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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109 – 선배님의 비밀사육장>

     

    나 혼자만 맛있었던 강의 이후, 교장의 평판은 오늘도 또 한 걸음 나락을 향해 가까워졌다.

     

    -다음 강의시간은 실습시간이다. 오늘 배운 조리법을 이용해 요리를 할 것이니, 모두 열심히 요리를 연습해오도록!

    “교장님!! 빨간이빨버섯은 저희가 잡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그러게 누가 자이언트킹크랩을 벌써 조리하라고 했나? 이미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으니 너희의 수준에 맞춰 진도를 앞당긴 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덕분에 상급반 학생들은 자이언트킹크랩만큼 강하진 않아도 취급은 훨씬 위험한 빨간이빨버섯을 잡아서 요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다른 학생들이 겪는 고충이고, 내가 겪는 고충은 따로 있었다.

     

    지이이-

     

    “으윽,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무언으로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마더급 빨간이빨버섯과 가슴을 콕콕 때리는 양심의 가책!

     

    “저도 노력은 하려고 했거든요? 친선대사가 되어서 빨간이빨버섯을 해치우지 않고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는 싶었는데 교장님이 저러는 걸 어떡하겠어요.”

     

    마더급 빨간이빨버섯은 변명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 종족을 식재료로 삼은 너희 인간들을, 특히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시선을 보냈다.

     

    [당신은 마더급 빨간이빨버섯의 마나포자낭을 받아먹고도 친선대사가 되어 양 종족간의 평화체결을 맺어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화술 경험치+5]

    [속임수 경험치+3]

    [나쁜아이 경험치+1]

     

    근데 꼭 내가 나쁜 걸까?

    쟤네도 아카데미 밖에서는 사람 잡아먹으니까 쌤쌤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조금 나쁜아이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즈앙이 곁으로 다가와서 허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무슨 맛이야?”

    “균일하게 썰린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갈한 깊은 맛에 소스를 잘 버무린 고기요리.”

    “오오?”

    “를 상상하면서 먹으면 견딜 수 있는 맛이야.”

    “피. 뭐야 그게.”

    “그냥저냥 먹을 만 해!”

    “알았어. 한 마리 잡아보러 가야겠네.”

    “혼자서? 괜찮겠어?”

    “잊고 있나본데 나도 어엿한 암살자야.”

     

    즈앙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마냥 어려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눈에 비치는 섬뜩한 기세는 틀림없는 살인자의 그것이었다.

     

    “너무 얕잡아보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음… 미안!”

    “알면 됐어.”

     

    즈앙은 새침하게 총총걸어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오크노디. 오늘은 이제 강의 없지?”

    “벌써 저녁해주게? 배부른데.”

    “요리 때문에 부른 건 맞는데, 도움이 필요해.”

    “무슨 도움?”

    “빨간이빨버섯을 다치지 않고 사냥하기.”

     

    다른 사람의 부탁이면 귀찮아서라도 무시했겠지만 많은 끼니를 해결하게 도와준 이사벨의 부탁마저 무시할 수는 없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부분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요리는 어떻게든 할 수 있어. 포자가 확산되지 않게 막아줄 조리도구를 지젤이 지니고 있거든.”

    “아, 사용허가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깃발대란 때 벌어둔 포인트가 두둑하거든요.”

     

    얼마나 포인트가 많으면 그런 것까지 사용허가를 받을 수 있는 거야.

    뭐, 조명대에 포인트를 쓰는 하급반 학생도 있는 마당에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잡는 게 문제에요, 찾는 게 문제에요?”

    “그게 다른가?”

    “빨간이빨버섯은 잡는 것도 문제고 찾는 것도 문제거든요.”

    “둘 다 도와주면 안 돼?”

    “제가 혼자 다하면 세 분이 성장하지 못하니까요.”

     

    손오천이 당당히 말했다.

     

    “찾는 거야 별 거 있겠나? 교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몬스터라고 했는데. 잡는 법을 부탁하마, 쥐방울아.”

     

    쉽지 않을 텐데?

    호언장담으로부터 1시간이 지난 뒤.

    어째 불안불안하더라니.

    허탕만 열심히 친 손오천.

    결국 그가 비에 쫄딱 젖은 몰골로 힘이 잔뜩 빠진 채로 말했다.

     

    “이 미친 게딱지들이 버섯을 다 처먹었나, 어떻게 한 마리도 안 보여?”

    “헤헹. 사냥에는 재능이 없으시네요!”

    “시끄러.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이런 집중호우는 내린 적 없다고.”

