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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스테이지 1의 보스, 통칭 ‘대학원생의 왕’.

        검은 어둠을 휘감은 존재가 마검을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영락한 대학원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부터 찾아야 해요!”

       

        마치 좀비 떼와 같은 그들을 피해 세라는 우선 달아나는 것을 택했다.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포위된다면 전멸은 시간문제이기 때문.

        우선 다음 스테이지로 이어지는 문만 찾으면 해볼 만 하다는 계산이었다.

        나 역시 기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기에 저 괴물과 정면에서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클락 씨! 마가렛 씨의 전언은……!”

        “잠깐 기다려 봐. 지금…… 응?”

       

        마가렛과 연결된 인형을 로브 안쪽에서 꺼내려던 순간, 손가락에서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뒤이어 딸려나온 것은 깨진 안경 조각과 인형의 겉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로브를 벗고 탈탈 털어보니 프리나의 인형이 마가렛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그것도 질투심 가득한 표정으로.

       

        “…….”

        “…….”

        — 결국 ㅇㅣ 검을 ㄲㅓ내ㄱㅔ ㅁㅏㄴ드는구ㄴㅏ 필멸ㅈㅏㅇㅕ……!

       

        같은 주머니에 넣어두면 안 됐던 건가!

        갑자기 벌어진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무렵, 드디어 대학원생의 왕이 우리를 인지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낙오된 쌍둥이를 들쳐업고 길을 뚫었다.

        목적지는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시스테인 파크 중앙에 위치한 경매장이었다.

       

        “우선 안쪽으로 들어갑시다!”

        “이렇게 되면 문은 어떻게 찾죠?”

        “하나씩 열어보는 수밖에. 그보다 저놈을 따돌리는 게 먼저다. 어이 치안부, 뭔가 약점은 없나?”

        “어, 없어요. 저 괴물에게 이곳은 놀이동산에 불과해요. 가둘 수도 숨을 수도 없고 숨 쉬는 것만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할 거에요…….

        “마치 현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꺄아아아앙!!!”

        “…….”

       

        결단코 그런 적 없어.

        나를 무슨 눈과 입구멍밖에 없고 자기 칼이랑 대화하는 정신병자 취급하다니.

        덕분에 스테이지 1부터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보스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마가렛과의 연락도 끊긴 상황에서 믿을 건 그녀에게 받은 마도구와 모험가로서의 감이었다.

        다행히 지도로는 위치노트처럼 주위에 있는 문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고, 수정구로는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

        조금씩 경매장을 향해 가까워지는 또 다른 나를 묶어둘 방법만 생각해두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있다.

       

        ‘잠깐, 또 다른 나라고?’

       

        그때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아ㅇㅏ…… ㅇㅣ쪽ㅇㅔ서 복ㅅㅏㅂㅂㅕ 냄ㅅㅐㄱㅏ ㄴㅏ는군요…….

       

        경매가 진행되는 수십 개의 옥션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복도.

        허리를 꼿꼿이 편 채 기괴하게 목을 늘어뜨려 코로 카펫을 훑는 대학원생의 왕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모퉁이 끝에서 도달하기만 하면 우리가 숨어있는 창고의 문을 열기까지 고작 몇 초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거리.

        그때, 바닥에 처박혀 있던 그의 얼굴 앞으로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떨어졌다.

       

        [학파 규칙 : 경매장 안에서 사람을 찾을 때는 반드시 시스테인 파크 외곽을 1000바퀴 돌고 안으로 들어올 것]

       

        위치노트를 찢어 적어놓은 글씨를 이리저리 돌려 본 대학원생의 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에서 수없이 돋아난 검은 팔이 인상적이었다.

        당장이라도 종이를 찢어발기고 그대로 이쪽으로 달려드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그는 그것을 곱게 접어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이내 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 규ㅊㅣㅇㅣㄱ…… ㅊㅓㄴㅂㅏ쿠ㅣ…….

       

        가가각, 가각.

        검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옆에 있던 샬롯과 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나와 비슷한 존재라면 학파 규칙도 따를 것이 분명했기에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틈에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문을 찾아야 했다.

       

        “‘문’의 형태를 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입구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흩어져서 찾아보죠.”

        “저희끼리 움직이기보다는 재정비해서 다시 오는 건 어떤가요?”

        “음, 그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 인형이 마가렛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말이야.”

       

        세라와 아르투르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시련에 도전하는 기회가 무한정하진 않다.

        마가렛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해도 가는 데까지는 가보고 싶었다.

        아직까지 부상을 당한 인원도 없고 개개인의 스팩도 40층을 통과하기에 충분히 높다.

        이후로 또 한 명의 나라는 규격 외의 보스 같은 것들만 나오지 않는다면 해볼 만 해 보였기에 나는 다른 이들을 설득했다.

       

        “시스테인 파크는 말도 안 되게 넓어. 다음 번에도 출구를 못 찾을 수 있으니 최대한 넓은 범위를 탐색하는 게 중요해.”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당신들도, 이번에 통과 못 하면 다음에 또 저 녀석이랑 만나야 하는데요?”

        “시, 싫어요! 그냥 여기서 끝낼래요!”

        “앤……!”

        “저는 찬성이어요.”

       

        마리엘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시련에 입장한 후부터 부쩍 말 수가 적어진 그녀는 처음부터 도중에 포기할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결국 세라와 아르투르도 동의해 다 함께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문을 찾기로 했다.

       

        세라와 아르투르, 샬롯과 엔, 그리고 마리엘과 나.

