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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김블라디미르.

       그는 악역을 맡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생에도, 전생의 전생에도.

       계속해서 주인공과 적대하는 악역을 맡아왔다.

       그것이 블라디미르라는 육체를 가진 영혼의 업이었다.

       

       블라디미르가 이런 업을 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가짜 신, 작가들이 관장하는 한 세계의 스토리를 어지럽힌 이레귤러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찮게 입수한 소설책 하나를 읽고,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 정해진 주인공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언제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세계의 주인공이 본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블라디미르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운명을 개척해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에 서술된 정보를 활용하여 각종 히든피스를 선점하고, 주인공의 히로인들을 겁탈하여 빼앗았다. 히로인들은 쾌락에 중독되어 본능에 굴복했다. 타락하여 블라디미르에게 빠져들었다.

       

       끝에는 결국 기존 주인공이 엑스트라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작가들은 격노했다.

       이레귤러에 의해 스토리가 꼬이고 장르가 변질되었으니까.

       

       로맨스 판타지 장르였던 세계는 한순간에 더러운 NTR장르로 바뀌었다.

       그로 인하여 관측자들이 대거 이탈하게 되었고, 권능이 잃을 위기에 놓였던 작가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의 영혼을 구속해 징벌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그의 영혼에 기약 없는 과업이 주어지고, 주인공의 대적자로 계속해서 환생하는 운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도 절대 주인공을 이길 수 없으며 끝에는 패배자가 되는 운명을.

       

       특히 영혼에 제약이 걸려있어서 주인공이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본인이 직접 해를 가할 수조차 없었다.

       

       유능한 부하들을 등용하는 방법으로 주인공을 제거하려 해 봐도 무용지물이었다.

       

       주인공 버프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격차가 극심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이 이기게 설계되어 있는 게 세계의 법칙이었다.

       

       블라디미르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수백 번의 환생을 거친 그는 결국 운명을 받아들였다.

       

       적당히 사건을 일으키고 적당히 주인공을 노리며, 여가를 활용해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생의 흐름은 뭔가 이상했다.

       여가를 즐길 틈조차 없는 인생이었다.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김수한의 등장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스토리는 아직 초반부일 텐데 벌써 자신의 조직이 와해되고 말았다. 주인공도 아닌 웬 이상한 놈에 의해서 말이다.

       

       저놈도 예전의 자신과 같은 이레귤러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환생을 거듭하며 이레귤러라는 존재를 꽤 마주쳐봤으니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 지금까지 이런 놈은 없었다.

       백에 달하는 백호를 소환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힘의 균형이 심각하게 붕괴됐다.

       아무리 이레귤러라 해도 이 정도로 파워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올?”

       

       블라디미르는 온몸이 찢겨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살덩어리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흉수 도올이 약했던 게 아니다.

       도올의 힘은 블라디미르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모든 생을 통틀어, 블라디미르가 도올의 수준까지 도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그런 도올을 소환수로 부리는 이번 생이 역대 최강의 힘을 지녔다는 뜻이다.

       

       “말도 안 돼······.”

       

       백 마리의 백호가 날아들었을 때부터 예상한 결과였긴 하지만,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찰나의 순간에 도올이 처참히 도륙당할 줄은 몰랐다. 못해도 5분은 넘게 버틸 줄 알았다.

       

       블라디미르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죽음은 수없이 반복했지만, 역시 죽을 때가 되면 질리지도 않고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는 건물 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현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편으로는 경외심도 들었다.

       이 정도의 이레귤러라면 신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블라디미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죽는 것도 무섭고 아픈 것도 무섭지만 조금만 견디면 괜찮을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놈들은 악인 성향을 지닌 자가 극히 드물기에 상대를 편히 보내주니까.

       

       이따금 온갖 고문을 가하며 살려두는 주인공 같지도 않은 놈들이 있긴 하지만······.

       

       ‘잠깐. 이 세계의 주인공은 김수한 아니었던가.’

       

       블라디미르는 서둘러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이현성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사악했다.

       겉보기에는 절대 선인으로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보다 보니 사람을 고문하는 게 취미일 것처럼 생기기도 했다.

       

       덜컥 두려움이 샘솟은 블라디미르는 차라리 자결을 하는 게 옳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빨리 다음 생으로······.’

