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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이게 대체….’

       

       나는 멍하니 내 앞에 있는 아르를 올려다보았다. 

       

       기존에 비해 좀 성장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내 품 안에 꼭 안을 수 있던 말랑한 해츨링이, 눈앞에서 거대한 성룡으로 변했다. 

       

       상태창의 메시지 덕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는 입력이 되었지만, 내 머리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천 년의 힘을 사용했다니….’

       

       천 년의 힘은 아르가 알 속에서 천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체내 깊숙한 곳에 쌓여 응축된 힘.

       

       ‘아르가 빨리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천 년의 힘 덕분이었지.’

       

       하지만 그때 상태창에는 분명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추후 천 년의 힘을 과도하게 소모할 경우 과부하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신체적 제약이 부여될 수 있다고.

       

       ‘그땐 어차피 어떻게 쓰는 건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최대한 아르가 무리할 상황만 안 만들도록 해 보자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지금 그 무리할 상황이 결국은 만들어지고 말았다. 

       

       ‘아니,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거지.’

       

       내가 이 가가레일 유적지에 오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냥 조금 안전하게 돌아서 갈 걸 그랬나.’

       

       너무 경로를 최적화시키려고 했던 바람에 이 사단이 발생했다. 

       

       ‘…아냐. 아니지.’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만약 우리가 여기에 와서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먼저 가져가지 않는다면, 놈들의 손에 이게 넘어간다면, 로하튼은 레드 드래곤에 의해 폐허가 될 거야.’

       

       그럼 용사는 눈에 불을 켜고 드래곤을 죽이려고 할 거고. 

       언젠가는 용사와 아르도 대립하게 될 것이다. 

       

       레키온은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재능과 실력을 가진 용사.

       

       레키온과 싸울 바에는 지금 이 녀석들과 싸우는 게 백 배는 낫다. 

       

       ‘그리고 지금 와서 자책을 한들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중요한 건 지금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느냐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 크와아아앙!!”

       “으아아악!”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서, 서, 설마 드, 드래곤이야?”

       “맙소사.”

       

       지금 아르의 우렁찬 포효 소리에 놈들은 잔뜩 겁을 먹고 주춤하고 있지만.

       

       ‘느껴져.’

       

       아르와 영혼이 이어져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아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야 그렇겠지. 갑자기 자기 몸이 거대한 성룡이 되었으니.’

       

       알맹이는 아직 한 살도 안 먹은 아이인데, 몸만 저렇게 무섭게 커졌으니 자신이 제일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 보호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의 커다란 다리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 

       

       “괜찮아, 아르야.”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내 뜻을 전했다. 

       

       안심하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르야, 지금 너의 힘이라면 저 녀석들을 전부 이길 수 있을 거야.’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내 뜻을 전한 뒤 아르를 올려다보았다. 

       

       아르도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늠름한 성룡의 얼굴을 한 아르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우응! 아르 강해져써! 아르가 납쁜 녀석들 물리칠 꼬야!’

       

       아르의 눈에는 이제 당황 대신 자신감이 깃들었다. 

       

       아르가 콧김을 뿜자, 주변의 나뭇잎이 마구 흔들렸다. 

       

       후욱.

       

       아르가 숨을 들이켰다. 

       

       “미, 미친!”

       “뭔가 온다!”

       “어서 막아아아!!”

       “아이스 월!”

       “아이언 실드!”

       “스펠 배리어!”

       

       아르의 몸에서 요동치는 마나의 기운에 압도당했던 간부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그제야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방어 주문을 외쳤지만. 

       

       “크와아아아앙(플레임 캐논)!!”

       

       아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불덩이는 모든 방어 주문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이고 그들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마나의 파도가 주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직격당한 것도 아니고, 아르의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나의 폭풍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건 플레임 캐논이 아니라 플레임 버스터급이잖아…!’

       

       무려 8서클의 광역 화염 마법, 플레임 버스터급의 화력.

       

       아직 7서클 이상의 마법에 대해서는 알려준 적이 없어서 그냥 아르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중에 가장 화력이 좋고 많이 써 봤던 마법을 시전한 것 같은데….

       

       ‘그냥 체급 자체가 달라.’

       

       마력의 폭풍이 지나가고, 자욱한 연기가 걷혔을 때.

       

       눈앞에는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깊게 파인 땅과 뜨거운 열기에 의해 피어 오르는 하얀 연기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 한 명이 남아 있긴 하구나.’

       

       바로 마차 쪽에서 바인딩 마법으로 실비아를 묶어 두고 있던 지부장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는 경악이 가득한 눈으로 아르를 올려다 보았다.

       

       소문으로만 듣고, 책으로만 읽었기에 알 수 없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

       

       어떻게 그들이 대륙 최강의 종족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는지.

       

       직접 보기 전까지는 깨달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커억.”

       

       그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 나왔다.

       지부장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실비아의 검이 어느새 그의 가슴을 꿰뚫고 나와 있었다.

       

       마력석과 바인딩 마법 사이를 잇고 있던 연결 고리는 마나 폭풍에 의해 끊어졌고, 실비아의 마력을 견뎌 내던 막대한 마력 공급이 사라진 바인딩 마법은 간단히 깨진 것이었다. 

       

       “고통스럽게 죽어라.”

       

       실비아의 검에서 흘러 나온 마나가 그의 체내를 온통 헤집었다.

