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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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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은 카르디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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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낮 동안 닫혀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 점포를 열기 시작했다. 낮과 밤에 판매하는 게 다른 상점은 간판을 교체하고 낮에 팔던 물건을 안으로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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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에는 몬스터와 다를 바 없는 몸을 가진 마족이나, 로브를 깊게 눌러쓴 마법사, 모험가, 용병이 흔하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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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들이 대다수 이제 막 열기 시작했기에 거리가 북적거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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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적지를 찾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사이로, 10명 정도로 이루어진 무리가 로브를 푹 눌러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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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병단이나,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흑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무리 지어 다니곤 했기에 아무도 그들 무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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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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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앞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릴리가 입술을 꾹 다문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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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 네스트의 간부와 일부 조직원들은 카르디샨을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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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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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트는 카르디샨에 있는 크고 작은 조직을 괴멸시키거나 흡수해왔다. 지금에 와선 카르디샨이 네스트의 구역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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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디샨의 내에 존재하는 외진 길, 개구멍 같은 정보는 모두 네스트의 손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 덕분에 약 100명 정도 되는 조직원들이 아무런 소동 없이 카르디샨을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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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브를 눌러쓴 노아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직원들을 가볍게 훑어보며 숫자를 세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빠져나왔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지만, 실수가 있을지도 몰랐기에 곁으로 다가온 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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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도 빠짐없는 거지?”
   “응, 세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이대로 출발하면 돼.”
   “좋아. 그럼 바로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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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 100명 정도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 같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가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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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00명으로 이루어졌던 무리는 10개의 무리로 나누어졌다. 마치 서로 일행이 아니라는 것처럼 긴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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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가 너무 크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위험할 수 있었다. 이에 노아는 무리를 10개로 나눈 후 각 무리에 2명 이상의 간부를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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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중간에 힘들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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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노아와 함께 가장 끝 무리에 있었다. 막 카르디샨을 벗어난 상태였기에 가장 위험한 무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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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깨지는 유리처럼 생각하는 노아가 굳이 가장 위험한 무리에 리안을 넣은 건, 릴리의 주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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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가 옆에서 지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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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트 조직 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노아의 곁이 아니면 어디가 안전한 장소냐며 화를 내던 릴리의 목소리가 노아의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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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또한 과거의 무기력함을 또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기에 릴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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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응. 그.. 힘들어지면 말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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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둔 채 대답하는 리안의 모습에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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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계속 피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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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몇 번이고 피를 토하며 기절했던 날을 기점으로, 리안은 노아에게서 은근히 거리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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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피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시선을 맞추지 못하거나, 노아에게 닿으면 불에 데인 것처럼 피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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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성별을 숨겼던 게 불쾌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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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자신을 피하는 모습에 은근히 상처받은 노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리안은 그런 노아를 흘긋거리다가 가방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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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아 기분이 안 좋으면 이거라도 먹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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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중충해진 노아의 머릿속에 리안의 배려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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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착하니까… 내가 싫어도 챙겨주는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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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마음속으로 열심히 삽질하고 있을 때, 리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흙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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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제발 그만… 그만 떠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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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경험 전무, 개그 필터의 방해로 제 어머니의 몸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 리안에겐 ‘그 장면’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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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 ‘그 장면’은 노아를 동성 친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리안에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탓에 시도 때도 없이 ‘그 장면’이 떠올라 리안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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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노아를 몰래 흘긋거리다가 속으로 작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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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저렇게 티가 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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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구를 사용해 남성적인 모습을 유지했다고 해도, 노아는 은근히 여성스러운 모습을 수도 없이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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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적으로 가슴 아래를 받치려는 듯한 행동을 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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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는 증거가 될지 몰라도, 후자의 의견은 리안의 사심이 묻어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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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끙끙거리던 리안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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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여자든 남자든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러니까 노아가 여자라는 사실에 그만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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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때마다 머릿속 미니리안들이 어디선가 ‘이성끼리 어떻게 친구가 가능하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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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노아를 ‘예쁘고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모든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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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하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여정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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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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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정은 떠나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중간에 몬스터나 도적의 습격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간부들 선에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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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면 몇 배는 위험해지기에 멀찍이 떨어진 채 이동하던 무리도 잠을 잘 때면 널찍한 공터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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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 제일 바쁜 건 간부들이었다. 