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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짜악-!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놀 워리어의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즉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방이네···”

       

       “응. 나 힘세거든.”

       

       새벽이 자랑하듯 가녀린 팔뚝을 내밀어 보였다.

       말랑거리는 팔뚝이 잡아당기면 찹쌀떡처럼 늘어날 것만 같았다.

       

       “···보스가 얼마나 셌어?”

       

       “되게 약했어.”

       

       “으, 응···”

       

       약해 보이다니.

       송곳니 길이가 내 머리만 했는데.

       

       나는 괜스레 입을 벌리고는 내 송곳니를 꾹꾹 눌러보았다.

       놀 워리어에 비한다면 한참이나 작은 송곳니였다.

       내 송곳니가 더 날카로운 것 같기는 했지만, 딱히 쓸데는 없었다.

       

       “겨울이도 송곳니 길었으면 좋겠어?”

       

       한여름이 내 입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날카로움을 확인하듯 송곳니를 꾹꾹 누르는데, 그녀의 손가락을 깨물까 봐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어머, 이 정도면 칼인데?”

       

       “녜에.”

       

       입을 열고 있어서 그런지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한여름이 이를 알아챘는지,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회수했다.

       

       “누구 안 물게 조심해야겠다.”

       

       “네. 조심할게요.”

       

       내가 굳이 누굴 물진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레비나스가 내 등 뒤로 달려와 숨었다.

       

       “왕아! 어둠에 왕이 각성했다···! 암흑에 물들어 버렸다···!”

       

       레비나스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벌벌 떨리는 손이 겁에 질린듯싶었다.

       

       “아니야, 우리 지켜준 것뿐이야.”

       

       “그, 그러냐···?”

       

       “응. 착한 어둠에 왕이야.”

       

       “······!”

       

       귀를 쫑긋거린 레비나스가 종종걸음으로 새벽이를 향해 다가갔다.

       무표정한 새벽의 꼬리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어둠에 왕아! 레비나스 지켜줘서 고맙다!”

       

       “응.”

       

       레비나스가 새벽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 흐뭇한 모습에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

       

       

       던전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공원으로 내려왔다.

       전리품은 한여름과 권아린에게 맡기고,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것도 어른이 하는 일이었으니까.

       

       “왕아!”

       

       저 멀리서 레비나스가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놀 워리어의 머리 가죽이 씌워져 있었다.

       

       “모자 썼네?”

       

       “응! 무섭지!”

       

       크앙.

       레비나스가 야성 훈련을 하던 나처럼 위협적인 모습을 취했다.

       그리 뾰족하지 않은 손톱을 앞으로 내미는데, 솔직히 무섭지는 않았다.

       

       “음··· 살짝 무서웠어.”

       

       “키키! 이제 레비나스도 왕이랑 똑같네?!”

       

       “나랑?”

       

       “응! 왕이랑 같은 맹수다!”

       

       “아···”

       

       겁 많은 레비나스가 왜 굳이 놀 워리어의 머리 가죽을 쓰고 왔나 했는데.

       맹수가 되고 싶었던 건가.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발상이었다.

       

       “응. 같은 맹수야.”

       

       “히히! 오늘은 맹수처럼 사납게 하고 다니는 거다!”

       

       사납게?”

       

       “응!”

       

       맹수의 탈을 써서 그런지, 레비나스의 행동이 거칠었다.

       나는 그런 레비나스를 향해 손톱을 내밀어 보였다.

       

       “크앙···하면서?”

       

       “그, 그거는 너무 무섭다··· 조금만 덜 사납게···”

       

       “응. 덜 사납게.”

       

       맹수의 탈을 썼다고 강심장이 되는 건 아니구나.

       레비나스의 말대로 조금 약하게 하기로 했다.

       

       “크아.”

       

       “캬오.”

       

       레비나스와 조금 덜 사납게 맹수를 흉내 내며 놀았다.

       유치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그녀와 놀아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맹수놀이를 하고 있으니, 샤워를 마친 새벽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보스다.”

       

       새벽이 놀 워리어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놀란 레비나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에 왕아···! 레비나스 목 꺾으면 안 된다···!”

       

       “응. 안 꺾어.”

       

       새벽이는 레비나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정확히는 놀 워리어의 머리 가죽을 향해서.

       

       “레비나스 멍멍이네.”

       

       “멍멍이? 이거 고양이 아니냐?”

       

       “응. 고양이 아니라 멍멍이야.”

       

       “헉···!”

       

       뿔토끼눈을 뜬 레비나스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흔들림에 놀 워리어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자 안 쓰게?”

       

       “응! 레비나스는 이거 고양인 줄 알았다!”

       

       “아···”

       

       같은 고양잇과가 되고 싶은 거였구나.

       셋 중에서는 레비나스 혼자만 뿔토끼 수인이니까.

       

       어쩌면 맹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혼자만 초식 수인이라는 외로움 때문일지도 몰랐다.

       길드에 있는 수인족들은 레비나스를 제외하고 전부 육식이 베이스였으니까.

       

       ‘나중에 뿔토끼 수인 흉내라도 내봐야겠다.’

       

       레비나스라면 분명 좋아해 줄 테지.

       뿔토끼 모양 모자를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우리 다른 거 하고 놀까?”

       

       “응! 딴 거 하자!”

       

       “으음···”

       

       다른 거 뭐 하면서 노는 게 좋을까.

       고민에 잠기는 순간, 새벽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에 놀 워리어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우리 숨바꼭질하자.”

       

       “숨바꼭질?”

