 들어오시면 안되는데…….”

    남자가 곤란한 듯 머리를 쓸었다.

    오늘은 마법경시대회가 저 밑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오늘 변기가 모조리 고장나는 바람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모양.

    그렇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인데 마음대로 들여보낼 수야없는 일이다만.

    “정말 안되나……?”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때려 치우자.

    10살짜리 여자애가 화장실이 급하다는데 원칙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화장실만 쓴다는 거잖아.

    ‘솔직히 무슨 일이 있겠냐.’

    “알겠습니다. 가시죠.”

    그의 말에 감독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

    또각거리는 아동용 구두소리와 묵직한 남성의 운동화소리, 그리고 여성의 하이힐소리가 나란히 울려퍼지는 마탑의 복도.

    소리의 주인은 물론 루크와 마탑의 마법사, 감독관이었다.

    화장실까지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만, 아이의 발걸음이 생각보다 훨씬 늦어서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재촉할 수도 없었다.

    아이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마치 흘러나오려는 배변욕을 겨우 억누르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이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불안한지 계속해서 복도의 이곳저곳으로 마구 시선을 던지며 안절부절한 모습.

    그것을 보니 더욱더 불안해진다.

    ‘마탑은 화장실을 왜 이렇게 멀리 지어놨냐.’

    게다가, 오늘같은 날에 다른 화장실은 모조리 고장?

    정말 끔찍한 우연이 다 있다.

    그리고, 지금은 시험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아이는 화장실때문에 제대로 시험을 치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안쓰럽다.

    아직 10살이니 앞날이야 창창하게 남아있지만, 이 기억이 뭔가 트라우마로 남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층의 내부는 다른 층과는 달리, 넓은 사무실의 중앙을 통유리로 나눠서 복도를 만들어둔 구조였다.

    그 덕분에 루크는 복도를 걸으면서 마탑 내부에서 연구중인 마법사들을 창문 너머로 고스란히 볼 수가 있었다.

    사실은 발걸음이 늦은 이유도 그 풍경을 구경 하느라 그런 것이었다.

    칠판에 쓰여진 수식과 주문, 보드에 마치 도배되듯 붙여진 마법진과 별의 사진,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토론하는 마법사들.

    일전에 견학을 해봤던 세계수의 연구소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도대체 여기서는 무슨 연구를 하는걸까?

    “자, 여기가 화장실이야. 얼른 사용해.”

    “……알겠네.”

    또 환상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화장실을 대충 이용하고 나온 루크는 곧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저기, 여기선 뭘 하지?”

    “응?”

    갑작스런 루크의 질문을 받은 남자는 살짝 당황스런 소리를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어색했나.’

    하긴, 이 순간이 어린 여자아이가 겪기엔 얼마나 불편한 상황이겠는가.

    그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걷고만 있었으니.

    “여기선 보통 이론을 검증하지. 원래는 실험이나 그런것도 하지만, 지금은 모두 어떤 이론에 매달린 상태야.”

    “그렇군, 그 이론이 뭐지?”

    “샤에흐의 기적식, 혹시 아니?”

    “샤에흐의 기적식? 모른다. 그게 뭐지?”

    “흠, 그건 말이지.”

    그야 10살짜리 아이는 모르는게 당연한가.

    남자는 뒷목을 긁적이고 말을 이었다.

    현대 인류가 난제로 삼은, 샤에흐의 기적식은 뭇 마법사들에게 언젠가 증명할 수 있다면 마법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을거라 일컬어지는 인과율 관련 마법식이었다.

    겉보기엔 간단해보여도 사실 깊게 들어가면 말도 안되는 난해함으로 도저히 증명할 길이 보이지 않는, 다른 난제와 비교해봐도 이질적인 그 마법식은 어찌 증명된 것 같아도 또 다시 증명하려하면 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버리는 끔찍한 마법식.

    그 탓에 마법사들 사이에선 마법식 그 자체에 인과율적인 저주가 걸려있는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 그 마법식이 어느날 어떤 조그만 연구소에서 증명되어버리는, 말 그대로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마법연구소도 아니고, 마수학을 주로삼는 연구소에서. 게다가 그 난제를 풀어버린 사람은 ‘내가 한게 아니고, 자고 일어났더니 누가 풀어두었다.’같은 헛소리나 했고.

    그가 다시 증명해보려했지만 도저히 되지 않아서 마탑에 그대로 제출해버린것이 몇주전의 일.

    그리고 현재까지 마법사들이 그 검증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토론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마법계 일화중에서도 꽤 재미있는 일화여서 아이에게 설명해주니 꽤나 흥미를 보인다.

    하긴, 이렇게 어린나이에 마법경시대회에 도전할 정도라면, 당연히 이런 이야기에도 흥미를 가질 터.

    “샤에흐의 기적식이라, 나도 보고싶구나.”

    “하하, 그러냐? 너같은 아이는 봐도 잘 모를걸.”

    “……아이가 아닐세. 루크 이루시라고 부르게.”

    아이의 불퉁한 표정을 내려다본 남자는 아이고 하는 소리를 내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 내가 말실수를 했네, 루크 이루시…….”

    ‘말투랑 이름이 되게 특이한데.’

    여자애 이름이 루크 이루시라니, 저 이름을 지어준 부모의 얼굴이 보고싶군.

    도대체가 어울리지가 않잖아.

    “뭐, 보여줄 순 있는데.”

    남자의 시선은 루크의 옆에 선 감독관을 향했다.

    감독관은 괜히 팔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시험중에 자리를 이렇게 오래 비우는건 안돼. 시험이 끝나면 상관 없지만.”

    “그럼 시험은 언제 끝나지?”

    “이제 3시간정도 남았어.”

    3시간이라는 말에 루크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도대체 그정도의 문제를 푸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지 이해가 안되는군.”

    “……풉.”

    자기는 화장실 가려고 다 찍어서 냈으면서 직접 풀었으면 시간이 남았을거라는 허세를 부리는 10살짜리 아이의 모습은 굉장히 귀여웠다.

    “그 시간도 부족해서 문제를 다 못푸는 아이들도 널리고 널렸는걸.”

    “하하, 어차피 10살짜리 앤데. 부정행위를 할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은 제가 증인으로 있어줄테니까. 그냥 두고가세요. 3시간이나 멍하니 있는것보단 여기가 낫겠죠.”

    “그래, 그의 말마따나, 그게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로군. 안 그런가? 어차피 내 답지는 제출된 상태잖은가.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여기 있으면 되는게 아닌가?”

    루크가 이때다 싶어서 말을 쏟아내자, 감독관도 피식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뭐. 돌아다니면서 다른 아이들의 시험을 방해하는것만 아니면야. 그정도는 그냥 제 재량으로 봐줄게요.”

    감독관의 말에, 루크는 한껏 미소를 지어올리며 남자에게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관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어서 그 마법식을 보러 가자꾸나.”

    “어후, 그래. 알겠다. 가자.”

    어차피 봐도 모를텐데, 뭐가 저렇게 신난걸까?

    뭐, 그도 마법사로서 마법식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좋아하는 편이다.

    ——

    “설마, 이게 샤에흐의 기적식이라고?”

    “왜 그러니? 어디서 본적 있어?”

    “이걸 푼게 바로 본인일세……. 헌데 여기서 난제라는 다른 이름으로 보게되다니 조금 당혹스럽군 그래.”

    루크의 의미심장한 말에 마법사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응? 이걸 네가 풀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말 그대로다만.”

    “이건 내가 풀어낸 증명식이라네. 원한다면 증명해보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걸 여기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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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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