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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사람의 본성이 본래 예쁜 것은 예쁘다고 하며 치켜세우며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과거 양귀비가 흑막 놀이에 심취해 온갖 패악질을 부리며 나라를 제대로 말아먹고 반란까지 일어난 때의 일을 보라.

       그 때에 반군 수괴였던 안녹산이 차마 황제를 벨 수가 없어 그 냄새 나는 여자를 치우라고 간언을 올렸다.

       (양귀비는 하늘 아래 최악의 암내로도 유명한 여인이다.)

       축농증으로 냄새 못 맡는 황제는, 천하제일 미녀쯤 되면 나라 좀 말아먹을 수도 있지 왜 우리 예쁜 양귀비 기를 죽이냐고 소리를 쳤다.

         

       경국지색이라 하니 미인이라면 나라 정도는 쥐고 흔들어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미인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은 사나이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만약 사내인 친구가 한사코 이를 부정한다면, 뒤를 단단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청도 어쩔 수 없는 사내대장부였다.

         

       “음. 생각해 보니 손님 모시고 회식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대세가를 대충 재벌 일가 정도로 여기는 청이었으니, 재벌가끼리의 회합이면 맛집에서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그러자 자유가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보통 여인이 저보다 더한 미인을 볼 때면 투기를 하지 않나?”

         

       “어허. 그건 너무 틀에 박힌 편견이 아닐까? 게다가 왜 굳이 나를 보면서 나한테 콕 찝어 물어보는 것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자유의 말문이 막혔다.

       그럼 여인의 일을 여인에게 물어봐야지, 사내에게 물어봐야 서로 상상의 나래만 펼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돌연.

         

       “내 실언을 했느니라. 내 진심으로 사과를 할 터이니 너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려무나.”

         

       정중한 태도로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원에 면사 두른 신비미녀는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이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천하에 자랑해야 할 미덕이라서 굳이 감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감춘 여인은 당연히 감춰야 할 이유가 있다.

       면사녀라고 하면 얼굴의 개성이 너무나 대단하여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기에 배려하는 마음씨인 것이다.

       면사녀에 대한 중원의 결론이었다.

         

       즉, 너 못생겼는데 그걸 찔러서 미안하다.

       그런 사과였다.

         

       “말투.”

         

       “방금은 일부러였다. 그만큼 미안함이 진심이라는 뜻이지.”

         

       “그래? 그럼 미안한 만큼 저녁이나 쏠래? 뭐 마라탕 말고도 맛있는 거 있을 거 아냐?”

         

       “좋군. 사실 마라탕이 궁극이라고 해도 고작 마라탕이 아니느, 다. 근본이 없지.”

         

       마라탕은 그 유래가 최하층 서민들의 식사인 모채에서 나왔다.

       사천인의 절반쯤은 요리가 아니라 식사라며 마라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마라궁극탕은 예외로 쳤지만.

         

       그래도 모두 말하기를 천하제일숙수가 다른 요리를 하면 훨씬 맛있을 텐데 고작 마라탕을 주물거린다고 안타까워하는 판이다.

         

       “친구는 오늘에서야 사천요리가 어째서 천하제일과 같은 의미인지 톡톡히 깨닫게 될 것이다.”

         

       “좋아. 오늘 배 터지는 날이다. 참고로 나는 아주 많이 먹거든? 감당 안 될 것 같으면 언제든 패배를 선언하고 식사를 멈춰주십시오 눈물 곁들인 호소를 보여줘야 할 것이야.”

         

       “내 걱정은 할 필요 없다네.”

         

       청이 씩 웃어주고는 이후에 물었다.

         

       “그런데, 원래 손님이 먼저 자리에 들던가? 사천식 손님 대접인가?”

         

       “그럴 리가 있나. 귀한 손일수록 정중히 준비하여 온 식솔이 함께 모셔야지.”

         

       “그러면 여항적이 별로 안 귀한 손님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그런데, 왜?”

         

       청이 요리점 창룡을 가리켰다.

         

       여인 둘이 쏙 들어가고 나선, 마부들이며 그 외 떨거지들이 요리점 앞을 지키고 섰다.

       무복 가슴팍을 꽉 채워 큼지막하게 박아놓은 ‘당’ 이라는 글자가 영 촌스러운 꼴이었다.

         

       “전세를 냈다길래 온 가족이 사이좋게 외식이라도 하나 했더니.”