       

       “응. 나 숨는 거 잘하거든.”

       

       숨바꼭질이라.

       나야 아이들이 좋다면야 뭘 하고 놀든 상관없었다.

       나는 노는 게 아닌, 놀아주는 역할이었으니까.

       

       “레비나스는 어때?”

       

       “숨바꼭질 좋다! 레비나스도 숨는 거 잘한다!”

       

       “좋아. 그럼 우리 숨바꼭질하자.”

       

       놀이가 정해졌다.

       술래는 내가 해 주는게 좋겠지?

       

       곧바로 놀이를 시작하려는 그때.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유상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양이님, 토끼님.”

       

       유상아의 목소리에 모두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친밀감을 표현하며 유상아를 돌아보았다.

       

       “뿔뿔이 왔냐!”

       

       “뿔뿔이요?”

       

       “응! 상아니까 뿔이다!”

       

       “아···”

       

       자신의 별명 뜻을 이해했는지 유상아가 쿡쿡 웃었다.

       아이가 지어준 별명이라 그런지 기분이 나쁜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퇴근하세요?”

       

       “네, 집에 가기 전에 운동겸 산책하려고 나왔어요.”

       

       “그렇군요.”

       

       우리 공원이 산책하기 좋은 곳이긴 하지.

       조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님은 뭐 하고 있었어요?”

       

       “저희 숨바꼭질하게요.”

       

       “어머, 저도 같이해도 될까요?”

       

       유상아가 기도하듯 제 손을 마주 잡았다.

       꼭 반드시 같이 놀고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면 숨을래요?”

       

       “아뇨, 제가 찾을게요.”

       

       “네, 좋아요.”

       

       유상아의 합류가 기뻤는지, 레비나스가 자리에서 폴짝 튀었다.

       한참을 뛰던 레비나스가 헉 하고 입을 벌렸다.

       

       “뿔뿔아! 근데 우리끼리 하는 거니까 찾아도 머리 잡아당기고 그러면 안 된다?!”

       

       “머리요?”

       

       “응! 이렇게!”

       

       레비나스가 제 머리카락을 붙잡더니, 위로 죽죽 잡아당겼다.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 머리를 왜 잡아당겨요···?”

       

       유상아가 다급히 레비나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두라며 손목을 가볍게 두드리기도 했다.

       

       “뿔뿔이는 그것도 모르냐?! 원래 숨어있다가 들키면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거다!”

       

       “네···?”

       

       눈을 깜빡거리던 유상아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유상아의 허리를 찔러 보았지만, 그녀는 반응 없이 굳어있을 뿐이었다.

       

       ‘레비나스도 나랑 비슷한 경험을 했구나.’

       

       하기는.

       그녀도 나만큼이나 힘들게 살아왔으니까.

       무서운 사람을 피해 숨은 경험 정도는 많이 있을 테지.

       

       숨어있다가 들키면 더 맞게 되나, 어쩔 수 없이 숨을 수밖에 없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에 한숨이 푹푹 새어나왔다.

       

       “수, 숨바꼭질은 들켜도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하는 놀이가 아니에요···”

       

       유상아의 설명에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럼 뺨도 안 때려?”

       

       “뺘, 뺨이요?”

       

       “응. 숨어있다가 들키면 괜한 짓 하지 말라고 뺨 때리잖아.”

       

       새벽이가 제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유상아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말았다.

       

       

       **

       

       

       ‘무슨···’

       

       들키면 맞는 걸 당연한 전제로 깔고 간다.

       아이들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기에, 유상아는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른들을 피해 숨어 있던 건가.’

       

       그러다가 들키면 뺨을 맞고.

       유상아는 저도 모르게 아이들이 맞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어렵게 살아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 명의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만이 들 뿐이었다.

       

       “괜찮아요··· 숨바꼭질은 찾아도 때리거나 하는 놀이가 아니거든요.”

       

       “그, 그러냐···?”

       

       레비나스의 눈이 동그랗게 드였다.

       유상아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그런 레비나스를 향해 겨울이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놀 때는 맞을 걱정 할 필요 없어. 연습 같은 거잖아.”

       

       맞지 않기 위해 어른들을 피해 숨는 연습.

       유상아에게는 겨울의 말이 그렇게만 들렸다.

       

       “그러면 흉내만 내는 거냐?”

       

       “음··· 굳이 흉내 낼 필요도 없긴 한데, 흉내 내면 뭔가 실감 나긴 하겠다.”

       

       “그러냐?! 그럼 우리 흉내만 내자!”

       

       “그럴까?”

       

       겨울의 시선이 유상아를 향했다.

       유상아는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술래가 ‘못된 사람 흉내’를 내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숨바꼭질은 그런 놀이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이걸 설명해 준다고 해도, 평생을 어른들을 피해 숨어 살아온 아이들이 이해해 주긴 하려나?

       

       유상아는 괜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길드의 카운터를 담당하는 유상아인 만큼 공원에 아는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상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다 듣고 있었으면서!’

       

       참으로 못된 어른들이다.

       눈물을 머금은 유상아는 아이들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저기, 전 그냥 숨는 역할 해도 되나요···?”

       

       “좋아요. 그럼 제가 찾는 역할 할게요.”

       

       “네, 고마워요···”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대신 신나게 놀아 주는 걸로 알려줄게요.

       숨바꼭질이 어떠한 놀이인지를.

       

       유상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평생을 어른들을 피해 숨어온 아이들을, 말만으로 설득할 수는 없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잘 하는 이유!
    들키면 맞으니까…! 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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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린석상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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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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