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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이런 말을 입밖으로 꺼내 버리면 큰 실례가 될지도 모르니 속으로만 떠드는 선에서 그치겠지만, 약간의 공감 정도는 바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화두를 던져보겠다.

         

         혹시 햄스터 같은 동물을 키워본 적이 있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사육장 안에 갑자기 쳇바퀴나 휴지심 같은 거대한 조형물이 뚝 떨어지면 최초엔 당황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해도 없는 데다가 그 용도까지 깨닫고 나면 완전 자기 세상.

         

         고 작고 귀여운 녀석이 우다다다 쳇바퀴를 돌리다가, 순식간에 튕겨져 나와 톱밥안으로 쏙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질 따름이다.

         

         그러니까 제로? 미안한데 고생 좀 해줄래…?

         널 방치하려는 게 아니고, 햄스터가 뜻대로 안 행동해준다고 막 손으로 잡아떼어낼 수는 없잖아. 사람이 어떻게 그래.

         

         “엄마가, 언니한테 방해된다고 전화는 한 달에 한 번만 하라고 해서어어…!”

         

         “그래 그래, 전화를 안 한 게 아니라 열심히 참아준 거였구나.”

         

         이 작은 생명체를 도대체 어느 정도 출력으로 손대야 할지 연산하기 어렵다는 것처럼. 정말 난처하게 센서를 깜빡이는 로봇이 연신 구조 요청을 보내왔다.

         

         비유적 표현 같은 게 아니라, 이놈 급하답시고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 소유자에게 보내는 긴급구조 신호기를 임의로 작동시켰다. 얌마, 그거 당장 안 꺼?!

         

         “와? 와아…!”

         

         콩콩. 조막만한 손이 제로의 외골격을 두들긴다.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인 의미보다는 마치 안에 사람이 있나 확인하는 것처럼 행하는 가벼운 노크에 가까웠으나, 몇 차례 반복해도 주인이 나올 생각이 없자 메리의 모험심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 …!! –

         

         암벽 등반이라도 하는 것처럼. 달라붙은 공주님이 열심히 케어봇의 다리춤을 타고 올라간다.

         

         행여나 그녀가 넘어지기라도 할라, 황급히 뻗어진 제로의 손과 팔은 정말 훌륭한 발판 역할을 수행해서 등산 행위를 가속시키는 데 일조.

         

         …그러고 보니 애매하게 자란 소년기 아동보다 유년기 어린이가 체중은 가벼운데 반해 근육량이 많아서 스포츠 클라이밍에 유리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정글짐 타는 것 마냥 어깨까지 올라갔다가, 어느새 팔에 매달렸다가, 등에도 달라붙었다가.  아주 재밌게 뛰노는 행태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내 희미한 기억에 확신이 생길락 말락 했다.

         

         “언니! 이거 막 로봇이 아니라 사람처럼 움직여!!”

         

         “…안에 언니 친구가 타고 있으니까, 가능하면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 줄래?”

         

         ‘네에~’ 하는 선선한 답변과 함께 도로 재개된 그네 타기와 등산.

         더군다나 친구라고 소개한 게 맛이 없었는지 곁들여진 ‘언니 친구 씨! 이름이 뭐야?’ 같은 흥미 위주의 호구 조사는…. 어우, 듣는 내가 다 어지럽네.

         

         애들끼리 노는 동안 나는 나대로 어른의 사회 생활을 해야지.

         

         거실에서 노느라 바쁜 애들을 일별한 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주방에서 간단한 식사거리를 준비해주시는 집의 안주인께 최대한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했다.

         

         “그… 선뜻 방을 빌려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 씨.”

         

         “…어머나.”

         

         헌데 실비아 씨는 그저 재미있는 말을 들은 것처럼 표표히 웃어 보이시고는 다시금 요리에 정신을 집중하셨다.

         

         “빌려주기는 무슨! 처음부터 네가 쓸 게 아니면 손님방 용도로 남겨둔 거니, 이제야 주인을 찾았다고 보는 게 맞지. 그러니… 부담가지지 마렴.”

         

         “……허.”

