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9

    네르와 아르윈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기 전, 나는 멈춰서서 감정들을 정리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호흡부터 진정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한다.

     

     

    목에 들어간 힘을 풀고, 어깨를 가볍게 돌린다.

     

     

    -쿵!

     

    그러다 나는 주변의 나무를 주먹으로 찍는다.

     

    감정이 진정되질 않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감정이 자꾸만 들끓었다.

     

     

    원래는 이럴 때마다 몸을 혹사해왔다.

     

    가슴에 숨을 더는 들이쉴 수 없을때까지 훈련했다.

     

    피곤함에 다른 잡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하지만 지금은 그럴수가 없었다.

     

    네르와 아르윈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

     

    네르, 그리고 아르윈.

     

     

    그녀들을 떠올리자, 숨통이 트인다.

     

    경직되었던 어깨가 느슨해진다.

     

    나는 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지금의 내 아내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이 웃던 모습과, 쌓았던 추억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행동에 미소 지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몸이 닿았을 때 느꼈던 따스함도 되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바다에서 놀았을 때.

     

    손을 맞잡았을 때를 생각한다.

     

     

    같이 키득댔던 사소한 기억들 까지도.

     

     

     

    “…”

     

    그러고 있다보니, 감정이 점차 가라앉았다.

     

     

    나는 긴 숨을 들이쉬었다.

     

    마찬가지로 긴 숨을 내쉬며,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나도 어느새 그들에게 많은 안정을 느끼고 있나보다.

     

    형의 말이 맞았던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고된 훈련 없이 감정을 진정 시킨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최근 그다지 좋지 못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지만, 우리에게 남은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사소한 것이다.

     

    나는 미간을 누르며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나는 나를 기다리던 네르와 아르윈을 마주했다.

     

     

    “기다렸지. 가자, 이제.”

     

    “이야기는 끝난거에요, 베르그?”

     

     

    아르윈이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내 뒤편을 바라보았다.

     

    “…게일님은 왜 같이 나오시지 않은거죠?”

     

    “…”

     

     

    나는 대답 대신 아르윈의 손을 잡았다.

     

    “앗!”

     

    그리고는 부드럽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쓸모없는 이야기였어. 가자, 그러니까.”

     

    잠시 멈칫하던 아르윈도… 이내 내 선택을 따랐다.

     

    “…네.”

     

    네르가 그런 우리 뒤를 따른다.

     

     

    “바란! 출발할 준비해!”

     

    걸음을 옮기며, 저 멀리서 휴식을 취하던 바란에게 내가 외쳤다.

     

    바란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 대원들을 바라보며 가자는 듯 수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아르윈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그녀를 바라보자, 이번에도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그러고 있었다.

     

    냉철한 표정으로 짓는 작은 애교.

     

    깍지가 끼워진다.

     

     

    그에 작은 위로를 받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네르는 그러다 우리 둘을 내버려 둔채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잠시 의아해져 네르를 바라보니, 한 여인이 그런 네르에게 마찬가지로 뛰어왔다.

     

     

    “네르님, 얼마 안되지만 준비해드렸어요.”

     

    자잘한 열매들이 가득 담긴 작은 바가지를 건넨다.

     

    네르는 그 열매들을 전해받으며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급한 부탁이었는데…감사해요.”

     

     

    네르는 그러며 받아든 바가지를 내려다 보았다.

     

    코를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은뒤,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꼬리가 흔들리는 세기가 강해진다.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앞서간 그녀와 가까워진다.

     

    나는 네르에게 물었다.

     

     

    “간식이라도 준비한거야?”

     

    “응.”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미소가 귀엽다.

     

    이럴 때면 귀족이라는 사실을 잊을것만 같았다.

     

    친근감만 느낄 뿐이다.

     

     

    네르는 동시에 팔에 팔짱을 가볍게 끼웠다.

     

    “가면서 먹으려고.”

     

    그러며 나를 따랐다.

     

     

     

    우리는 말들을 두었던 곳에 다시 되돌아왔다.

     

    아르윈과는 깍지를, 네르와는 팔짱을 풀며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한다.

     

     

    잠시 뒤를 바라보니 게일도 어느새 우리를 따르고 있었다.

     

    “…”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앞을 바라보았다.

     

    게일쪽은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 둘 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바란도, 숀도, 잭슨도, 번즈도, 아르윈도…

     

     

    “…네르?”

     

    네르만을 빼놓고 말이다.

     

    그녀는 내 말의 옆에 서서, 내게 열매 바구니를 내밀고 있었다.

     

     

    “이거 좀 들어봐, 베르그.”

     

    “…?”

     

    어렵지 않았던 만큼 나는 열매 바구니를 받아주었다.

     

    동시에 네르가 내 말의 고삐를 쥐며, 나와 같은 말에 오르려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등자에 들어가 있던 나의 발을 빼내었고, 네르는 그 등자를 밟으며 말 위로 올라선다.

     

    “엇.”

     

    순간, 균형을 잃는 네르가 휘청댄다.

     

    나는 남은 팔을 네르의 허리에 급하게 둘렀다.

     

    “아.”

     

    네르는 그 손길에 균형을 잡으며, 내게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베르그.”

     

    “뭐하는 건데.”

     

    미세한 웃음기를 담아 묻자, 네르가 몸을 돌려 말에 앉는다.

     

    그녀의 두 다리가 말의 왼편으로 빠진다.

     

    이내 그녀는 열매 바구니를 받아들고는 내게 말했다.