         

       “이 친구, 대놓고 순진한 면모가 있군? 그야 단둘이 식사를 하고 싶으니 전세를 내었겠지.”

         

       “뭐?”

         

       청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겨우 단둘이서 식사하겠다고 그 많은 손님을 죄다 내쫓았다고?

       그게 무슨 천하의 개싸가지, 못 배워 처먹은 버르장머리인데?

         

       그러고는 잠시 각을 재 보았다.

         

       그렇다.

       청은 항상 각을 보았다.

       대책 없는 싸움닭이 아니며, 분노 조절 장애 증상……은 간혹 보이지만 천살성과 마공으로 인해 머리가 맛이 간 탓이기에 어쩔 수 없다.

         

       낙양에서도 흑뭐시기 문파를 상대함에 있어서 사나이답게 패배를 인정하고 후퇴하지 않았나.

       청은 기본적으로 강약약강 비겁한 종자에다가 심약한 쫄보라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선 절대 먼저 들이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금방 결론을 내렸다.

       청이 빙글 돌아 요리점 입구로 향했다.

         

       “친구, 어디를, 아니, 무슨 힘이…….”

         

       자유가 차마 손은 잡지 못하고 그 소매만을 잡아챘으나 외려 질질 끌려 딸려나갔다.

       청의 순수한 근력은 이미 전성기의 항우장사를 뛰어넘은 데에다, 자유는 무공도 없으면서 원래 사내 중 최약체였기 때문이다.

         

       “멈춰라. 무슨 용건이지?”

         

       청이 앞을 막아선 당가무사를 보았다.

       비싸 보이는 무복이지만, 가슴부터 배까지 큰 원을 그려 박아놓은 ‘당’이라는 초록색 글자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앞뒤로 한 글자씩 박았으니 합치면 당당인가?

       명문대 외투라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크기로 박아넣지는 않는 법인데도.

         

       청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거의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너무! 한 거! 아닌가욧!!!”

         

       안 그래도 구경꾼 잔뜩 몰려있던 장소다.

       파약자들은 흩어지는 척만 하고서는 해어독화 얼굴 한번 보겠다고 결국 밀도만 바뀌었다.

       그리고 해어독화 보겠다고 마차 따라 우르르 몰려온 패거리들까지 합치면 옥기린 수준까진 아니어도 그 삼분지 일은 되었다.

         

       여인 특유의 빽빽 내지르는 새된 고성이다.

         

       해어독화 봤냐? 진짜 이 세상 미모가 아니다.

       하고 제 할 일 하러 돌아가던 사람들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청을 보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되감아 원위치했다.

         

       “당가라면 남의 예약을 막 취소해도 되는 건가요? 무려 이 순간만 기다린 세월이 사십일 하고도 오 일을 더 기다렸는데 아가씨 한 분 행차하셨다고 꺼지라면 어디 뭐 땅으로 꺼져야 하나요? 왜 아예 묫자리 써서 들어가라지?”

         

       “이 년이 감히.”

         

       “감히!? 감히이!? 너 말 잘했다! 그러니까 대 사천당가 사람들에 천하디 천한 너희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감히!!! 무슨 일을 당해도 대들면 안된다 이거지? 아이고, 동네 사람들! 여기 말하는 것 좀 보소!! 존귀하신 당가 황족 분들 행차하셨답니다!!!”

         

       청이 아주 다 들으라고 악을악을 질렀다.

         

       “모, 목소리를 낮춰라.”

         

       “우리 할아범 죽기 전에 소원이 어려서 한참 어려웠던 시절 한푼두푼 모아서 겨우 한 번 먹어보았던 마라탕 한 그릇 그때 그 맛이 느끼고 싶다길래 겨우 예약 잡아 모시고 왔건만은.”

         

       최리옹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천마신교의 명문마도를 걸어온 최리옹은 인생 단 한 번도 궁핍하게 산 적이 없다.

         

       “할아범!! 내가 미안해!! 뒷배도 없고 실력도 없는 버러지 같은 년이라서 내가 미안해!! 여기 당가 아가씨가 좋은 요리 드시다 질려서 서민 음식 체험하셔야 한다는데 내가 어떡해!!”

