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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오늘 드발체프를 찾은 여행자가 있다면 지금이 성탄제 기간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거리 곳곳에서는 찬송가가 울려 펴졌고, 집마다 붉은 연등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거기다 성당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성탄절 날 교회에서 공양을 받아먹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오늘이 진짜 성탄제 기간인 것은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키르쿠스의 날을 이용하여 가짜 성탄절을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12월도 4월 1일도 아닌 7월 말이었다. 농촌에서는 한창 일이 많아 바쁜 계절인 것이다.

         

       그러나 드발체프 주민들에게는 오늘이 성탄절 이상으로 기쁜 날이었다.

       그들이 지금 목청껏 부르는 노래의 내용은 주님의 덕을 칭송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보내주신 성자님과 성녀님 덕에 그들이 병마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그들이 오늘을 성 원더스타인의 날로 기념하거나 마을 이름을 성 발렌티노프로 바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12월까지 창고 구석에 박혀 있을 예정이었던 연등들을 꺼내와 불을 붙였다.

       붉은 연꽃들이 어두운 거리 곳곳을 밝혔다.

         

       주민들은 누가 더 곳간 문을 활짝 열 수 있나 내기라도 하듯 술과 음식을 이웃들에게 대접했다.

       가축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씨돼지와 씨암탉들도 목이 달아나기 바빴고, 심지어 딸내미 시집갈 때 꺼낼 거라고 파묻었던 술독들이 파헤쳐지기도 했다.

         

       올해 9살이 된 소녀는 신이 나서 삽으로 땅을 파고 있는 아빠를 보며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빠는 그녀가 태어날 때 묻었다는 술을 파내고 있었다.

       저주가 내린 땅에 묻은 건 얼른 마셔서 없애 버려야 한다나?

         

       저주받은 땅에 묻힌 걸 왜 마셔.

       버려야지.

         

       그녀는 아빠의 말이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그녀가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 지금쯤 땅에 묻은 술이 얼마나 맛있게 익었을까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차피 저주 역병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대풍년 기념이나 대흉년 액땜 같은 것을 구실 삼아 꺼내 마셨을 게 분명했다.

         

       “으헤헤, 술독에서부터 향기가 느껴지네.”

         

       단단하게 봉인되어있는 항아리를 파낸 아빠가 헤벌쭉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소녀도 더는 화내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치, 그렇게 좋아?”

       “아무렴. 얼마나 맛있는 술이……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위험한 병에서 벗어나서 좋다는 거지. 아무렴. 저주 받은 술 따위 누가 좋아할까!”

         

       아빠의 너스레에 소녀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음, 그런데 이러게 술을 마시면, 나 시집갈 때는 어떡해?”

       “크흠, 그건 더 좋은 재료들을 구해서 새로 담가볼게.”

       “정말?”

       “그럼. 오늘 먹어보고 더 맛있는 술을 만들어야지.”

       “흥. 최소 2배는 더 비싼 재료들을 써야 해?”

         

       그녀는 아빠를 믿기로 했다.

       그녀의 아빠는 술에 관해서라면 마을에 따를 자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빠가 술독을 조심스럽게 땅에서 들어내고 있을 때, 주방 쪽 문이 열리며 젊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여인은 아직 치료 순번이 뒤에 있었기에 허리와 등 쪽에 불끈거리는 살덩어리를 달고 있었다.

         

       징그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소녀는 여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소녀의 엄마였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고기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옆집에서 돼지를 굽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요리를 나눠받으러 갔던 엄마였다.

       고기를 들고 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기에서 갓 잡은 것처럼 붉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것은……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 먹어야…….”

         

       엄마의 상태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어딘가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아빠의 등을 바라봤다.

       사랑하는 딸을 향해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엄마?”

         

       소녀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르는 순간, 옆집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하지 마!”

         

       그건 소녀와 자주 놀던 옆집 언니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아빠가 고개를 쳐드는 동시에 엄마가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곳에는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칼날 같은 이빨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의 턱은 고무로 된 것처럼 계속해서 늘어났다.