       

       그때 블라디미르의 목 뒤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얇고 뾰족한 무언가가 살을 파고든 느낌.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블라디미르는 고개를 돌릴 여력도 남지 않았다.

       

       간신히 눈알만을 굴려봤다.

       백호를 소환했던 여성형 마물이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끝으로 눈꺼풀이 빠르게 가라앉으며 시야가 암전되었다.

       

       죽어가는 감각이 아닌 단순히 졸음이 몰려오는 감각이었다.

       

       깨어나면 끔찍한 고문을 당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블라디미르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수면 아티팩트에는 알약 버전과 물약 버전 두 개가 있다.

       깨비가 들고 있는 주사기에 담긴 액체 또한 수면 아티팩트였다.

       

       ─바로 잠들었어! 이제 어떻게 해?

       “일단 깨어나면 못 움직이게 몸부터 구속하자.”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생포했다.

       뭔 생각을 그리하는지, 블라디미르는 깨비가 바로 뒤까지 접근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근데 블라디미르가 원래 이런 느낌이었던가?’

       

       소설로 봤을 때는 어떤 상황을 직면하든 침착함을 유지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물을 마주하니, 서술되었던 것과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백호 백 마리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하긴 내가 블라디미르의 입장이라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 같긴 하다.

       느닷없이 세계관 최강자급인 백호가 백 마리나 튀어나오면 사고가 정지할 법도 하지.

       

       나는 챙겨 온 구속 아티팩트를 꺼내 블라디미르의 몸에 부착했다.

       머리, 목, 팔과 다리 등.

       기어 다닐 수도 없게 온몸에 전부.

       

       “조금 과한 것 같군······. 정조대 아티팩트는 왜 채우는 거냐.”

       “이 정도는 해둬야 못 도망가죠.”

       

       아티팩트가 온몸을 뒤덮어 고철덩어리처럼 변모한 블라디미르를 보며, 탁재환 교관은 침음을 흘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 남자의 신변은 어떻게 할 거지?”

       “저희 맨션 203호에 감금해 놓으려고요.”

       “협회에서 시체든 뭐든 넘기라고 할 텐데?”

       “아 그건 소아한테 잘 얘기해 뒀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쪽에 넘겼다가 괜히 죽이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니까요.”

       

       김블라디미르는 시체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켰다는 식으로 백소아가 알아서 처리해 줄 예정이다. 그렇게 미리 입을 맞춰놨다.

       

       의심은 조금 사겠지만, 협회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강한 백소아의 보고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데 탁재환 교관님, 지금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뭐가 말이냐?”

       “저에 대한 시선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진다거나 뭐 그런 거요.”

       “음······.”

       

       탁재환 교관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평소랑 똑같다. 마석을 주고 싶군.”

       “아. 예······.”

       

       다행히도 블라디미르를 제압한 걸로는 주인공 버프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짓된 감정은 아마 완전한 엔딩을 맞이하면 사라지는 듯했다.

       그 엔딩은 블라디미르의 죽음으로서 완성되는 것이고.

       

       ‘미래에서 온 철밥통이 적어도 6개월은 기다려달라고 했지.’

       

       블라디미르를 죽이는 것은 앞으로 6개월 뒤.

       그전까지는 이제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평탄한 생활이 이어질 터.

       

       그동안은 최대한 자극적인 일을 지양하고 되도록 평범한 일상을 보내라고 한다.

       관측자가 우리의 세계에 지루함을 느끼고 떠나가도록.

       

       엔딩을 맞이할 때까지 남아있는 관측자의 수에 따라서 작가가 얻는 권능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니까.

       

       나는 그 기간 동안 다른 이들과의 추억을 쌓기로 결정했다.

       지금 내게 느끼는 거짓된 감정이 사라져도, 추억만은 남을 수 있게 말이다.

       

       현재 우리들 관계의 문제점은 함께한 시간에 짧은 데 비해 과한 감정이 쌓여있다는 것이니, 추억과 감정이 비례하도록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호감은 이미 맥스에 달했으니까 더 쌓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돌아가면 타이트하게 일정을 잡아봐야겠네.’

       

       주변 인물들이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나에 대한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시간을 쏟아부어 여러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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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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