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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어젯밤.

         

       “…설아, 혹시 수납 가능한 기간을 말해 줄 수는 없을까? 치료비가 너무 연체돼서 우리도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으면 더 이상 기다려줄 수가….”

         

       “…두 달만 기다려 주실 수 없을까요? 지금 제가 출연하고 있는 프로에서 우승하고…, 제작진들에게 상금을 즉시 입금 가능한지 문의 해볼 테니…, 제발 두 달만….”

         

       “그래…, 설아. 일단은 알겠어.”

         

       호의가 계속되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지친다.

         

       처음에는 유 설을 안쓰럽게만 바라보던 간호사들과 행정실 직원들의 말투에도 성가심이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근데 너 우승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간호사의 저 눈동자.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고 해도 간호사들과 병원 사람들이 눈과 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간의 인터넷 서핑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 나아아 우승에 가장 근접한 것이 유 설 그녀가 아니라 하예린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유 설의 자존심을 상당히 상하게 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자존심 따위 중요하지 않게 된 지는 좀 됐다.

         

       유 설은 그렇게 빚쟁이들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처럼 간호사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병실로 돌아갔다.

         

       마침 지금 시간이 금요일 밤.

         

       병실 tv에는 나아아가 나오고 있었고…, 유 설의 엄마는 모처럼 깨어 있었다.

         

       “설아…, 간호사님들이랑 무슨 얘기했…, 읏….”

         

       “엄마, 더 누워 있지 왜 일어나 있어.”

         

       물론 거듭된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진 그녀의 기력은 온전치 못했지만 말이다.

         

       “…일어나 있어야지. 저번에는 자느라 우리 딸 방송 나온 거 못 봤잖아. 이번에는 꼭 봐야지.”

         

       “…….”

         

       유 설은 그녀의 엄마가 어째서 이렇게 방송을 보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바로 가정의 달 응원 영상.

         

       유 설의 엄마는 분명히 자신의 응원 영상을 보고 딸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했으리라.

         

       이에 유 설은 도리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제작진들 쪽에서 알아서 편집했겠지? 제발….’

         

       그때 모니터를 가득 채운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고…, 유 설은 자기도 모르게 일을 벌인 제작진들을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낌과 동시에 돌발 행동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게 방송을 타게 된다면 대외적인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을 뿐더러 엄마가 속상해할 게 분명했다.

         

       이에 유 설은 노심초사하면서 나아아 7화를 지켜 보았고….

         

       “…아쉽네, 엄마가 응원한 영상은 안 나왔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가 우려했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유 설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 특유의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이번 화 내가 분량이 많아서 제작진들 쪽에서 일부러 잘랐나 봐. 너무 분량을 몰아주면 특혜 논란이 생기니까.”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 애’ 부모 응원 영상도 안 나왔나 보네.”

         

       “…….”

         

       말하지 않아도 유 설은 엄마가 말하는 ‘그 애’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하예린.

         

       유 설이 알게 모르게 자꾸 하예린을 의식하니…, 병원의 엄마도 그녀의 존재와 활약을 의식하게 된 것이었다.

         

       [하예린(형제기획) : 우, 우리 팀 많은 투표 부탁한다……, 냥….]

         

       “아이구~ 참 예쁘기도 하지.”

         

       평소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의 하예린이 애교를 떨자 유 설의 엄마가 오랜만에 미소를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과 함께 자기 딸을 향해 말했다.

         

       “…우리 딸도 처음 연습생 할 때는 저렇게 귀여웠는데.”

         

       “…….”

         

       스윽-.

         

       어느새 엄마의 손은 유 설의 손 위로 포개져 올라가 있는 채였다.

         

       “물론 지금 우리 딸이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야. 근데 지금 우리 딸은…, 너무 지쳐 보여.”

         

       “…….”

         

       “설아…,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원래 유 설의 엄마는 장난기와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떠난 이후로…, 그리고 췌장암이 발병하여 쓰러진 이후로 줄곧 이렇게 유 설을 붙잡고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유 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이에 유 설은 이를 악물고 엄마에게 대답했다.

         

       “엄마가 왜 미안해. 미안할 것 없어. 어차피 나 곧 데뷔도 할 거고 나아아 우승도 해서 엄마 병실도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줄 거야.”

         

       “…….”

         

       “나 엄마 때문에 그동안 데뷔 못 했던 거 아니야. …그냥 실력이 부족했던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실하게 우승하고 올 테니까.”

         

       꾸우욱.

         

       유 설의 말에 엄마가 유 설을 잡은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그리고….

         

       “아니…. 우리 딸…, 지금껏 실력이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당연히 우승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근데 설아….”

       

            

         

         

         

       **

         

         

         

       “…먼저 안 들어갈 거면 비켜.”

         

       “…아, 네. 언니.”

         

       뭔가 잠긴 듯한 유 설의 목소리에 나는 얼른 그녀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켰다.

         

       그리고 유 설은 숙소 안으로 들어가면서….

         

       “…발목은 다친 거야?”

         

       내게 발목에 대해 물었다.

         

       평소 유 설이라면 개인적인 사정을 물어보지 않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답했다.

         

       “…네, 계단에서 넘어져서.”

         

       “…꽤 부은 것 같은데. 많이 심각한 거야?”

         

       “아뇨, 심각한 정도는 아니구요.”

         

       “그래, 쾌차해.”

         

       유 설은 그렇게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

         

       내 옆의 서유진을 보고 잠시 움찔하고는 그대로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

         

       나는 그런 유 설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상한 일이네.”