       턱 끝이 그녀의 가슴팍에 닿을 때까지.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소녀가 너무 놀라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때, 여인은 번개처럼 자기 남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 커다란 입으로 남편의 목과 어깨를 그대로 물어뜯었다.

       콰직.

         

       “크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방금까지 술독을 안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아빠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그것은 육체적 고통으로 인한 것도 있었지만,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믿기 힘들었기 때문도 있었다.

         

       아내가 자신을 공격하다니!

         

       더 무서운 것은 이후 그녀가 벌인 행동이었다.

       아내는 그녀가 물어뜯은 남편의 뼈와 살점들을 와그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씹어 먹었다.

         

       “머, 먹는, 먹어서…….”

         

       여인은 눈알을 정신없이 굴려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데볼루트는 목적에 따라 숙주의 육체를 개조했다.

         

       생체물질을 잘 씹기 위해 숙주의 치아를 튼튼하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 번에 보다 많은 양을 섭취하기 위해 숙주의 턱관절을 몇 배로 늘어나게 했다.

       그리고 육체를 의도대로 조종하기 위해 뇌세포를 헤집어 통제권을 빼앗았다.

       원더스타인의 상태창에 ‘진화 연구소’라 지칭되던 적응형 개조 능력은 데볼루트의 본능에 심어진 힘이었다.

         

       원더스타인의 피에서 나온 데볼루트들의 목적은 생체물질을 먹어서 자기네들을 증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습격과 포식만 반복하는 짐승이 아니었다.

       변성 부위를 몸에 달고 있는 인간을 보면 접촉해서 ‘명령’을 그 인간의 몸에 있는 데볼루트들에게 전염시켰다.

         

       ‘먹어라.’

         

       명령은 양떼들을 이끄는 목동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날뛰던 데볼루트들에게 ‘먹어라.’라는 명령을 내리면 알아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는 몸을 덜덜 떨며 그자리에서 꼼짝도 못했다.

         

       엄마가 아빠를 공격했어.

       엄마가 아니야.

       괴물. 귀신. 마귀.

       아빠가 피를 흘리고 있어.

       아빠가 죽어?

       엄마는?

         

       그녀의 의식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아빠의 목소리였다.

       그는 재차 자신의 몸을 뜯어먹으려는 아내의 몸을 간신히 막아 세우며 딸에게 외쳤다.

         

       “도, 도망쳐!”

       “하, 하지만…….”

         

       다친 아빠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아빠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아빠는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어서 도망치래도!”

         

       소녀가 급히 뒤돌아서서 집 밖으로 달려나간 것은 매몰찬 것도 결단력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아빠의 필사에 찬 외침에 몸이 알아서 반응해버린 것이었다.

         

       마당을 뛰쳐나오며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아빠가 마지막 힘을 짜내 장작더미 옆에 있던 도끼를 들어 엄마의 다리를 찍었고, 엄마는 날카로운 이빨로 아빠의 두개골 절반을 씹어먹었다.

         

       소녀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으려는 것을 간신히 밀어넣었다.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소녀의 두 눈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풀렸고, 눈, 코, 입에서는 눈물과 콧물,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리를 가득 채우던 찬송가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옆집에서, 건너편 집에서, 맞은편 거리에서 비명과 고함이 메아리쳤다.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이 골목 곳곳을 뛰어다녔다.

       역겨운 피와 내장 냄새가 거리를 지배했다.

         

       그녀는 도저히 지금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다.

       흡사 악몽 속을 걷는 듯했다.

         

       “머, 먹어야……딸…….”

         

       반가운 목소리가, 그러나 지금은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달리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한쪽 다리에 도끼를 박아 넣은 엄마가 두 팔로 기어서 그녀를 쫓아오고 있었다.

       인간의 팔은 걷는 용도로 사용하기에 매우 부적합했다.

       그래서 데볼루트는 관절 일부를 뒤틀어 팔을 네발짐승의 것처럼 개조했다.

         

       “딸……키기기긱!”