다치거나 아픈 사람은 없는지, 무리에서 이탈한 사람은 없는지를 확인한 후 릴리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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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또한 리안을 포함한 무리를 이끌고 있었기에 널찍한 공터에 자리를 잡자마자 무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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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 가운데에 커다란 모닥불이 만들어졌다. 아공간 가방에 넣어온 거대한 솥을 꺼내 안에다 물을 붓고 수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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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는 아침과 저녁, 잠들기 전과 기상 후에 이루어졌기에, 약 100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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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을 입이 많았기에 양도 매우 많았다.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리안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연신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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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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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냄새를 맡은 위장이 몸을 뒤틀며 어서 밥을 내놓으라 소리쳤다. 솥 앞으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나무 그릇 안에 따끈한 수프가 한가득 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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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길에 사냥한 고기가 넉넉히 들어가 건더기도 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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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빨리 가서 줄 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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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줄 맨 끝으로 향하려는 순간. 양손에 수프 그릇을 든 노아가 리안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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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두그릇이나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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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매우 놀란 듯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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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량이 한정적이었기에 최대한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야 식자재가 버텨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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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실을 뻔히 알다 못해 강조까지 하던 노아가 권력을 이용해 수프를 두그릇씩 받아 가니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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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런 리안에게 수프를 건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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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것까지 받아온 거야. 같이 먹자.”
   “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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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배시시 웃어 보이자 리안은 요정에게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노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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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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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무리에 포함된 아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리안과 노아를 노려봤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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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 식사는 무리끼리 모여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불퉁한 얼굴로 수프를 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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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리안과 노아는 제 무리가 모이는 곳에 앉았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 있는 상태였기에, 노아와 리안 두 사람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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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는 굳이 함께 시작할 필요가 없었기에 리안과 노아는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릇을 기울여 차를 마시는 것처럼 수프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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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오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리안이 순식간에 수프를 반쯤 비웠을 때쯤 노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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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으응? 꿀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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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따끈한 수프로 인해 몸이 기분 좋게 녹아내린 탓일까, 평소였다면 딱딱하게 흘러나왔을 목소리가 부드럽게 풀린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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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리안의 목소리에 안심한 노아가 삼 분의 이 정도 남은 수프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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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 종일 걸었잖아. 힘들진 않았나 해서.”
   “으음, 나보다 어린애들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걷고 있는데 힘들 리가.”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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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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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이 힘들지 않은 것과 네가 힘든 게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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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고통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고통이 타인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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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인간은 기준을 자신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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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리안의 태도 또한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녹아들어 살기 위해선 주변의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제 의견을 타인과 맞출 줄 알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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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항상 괜찮다는 말만 입에 담을 순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아도 결국은 지쳐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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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노아는 리안의 말에 속이 쓰렸다. 당장이라도 입 안에 맴도는 말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겨우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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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다행이네. 혹시 지치면 언제든지 말해. 아, 수프 부족하면 내 거라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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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어느새 눈까지 마주치며 웃어주는 리안의 모습에 안도하다가, 리안의 빈 수프 그릇을 보곤 제 수프 그릇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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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아무런 뜻 없이 뱉은 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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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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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겐 충격적인 말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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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그거 간접 키, 키,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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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다가 이내 땅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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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나는 그… 아! 그래, 그릇! 빈 그릇 좀 반납하고 올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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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남은 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무룩한 얼굴로 남은 수프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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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플롯이 재미없어서 고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금방 올라올 예정입니다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막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은 카르디샨.