     

    이사벨과 지젤도 두 손 들었다.

     

    “도저히 못 찾겠네.”

    “찾는 것부터 일이군요.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럼요. 이리로 따라오세요.”

     

    성큼성큼 앞장서서 길잡이 노릇을 하니, 세 사람이 기가 막힌다는 시선을 보냈다.

     

    “뭐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냐?”

    “당연하죠.”

    “근데 왜 안 알려줬어?”

    “추적 기능 경험치를 올리시라고?”

     

    말하고 보니 뭔가 큥 하고 가슴이 뛰었다.

    뉴비들의 성장을 배려해주는 나.

    너무 스윗해!

     

    “이 쥐방울 자식, 원래 이렇게 얄미웠나?”

     

    손오천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찾는 건 요령만 알면 그리 문제가 아니에요. 교장님도 말하셨잖아요? 2학년 선배들이 마나포자낭을 노리고 불법사육을 하고 있었다고.”

    “그렇군요. 꼬마숙녀가 아주 날카로운 부분을 짚어내었습니다. 2학년들이 은밀하게 사육을 할 공간을 찾아야 했어요.”

     

    지젤이 뒤늦게 깨닫고 탄식했다.

     

    “그럼 탐문을 하러 가는 겁니까?”

    “아뇨. 대충 짐작 가는 장소가 있거든요.”

    “그것도 가문에서 알려줬어?”

     

    이사벨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는 눈 너머로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이사벨도 그렇고 다들 참 이상한 버릇이 있다.

    왜 자꾸 남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러는 걸까?

    내 눈엔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이렇게 약해빠졌는지 모를 이 사람들이 더 불쌍한데.

     

    “그냥요.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예술관련 강의를 위해 마련된 예술관의 기척 없는 미술관에 도착했다.

    천이 덮어씌워진 그림들이 가득한 미술관에서 기둥 몇 개를 짚고 다니니 옛날에 들락거리던 이곳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래, 핏자국.

    핏자국이 묻은 기둥에 곧잘 숨어있었지.

     

    그그극

    그그그극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기둥의 장식물을 시계방향으로 270도, 반시계 방향으로 180도, 다시 시계방향으로 270도 회전시킨다.

    그러면? 짜자잔!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는 기둥 밑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들이는데 등 뒤의 시선이 따가웠다.

     

    “프로 탐험대원이 따로 없네.”

     

    이사벨의 헛웃음에 지젤과 손오천도 수긍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 아카데미를 나간 뒤로는 암살자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을 겁니다.”

     

    티켓암상인 지젤마저 은근한 공포심을 피력했다.

    이 정도는 진짜 별 거 아닌데.

    다들 엄살이 심하네!

     

     

    * *

     

     

    지하실에 내려가니 1평 남짓한 사육실에 살이 미어터지도록 꽉 들어찬 빨간이빨버섯들이 희미하게 내지르는 애원소리가 들렸다.

     

    “키에에…”

    “키잉 키잉…”

     

    예상치 못한 끔찍한 광경에 이사벨은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에 몬스터가 불쌍해 보이는 광경은 난생 처음 보네.”

    “동감입니다. 주는 식사만 받아먹으면서 마나포자낭만 생산해서 착취당하는 아주 효율적이고도 반인륜적인 사육장을 만들었군요.”

    “어차피 몬스터 아니냐? 너무 동정하지 마라. 풀어놓으면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할 녀석들인데.”

     

    나름 야생에서 살다 온 원숭이수인 손오천은 몬스터의 처지를 그리 동정하지 않았다.

     

    “이게 다 대체 뭐야?”

    “2학년 선배들이 학생회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만든 불법 빨간이빨버섯 사육장이요!”

     

    그걸 니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이사벨은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물어봤자 시원찮은 대답만 돌아올 것을 알기에 입만 뻐끔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봐요. 선배들은 빨간이빨버섯에게서 마나포자낭을 얻고 싶어 해요. 그러면 일단 마나포자낭이 생길 때까지 많은 영양분을 공급해야겠죠?”

     

    세 사람은 떨떠름하게 동의했다.

     

    “화가 난 빨간이빨버섯이 사육사를 공격해서도 안 되고, 공격하더라도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다른 2학년이 사육장을 덮쳐도 안되겠죠!”

    “그렇겠지…?”

    “그 모든 조건이 충족된 장소가 바로 여기에요. 이 사육장 안에 있는 빨간이빨버섯은 칸막이 위의 레버를 당기면 설치된 칼이 내려와서 머리를 찔러요!”