         

       입에는 피와 살을 질질 흘린 채 혀를 빼물고 두 팔을 써서 기어오는 엄마의 모습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정신없이 달렸다.

       그녀의 머리는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달려야 한다는 것 외에는.

         

       “빌어먹을 괴물 놈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저주야. 진짜 저주가 내린 거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시오!”

         

       달리다 보니 갑옷을 입은 병사와 그를 중심으로 농기구를 들고 방진을 짠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앞에는 창에 찔리고 쟁기와 낫에 찍힌 괴물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신을 놓고 달려오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순간 흠칫했지만, 그저 겁에 질렸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무리 안에 넣었다.

         

       “뭐야, 너 건너편 거리에 사는 애구나. 혼자니?”

       “부모님은?”

       “저, 저기…….”

         

       소녀가 가리킨 방향에는 두 팔로 기어오는 그녀의 엄마와 그녀와 같은 방향에서 달려오는 감염자들이 있었다.

         

       “크기깃, 머, 먹어야!”

       “먹는…….”

       “쿠웨겍!”

         

       병사는 놈들의 수를 확인하고는 이를 악물고 창을 꽉 쥐며 외쳤다.

         

       “아까처럼 상대하는 거요! 절대 대형을 풀어선 안 되오! 어차피 놈들은 평범한 인간 이상의 힘은 낼 수 없…….”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퍽.

       제일 앞서서 달려오던 감염자의 팔에서 무언가 쏘아져 나오더니 몇 미터나 날아와 그의 이마를 파고들어 뒤통수를 뚫고 나온 것이다.

         

       병사의 으깨진 머리통 뒤로 뇌의 파편이 튀어져 나오고 뇌수가 흘러내렸다.

         

       “무, 무슨……?”

         

       쿵.

       그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뭐, 뭐야?”

       “괴, 괴물! 다, 다른 괴물이야!”

       “도망쳐!”

         

       겁에 질린 사람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잃고 달아났다.

         

       데볼루트의 적응 진화 능력은 믿기 힘들 정도로 재빨랐다.

       그들은 멀리서 무기를 든 사람들의 손에 감염자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그 대응책을 개발해낸 것이다.

         

       남자의 팔에서 튀어나온 것은 근육을 얼기설기 꼬아서 만들어낸 채찍 같은 것이었다.

       그 끝에는 뼈를 재료로 한 칼날이 붙어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특기 중 하나인 ‘맨튤라의 칼날’을 조잡한 형태로 흉내 낸 것이었다.

         

       감염자들의 목표는 생체물질 섭취였다.

       그들은 무리해서 사람들을 쫓으려 하지 않고 각자 하나씩 살아있는 사람을 붙잡고 식사하는 데 집중했다.

         

       이웃들이 잡아먹히는 것을 돌아보며 사람들은 있는 힘껏 달아났다.

         

       두 팔로 기는 여인은 도망치고 쓰러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한 사람.

       그녀의 딸에게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았다.

         

       “따, 딸……머, 먹어야…….”

         

       얄궂게도 딸을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는 여인의 뇌가 벌인 필사적인 저항이 딸을 더 위험하게 만든 것이다.

         

       여인은 두 팔로 기어서 소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가 기어가는 속도가 아무리 달리는 것보다 느리다지만, 상대는 9살 꼬마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점점 가까워지더니 거의 코앞까지 따라붙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막 도는데…….

         

       휙.

       막다른 골목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단단한 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인은 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고개를 휘저었다.

       이상했다.

       분명 사냥감은 이곳을 향해 달려왔는데.

         

       그때, 건물 뒤편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건너편 길로 손쌀같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그 실루엣으로 보아 그녀의 딸이 분명했다.

         

       “퀘에에엑!”

         

       여인은 입을 벌리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것을 쫓아갔다.

       먹어야 했다.

       딸을.

         

       여인이 사라지고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던 돌벽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뒤에는 오줌을 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어린 소녀와 냉정한 표정을 짓고 서서 괴물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마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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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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