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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8

   경악스러운 흑염과 뇌기의 폭풍이 아레나 훈련장을 휩쓸었다.

     

   떨어져 내리던 세계수의 꽃잎을 전부 불태워 버리는 광경 속.

   시험을 치르던 학생들조차도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크라슈의 멸화천뢰는 학생들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다 못해 재능의 끝자락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괴물.”

     

   누군가 무심코 그 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크라슈가 펼친 광경은 그 말이 딱 어울렸다.

     

   그런 흑염의 불길 속.

   크라슈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파직!

     

   그 순간 크라슈의 벽력이 발동됨과 동시에 우뢰성이 움직였다.

   우뢰성의 검날에 무언가 무형의 물체가 닿은 순간.

     

   콰앙!

     

   터져 나온 폭발음과 함께 크라슈가 뒷걸음질 쳤다.

     

   “후우.”

     

   가볍게 들이켠 숨과 함께 크라슈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크라슈는 방금전 공격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오러를 응축시킨 폭탄.

   해적 여제 카이란 표 특제 오러 폭탄이었다.

     

   저걸로 대해의 침식종들을 마구잡이로 터트리고 다니던 게 카이란이다.

   그걸 사람한테 썼다는 시점에서 그녀가 봐줄 마음을 접었다는 소리였다.

     

   ‘전력으로 때려 박았으니 뻗어주면 고맙겠건만.’

     

   크라슈는 흑염 사이로 또다시 날아든 오러 폭탄을 검으로 갈랐다.

   제 육감과 벽력 덕에 크라슈는 흑염 바깥을 빠르게 움직이는 카이란의 기척을 느꼈다.

     

   언제까지고 원거리 공격만 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특기는 근거리에서 파고드는 단검술이니까.

     

   ‘온다.’

     

   그 순간 제 육감이 반응했다.

   크라슈가 즉시 우뢰성을 부여잡은 그 순간 흑염 사이로 세 개의 검줄기가 이어졌다.

     

   챙, 챙, 챙!

     

   멸화침식을 끌어 올린 육체는 카이란의 삼 연격을 확실히 막아내었다.

   흑염 사이로 드러난 카이란은 제복 일부가 불타 없어지고, 여기저기 그을린 모습이었다.

     

   특히 한쪽 팔은 꽤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마스터에 도달한 크라슈의 멸화침식은 예전보다 출력이 올랐다.

     

   오러의 경지는 마스터 초입일지라도, 크라슈의 출력은 초입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의 방심을 끌어내기 아주 적절했다.

   카이란 또한 선공을 줄 정도로 깜빡 속았으니 말이다.

     

   그 순간 카이란이 크라슈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기묘한 단검술은 사람을 어지럽게 만든다.

     

   배를 타 멀미를 겪은 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것마냥.

   카이란의 단검술은 사람의 눈을 교묘하게 흔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크라슈의 제 육감은 눈에 의존하지 않는 맹인의 검사가 만든 비술이었으니까.

     

   파직!

     

   동시에 크라슈의 벽력은 그런 제 육감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이전과 달리 천살성은 크라슈의 육체와 부족한 재능 또한 메꾸었다.

     

   그 결과 크라슈는 카이란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하.”

     

   카이란이 기막힌 웃음을 흘렸다.

   휘두르는 단검마다 크라슈에게 모조리 꿰뚫려 단 한 번도 그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아까 전 공격력도 터무니없으면서 방어 비술 또한 이 정도다.

     

   ‘이건, 완전히 벽과 싸우는 느낌이네.’

     

   공방일체의 끝을 달리기라도 하는 듯.

   크라슈에게는 일말의 틈조차 없었다.

     

   대체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든 걸까.

   완벽주의자라도 이런 식으로 단련하지는 못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카이란조차 크라슈를 뚫을 길이 안 보였다.

     

   ‘그렇다면.’

     

   카이란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동시에 차오른 오러가 그녀의 몸 전체로 뻗어 갔다.

     

   넘실거리는 오러를 따라 그녀의 머리색이 점차 잿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길이 안 보인다면 만들면 되는 법.’

     

   카이란의 단검 위에 잿빛의 오러가 일렁이었다.

   크라슈 또한 그것을 눈치챘을 때 카이란의 단검은 이미 크라슈의 우뢰성에 닿아 있었다.

     

   콰앙!

     

   터져 나온 폭음이 아레나에 울려 퍼졌다.

   카이란의 단검 위에 방금전 그녀가 던졌던 오러 폭탄이 덧씌워진 것이다.