       

       “꺼, 꺼어어억….”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는 전신의 혈관이 터져 나가는 고통을 겪은 후 절명했다. 

       

       실비아는 그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도끼눈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레온 씨…. 아르야!”

       

       실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쪽으로 달려온 실비아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걱정했어요.”

       “하하, 어쩌다 보니 잘 해결됐네요.”

       

       실비아와 나는 안도감 속에서 잠시간의 포옹을 했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옆에 서 있는 아르도 우리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

       “…….”

       “…….”

       

       침묵이 흘렀다. 

       

       “…저.”

       “…레ㅇ….”

       “먼저 말씀하세요.”

       “아뇨, 레온 씨 먼저 말씀하세요.”

       “크흠, 큼. 그럼 저 먼저 말할게요.”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아르의 꼬리에 손을 얹으며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려 애썼다. 

       

       “저희 아르, 사실 드래곤이에요.”

       

       ***

       

       잠시 후.

       

       “…그럼 히파르에서 ‘귀여운 드래곤이네요’라고 했을 때부터 알고 계셨던 거네요.”

       “맞아요.”

       “설마 설마 했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다. 

       

       다만….

       

       “엘프이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엘프가 인간 사이에 이렇게 스며들어 살 수 있다니….”

       

       다른 건 몰라도, 극도로 폐쇄적인 종족인 엘프가 이렇게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인간과 함께 지냈다는 건 「레키온 사가」의 고인물인 나에게조차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해해요. 저도 저희 부족의 사명만 아니었으면 숲에서 살며 인간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실비아는 자신의 부족 라크 룬이 대대로 은룡의 조력자로 활약해 왔으며, 천 년 전 마신과의 전쟁 이후 카르사유가 레어에 숨겨 놓은 알을 찾기 위해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맙소사. 찾는다고 찾아질 리가 없었을 텐데.”

       “그래서 실은 반쯤 자포자기 상태였었죠. 우연히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또 언제 찾았을지 몰라요. 어쩌면 저보다 하무트교, 혹은 다른 마왕의 수하들이 먼저 발견했을지도 모르죠.”

       

       나는 실비아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내가 원작을 플레이했을 때를 떠올렸다. 

       

       ‘실제로 「레키온 사가」에서는 레온이 죽고 시작하지. 그럼 아르를 깨울 사람이 없었을 테니, 실비아 씨는 결국 정처 없이 떠돌다 포기하고 다시 숲으로 돌아갔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스토리 중후반부에 숲에서 우연히 만났던 금발 녹안의 엘프 검사가 설마 진짜 실비아 씨가 맞았던 건가?

       

       어쩐지. 그 구진 그래픽을 미모가 뚫고 나오더라. 

       

       본판이 이 정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니지. 실비아 씨가 엘프라는 소리는, 지금 외형을 평범한 인간스럽게 바꿔 주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다는 소린데.’

       

       귀가 인간의 귀인 걸 보면 말이야.

       

       ‘그럼 대체 진짜 본판은 얼마나 예쁘다는 거야?’

       

       일순 궁금증이 일었지만, 보여 달라고 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도 가끔 자고 일어나면 깜짝 깜짝 놀라는데, 본판이면 내 이성이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날려 버렸다. 

       

       “크흠. 이 얘기는 나중에 또 하죠. 일단 지금 당장 문제는….”

       

       나는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거대한 아르를 올려다 보았다. 

       

       “아르야.”

       “쿠왕?”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겠어?”

       “쿠와앙….”

       

       아르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어떠케 하는지 모루게써!’라고 대답했다. 

       

       ‘흐음. 하긴, 알았으면 진즉 실비아 씨랑 얘기하는 동안 돌아왔겠지.’

       

       이를 어쩐다. 

       

       다행히 지금 이 근처엔 마을도 없고, 실비아의 감각으로 스캔해 봤을 때 목격자도 없는 모양인데….

       

       내가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의 힘’을 과도하게 사용했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의 힘’을 원래대로 회복할 때까지 신체적 제약이 발생합니다!]

       

       내 눈앞에 별안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런. 예상은 했지만….’

       

       아무래도 이전에 메시지에서 말했던 패널티가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제발 심각한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르의 몸에 뭔가 무리가 가는 거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앗!

       

       아까처럼 아르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곧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공중에 뜬 작은 빛무리를 향해 팔을 뻗었고.

       

       빛무리는 내 품에서 잦아들었다. 

       

       그리고.

       

       “쀼우?”

       

       아르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르야?”

       “쀼, 쀼우?!”

       

       아르는 평소보다 조그매진, 아니 정확히는 갓 태어났을 시절의 크기로 돌아간 자신의 손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의 힘’을 회복 중입니다.]

       [회복 완료 시 신체적 제약이 해제되어 기존의 성장 단계로 복구됩니다.]

       [예상 소요 시간 : 24시간]

       

       실비아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진 채 다가왔다. 

       

       “우리 아르, 다시 말랑콩떡이 됐네?”

       “쀼우…!”

       

       아르는 억울하다는 듯 손을 공중에 휘저었지만, 실비아는 그 손을 잡고 말랑한 젤리를 문질문질 만졌다. 

       

       ‘…신체적 제약이라더니. 이런 거였어?’

       

       나는 매우 매우 건강해 보이는 아르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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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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