밤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낮 동안 닫혀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 점포를 열기 시작했다. 낮과 밤에 판매하는 게 다른 상점은 간판을 교체하고 낮에 팔던 물건을 안으로 들였다.

길거리에는 몬스터와 다를 바 없는 몸을 가진 마족이나, 로브를 깊게 눌러쓴 마법사, 모험가, 용병이 흔하게 돌아다녔다.

상점들이 대다수 이제 막 열기 시작했기에 거리가 북적거리진 않았다.

제 목적지를 찾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사이로, 10명 정도로 이루어진 무리가 로브를 푹 눌러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용병단이나,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흑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무리 지어 다니곤 했기에 아무도 그들 무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

가장 앞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릴리가 입술을 꾹 다문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밤, 네스트의 간부와 일부 조직원들은 카르디샨을 빠져나갈 것이다.

***

네스트는 카르디샨에 있는 크고 작은 조직을 괴멸시키거나 흡수해왔다. 지금에 와선 카르디샨이 네스트의 구역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카르디샨의 내에 존재하는 외진 길, 개구멍 같은 정보는 모두 네스트의 손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 덕분에 약 100명 정도 되는 조직원들이 아무런 소동 없이 카르디샨을 벗어날 수 있었다.

로브를 눌러쓴 노아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직원들을 가볍게 훑어보며 숫자를 세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빠져나왔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지만, 실수가 있을지도 몰랐기에 곁으로 다가온 네로에게 물었다.

“한 명도 빠짐없는 거지?”

“응, 세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이대로 출발하면 돼.”

“좋아. 그럼 바로 출발하자.”

노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 100명 정도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 같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리가 나뉘었다.

약 100명으로 이루어졌던 무리는 10개의 무리로 나누어졌다. 마치 서로 일행이 아니라는 것처럼 긴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무리가 너무 크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위험할 수 있었다. 이에 노아는 무리를 10개로 나눈 후 각 무리에 2명 이상의 간부를 배정했다.

“리안, 중간에 힘들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말해.”

리안은 노아와 함께 가장 끝 무리에 있었다. 막 카르디샨을 벗어난 상태였기에 가장 위험한 무리이기도 했다.

리안을 깨지는 유리처럼 생각하는 노아가 굳이 가장 위험한 무리에 리안을 넣은 건, 릴리의 주장 때문이었다.

‘언니가 옆에서 지켜줘야지!’

네스트 조직 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노아의 곁이 아니면 어디가 안전한 장소냐며 화를 내던 릴리의 목소리가 노아의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노아 또한 과거의 무기력함을 또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기에 릴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어,응. 그.. 힘들어지면 말할게.”

“…”

노아는 시선을 엉뚱한 곳에 둔 채 대답하는 리안의 모습에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왜.. 계속 피하는 거지?’

리안이 몇 번이고 피를 토하며 기절했던 날을 기점으로, 리안은 노아에게서 은근히 거리를 두었다.

대화를 피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시선을 맞추지 못하거나, 노아에게 닿으면 불에 데인 것처럼 피해 다녔다.

‘역시… 성별을 숨겼던 게 불쾌했던 거야.’

리안이 자신을 피하는 모습에 은근히 상처받은 노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리안은 그런 노아를 흘긋거리다가 가방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그, 노아 기분이 안 좋으면 이거라도 먹어.”

“…”

우중충해진 노아의 머릿속에 리안의 배려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리안은 착하니까… 내가 싫어도 챙겨주는 걸 거야.’

노아가 마음속으로 열심히 삽질하고 있을 때, 리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흙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으윽…. 제발 그만… 그만 떠올라라..!’

여자 경험 전무, 개그 필터의 방해로 제 어머니의 몸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유니콘이 인정한 남자 리안에겐 ‘그 장면’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거기다 ‘그 장면’은 노아를 동성 친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리안에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탓에 시도 때도 없이 ‘그 장면’이 떠올라 리안을 괴롭혔다.

리안은 노아를 몰래 흘긋거리다가 속으로 작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으으…저렇게 티가 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지?’

마도구를 사용해 남성적인 모습을 유지했다고 해도, 노아는 은근히 여성스러운 모습을 수도 없이 내보였다.

습관적으로 가슴 아래를 받치려는 듯한 행동을 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전자는 증거가 될지 몰라도, 후자의 의견은 리안의 사심이 묻어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속으로 끙끙거리던 리안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노아가 여자든 남자든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러니까 노아가 여자라는 사실에 그만 집중하자.’

..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때마다 머릿속 미니리안들이 어디선가 ‘이성끼리 어떻게 친구가 가능하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했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노아를 ‘예쁘고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모든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

기묘하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여정은 계속되었다.

***

여정은 떠나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중간에 몬스터나 도적의 습격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간부들 선에서 정리되었다.

