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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샤에흐의 기적식.

    그것은 과거 천재마법사라 불리던 대마법사 샤에흐가 말년에 남긴, ‘인과율’을 마법적으로 계산하는 마법식의 구상이었다.

    샤에흐가 기적식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기적은 무엇인가?

    샤에흐가 주장한 기적은 다음과 같다.

    ‘본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

    모든 일에는 인과율이 존재하는데, 이 인과에서 벗어난 일이 실현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그렇기에 불가능이며, 불가능이 가능의 영역으로 다다른 순간,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조차 완벽히 계산하고 이해하여 조작할 수 있는 개념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쩌면 세상의 확률을 조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법적 이론에서 시작된 마법식의 개념은, 이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비로소 마법으로 진정한 의미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런데, 그걸 풀어낸게 10살짜리 여자아이?

    사실은 마법경시대회의 시험을 치르러 온 10살짜리 여자아이가 그 ‘샤에흐의 기적식’을 풀었다고?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지.’

    기적?

    그 단어에 남자는 머리가 순간 정지했다.

    설마, 정말로?

    그 마법식에 얽힌 기묘한 인과율처럼,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칠판에 적힌 식을 바라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칠판을 좀 써도 되겠지?”

    “……그건 상관 없지만…….”

    “알겠네.”

    루크는 남자의 의심스런 시선을 무시하고 천천히 칠판에 다가갔다.

    칠판은 루크의 키보다 훨씬 높았기에 근처에서 의자를 하나 당겨오는것을 잊지 않았다.

    의자 위에 올라선 루크는 칠판 근처에 있던 분필을 집어들고는 식을 증명해나가기 시작했다.

    ———

    마탑의 연구실, 평소라면 토론과 대화소리, 마법주문등으로 한창 시끄러울 공간이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소리만이 들려온다.

    칠판에 분필을 사용한 사각거리는 소리.

    모두가 한 아이가 칠판에 무언가를 빼곡히 늘여적는 광경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루크는 말도 없이 그저 마법식의 증명식을 적어내고 있었다.

    마법식을 증명하는데 설명은 필요 없었으니까.

    이것은 이미 풀어낸 문제를 한번 더 정리하는 작업.

    그렇게 루크의 머릿속에서 정리된 증명식은 구태여 말로 사족을 더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료하니까.

    “……!”

    반면, 마법사들은 담담하게 적어나가는 루크의 손에 시선을 쫓아갈수록, 명료해져만가는 증명식에 소리없이 경악했다.

    그 손이 멈추는 순간 이 마법식이 정말로 증명될 것 같이 보였으므로.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

    그들은 그 흔한 감탄조차 낼 수 없었다.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이 순간, 우습게도 모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그러니 도저히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간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아서.

    만약 이것이 꿈이라면 저 식의 끝을 보기 전까지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마침내 칠판이 거의 다 채워졌을때, 루크의 분주한 손이 멈췄다.

    증명이 완료된 것이다.

    루크는 별다른 표정도 없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걸로 끝일세. 질문은 받겠네.”

    증명의 마침표를 찍는 루크의 목소리에 마법사들은 그제서야 참은 숨을 몰아쉬듯 말을 토해냈다.

    “……말도안돼, 정말 풀린건가? 진짜로?”

    “이거, 꿈이지……? 누가 내 볼좀 꼬집어줘, 아니. 꼬집지 마. 아직 다 못 외웠으니까.”

    “이건 기적이야…….”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터져나오는 감탄사에 루크는 딱히 질문은 없어보여서 의자에서 내려와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끌고와 앉는다.

    남자는 얼빠진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마주쳤다.

    “다들 참으로 기뻐보이는구나.”

    “…….”

    루크의 모습은, 도저히 풀리지 않던 난제를 증명해버린 사람치고는 조금의 흥분도 없이 태평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걸 푼건 정말 내가 처음인가?”

    “그래, 이건 정말 말도안되는 업적이라고! 엄청난거야! 이 마법식이 앞으로 마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봤어?! 머지않아, 우리 마법사들은 이 세상의 모든 확률을 구해낼 수 있게 될거라고!”