     

   그녀의 비술 폭발등수(爆發燈壽)였다.

     

   방어를 택하는 이에게 방어를 깨트릴 더한 공격을 퍼붓는다.

   대해의 침식종조차 박살 내는 폭발은 크라슈도 정면에서 받아내기 버거웠다.

     

   쾅, 콰앙, 콰앙!

     

   연이은 폭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크라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폭발등수를 이렇게 정면에서 사용하면 카이란 또한 충격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퍼붓는다는 건 크라슈의 벽력을 어떻게든 흩뜨려 놓을 작정이다.

     

   ‘아주 막무가내네.’

     

   사실상 인내심 싸움을 카이란이 걸어온 것이다.

     

   화륵!

     

   그 순간 크라슈의 검날 위로 흑염이 치솟았다.

     

   콰아아앙!

     

   이윽고, 정면에서 부딪친 크라슈의 검과 카이란의 단검이 폭발과 흑염에 휩싸였다.

   카이란의 두 눈과 크라슈의 두 눈이 마주쳤다.

     

   방금전 응수로 카이란 또한 크라슈가 무슨 생각인지 깨달은 것이다.

   흐르는 땀방울 사이로 크라슈의 입가의 옅은 웃음이 걸렸다.

     

   미안하지만 인내심 싸움은 이쪽이 특기다.

     

   “정면 돌파하시겠다면.”

     

   크라슈의 흑염이 거세게 타올랐다.

     

   “저도 정면으로 돌파할 겁니다.”

     

   흑염과 폭발,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승부다.

     

     

   * * *

     

     

   흑염과 폭발이 아레나를 가득 메꾼 시점.

   모두가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는 탓에 2차 시험은 사실상 중단 되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건 메리 다이아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 광경이 당황스러웠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크라슈는 예전과 한참 달랐다.

   해적 여제 카이란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정면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고작해야 15살.

   그 나이에 오른 경지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천무지체를 타고난 메리조차 15살 때 저런 전투는 할 수 없었다.

   아니,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과거 시절.

   신창이었을 때라면 지금의 크라슈를 보고 새싹이라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신창이 아니다.

     

   17살의 재능 있는 소녀.

     

   그 재능을 개화시킬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지만.

   아서를 찾느라 보낸 허송세월과 1년간 이어진 옥살이가 겹치며 그녀는 자신을 단련시킬 황금 같은 시간을 사실상 전부 버렸다.

     

   물론 그렇게 버렸다 한들 그녀의 재능은 타고났다.

     

   또래 중 그녀를 꺾을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샬롯을 제외하곤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크라슈와 맞붙는다면 어떨까.

   글쎄,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저 흑염이 너무 거세 보인다.

     

   동시에 그 흑염은 자꾸만 그녀에게 악몽과 같았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에벨아스크의 시체일 터인 크라드라는 소년이 그날 자신의 창을 막은 것처럼 말이다.

     

   메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난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사실이 후회됐다.

     

   ‘만약 이번에 시그린 님의 명령을 수행해 내지 못하면.’

     

   그녀는 자신이 버려질 것이란 걸 확실히 눈치채고 있었다.

   시그린은 필요 없는 것은 확실히 잘라내는 인물이었으니까.

     

   ‘안 돼, 안 돼.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시그린에게 버려지면 아서 또한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

   메리는 은연중에 아서가 자신보다 시그린을 좀 더 높게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메리가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빠지는 동안.

   크라슈와 카이란의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크라슈와 카이란의 몸은 서로의 공격에 그을려 상처투성이였다.

   육체 능력과 오러로 방어한다고 해도 한계점이 있는 법.

     

   그러니 둘 다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우위점은 있었다.

     

   카이란이 오로지 공격에만 몰두한 것처럼.

   크라슈 또한 벽력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벽력은 둔검과 라이오너를 합쳐 만들어낸 비술이다.

   라이오너의 뇌기를 더한 벽력은 눈에 보이기에는 느려도 상대의 공격이 닿을 곳을 모두 메꾼다.

     

   벽력은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둔검의 다음 영역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 순간 크라슈는 흐름을 고쳤다.

     

   상대의 공격을 모두 예측할 수 있기에 상대의 공격이 닿을 자리에 검을 먼저 휘둘렀다.

   그 결과 상대의 공격이 완성되기도 전에 크라슈의 검이 먼저 공간을 장악했다.

     

   쿵!

     

   카이란의 단검이 비틀리며 크라슈의 검에 휘청였다.