    “으엑.”

    “포자는 옆의 버튼을 누르면 칸막이 안에서 말끔하게 정화되고, 비닐에 포장된 채로 시체를 끄집어낼 수 있죠! 시설은 조악해도 숙련된 시체처리실력을 지닌 선배님이시네요!”

     

    이사벨은 오크노디의 설명도 설명이지만 슬슬 이 공간 자체가 무서워졌다.

     

    “이거 2학년 선배의 사육장 맞아? 잠재적 연쇄살인마의 살인작업장은 아니지?”

    “어… 음… 제가 보기에도 여기는 조금, 뒷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레어한 장소네요.”

    “쥐방울아. 이런 시설에 있는 버섯을 굳이 건들고 싶냐? 잘못 건드렸다간 내일 아침에는 저 칸막이 안에서 눈을 뜰 것 같은데.”

     

    오크노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 보면 전부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술로 만든 시설이에요. 칸막이는 <목공의 기초와 이해> 교양강의를 듣고 만들었고, 시체처리도구는 모험학부 1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사냥꾼의 함정> 필수강의를 듣고 만든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럼 2학년은 누구나 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그건 아니죠. 비밀스러운 장소를 찾아내어 독특한 잠금장치를 만든 걸로 봐서는 <암흑사교회> 동아리에서 공헌도를 쌓아서 <비밀의 제단> 주문으로 빈 공간을 만들고 <다이얼키핑> 주문으로 잠금장치를 만들었을 테니까요.”

    “암흑사교회??”

    “음, 사교회의 재학생은 학생회 공식 기록상으로는 최저인원인 5명만 기재되어 있지만 ‘견습’은 명부에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악용해서 정체를 숨긴 사교회 소속 신자도 여럿 있긴 하겠네요!”

    “정체를 숨겨???”

     

    점점 더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사벨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자. 다른 데서 잡는 게 마음 편하겠어.”

    “저도 여긴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쥐방울아. 꼭 이런 데로 우릴 데려와야 했냐?”

     

    세 사람은 불만이 많았지만 오크노디도 볼에 바람을 빵빵 불어넣고는 불만을 드러내었다.

     

    “아이참. 이 정도로 편리한 장소도 싫다고 하면 어디서 잡게요? 그냥 도르래 내리고 버튼 누르고 팩으로 진공처리까지 된 시체만 들고 나르면 되는데.”

    “뒷수습이 무섭잖아.”

    “다른 곳은 제가 발견했던 마수창고처럼 마나포자낭을 지킬 ‘파수몬스터’나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텐데, 정말 괜찮겠어요?”

     

    2학년 선배들은 대체 아카데미에서 그딴 걸 왜 준비하는 건데!!

    이사벨은 슬슬 이 장소를 만든 선배뿐만 아니라 2학년 전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안목키우기 강의에서 본 2학년 빅스톤 선배나 리즈나 선배, 모스 선배는 자기들 점수만 챙기는 얄미운 구석은 있어도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구나.

     

    “그렇게 들으니 그냥 여기서 저지르는 게 나을 것 같네. 어차피 할 거 빠르게 하고 뜨자.”

     

    이사벨은 과감하게 도르레를 내리고 버튼을 눌렀다.

    불쌍한 빨간이빨버섯이 켁 소리를 내며 죽고 비닐에 밀봉된 채로 사출구 너머로 나왔다.

    지젤과 손오천도 이게 맞나 싶은 얼굴로 제 몫의 빨간이빨버섯을 하나씩 짊어졌다.

     

    “손오천. 앞에서 뭐해? 얼른 나가지 않고.”

    “뭔 소리냐, 이사벨. 이 몸은 뒤에 있는데.”

    “……?”

     

    이사벨이 시체를 짊어진 고개를 들어올렸다.

    손오천으로 오인할 정도로 큰 덩치를 지닌, 그러나 손오천은 절대로 입지 않을 노골적으로 수상한 전신을 뒤덮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

    폭이 넓은 로브 너머로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갈라진 손등을 지니고 뱀처럼 차갑고 창백한 혈색의 얼굴을 지녔으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눈을 지닌 자.

     

    “오 이런.”

     

    이사벨의 너머에서 그를 본 지젤이 탄식했다.

     

    “목의 휘장. 저건 3학년의 표식입니다.”

     

    하필이면 3학년의 비밀사육장을 건드렸다가 탈출 직전에 현장에서 발각 당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묘사가 무서워지는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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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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