밤이 되면 몇 배는 위험해지기에 멀찍이 떨어진 채 이동하던 무리도 잠을 잘 때면 널찍한 공터에 모였다.

이 때 제일 바쁜 건 간부들이었다. 다치거나 아픈 사람은 없는지, 무리에서 이탈한 사람은 없는지를 확인한 후 릴리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아 또한 리안을 포함한 무리를 이끌고 있었기에 널찍한 공터에 자리를 잡자마자 무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터 가운데에 커다란 모닥불이 만들어졌다. 아공간 가방에 넣어온 거대한 솥을 꺼내 안에다 물을 붓고 수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 잠들기 전과 기상 후에 이루어졌기에, 약 100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야 했다.

먹을 입이 많았기에 양도 매우 많았다.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리안은 입 안에 고인 침을 연신 삼켰다.

꼬르르륵!

음식 냄새를 맡은 위장이 몸을 뒤틀며 어서 밥을 내놓으라 소리쳤다. 솥 앞으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나무 그릇 안에 따끈한 수프가 한가득 부어졌다.

오는 길에 사냥한 고기가 넉넉히 들어가 건더기도 실했다.

‘나도 빨리 가서 줄 서야지.’

리안이 줄 맨 끝으로 향하려는 순간. 양손에 수프 그릇을 든 노아가 리안에게 다가왔다.

“노아 두그릇이나 먹게?”

리안은 매우 놀란 듯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식량이 한정적이었기에 최대한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야 식자재가 버텨줄 터였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다 못해 강조까지 하던 노아가 권력을 이용해 수프를 두그릇씩 받아 가니 당황스러웠다.

노아는 그런 리안에게 수프를 건네며 말했다.

“네 것까지 받아온 거야. 같이 먹자.”

“아, 응.”

노아가 배시시 웃어 보이자 리안은 요정에게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노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

다른 무리에 포함된 아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리안과 노아를 노려봤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 식사는 무리끼리 모여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불퉁한 얼굴로 수프를 떠먹었다.

그 시각, 리안과 노아는 제 무리가 모이는 곳에 앉았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 있는 상태였기에, 노아와 리안 두 사람밖에 없었다.

식사는 굳이 함께 시작할 필요가 없었기에 리안과 노아는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릇을 기울여 차를 마시는 것처럼 수프를 마셨다.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오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리안이 순식간에 수프를 반쯤 비웠을 때쯤 노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리안.”

“으응? 꿀꺽, 왜?”

따끈따끈한 수프로 인해 몸이 기분 좋게 녹아내린 탓일까, 평소였다면 딱딱하게 흘러나왔을 목소리가 부드럽게 풀린 채였다.

그런 리안의 목소리에 안심한 노아가 삼 분의 이 정도 남은 수프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걸었잖아. 힘들진 않았나 해서.”

“으음, 나보다 어린애들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걷고 있는데 힘들 리가.”

“그건..”

노아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힘들지 않은 것과 네가 힘든 게 무슨 상관이야?’

사람의 고통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고통이 타인에겐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준을 자신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제대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안의 태도 또한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녹아들어 살기 위해선 주변의 눈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제 의견을 타인과 맞출 줄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항상 괜찮다는 말만 입에 담을 순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아도 결국은 지쳐버릴 테니까.

그렇기에 노아는 리안의 말에 속이 쓰렸다. 당장이라도 입 안에 맴도는 말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겨우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버렸다.

“그거 다행이네. 혹시 지치면 언제든지 말해. 아, 수프 부족하면 내 거라도 먹을래?”

노아는 어느새 눈까지 마주치며 웃어주는 리안의 모습에 안도하다가, 리안의 빈 수프 그릇을 보곤 제 수프 그릇을 내밀었다.

정말 아무런 뜻 없이 뱉은 말이었지만.

“어..?”

리안에겐 충격적인 말처럼 들려왔다.

‘그, 그거 간접 키, 키, 키스…’

리안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다가 이내 땅에 처박혔다.

“괜찮아! 나는 그… 아! 그래, 그릇! 빈 그릇 좀 반납하고 올게!”

“어?”

혼자 남은 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무룩한 얼굴로 남은 수프를 먹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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