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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황제를 보기 위해 천황궁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장비를 모두 챙긴 수술팀도 함께다. 내 옆에서는 앰브로시아가 짧은 보폭으로 콩콩 뛰었다.

     

    “폐하의 증상은요?”

     

    “중독 같소. 치유주문을 쓰면 오히려 괴로워하시오.”

     

    “저주겠군요. 감염 경로는요?”

     

    “권터 전하가 가져온 술을 드셨소. 분명 먼저 검사했을 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이상하오.”

     

    “신성력을 먹이로 삼아 흡수하는 계열일 겁니다. 자매님의 검사 주문을 무효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서 치유주문을 쓰면 오히려 강해져서 폐하께서 안 좋아지셨던 거로군. 소녀의 실책이오.”

     

    앰브로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면 차분히 검사해서 발견하지 못했을 것도 아니지만, 권터의 선물이었다고 하니 황제가 방심했겠지.

     

    그 상황이 되도록 수를 쓴 건 리비오다.

     

    “선생님, 타시죠!”

     

    내의원 정문을 나서니 신성기사가 앰뷸런스를 준비하며 내게 손짓했다.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갑자기 내 앞을 기사들이 가로막았다.

     

    또각, 또각.

     

    기사들 앞으로 그녀가 자신 있게 나섰다.

     

    “공자.”

     

    아셀라의 금발이 기품있게 흩날렸다.

     

    “황녀님.”

     

    “폐하께 갈 생각이야?”

     

    “예, 급합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명령이야. 가지 마.”

     

     

     

    ***

     

     

     

    아셀라는 황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의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이야.’

     

    천리안에서 황제 암살 사건은 몇 년은 후의 일이었기에 조금 방심했다.

     

    그녀가 미래를 보았을 때, 리비오라는 주치의가 근무한 기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수상하다 여기긴 했어도 진범인지까지는 몰랐기 때문에 대응이 늦었다.

     

    뼈아픈 실수다. 황제가 당장 죽는다면 아직 파벌을 키우지 못한 그녀는 승계전에서 불리해진다.

     

    ‘하지만 황태자인 권터도 승계를 못 할 상황이니까.’

     

    오히려 혼란의 시기를 제압한다면 큰 기회가 될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건 나중 일이야.’

     

    당장 그녀에게 중요한 건 정치보다도 라스.

     

    라스가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다.

     

    고트베르크 후작이 불려갔던 것처럼, 라스에게도 치료 요청이 들어올 것이다.

     

    그가 황제를 치유하러 나선다면 위기에 빠질 게 뻔했다.

     

    천리안에서도 제국 최고의 치유사들이 모두 달라붙었지만 실패하지 않았나.

     

    황제는 확실하게 죽었다.

     

    그리고 라스가 황제 시해의 책임을 뒤집어쓴다면.

     

    최악의 경우엔 라스 역시 고트베르크 후작처럼 처형당하리라.

     

    ‘그 미래에선 차기 황제였으니까, 내가 최종적으로 명령했겠지만.’

     

    아셀라는 대세의 흐름 때문에 자신이 그리 명령했으리라 추측했다.

     

    그곳에선 라스가 자신의 주치의도 아니니 고트베르크를 비호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자신이 아닌 그 누구라도 황제를 시해한 벌은 엄중하게 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 가능성을 상상하니 아셀라는 황실의 흐름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명령이야. 가지 마.”

     

    그 이유로 아셀라는 더욱 강한 어조로 라스에게 말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앰브로시아를 보니 더욱이 천리안의 광경이 겹쳐 보였다.

     

    두 사람의 목이 단두대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라스가 침착하게 그녀에게 대답했다.

     

    “황녀님, 폐하께서 위독하십니다.”

     

    “들었어. 하지만 넌 내 주치의잖아. 폐하의 옥체에 손대는 건 월권이야.”

     

    “아셀라 전하, 황명이 있었습니다.”

     

    앰브로시아가 끼어들었다. 아셀라가 그녀를 재릿 노려보았다.

     

    “황명이라. 고트베르크에게 자신을 치료해 달라고 확실하게 지정한 명이셨는가?”

     

    “으음….”

     

    “자네들 치유사의 판단하에 내 허가도 받지 않고 주치의를 데려가고 있는 상황은 아닌가, 앰브로시아.”

     

    “그것이…”

     

    앰브로시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황제는 고트베르크의 이름만을 말했을 뿐, 어떻게 하라고는 차마 명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황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는 폐하의 주치의인 그대의 협력 요청만 있는 게 아닌가. 본녀의 명령보다 우선될 권한은 없다.”

     

    아셀라의 논리도 옳았기에 앰브로시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원칙대로라면 라스에게 황제를 치료할 의무가 없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이 따른다.

     

    만일 황제가 하직한다면 월광궁은 고트베르크를 잃는다. 앰브로시아도 그 리스크를 이해 못 하진 않았다.