         

       흥미 위주였던 구경꾼들도 점차 불온한 색을 띄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천사는 사람치고, 특히나 성도에 사는 사람치고 당가의 패왕질을 한 번이라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당가의 직계가 아닌 방계의 무명 무사들도 당 글자 박힌 옷만 입으면 아주 높으신 대감님들처럼 굴었으니까.

         

       “앗! 내가 무슨 불경을! 무사 나으리! 이것이 미쳐서 감히 천하제일 대 당가 황상 나으리들께 대들고 말았습니다요! 사천에선 사천당가가 곧 황실이고 국법이람서요! 제 충정을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 당가 만세! 만세! 아니, 하늘 위에 하늘이 있고 황상 위에 당가가 계시지! 당가 십만세! 아니, 십팔만세!! 십팔만세!!!”

         

       당가 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실제로 성도에서 사천당문의 위세는 진작에 왕부를 뛰어넘었다.

       성도 외각에는 덕현친왕의 왕부가 있어 성도 토지 거진 대부분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당가에 밀려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친왕이란 많고 많은 군왕들 중에서도 황실의 적통이 받는 봉작, 대충 복잡한 사정 떼고 황제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받는 것인데도 그랬다.

         

       사실, 당가가 음습하게 저네들끼리 말하기를,친왕도 우리한텐 안돼지 친왕 주제에 까불어 하고 얕잡아 떠드는 일이 이미 공공연히 퍼진 비밀에 가까웠다.

         

       “아닛! 숫자가 다 뭐야! 대 당가의 위대함을 어찌 숫자로 표현할 수가 있나! 쇤네의 충정을 받아주십시오! 당세! 당세! 당당세!”

         

       하지만 공공연한 비밀이란, 대놓고 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뜻하기도 했다.

         

       실제로 구경꾼들 유난히 촌스러운 복식에 한 글자씩 박아 병 용 졸 아 역 포 뇌 세 고 염 중에 하나를 가진 이들도 있으니, 관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다.

       그네들이 오늘 밤에 떠들 이야기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좀, 제발 좀 닥치고……”

         

       “아! 닥치라니!! 대 사천당가라는 태양 아래 반딧불만도 못한 미천한 것이 아직도 목소리가 모자라다 말하시는 겁니까!!! 당가 십팔만세!!!! 당가 만세!!! 끼야아아아악!!!”

         

       청의 호흡은 이미 복신적으로 단련되어 고수 중에서도 월등한 것이다.

       그 목청이 얼마나 우렁찬지 과장 보태 건물이 우수수 떨리고 대지가 따라 진동할 수준이다.

         

       “아니, 좀.”

         

       안되겠다 싶었던 당가 무사가 청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끌어내기라도 해야지 작정하고 진상을 부리니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고.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문제는 청이 그저 바라며 노리고 있던 순간이라는 점이었다.

         

       “꺄아아아악!!!”

         

       청이 철기(중갑기병)에 치인 사람처럼 날았다.

       심지어 땅에 두 번 튕겨 나가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나자빠지니 누가 봐도 천하 절대 고수의 일장을 처맞은 광경이었다.

         

       청이 중병 환자처럼 몸을 웅크리고 떨었다.

       구르는 와중에 몰래 돌맹이 하나를 튕겼으니 그에 톡 얻어맞은 최리옹이 금방 눈치를 채고 청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얘야! 정신 좀 차려 보거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제 겨우 스무 살 이 연약한 아이를!! 언성 좀 높인 것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이냐!! 하늘 아래 이러한 법이 있다더냐!! 어찌 이게 명문 정파가 하는 행사더냐!!”

         

       최리옹은 내공으로는 일류에 간당간당해도, 그 깨달음이 이미 화경에 든 무인이었다.

       화경 쯤 되면 흔히 ‘갈!!!’로 통하는 사자후의 묘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므로, 침통한 노인네의 목소리가 아주 쩌렁쩌렁 울렸다.

         

       스무 살 연약한 아이.

       자식 둔 애비들이 크게 동요하며 좌중에 또 속삭임이 번졌다.

         

       아무리 당가라도 좀 너무한 것이 아니냐.

       음습하게 뒤로만 손을 쓰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패악질을 부릴 생각인가 보다.

       우리 애들한텐 단단히 당부해야겠다, 등등.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자유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칼을 뽑아 덤비면 덤볐지, 사람 모아 대놓고 체면을 시궁창에 처박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악질도 저런 악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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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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