         

         아니, 그게 절대 당연한 게 아니니까 꺼낸 얘기인데요.

         고개를 털어 정신을 차렸다. 호의를 베풀고도 굳이 티를 내기 싫어하는 미모의 주부를, 제로를 꼬드겨서 비행기 놀이에 몰입 중인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무지에서 당긴 방아쇠의 연장선으로 이 모녀가 살아난 시점에서 나는 충분히 보상받았었다.

         위기 상황에서 극적인 구조에 성공한 만큼 아직까지도 은혜를 느껴주고 있다고 여겨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그 유명한 망각의 동물이 사람이거늘 어찌 그런 부채감이 영원히 지속될까.

         

         결국 이건 진짜 순수한 호의라고 보는 게 맞았다.

         어쩌면 나를 좋게 봐주셔서 추가된 가산점이 약간 더 있을지도 몰랐고.

         

         “저…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그런 딱딱한 이야기는 그이가 돌아오면 둘이서 하렴. 마침 가게 정리도 거의 다 끝났다고 하니까.”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어봐도, 이미 손님들을 다 쫓아낸 후 출발하셨다고 한다.

         자영업자로서 그게 과연 맞는 태도인지는 애매했으나… 걱정은 별로 되지 않았다. 영화 주인공 같은 역사를 지닌 은퇴 용병이 하루 장사 접었다고 굶지는 않을 테니까.

         

         애당초 게임 시절 슈나이더 아저씨는 의뢰 중개인 겸 장비 브로커가 본업이고 술집은 위장 아니셨나? 따지고 보면 별로 심각한 일탈도 아니겠다.

         

         …근데 딱히 죄 지은 것도 없긴 한데, 애매한 시간에 찾아온 나 하나 때문에 일부러 달려오신다는 건 좀 고민해봐야 할지도?

         

         “……과자 먹을래, 메리?”

         

         “!! 먹을래! 먹을래요!”

         

         입구까지 간식으로 들어찬 가방을 열어 보이자, 우리의 작은 폭군께서 냅다 날아오셨다.

         일등석 제공용 물품이라 그런가? 처음보는 물건이 많은 모양인지, 눈이 휘둥그레진 메리의 손이 바쁘게 과자더미를 헤집는다.

         

         아무래도 곧 잠잘 시간인지라 이렇게 무단으로 먹이를 주는 게 올바른 행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에 한해서 실비아 씨는 못 본 척해주시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

         

         “엄청 마시써…!”

         

         흡사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 해바라기 씨를 볼따구에 저장하듯, 과자 한 개를 다 제대로 씹기도 전에 다음 과자가 스리슬쩍 입안으로 사라진다.

         

         어린 녀석이 벌써 금단의 비술, 양손 먹기를 구사하는 게 꽤 제법이었기에 편하게 턱을 괸 채로 퍼포먼스를 지켜보았다.

         

         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의 속박에서 풀려나자마자 실비아 씨에게 도망갔다.

         

         태연자약하게 자신을 가정용 케어봇이라 소개하며 머무는 동안 도울 집안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켜 달라 말하는 게 아주 괘씸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둘째치고. 기초 상식 대신 전투 교리로 메모리가 가득가득 들어찬 몸체만 가정용인 녀석이 어린애가 버거워서 말도 안 되는 분야의 유용성을 어필해서라도 탈출구를 찾는 게 정말, 뭐여 너 왜 잘하고 난리냐???

         

         – 틈틈이 관련 프로토콜을 다운로드 받아서 대비했습니다. –

         

         “…얼씨구?”

         “어머나, 참 기특한 집사 로봇 아니니? 애아빠도 좀 본받았으면 좋겠네!”

         

         화르륵…!

         

         유려한 손목 스냅을 따라 달궈진 후라이팬이 춤을 춘다.

         정성껏 손질된 재료들이 차근차근 투입되고, 화구 곁에 있던 술병이 한 차례 휘둘러지니 화려한 불꽃이 치솟으면서 스모키한 향을 흩뿌린다.

         

         저런 불 쇼를 뭐라고 하더라… 플람베(Flambé)? 맞나?