         

       “…뭐가요?”

         

       내가 혼잣말을 하니 서유진이 내게 그것을 물으며 자연스러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원래 카메라 꺼지면 먼저 말 안 거는 언니인데, 오늘은 왜….”

         

       내가 이상하다는 듯 말하자 서유진이 내 팔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것보다 저 언니…, 지나가면서 언니 다친 발목을 보고 갔어요. …수상해요.”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혹시라도 설 언니가 카메라 몰래 언니 발목을 아작 내면 어떡해요?”

         

       나는 유 설이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상대가 서유진인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서유진은 저번 경연에서 유 설의 권모술수에 데였던 참가자였으니까.

         

       “근데 유진아. 너 저번에 설 언니가 했던 일을 용서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일은 그때 일이구요! 혹시 설 언니가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언니를 괴롭히려 들면 저 이번에는 정말 가만 안 둘 거예요.”

         

       서유진은 그리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경연은 반드시 제가 언니를 지켜드릴게요!”

         

       “푸훗.”

         

       아직 17살 어린 티가 나는 서유진이 그리 말하니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이에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그래, 부탁할게.”

         

       서유진과 함께 안으로 향했다.

         

         

         

         

         

       **

         

         

         

         

         

       “자, 그러면 지금부터 순위 발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짐을 다 풀고 세트장에 집합하니 역시 첫 코너는 순위 발표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떨렸던 순위 발표식도 이제 벌써 3번째나 되니 크게 감흥이 없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박유정과 이혜정의 순위가 소폭 올랐다는 것.

         

       그리고….

         

       “5위는 바로 SAV 서유진 참가자입니다!”

         

       “……!”

         

       나, 유 설, 나한나, 서유진으로 이어지는 공고하던 빅4 체제가 끝이 났다는 것이었다.

         

       서유진은 얼떨떨한 듯싶었지만 이내 아쉽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단상에 올랐다.

         

       그때 나는….

         

       ‘대중들 중에서는 처음에 자기가 가진 선입견이나 첫인상을 끝까지 가는 경우도 많아서…, 제작진들이 사과했다지만 여전히 그 애를 향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꽤 될 거야.’

         

       ‘그래서 서유진 그 친구는 불안 요소가 조금 남아 있달까? 뭐…, 지금 분위기로 봐선 데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이번 논란은 데뷔한 후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 같긴 해.’

         

       어제 이지우가 했던 말이 떠올라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박유정과 이혜정도 저번보다 순위가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유력한 데뷔권이라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더욱 그랬다.

         

       ‘제발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팀하고 싶은데….’

         

       나는 그렇게 조금 불편한 심정과 함께 남은 순위 발표식을 이어서 봤다.

         

       “3위는…, 축하드립니다! 나한나 참가자입니다!”

         

       3위는 당연히 나한나였고…, 이제 남은 것은 나와 유 설이었다.

         

       이것이 벌써 나와 유 설의 세 번째 1, 2위 경쟁이었다.

         

       아직도 이전 순위 발표식들에서 나와 유 설이 몇 표 차이였는지 기억난다.

         

       1차 순위 발표식에서는 내가 유 설과 5만 표 차이로 1등을 했었고…, 2차 순위 발표식에서는 유 설이 나와 2000표 차이로 1등을 했었다.

         

       이번에는 1위와 2위간에 몇 표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순위 1위가 누구일지 감히 예측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3차 순위 발표식에서 1위를 차지한 영광의 참가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긴장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시우의 입으로 집중되고.

         

       “자…, 1위는 바로…!”

         

       곧이어 1위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1위는 역시 바로….

         

       “축하드립니다! 형제기획의 하예린 참가자!”

         

       …나였다.

         

       펑! 퍼펑!

         

       순위 발표식에서 1위를 하자 제작진들이 세트장 뒤에 깔아둔 간이 폭죽들이 터지며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1위를 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란 이들은 없었다.

         

       저번 경연에서 내가 속한 팀이 유 설 팀을 제치고 1위를 한 데다가 여러 가지 좋은 흐름들이 나를 따르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이번 순위 발표식 1위는 나일 것을 대충 예상했기에 전보다는 조금 침착한 심정과 함께 피라미드 가장 위 1위석으로 올랐다.

         

       하지만….

         

       “자, 그러면 1위 하예린 참가자와 2위 유 설 참가자 간의 득표수 격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시우의 다음 멘트에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그야말로 얼어붙고 말았다.

         

       “하예린 참가자의 득표수가 유 설 참가자의 득표수보다 263,724표 많습니다.”

         

       “…뭐?”

       

       나와 유 설 사이의 득표수 차이는…. 

       

       남은 경연 동안 이것을 뒤집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컸다.

       

       웅성웅성.

       

       믿기 힘든 결과에 얼어붙었던 참가자들이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속삭였다.

       

       “아, 아니…, 어떻게 차이가 26만….”

       

       “내 개인 득표수 보다 많은데…?”

       

       “이정도면 사실 우승은 정해진….”

       

       스윽.

       

       곧이어 참가자들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시기와 질투도 어느 정도 급이 맞는 수준에서야 이뤄질 수 있는 법.

       

       나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눈에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보는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들은….

       

       스윽.

       

       “…….”

       

       …이내 2위인 유 설에게로 옮겨갔다.

       

       나를 바라볼 때와 달리…, 유 설을 보는 눈에는 안쓰러움과 동정이 담겨 있는 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쭈린님, 147코인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제 소설에 이런 거금을 후원해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음 같아서는 5연참 10연참 해드리고 싶지만 작가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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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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