    “윽, 그대는 목청도 좋군. 좀 작게 말해주게.”

    “미, 미안…….”

    ——–

    샤에흐의 기적식.

    그것을 증명하는 데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사실 샤에흐가 구상했다는 마법식은, 과거의 서클마법을 클래스마법으로 재현한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소원(Wish)’.

    9개의 서클을 심장에 지니고서야 비로소 선언할 수 있는, 최상위의 개념조작마법.

    그것을 현대문법으로 재탄생시킨것이 바로 샤에흐의 기적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상황에 대한 계산과 그에 상응하는 지팡이와 마나가 필수적인 현대마법의 문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그 마법식은, 아직 ‘현실조작’에 이르기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론상, 정이십면체 주사위의 눈을 고정시키는 정도의 확률조작을 일으키려고해도 수만레인단위의 마나를 퍼부어야 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비교를 해보자면, 루크의 심장에 쌓인 마나의 총량이 현재 대략 12000레인정도가 되는데, 이는 인공세계수가 일주일간 생성해내는 마력양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고작 20분의 1을 고정하는 수준의 확률조작조차 그토록 비효율적일진데, 정말 ‘기적’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전 세계의 마나를 태워야 한번이겠지. 그런 마력을 감당 할 수 있는 소재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비슷하게 끔찍한 비효율을 자랑하는 9서클로 사용하는 ‘소원’도 그정도는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해서 ‘소원’쪽이 무작정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만.

    서클마법의 ‘소원’이란 ‘신’이란 존재에게 권한을 빌릴 기회를 만드는 것이고, 그 탓에 정말 루크가 바라던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전 세계의 마나를 처박아 ‘단 한번의 기적’을 신의 눈치따위 보지 않고 이뤄낼 수 있다면, 오히려 샤에흐의 마법식쪽이 훨씬 쓸모가 있지 않을까.

    “기적이라…….”

    루크는 턱을 쓸었다.

    “샤에흐, 너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 마법식을 구상했던 게냐.”

    어차피 이 시대에 주사위놀음을 하는 신 따위는 없었을텐데 말이다.

    ———-

    “그게 사실인가?”

    “으, 응…….”

    “상을 못 준다니. 역시 별로 대단한 업적도 아니잖나.”

    “아니, 못 준다는 게 아니라. 2년 뒤라는 거지……!”

    루크의 실망스런 표정에 안절부절 못하는 마법사.

    그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했다.

    루크는 ‘상’을 받고싶어했다.

    외부 수상경력이 곧 조기졸업장이 되므로, 루크가 상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이론계에서 가장 큰 업적을 이뤄낸 마법사에게 주어지는 ‘라스상’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상은 4년마다 한번씩 시상을 한다는 것이었고, 마법계에 가장 영향력이 높은 발견을 한 단 한명의 마법사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이다.

    난제라고 불리우는 샤에흐의 기적식을 증명한 업적으로, 루크는 ‘라스상’의 유력후보자가 되었다.

    아마 상은 확정이겠지. 2년내에 샤에흐의 기적식의 증명을 뛰어넘는 업적이 튀어나올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아직 시상이 2년이나 남았다니.

    “허.”

    2년이면 너무 늦다.

    루크의 계획은 1년안에 조기졸업시험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래야 겨우 매직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거고, 그래야만이 비로소 사회적으로 루크에게 클래스마법을 다룰 권한이 주어질테니까.

    급할 건 없다지만, 목표가 있는데도 2년이나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것은 루크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군.”

    “그래, 2년만 기다리라고. 분명 라스상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

    “국제 마법경시대회에 참여하면 상장은 바로 주는거겠지? 그거라도 받아야겠어.”

    “……뭐라고? 너, 진심이야?”

    그는 기겁했다.

    라스상 유력후보자가 참가하는 국제 마법경시대회라니.

    그건 다른 아이들에겐 끔찍한 악몽이 되고 말 거다.