   카이란의 두 눈이 커다랗게 커졌다.

     

   그러나 크라슈의 검은 멈출 새 없이 또다시 그녀의 공격권으로 파고들었다.

     

   카이란의 공격보다 한 단계 더 빠른 속도.

   분명히 카이란은 자신이 공격을 택하고 있음에도 상대에게 공격 받는 감각을 받았다.

     

   카이란은 숨이 턱 하니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멸화침식으로 강화된 크라슈의 공격은 가뜩이나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걸 저런 식으로 휘두르고 있으니 밀폐된 공간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크라슈의 검은 이제 둔검의 영역이 아니었다.

     

   패검(覇劍)

     

   오직 상대를 무너트리기 위한 패도적인 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카이란의 몸은 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후기지수 앞에 명성이 자자한 해적 여제가 힘으로서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멸화침식으로 달아오른 크라슈의 붉은 눈이 일렁였다.

     

   크라슈의 패검은 수라를 연상케 했다.

     

   그걸 보고, 카이란은 눈치챘다.

   더 이상 자신이 크라슈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말이다.

     

   지금도 크라슈의 검은 카이란을 조여오고 있다.

   얼마 안 가 자신의 방어조차 무너트리고 그 검을 목에 들이밀려고 하겠지.

     

   ‘교수직을 안 받길 잘했네.’

     

   카이란의 검에 서린 오러가 이전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기 시작했다.

   오러로 빛나는 그녀의 잿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학생에게 전력을 다해도 쪽팔릴 거 없잖아.’

     

   그렇다면 정면에서 단 한 수.

   그 한 수를 위해 전력을 쏟는다.

     

   마스터의 증거인 카이란의 오러 블레이드가 이 순간 새빨갛게 달아올라 광열을 드러냈다.

     

   “모, 모두 피해라!”

     

   그것을 본 시험 보조관들이 서둘러 근처에 있던 아이들을 물리기 시작했다.

   카이란의 검에 모인 오러의 양이 주위 공기를 뒤바꿀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입학 응시생에게는 써선 안 될 수준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카이란은 이미 크라슈가 입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전력을 부딪쳐 보고 싶은 상대.

   그 인식만이 카이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이 일대를 모두 날려 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카이란의 단검이 크라슈를 향해 뻗어져 왔다.

     

   폭발등수(爆發燈壽)

   대폭성(大爆晟)

     

   대해의 침식종을 단 한 방에 산산조각 내버린 카이란의 비기였다.

     

   이윽고, 크라슈의 검과 대폭성이 깃든 카이란의 단검이 교차하려는 순간이었다.

     

   쩌적!

     

   카이란의 단검에 향하던 크라슈의 날이 대뜸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카이란의 두 눈이 커졌을 때.

     

   쨍그랑!

     

   이윽고, 크라슈의 검날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 덕분에 카이란의 대폭성은 크라슈의 검이 아닌 애꿎은 허공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터져 나온 대폭성의 폭발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 폭발의 아래.

   우뢰성의 검날을 일부러 깨트린 크라슈가 최대한 낮춘 자세로 우뢰성을 다시금 틀어쥐고 있었다.

   

   

   

   

     

   카이란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크라슈는 처음부터 정면 대결할 생각이 없었다.

     

   앞에서 보인 도발적인 행동과 정면 응수는 자신이 공격을 전력으로 끌어내도록 유도한 것.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녀석은 집요하게 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딱 한 번을 위해서.

     

   쿠궁!

     

   우레 소리와 함께 어느새 우뢰성의 검날이 또 한 번 황금빛을 흩뿌리며 형성되었다.

   그 아래 우뢰성의 검 위에 크라슈의 전력이 또 한 번 담겼다.

     

   정신 속 깊은 호수 위.

   정신의 호수 속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호수의 파문을 일으킨 그 순간.

     

   치솟아 오른 용오름은 오롯이 크라슈의 검 위에 담겼다.

     

   이윽고, 그 검은 대폭성을 사용한 대가로 몸에 부하가 온 카이란의 앞에 도달했다.

   카이란은 그 검을 목전에 두고 웃음을 삼켰다.

     

   ‘비겁한 놈 같으니.’

     

   저 정도 출력을 아직도 낼 수 있으면 정면 승부 좀 해줄 것이지.

     

   멸화침식(滅火浸蝕)

   이식(二式)

   멸화천검(滅火天劍)

     

   카이란의 짧은 아쉬움과 함께 흑염이 아레나를 장악한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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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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