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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진성은 빅토르가 자신의 앞에 와서 앉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관상, 관상이라. 이는 참으로 신비롭지만 덧없어 학문과 미신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는 기계를 사용하면 반드시 틀리게 되며, 사람을 직접 보고 파악하면 맞아떨어지는 일이 잦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 이는 단순히 사람의 생김새는 그 자체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생긴 문제이며, 이성이 아닌 본능과 이성을 함께 사용해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성은 접시에 놓인 카피바라 고기를 잘 분리하며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카피바라 통구이는 허공에 살짝 뜬 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잡아당기듯 쭈욱 찢어지며 분리되었고, 먹기 편한 크기로 찢겨나갔다.

         

       “이는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신비라. 하니 내가 자네의 관상을 보고 미래를 점친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일이니라.”

       “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 같은 놈이 말은 잘하는군.”

         

       빅토르는 진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기도 했고, 사기꾼을 볼 때 느끼는 가소로움 또한 있었다.

         

       “마녀도 아니니 나이는 보이는 그대로일 테고. 동양놈들이 우리보다 젊어 보이는 게 있으니 내가 느끼는 것보다는 나이가 많겠지만, 그래 봤자 성인이 될락 말락 한 놈 같은데. 그런 놈이 인간의 신비니, 미래니 해봤자 믿음이 갈 것 같나?”

         

       그는 진성의 목을 살펴보았다. 사브르로 꿰뚫었던 부분은 흉터 하나 남지 않은 채 깨끗했고, 그 주위에 불똥이 부유하는 것이 예사 주술은 아닌 듯했다.

         

       “그래. 주술은 어느 정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거랑 이거는 별개지. 안 그래?”

       “하하하하! 빅토르. 자네는 이미 나에게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어. 말로는 믿지 못하겠다고는 하나, 자네의 무의식은 나를 믿고 있다는 말이야.”

         

       진성은 웃었다.

         

       “믿음이 없다면 자네는 내 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겠지. 자네는 사기꾼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식사 초대를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야.”

       “크흠.”

       “식사라는 것은 신성한 것. 자네에게 있어 식사라는 것은 친분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뿐만이 아니야. 자네는 대화할 가치가 없고, 교류할 가치가 없으면 절대로 같이 식사를 하지 않지. 식사라는 것은 자네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상받는 시간이자, 자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야.”

         

       빅토르는 진성이 자신의 과거를 또다시 입에 올리자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덮칠까 말까 고민하는 것과 같은 흉흉한 모습이었지만, 진성은 그 모습을 보고도 겁을 먹기는커녕 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묻겠네. 식사를 제외하고 자네가 살아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언제인가? 자네는 언제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꼈는가? 진짜 당장 죽는 게 낫다 싶었던 스패츠나츠(Спецназ) 훈련 때? 아니야. 수료식 날 군용 대검을 입안에 넣고 관통해 뺨에 상처를 만들었을 때? 아니야.”

       “너….”

       “폭력이란 감미롭지는 않지만, 쾌락에 가까운 것이지. 원초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네. 엔도르핀이 솟구치고, 시야가 좁아지고, 평상시라면 고통을 느낄만한 것도 모두 잊어버리게 해주지. 그리고 승리 후에 다시 제정신을 찾으면 육체의 상처와 고통을 잊어버릴 정도의 성취감이 따라오니. 이것만큼.”

         

       진성은 빅토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살아있다는 실감을 나게 해 주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실감이라.”

       “하지만 모든 쾌락에는 역치가 존재하는 법. 사람이 고통에 적응하듯 쾌락에도 적응하는바. 어릴 적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은 군인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군인을 두들겨 패던 것은 서로 총칼을 들고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 그리고 총칼은 폭발로. 폭발은 더 큰 폭발로. 그리고 종국에는 그 어떤 폭발도 자네에게 살아있다는 실감을 주지 못하게 되었지. 빅토르, 자네는 항상 파괴를 곁에 두고 살아갈 사람이야. 사람이 죽는 것에 적응하고, 주위가 파괴되는 것에 적응했으며, 그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으니.”

         

       그는 웃었다.

         

       “이만큼 군주의 자리에 잘 맞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빅토르는 소년에 걸맞지 않은 웃음을 보았다.

         

       “다만 군주의 기질은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 아무리 냉철하다고 한들 그릇이 작으면 사람의 머리 위에 설 수 없으며, 그릇이 크다고 한들 거기에 금이 가 있다면 하늘로 올라가려다 떨어져 버린 어리석은 이처럼 될 것인즉. 거기서 나오는 것이 바로 관상이라는 것이네.”

         

       진성은 양손으로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그 몸짓 하나하나에 불똥으로 만들어진 빛무리가 따라오며 그의 모습에 신비함을 더해주었고, 그 빛무리는 궤적을 그리며 그림 하나를 만들었다.

         

       풍성한 갈기를 가진 수사자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르기를, 사람의 형상은 동물의 형상에 대입하는 것으로 그 기질을 알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마음의 형상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 형상이 곧 운명에 대입되기 때문인지라! 이것이 바로 서양의 관상학이요, 점술사가 서양인의 운명을 점칠 때 보는 방법이라!”