     

     

    “이렇게 가자, 베르그. 나 열매 혼자 다 못먹어.”

     

     

    -확.

     

    꼬리가 내 허리에 감긴다.

     

    네르가 몸을 내게 밀착했다.

     

     

    그리고는 멈춰있는 내 팔을 제 몸에 두르며 안전을 챙겼다.

     

    여전히 그녀의 행동에 벙쩌 굳어있자, 네르는 그제야 눈을 깜빡이며 부끄러워하더니…목을 풀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바란과 숀과 잭슨, 번즈와 아르윈까지도 이런 네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원체 시선을 받는걸 싫어하던 네르였지만…왜일까.

     

    그녀는 조금 더 당당해진 모습으로 흰꼬리를 자랑했다.

     

     

    “아.”

     

    이내 제 허벅지에 얹어놓았던 열매 바구니에서 열매를 한 개 꺼내, 내 입에 들이밀었다.

     

    아, 라면서 제안하는 네르의 입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부드러운 혀가 보인다.

     

     

    상상이상으로 먼저 낯부끄러운 행동을 제안하는 네르.

     

     

    하지만 또 생각해본다면, 목에 이빨자국을 남겼을 때가 더 낯부끄러웠던걸지도 몰랐다.

     

    나는 가볍게 입을 열어 네르가 건네는 열매를 받아먹었다.

     

    네르는 눈을 반달로 휘어가며 웃더니, 제 입에도 열매를 하나 쏙 집어넣었다.

     

     

    “…”

     

    옆을 바라보니 바란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척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

     

     

     

    국왕 렉스 드레이고는 오늘도 서류더미 앞에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특히나 최근에 발생한 문제에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잭슨 가문이 운영하는 도시에, 용사일행이 완전히 묶여있다는 소식.

     

    후계싸움에 영지가 완전히 혼란에 빠져있다 했다.

     

    병력이 있음에도 용사일행을 돕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인족 새끼들.”

     

    렉스가 속삭였다.

     

    용사 일행이 그곳에서 묶여있는 매 순간이 왕국에는 피해였다.

     

    최강의 병력이 한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현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렉스는 마음 같아서 잭슨 가문을 멸문시키고픈 마음이었지만…현 상황에서는 그럴만한 명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후계 싸움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는 서신을 보낼 뿐이었다.

     

     

    렉스가 보좌관 겐드리에게 말했다.

     

    “…돌아온 서신이 있나?”

     

    겐드리는 씁쓸하게 답했다.

     

    “후계 싸움에 참여한 네 아들 모두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힘내보겠다면서.”

     

     

    그 농담과도 같은 상황에 렉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결국 비아냥 댈 수 밖에 없었다.

     

    “성욕이 많으면 후계라도 제대로 정하고 가던가. 왜 저들의 문화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봐야하는 거지?”

     

    겐드리는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렉스도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수백번도 말했던 불평이라 이제는 감흥이 없을 정도다.

     

     

    그는 피곤한 눈으로 물었다.

     

    “…용병단에게 보낸 서신은?”

     

     

    마찬가지로 문제의식을 느끼던 용사, 펠릭스에게 부탁이 왔었다.

     

    이럴바에는 용병단의 힘을 빌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게 나을 듯 하다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렉스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용병단에게 주는 보수보다 용사일행이 한 곳에 묶여있는게 더 큰 손해일거라는 계산을 내렸다.

     

     

    그러니 렉스는 처음으로 용병단에게 서신을 보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용병단에게 의뢰를 하는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그는 왕국을 위해서라면 그런 자존심은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렉스는 잊지 않았다.

     

     

    홍염단의 베르그가, 성녀님과 깊은 관계였다는 사실을.

     

    그랬기에 홍염단을 제외한 다른 모든 용병단에게 서신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겐드리가 답한다.

     

    “답장은 모두 빨리 왔습니다.”

     

    “그래. 그럼 어느 용병단이 좋을 것 같지?”

     

     

    렉스 드레이고는 용병단이라면 분명 자신의 의뢰를 받아들였을거라 상정하고 말했다.

     

    애초에 국왕이 내리는 의뢰를 무시할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었을 테니.

     

     

    하지만 예상 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세 용병단 모두, 못한답니다.”

     

    “뭐?”

     

    렉스가 표정을 구겼다.

     

    그러자 겐드리가 급히 답한다.

     

    “모, 모두가 같은 대답을 내왔습니다. 의뢰를 수락하고는 싶지만…용병단들끼리 새로 맺은 규율이 있다고 합니다.”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렉스에게 겐드리가 설명을 이어갔다.

     

    “…대귀족 혹은 그 이상의 가문이 내리는 의뢰의 우선권은…홍염단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절해야 자신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네요.”

     

    “허.”

     

     

    렉스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홍염단의 성장세를 보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쟁이 끝이 보이는 순간부터 시작된 변화가 매서웠다.

     

     

    최근에 알게 된 바로는 홍염단의 단장이 게일의 옛 제자였다고 한다.

     

    그 단장과, 부단장이 함께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더해, 게일은 두 존재 중 한 명이 린의 투사일 확률이 높다 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하여 게일도 홍염단을 찾아간다 말했고.

     

     

    그러니 이어질 렉스의 선택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걸 억지로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럼 홍염단에게 서신을 보내.”

     

    렉스가 과거, 헤아 교단의 대주교와 나누었던 약속을 꺾으며 말했다.

     

    “용사 일행을 도와 달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코박스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그럴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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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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