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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나는 지금까지 눈앞의 차무식에게 몇 번 정도 내가 927 작가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녀석은 그때마다 927 작가 호소인이라며 항상 장난식으로 여겨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가 난데없이 세간에서 신격화가 되고 있는 각본가라고 말한다면 나 같아도 절대 안 믿는다.

         

       그리고 내 나이를 생각해봐도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과 ‘플라이 하이’를 2년 전에 만들었는데 그때의 난 아직 중학생이었다.

         

       그 927 작가가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활동했다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아, 물론 설소영이랑 사우디에 있는 그 사람은 조금 예외긴 하다.

         

       둘 다 여러 의미로 무서운 사람들이니까.

         

       어쨌든 차무식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내가 927 작가라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때문에 방금 녀석이 나를 향해 927 작가라고 불렀을 때 진심으로 장난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녀석의 표정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녀석이 방금 나를 향해 927 작가라고 말한 것에 한 치의 의심도, 거짓도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절대 안 믿어왔던 놈이 이제 와서 왜…….

         

         

       “대가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새갸.”

         

         

       그때 여전히 피식 웃고 있던 차무식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너 스스로가 927 작가라고 계속 말해왔잖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안 믿던 놈이 갑자기 태세변환 하니까 당연히 당황스럽지 않겠냐?”

       “음, 당황할만하지. 나도 너 따라서 한빛예고에 안 왔으면 아마 평생 몰랐을걸?”

         

         

       저 말은 바꿔 말하면 나와 함께 한빛예고에 입학했기에 눈치를 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일까?

         

         

       “그냥 한빛예고에 입학하고 지난 몇 달간의 네 행보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 이상해졌잖아.”

       “……그 정도라고?”

       “그래. 한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오던 놈에게 갑자기 설소영이 꼬이고, 이다혜가 꼬이고, 박하준 선배까지 꼬이고, 심지어 꿈꾸는 아이들 같은 대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어내? 너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거지?”

         

         

       쓰으읍…….

         

       듣고 보니 맞는 말밖에 없긴 하네.

         

         

       “그런 의미에서 대가리 한 대만 세게 맞자.”

       “갑자기?”

       “그래. 네 머릿속에서 반드시 지워야 할 과거가 있단다.”

         

         

       나는 녀석이 왜 이를 악물며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녀석이 927 작가에 대해 커뮤니티에 싸질러 놓은 내용을 떠올려보면 그냥 대놓고 답이 나온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과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서, 설마 아직도 나를 감금해서 글만 적게 하려고?”

       “……아니야.”

       “오, 아니야? 그럼 네가 적었던, 한 편의 시 같은 장문을 당사자 앞에서 한번 말해보던가. 지금부터 927 작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지금부터 927 작가와 나는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

       “야, 야. 표정 풀어. 어차피 겨우 한 대 맞는다고 네 흑역사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겠니?”

       “어. 야구 방망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음. 이제 그만 놀려야겠다.

         

       여기서 더 했다간 내가 927 작가고 뭐고 그냥 골로 갈 것 같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만 일방적으로 녀석에게 심리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근데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할 말 많네. 고퀴즈에서 뭐? 927 작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 새끼 자기애가 얼마나 높은 거야.”

       “…….”

         

         

       나랑 차무식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침묵은 서로 과거의 일을 언급하지 말자는, 사실상 암묵적인 협의라고 봐도 무방했다.

         

       스치기만 하면 치명타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미안하다. 빨리 못 알아채 줬네.”

       “굳이?”

         

         

       나는 녀석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나한테 927 작가라고 말한 거. 은연중에 나보고 그걸 알아차려 달라는 뜻 아니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잠시 벙찐 얼굴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녀석의 말대로 ‘가장 친한 친구 정도면 내 정체를 알아도 상관없이 않을까?’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이 아닐까.

         

       조금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고민 상담 같은 의미에서 말이다.

         

       애초에 내 성격상 정체가 알려지기 싫었다면 장난식으로도 내가 927 작가라고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차무식이 마치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여간 안 어울리게 외로움은 잘 탄단 말이야. 뭐, 어차피 그것도 조만간인가. 그래서 언제 사귀냐?”

       “……몰라.”

       “에헤이, 이 상태면 평생 결단을 못 내리겠네. 너는 본캐가 무려 927 작가인데 쓸데없이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처음 들었던 의문이 다시 생긴다.

         

       아까 나에게 설소영과 이다혜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던 그 말.

         

       마치 내가 927 작가이기에 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말 그대로지 뭐. 이것까지 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전 국민을 상대로 후회물을 찍고 있는 미친놈인데 네가 하려는 행동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해.”

       “…….”

       “정 여론이 안 좋으면 앞으로 사우디 같은 곳에서 활동한다고 협박 한번 해봐라. 아주 재밌는 광경이 펼쳐지지 않겠냐. 크큭.”

         

         

       아니… 무식아.

         

       혼자 망상하는 건 좋은데 나 진심으로 사우디는 좀 무섭거든?

         

       거기 가면 진심으로 무함마드 왕자라는 사람이 왕족의 친구라는 명분으로 나를 압둘라 은우로 개명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결론은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처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막 나가라는 거지. 21세기는 돈이랑 능력, 인맥이면 다 되는 세상이잖냐.”

