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8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권터는 피부가 새까매진 채로 병상에서 신음을 흘렸다.

     

    “으, 으으…”

     

    그가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보니 황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역시 적이었던 형제나 사촌은 수도 없이 베어왔지만, 벌써 한참 전의 일이다.

     

    자식은 형제보다 아내보다도 피가 진한 가족이었다고 황제는 뒤늦게 깨달았다.

     

    “권터.”

     

    아무리 능력이 부족한 명목뿐인 황태자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핏줄이다. 분명 성장할 기회는 있었을 터였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폐하. 저주의 잔여물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앰브로시아의 조언에도 황제는 한참이나 권터를 바라보았다.

     

    “나을 가능성은 없는가.”

     

    “지금으로서는….”

     

    “자네들은 제국 최고의 치유사 아닌가.”

     

    “주술을 포함한 저주는 흑마술사들의 영역이옵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기술이기에 연구가 쉽지 않습니다.”

     

    “흑마술사.”

     

    황제는 그 단어에 치를 떨었다.

     

    흑마술사는 금단의 주문을 쓰는 마법사들이다. 제물을 바치거나 사용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가로, 더욱 강대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주문을 쓴다.

     

    그런 주문이 대중에 퍼지면 제국민의 안전이 위험해진다. 때문에 황제는 흑마술사에게는 불관용의 원칙을 유지해왔다.

     

    그 덕에 제국에서 평범한 이들이 흑마술을 접할 루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내의원의 해주 전문가조차 흑마술의 기본 원리를 겨우 아는 정도다.

     

    ‘아무리 쥐잡듯이 잡아도 흑마술사는 늘 어디선가 또 튀어나왔지.’

     

    그들을 관리하지 않는 국가도 있고, 태생이 잔인한 이들은 또 태어나기 마련이니.

     

    권터도 필히 그들에게 홀린 것이리라.

     

     

     

    천황궁으로 돌아온 황제는 근심에 빠졌다.

     

    권터는 분명 직접 주술을 사용했다. 심약한 그가 어쩌다 흑마술을 접할 생각을 했을까.

     

    “짐이 너무 몰아붙였을지도 모르겠군.”

     

    설마 그 심약한 권터가 흑마술까지 쓸 정도로 배짱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자식들이 능력을 보이고 성장하기 위해 전력을 내는 일은 더없이 환영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둘이 목숨을 잃어도 명예롭게, 경쟁 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터는 아셀라에 대한 승부욕보다 자신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흑마술까지 손댔을 것이다.

     

     

    술병을 내려놓고 성을 내던 권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를 모질게 다루면 본인도 깨달아 성장하고, 다른 형제들을 자극하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 했으나.

     

    ‘결과적으로 틀린 방법이었다. 실제로 권터는 죽어가고 있지 않나.’

     

    자식이 이런 식으로 자멸해 탈락하는 건 황제도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홀로 생각을 이어가던 황제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짐의 혜안이 더욱 명확했다면 후계자를 단번에 정했을 것이다.”

     

    지금껏 자식들에게 경쟁을 시킨 일은, 자신의 부족한 판단력을 그들에게 떠민 일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엔 제국의 황제로서 그 어떤 선택도 틀리지 않을 확신이 있었던 그였다.

     

    지금의 황실의 모습은 실패를 두려워한 자신이 만든 결과다.

     

    나이를 먹고 겁이 늘어난 것인가.

     

    “으음.”

     

    황제가 집무실 책장에 세워놨던 병에 눈길을 보냈다. 권터가 가져온 희귀한 술이다.

     

    황제가 잔을 가져와 뚜껑을 여니 부주치의들이 앰브로시아의 눈치를 봤다.

     

    그녀 역시 황제가 외부의 술을 마시는 일은 말리고 싶었으나, 지금의 그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자식이 마지막으로 올린 진상품이다.

     

    앰브로시아가 조심스레 간언을 올렸다.

     

    “폐하, 그 술이 무해한지 검사하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권터가 가져온 물건이다. 설마 그럴 위험이 있겠는가.”

     

    “본래는 좀 더 상세한 검사를 진행해야 하옵니다만…”

     

    “알겠다.”

     

    황제가 허락하니 앰브로시아가 술병에 대고 탐지 주문을 사용했다.

     

    …특별하게 걸리는 건 없었다.

     

    “괜찮다고 생각되옵니다.”

     

    앰브로시아가 물러나고, 황제가 잔에 따른 투명한 액체의 향을 맡았다.

     

    진득하며 풍부하다. 권터가 힘들게 구한 최상품일 것이었다.

     

    혹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앞으로 마음을 조금은 받아들여 주고자 생각하며, 황제는 잔을 기울여 액체를 삼켰다.

     

    “호오.”

     

    무거운 타격감 후에 상쾌함이 온몸에 퍼진다. 좋은 술이었다.

     

    남은 향을 음미하던 찰나.

     

     

    ―쨍그랑!

     

    황제가 손을 떨며 잔을 떨어트렸다.

     

    “폐하!”

     

    앰브로시아가 즉시 그에게 달려와 치유주문을 시전했다. 부주치의들 역시 보조한다.

     

    “으, 으으윽….”

     

    하지만 치유주문을 시전할 수록 황제의 안색은 급속도로 나빠질 뿐이었다.

     

    “무, 무슨 일이!”

     

    “시전을 중지해라!”

     

    독살이다. 그것도 치유주문으로 나을 수 없는 무언가였다.

     

    앰브로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앰, 앰브로시아…”

     

    “폐하!”

     

    황제가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고트베르크를.”

     

    말을 마치지 못하고 황제가 혼절했다.

     

    앰브로시아가 부주치의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침실로 모시시오!”