         

         게다가 요리도 요리인데. 한 손으로는 고르게 조리되도록 끊임없이 주방 기구를 조절하면서, 빈 손으로는 사용된 조미료나 도구들을 다시 원래 자리에 예쁘게 정리하는 게 과연 전업주부의 감탄을 자아낼 만해 보였다.

         

         근데 제로, 무슨 요리를 만드는지는 알고 끼어든 거지…? 그야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실비아 씨가 말렸겠지만, 마냥 박수치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견 걸기도 뭐하니까….

         

         “…스읍.”

         

         조용히 입가를 가렸다. 기름이 자글거리며 채소와 메인인 고깃덩어리를 익혀내자, 고소하고 그윽한 냄새가 집안을 감돈다.

         아까는 사양했는데, 막상 조리가 끝나가는 진짜 요리를 오랜만에 보니 입안에 반사적으로 고이는 침이… 좀 부끄럽네요. 네.

         

         “……호화로워도 된다고 했지만, 요리사까지 부른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아나스타샤 양이 데려온 아이니까요.”

         

         흠칫하고, 어깨가 떨렸다.

         돌연 배후에서 날아든 중저음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가 이내 집주인이 퇴근했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풀어진다.

         

         그렇다고 뒤돌아서 곧바로 재회를 축하하기도 뭐했다. 어깨 너머로 격렬한 탐색전이 진행 중인 게 똑똑히 보였기 때문에.

         

         “흐음….”

         – ……. –

         

         얼굴에 난 길쭉한 흉터가 꿈틀거린다.

         

         한 쪽은 생채기난 장갑과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무장을 가늠했고, 반대편은 근육량과 내재된 임플란트를 분석해 승산을 점쳐보고 있었으니.

         

         어느 쪽이나 가족의 안전이 걸렸기에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대치는, 내 당부를 잊지 않은 제로가 먼저 절도 있게 굽히는 걸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 아샤님께 결례없이 대하도록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슈나이더 맥퀸님. 실비아님의 지도에 따라 두 분의 식사가 방금 막 준비되었습니다. –

         

         “…이거 미안하군. 네오 헤이븐은 워낙 자잘한 이해관계가 얽힌 놈들이 많은지라 과민반응을 했군.”

         

         “하아아….”

         

         한숨이 자동으로 쉬어졌다. 조여졌던 공기가 완화되며 느긋한 가정집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어쩌면 여기서 제일 간이 큰 건,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그저 칭찬이 부끄럽다는 듯 제로의 허리를 깡깡 두드리는 실비아 씨가 아닐까… 하는 헛생각이 들었다.

         

         “에헤…….”

         “그럼 둘은 먼저 식사들 하세요~ 저는 우리 말괄량이 아가씨나 재우고 와야겠네요.”

         

         그녀가 팔을 부드럽게 뻗어, 과자를 손에 꼭 쥔 채로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던 메리를 안아 들었다.

         

         그렇게 홀연히 퇴장하는 여성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식탁에 착석한 슈나이더 씨와, 마침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크흠…. 여럿이 애써준 식사 자리에서 복잡한 얘기를 길게 하기도 뭐한만큼 간략하게 하지. 일거리가 마땅치 않다면, 때마침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니 종업원으로 들어오게.”

         

         “예? 종업원…이요?”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 더듬거리며 되물어봤으나 강한 긍정만이 되돌아왔다.

         술집 종업원으로의 일자리 알선? 이건 또 받아본 헤드헌팅 중에서도 얌전하고 소박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나.

         

         …도대체 왜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꼬드기는 건지… 정말 황송해 죽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동안 해커 꿈나무 아나스타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부터는 사이버펑크 바텐더 꿈나무 아나스타샤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거짓말).

    오늘 연재가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의 가족 문제로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많이 호전되셨기에 내일 요양병원으로 이송이 거의 확정되었네요.
    내일 연재가 어려워질 경우 공지로 도게자를 박으러 오겠습니다. 흐엑….

    햐얌 님께서 헉! 하는 단말마와 함께 100코인!
    그리고 익명을 희망하는 독자분께서 다음화를 내놓으라고 100코인! 후원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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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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