         

         

       나는 차무식의 뭔가 장난 같으면서도 진지한 말을 듣고 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래도 저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직설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으니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럴 거면 진작에 내가 927 작가라는 것을 차무식에게 말할 걸…… 이 아니라 예전부터 계속 말해왔잖아.

         

       그냥 이 새끼가 현실부정 한 거지.

         

       어쨌든.

         

         

       “너 덕분에 고민이 조금 정리되네.”

       “고마우면 나중에 제대로 갚아라. 나도 927 작가라는 인맥 덕 좀 봐야지, 크큭.”

         

         

       뻔뻔한 웃음소리를 내는 차무식을 보니 뭔가 녀석에게 정체를 밝혀도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한 이유를 하나 더 알 것 같다.

         

       설령 내가 927 작가라고 하더라도 녀석은 지금처럼 나를 그저 서은우라는 친구로 대할 뿐인 놈이니까.

         

       참 좋은 놈이다.

         

         

       “아, 맞다. 심심할 때 싸인 좀 만들어서 주라. 한 3장 정도?”

       “그건 갑자기 왜?”

       “중고로 올려보려고 과연 927 작가의 친필 싸인이 얼마까지 팔릴지 너도 궁금하지 않냐?”

       “…….”

       “에헤이, 농담이야.”

       “…….”

       “……진짜 농담이라고.”

         

         

       음.

         

       아무래도 이번에는 아예 가둬놓고 싸인만 시키고 싶다라고 말할 생각인가 보다.

         

         

         

       ***

         

         

         

       현재 한빛예고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아리를 물어본다면 당연히 연극·영화부가 가장 1순위로 거론될 것이다.

         

       창설된 지 고작 몇 개월, 하지만 멤버도 그렇고 대회 때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세간에선 대한청소년연극제에서 더 나아가 하반기에 있을, 한국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대한연극제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거두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을 정도.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 동아리의 다음 행보에 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제는……

         

         

       ‘그래서 이제 뭐 함?’

         

         

       우리도 앞으로 뭘 할지 전혀 모른다는 것.

         

       고퀴즈의 촬영이나 대한청소년연극제의 폐막식이 끝나고 나니 이전과 비교해서 상당히 한가로워졌다.

         

       사실상 이 정도면 학기 초 때로 다시 돌아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이 때문에 부장인 박하준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건 지에 관해 물었다.

         

       원래 대한청소년연극제에 참가하는 것도 박하준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 이번에도 참신한 플랜이 있지 않을까? 보기와는 다르게 나름 생각이 깊은 사람이니.

         

       하지만…….

         

         

       “나도 모르겠는데?”

         

         

       박하준의 해맑은 미소와 대답을 들으니 이번에는 진짜 계획이 없는 것 같다.

         

       뭐…… 원래라면 ‘그럼 이대로 계속 놀아요?’라는 망언을 내뱉었겠지만, 굳이 어딜 또 나가서 논란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못하거나 중간만 가도 욕먹고, 잘하면 또 잘하는 대로 화제가 되는 지경이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선택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그럼 2학기 축제 무대나 준비해보든가.”

         

         

       이제는 연극·영화부에 있는 것이 익숙한 듯 앉아있는 강예린이 말했다.

         

       참고로 강예린은 아직 연극부다.

         

       연극부의 주축인 강예린이 빠지면 사실상 힘이 많이 빠지니 연극부가 단체로 와서 양해를 구한 것.

         

       사실 내가 대본을 맡고 있는 이상 강예린이 딱히 연극·영화부에 필요한 인재는 아니다.

         

         

       “근데 연극부는 축제 무대 참가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연극부 정도면 활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니까.”

         

         

       음.

         

       축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준이 활동을 열심히 한 4개의 동아리와 학생들의 인기투표 결과 1등을 차지한 동아리였던가.

         

       참고로 강예린이 자부하는 것처럼 작년부터 꾸준히 대회에 참가했던 연극부라면 축제 무대에 가볍게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아리는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이제 겨우 대회 1개를 끝냈는데 우리 동아리보다 부원이 많은 곳은 한 학기 동안 여러 대회를 기본적으로 나가는 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 동아리가 축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선 학생들의 투표로 인기 동아리라는 칭호를 얻어야겠지. 근데 그게 어려울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강예린이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투표로 인기 동아리라는 칭호를 얻는 것 정도.

         

       딱히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가뜩이나 멤버도 멤버인데 이번 청소년연극제를 안 본 학생이 과연 있을까?

         

       아마 손쉽게 인기 동아리라는 칭호를 얻게 되겠지.

         

         

       “어쨌든 이 부분은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일단 방학 전까지는 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박하준의 그 말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간에 앞으로 약, 1달간은 계속 이 상태로 여유롭게 갈 것 같았다.

         

       하긴, 대회 준비로 2달 동안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렇게 다시 시끌벅적해진 동아리 부실 속에서……

         

         

       “…….”

         

         

       나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뭔가 우중충한 날씨.

         

       하늘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먹구름을 보니 조만간 소나기라도 올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곧 장마인가…….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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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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