     

    “자매님은?!”

     

    앰브로시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고트베르크를 불러오겠소.”

     

     

     

    ***

     

     

     

    나는 기사들을 이끌고 일성궁 사무실로 향했다.

     

    쾅! 타냐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치유사들이 깜짝 놀라 길을 비켰다.

     

    나는 제일 안쪽에 앉아있는 리비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타냐.”

     

    “예.”

     

    쿵!

    타냐가 즉시 그를 끌어내 바닥에 무릎 꿇렸다. 양팔을 뒤로 한 채 제압해 술수를 못 쓰도록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일성궁 치유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리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무슨 짓이십니까?”

     

    “계시자 리비오 신관. 흑마술사와 내통하고 담당 황족을 음해한 죄로 체포하겠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덤덤하게 시치미를 떼는 그의 앞에 내가 문서를 들이밀었다.

     

    “권터 전하를 저렇게 만든 주술, 분석 끝났어. 네가 주문을 밀수했다는 증거도 있어.”

     

    “주치의인 제가 전하를 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말도 안 되는 음해입니다.”

     

    “그랬는지 아닌지는 검사해 보면 알겠지. 주술의 잔여 마나를 측정했어. 어디 네 마나와 대조해 보자고.”

     

    마나는 지문이나 마찬가지다. 개인마다 특성이 미세하게 다르다.

     

    지금처럼 주문의 잔여물이 남아있다면 흔적을 채취해 증거로 쓸 수 있다.

     

    “주술을 분석했다? 흑마술사들이나 알 수 있는 영역 아닙니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법국에선 흑마술에 당하기만 했나 보지? 우리 팀은 해. 제국의 실력을 너무 얕본 거 아니야?”

     

    리비오가 눈을 얇게 찢었다.

     

    “대조는 거부하겠습니다. 공식 명령이 나오기 전에는 사적 제재일 뿐입니다. 애초에 선생님이 치안관도 아니잖습니까.”

     

    “증거가 생기면 공식이 되지 않겠어?”

     

    “항의합니다. 월광궁의 본 폭력 행위를 재판에 회부하겠…”

     

    콱! 내가 무릎 꿇은 리비오의 어깨에 발을 올렸다.

     

    “그거야 나중 일이고.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다짜고짜 이게 무슨.”

     

    “소문 못 들었어? 내가 원래 이런 쪽은 전문이라서.”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는지 리비오가 도망치려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타냐가 그를 포박한 팔에 더욱 힘을 줬다.

     

    위기에 몰렸는데도 여전히 땀 한방울 안 흘리고 표정을 유지하는 게 독한 놈이다.

     

    “저는 주치의로서 의무를 다했을 뿐…”

     

    “고트베르크 선생!!”

     

    그때 밖에서 급히 앰브로시아가 뛰어 들어왔다.

     

    “자매님.”

     

    “비상 상황이오. 당장 따라와 줘야겠소.”

     

    “뭐라고요, 설마.”

     

    리비오를 돌아본다.

     

    여태 가짜 표정만 짓던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어.”

     

    “한 가지 고백하겠습니다, 선생님.”

     

    리비오가 나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는 처음부터 사람의 감정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뭐라고?”

     

    “그렇군요. 처음 제가 이형이라고 깨달은 건 여동생이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녀는 뒷산에서 마물에게 하반신을 통째로 뜯어먹혀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지요.”

     

    별안간 리비오가 주절주절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내장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치유술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지요.”

     

    “선생님, 지금 목을 칠까요?”

     

    타냐의 물음에 내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

     

    “제게는 이득이 된 사건이어서 즐거웠습니다만, 다른 이들이 왜 슬퍼하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리비오가 회상에 신나서는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저는 인간의 감정 구조도 연구했습니다. 치유사는 늘 죽음과 가까운 직업이지요. 감정의 낙차에 따른 행동 패턴도 다양하게 기록해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비오가 여태껏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진심 담긴 웃음을 내비쳤다.

     

    꼭 억지로 일그러뜨린 하회탈 같았다.

     

    “자식이 죽었을 때 그의 마지막 선물을 아끼지 않은 부모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어떤 악인이라도 말입니다.”

     

    그 웃음은 승리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앰브로시아가 여기 왔다는 건 황제가 쓰러졌단 뜻이다.

     

    그리고 여태 시치미를 떼던 리비오가 진심을 말한 건, 황제를 시해해서 목적을 이뤘다는 것이겠지.

     

    여한이 없다는 태도다.

     

    “별 것 아닌 헛소리구만. 겨우 그딴 얘기로 그렇게 시간을 끌어?”

     

    내 말에 리비오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지연하게 하려는 노림수였겠지.

     

    반대로 말하면.

     

    “내가 황제를 살려낼까 두렵지?”

     

    리비오의 눈이 커졌다.

     

    그는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기 직전인데, 그걸 망쳐버릴까 봐서.

     

    즉, 아직 황제는 살려낼 수 있다.

     

    “자매님, 가시죠.”

     

    “시간이 없소. 당장 움직이시오.”

     

    리비오는 타냐에게 맡겨 구속하게 하고, 나는 앰브로시아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본래 역사에서는 이 사건에서 아버지가 황제 치유에 실패하고 암살 의혹을 뒤집어써서 가문이 멸문했다.

     

    반대로, 황제를 살려내면 더없이 확고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터다.

     

    “선생, 이야기를 들었소. 합류하겠소.”

     

    바로 달려와준 팔켄하인에게 내가 말했다.

     

    “수술팀과 치유팀 전원 준비 부탁합니다. 휴고 해주사도 포함해서.”

     

    나는 사탕을 꺼내 물었다.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