    솔직히, 애들 시험문제가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는가?

    루크가 나가면 당연히 우승이야 하겠지……만.

    “잠깐, 자격이 될까? 화장실 간다고 다 찍어서 낸거 아니었니?”

    ‘뭐, 정 나가고 싶다면야 어떻게든 추천장을 써줄수야 있어도…….’

    그래도 될까.

    형평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쪽은 막아야하는 입장 아닐까?

    어차피 루크는 그 대회에 굳이 나가야 할 필요도 없어보이는데…….

    “무슨 소리지?”

    이리저리 생각에 잠긴 남자에게 루크의 차분한 시선이 향했다.

    “나는 단 한번도 문제를 찍어서 냈다고 한 적이 없는데.”

    ——–

    벌컥, 탁.

    “고맙군, 다이튼.”

    “수고했다. 시험은 잘 봤냐?”

    “뭐, 시험이야 당연히 잘 보았지.”

    루크는 다이튼의 옆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찰칵소리가 나게 끼웠다.

    루크가 제대로 안전벨트를 착용했는지 확인한 다이튼이 엑셀을 밟으며 출발하자, 그제서야 파이가 어디선가 날아와 루크의 품 속에 안겨들었다.

    파이도 정령은 정령인지라 마탑을 좀 꺼려했기에 잠깐 떨어진 시간, 상당히 외로웠다는 모양이다.

    루크는 그런 파이를 마력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그르릉, 그르릉, 하며 기분좋은 소리를 내는 파이.

    그런 파이를 바라보며 루크는 오늘 마탑에서 있었던 일들을 콧노래에 담아 흥얼거리고 있다.

    다이튼이 루크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짝 살피고는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잠깐 본 루크의 표정은 어딘가 기분이 좋아보였다.

    ……불안하게 말이다.

    ‘저 표정은 분명 뭔가 사고를 치고 후련해진 표정인데.’

    예르나는 마냥 루크를 귀여워만 하지만, 다이튼은 이 녀석의 속에는 분명 괴물같은 무언가가 들어있음을 알기에 그 미소를 곧이곧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괴물은 몰라도 용은 확실히 들어있잖은가.

    다이튼은 살짝 떠보기로 했다.

    “흠, 루크.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셨나?”

    뜨끔.

    루크의 귀가 곤두섰다.

    다이튼의 의심엔 완전히 떳떳할 수가 없었으므로.

    실제로 시험을 대충 치르고나서 화장실을 가는 척, 그리고 화장실이 고장난 척을해서 마탑을 구경한건 사실이고.

    그건 다시 생각해봐도 확실히 부끄러울만한 일이다.

    “……사, 살짝 해프닝이 있었을 뿐일세!”

    “그래, 알겠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길, 나는 라스상 유력후보라더군.”

    “뭐? 라스상? 그건 또 무슨 상이야?”

    드랙상정도는 일반인들도 흔히 알지만, 마법이론계의 드랙상이라 불리는 라스상까지 알고있는 사람은 사실 흔치 않았다.

    마법사쪽으론 별 관심이 없는 다이튼이 라스상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루크는 다이튼의 지적수준에 맞춰서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설명했다.

    “뭐, 좀 어려운 마법문제 하나 풀었더니 준다더군. 그런데 2년이나 기다리라고 해서 일단은 수상경력을 위해 국제 마법경시대회에 나갈 생각이다.”라고.

    루크의 설명을 들은 다이튼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 뭐냐. 무슨 상을 2년이나 기다리래? 바로 안주고.”

    “그 점은 나도 불만이로군. 그건 어쩔 수 없지, 시상식이 4년마다 있다고 하니.”

    “그래? 뭐, 행사같은거 할 때 같이 주려나보네…….”

    다이튼은 생각했다.

    ‘요즘 마탑은 무슨 문제하나 풀었다고 상을 준다냐. 시험 잘 봐서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뭐, 예상한 것보단 별 일 아니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필즈상받은 초딩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를 나가는 꼴….

    뭐지 양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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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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