        이렇게 인원을 둘씩 셋으로 나누어 수정구와 지도를 건네주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문을 찾으면 곧바로 연락하고, 세 시간 뒤에 다시 여기서 모이는 걸로 합시다.”

        “만약 대학원생의 왕과 마주치면요?”

        “해주학파가 마탑 제일의 학파이고 정보부 2과의 복사뼈가 마탑 제일의 복사뼈라고 삼창하세요. 그러면 아마 목숨은 빼앗지 않을 겁니다. 그 사이에 제가 구하러 가죠.”

        “…….”

       

        주의사항을 당부한 후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

        마리엘과 나만 경매장에 남게 되었다.

        시스테인 파크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인 만큼 문의 개수가 많았다.

        덤으로 붙잡혀온 흑화 대학원생들이 바글거리는 곳이었기에 제일 위험도가 높았다.

       

        마리엘이 시간을 조작하는 신비를 사용한다면 순식간에 모든 문을 열어젖힐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곧장 마력을 일으키려는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천천히 하죠. 저랑 같이 걸으면서.”

        “어째서죠? 그 괴물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 시간이 없는 것이에요.”

        “그것보단 전력을 온전히 유지하는 쪽이 더 중요해요. 저희는 앞으로 두 개의 스테이지를 더 통과해야 하니까요.”

       

        상황이 급박하다고 해서 생각까지 조급해지면 안 된다.

        공략에는 언제나 여유를 두는 것이 중요했다.

        검을 쓰는 또 다른 나와 싸워 이기는 게 시련의 통과 조건이 아니기에 지금은 전혀 힘을 뺄 필요가 없다.

        고작 문을 여는데 마리엘의 마력을 쓰지 않는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나는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갤러리의 파딱이라는 사실이나 신비의 파편을 지녔다는 것, 입술이 맞닿으면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는 것 등 사적인 면을 여럿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

       

        왜 40층의 시련을 굳이 혼자서 통과하려 했는지.

        최상층의 공략대에 접촉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째서 내가 없었던 세상에서 마탑을 무너뜨렸는지.

       

        기왕이면 그녀가 가진 비밀을 천변의 방이 비추기 전에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었기에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금이 흐르는 폭포 같은 머리카락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마리엘의 입이 먼저 열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이 텅 빈 옥션의 문을 열어젖힌 찰나였다.

       

        “관리인.”

        “네?”

        “전 관리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에요.”

       

        반쪽짜리 회귀자와 눈이 마주치자 문고리를 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최근 갑자기 길거리에서 사생팬을 만난 것도 그렇고,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주딱이라는 공고한 캐릭터성이 점차 무너지며 불안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마리엘에게 내가 갤러리의 관리자라는 인상을 풍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일단 자연스럽게 발뺌을 하고 봐야겠지.

       

        “설마…… 매일 새벽마다 벨튀를 하던 게 저라는 사실을 들킨 건가요?”

        “그딴 건 진작에 알고 있던 것이에요. 대체 왜 그러는 것이어요?”

        “그야 재밌으니까…… 어쨌거나 그게 아니라면 혹시 얼마 전 문앞에 야식으로 놓아둔 샌드위치에 바퀴벌레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그거 사고(事故)가 아니었군요!!! 이, 이 악질적인!! 어떻게 그런 끔찍한 사고(思考)를 할 수가 있어요!!!”

       

        맹세컨대 마리엘에게 벌레를 먹인 게 아니었다.

        단지 잘린 바퀴벌레 반 마리를 샌드위치 안쪽에 끼워 넣었을 뿐.

        그녀의 칫솔 교체와 기사단에 처음 사진을 보낼 때 벌어진 사고(事故)를 통해 구강구조를 자세히 꿰고 있는 점을 이용.

        평소 샌드위치를 모서리 부분부터 먹는 습관까지 알고 있어 정확히 한 입을 베어 물면 ‘녀석’이 드러나도록 치밀한 설계를 해놨다.

       

       즉, 마리엘은 바퀴벌레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단지 샌드위치를 먹다 절반으로 잘린 벌레를 보았을 뿐.

       

        그때의 진심 어린 비명은 평소보다 배는 듣기 좋았지.

        매일 아침 기숙사의 알림 음으로 설정해 놓았을 정도로 미식이었다.

       

        “그때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 새벽에 샌드위치를 못 먹게 된 것이에요!”

        “늦은 밤에 자꾸 뭘 먹으니까 살이 찌죠. 매번 저한테 세탁을 잘못해서 드레스가 줄어들었다니 뭐니 불평하기에 다소 과격한 조치를 했을 뿐이에요.”

        “홀크로프트의 여식은 그런 걸로 살이 찌지 않는 것이에요! 애초에 불편해진 건 가슴뿐이고……!”

        “…….”

       

        화를 씩씩 내던 마리엘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귀가 새빨간 게 뒤늦게 부끄러운 감정이 도는 모양.

        어쨌거나 그녀가 알고 있다는 나의 비밀이 ‘메론 소다인 척 하는 고수 에이드’나 ‘오징어인 척하는 도라지 반찬’을 먹이고 반응을 지켜보는 것 말고 뭐가 있다는 걸까?

        설마 진짜로 주딱인 걸 알아챈 건 아니겠지?

       

        “하아, 제가 알고 있다는 당신의 비밀은 겨우 그런 게 아니어요.”

        “그럼요?”

       

        경매장 한 층을 다 돌 동안 고민하던 와중 드디어 감정을 추스른 마리엘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마탑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하는 것이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기에 걸려 연재가 부실했네요.
    아직도 몸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공휴일도 끼어있고 하니 쉬는 날에도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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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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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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