         

       수사자는 앞발을 들어 빅토르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네의 사각형의 이마는 사자의 형상과 닮았으니 자존심이 강할 것이오, 자네의 털은 한창때의 수사자와 흡사하니 매우 용맹하리라. 몸에 난 흉한 상처는 도전자를 이겨온 우두머리 수컷(alpha male)의 형상이니 얼굴을 이루는 틀은 사자와 같다. 마음의 형상이 얼굴에 드러나 동물의 형상을 한 것이 야심이 가득한 젊은 사자이니. 우두머리가 되었음에도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직 왕을 노리는 이밖에 없음이니! 이 어찌 위에 군림할 자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사자라.”

       “또한, 머리카락은 뻣뻣하나 단단하니 그 모습이 불꽃과 닮았으니, 이는 주위를 불태워가며 자신을 빛냄을 말하는 것이다. 불은 집어삼키고 빛을 내며 열을 발해 사람을 끌어들이고, 모여든 이들이 더 많은 장작을 넣어 몸짓을 불리는 것을 말하니. 이 역시 세력을 넓히고 만인의 눈에 들어온다는 것인즉, 이 역시 왕을 뜻한다.”

         

       허공에 불똥으로 그려진 사자 그림은 뭉개지며 불꽃의 형상이 되었다. 하지만 타오르는 불꽃은 다시 흩어지며 별 무리 같은 모습이 되었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자네를 수호하는 별자리이며, 자네가 태어났을 때 환하게 빛나던 별 무리니. 이것이 바로 점성술에서 황제를 뜻하는 것이니. 이는 누운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자리로 부른다. 자네가 12월 18일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8월 19일에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모습을 감춘 사자의 형상이라 할 수 있으리. 다만 궁수자리를 위장하는 모습이 마치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흡사하니. 이 또한 위에 설 자로서의 기질이 보인다 할 수 있으리라.”

       “뭐?”

         

       빅토르는 진성이 자신의 진짜 생일을 말하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네. 내가 자네의 점을 봐주고 있는데, 어찌 알았냐고 물으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별자리는 다시 흩어지며 하나의 별만을 남겼다.

         

       “보게. 이것이 바로 레굴루스이며, 야심과 지위를 말하는 별이니.”

         

       하나 남은 별은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마치 떠다니던 불똥을 모두 그러모아 수명을 태워 빛을 발하듯이.

         

       “다만 이 별은 힘의 맹신과 그로 인한 파멸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니. 군대에서 명예를 얻은 자가 몰락을 하고, 억압과 폭력으로 쌓아 올린 지위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네. 나이에 비해 가파른 진급을 하는 자네에게 딱 맞는 별이 아니던가?”

         

       빅토르는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제 앞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레굴루스 모양의 불꽃과 대관람차가 만드는 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나, 이리저리 형상을 바꾸는 불꽃에 얼굴에 드리운 음영 역시 그 형상을 바꾸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비추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가면을 쓰고 자신을 현혹하는 광대의 모습과도 닮았고, 어두운 밤 달빛에 춤을 추는 고목의 형상과도 닮았으며,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달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내려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성으로 고민하고, 본능으로 길을 찾았다.

         

       그리고 이윽고.

         

       “완전히 사기꾼은 아닌 것 같군.”

         

       그는 오른손으로 진성의 목을 쥐어뜯는 대신에, 큼지막하게 뜯겨 있는 다리를 집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한 입 크게 물었고.

         

       “허, 이거 맛있군.”

         

       식사를 시작했다.

         

       불 속에서 잘 익은 카피바라 바비큐는 껍질은 바삭했고, 안에는 육즙이 가득했다. 대신에 퍽퍽한 감은 있었으나 그는 목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보드카를 꺼내 꿀꺽꿀꺽 마심으로써 해결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맛은 돼지고기와 흡사했다. 거기에 시즈닝에는 무엇이 들어갔는지, 러시아 사람의 입맛에 맞는 강렬한 맛과 함께 약간의 매운맛이 있어 고기를 계속해서 넘기게 해주었다.

         

       게다가 짭짤하고 매콤한 시즈닝이 보드카와 너무나 잘 어울렸으니.

         

       그는 순식간에 다리 하나를 해치우고 잘게 찢어진 고기조각을 집었다.

         

       “흠?”

         

       잘게 찢어진 고기조각에서는 담백한 맛이 났다.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에서 먹었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는데.”

         

       어떻게 조리한 것인지 잘게 찢어진 조각은 부드러운 식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까 뜯었던 다리가 더 마음에 드는지 다리 하나를 더 집어 들었고, 잘게 찢어진 조각을 다리 위에 올려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러니까 좀 괜찮군.”

       “마음에 들어 하니 아주 좋군.”

         

       진성은 호쾌하게 먹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저 멀리에서 보드카 하나와 잔 하나를 허공에 띄워 가져왔다. 그리곤 뚜껑을 열어 보드카를 잔에 따르더니 불똥을 하나 집어넣었다.

         

       화르르.

         

       불똥이 들어간 보드카는 화염병에 불을 붙인 것처럼 타올랐다.

       그 모습에 빅토르는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뭘 좀 아는 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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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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