     

    “황녀님,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대치 상황을 풀기 위해 라스가 아셀라의 손목을 잡아채고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가 아셀라를 가로수 아래까지 데려간 후 다급하게 부탁했다.

     

    “이럴 때까지 그러지 마세요.”

     

    “왜, 또 내 명령에 불복하려고?”

     

    “설마 폐하가 지금 돌아가시는 게 월광궁에 이익이라 그렇습니까?”

     

    “뭐?”

     

    “권터가 저리 됐으니 혼란 속에서 헤이케만 제압하면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라스의 말은 정론이었다. 황실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아셀라는 원망이 차올랐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가 미워도 너무 미웠다.

     

    물론, 천리안에 대해 말한 적 없는 것도 그녀였다.

     

    라스는 찾아올 미래의 가능성을 모르니까 저리 생각하겠지.

     

    “진짜 그렇다면 저는 불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어요.”

     

    그놈의 환자.

     

    화를 참지 못한 아셀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폐하는 못 살려!”

     

    “할 수 있어요. 제 실력 아시잖아요.”

     

    “아무리 공자가 실력이 있어도 모르는 일이잖아…! 네가 폐하를 시해했다는 죄를 뒤집어쓰면 어쩌려고 그래!”

     

    “무슨 가정이 그렇게 극단적이에요. 모의전 때도 그렇고,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네가 죽는 장면을 봤으니까.

     

    아셀라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공자, 네가 의술에 자신 있는 만큼 나도 정치에는 자신 있어. 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아.”

     

    “그건…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라스도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셀라가 심호흡을 했다.

     

    “네가 실패하면? 황실에선 다음 황제를 정하기 위해 승계 전쟁이 일어날 거야. 누가 차기 황제가 되든 그동안 실패의 책임 때문에 너와 앰브로시아는 구금될 거고.”

     

    “…그렇죠.”

     

    “차기 황제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민중에게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주려 할 거야. 폐하를 시해한 범인들을 광장에서 처형하면 확실하지 않겠어?”

     

    “효과적이겠지요.”

     

    “네가 거기에 휘말리겠다고는 생각 안 해봤니?”

     

    “그야.”

     

    라스도 아셀라의 주장은 반박하지 못했다.

     

    아셀라의 예측은 라스가 아는 실제 역사를 그대로 읊고 있었으니까.

     

    천리안에 대해 모르는 라스는 역시 아셀라의 판단력이 우수하다고 여겼다.

     

    “혜안이십니다. 반박할 여지 없는 완벽한 예측이에요.”

     

    “그렇지? 알아들었으면 폐하는 그 주치의들에게 맡겨. 그게 원래 걔들 일이잖아.”

     

    “하지만 황녀님, 그 가정은 제가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거잖아요.”

     

    라스가 아셀라를 향해 씨익 웃었다.

     

    “성공합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아셀라는 깜빡 넘어갈 뻔했다.

     

    전에 그를 공주의 치료에 보냈던 것처럼 믿어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그래선 안 된다.

     

    저렇게 자만만 하다가는 언젠가 굴러떨어져 실패하고 만다.

     

    지금처럼 돌이킬 수 없을 때는 더더욱,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아셀라는 마지막으로, 애원하듯 그에게 본심을 던졌다.

     

    “가지 마.”

     

    “가겠습니다.”

     

    라스가 걸음을 옮겨 아셀라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아셀라가 그를 향해 홱 몸을 틀었다.

     

    “공자!”

     

    그가 아셀라의 부름을 무시하고 마차를 향해 뛰어갔다.

     

    아셀라는 양 주먹을 꽉 쥔 채, 그의 뒷모습을 허망히 지켜봤다.

     

     

     

    ***

     

     

     

    “이랴!”

     

    기사가 급하게 말을 몰았다. 앰뷸런스로 천황궁까지는 3분이면 도착한다.

     

    “고트베르크, 아셀라 전하는 괜찮겠는가.”

     

    앰브로시아가 내게 물었다.

     

    “나중에 혼은 나겠지요. 이미 킵해놓은 벌도 하나 있어서, 조금 걱정은 되네요.”

     

    “으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폐하일세.”

     

    “동의합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셀라의 예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황제의 죽음에서 이어진 사건으로 고트베르크는 멸문했으니까.

     

    뭐, 암살죄를 물은 것도 아셀라였지만.

     

    본래 역사에서는 황제가 죽자마자 리비오가 잠적했기에 죄를 물을 대상이 없었다.

     

    그 화살이 아버지와 앰브로시아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누가 황제가 되든 일어날 만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해낼 수 있다.

     

    내게는 팀과 기술이 있으니까.

     

     

    마차가 도착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황제의 침실까지 향한다.

     

    비상 상황인 만큼 앰브로시아의 권한으로 친위대의 검문은 가볍게 진행했다.

     

    “폐하는?”

     

    “점점 안색이 안 좋아지십니다.”

     

    부주치의들이 침대에 누운 황제를 둘러싸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치유술이 먹히지 않으니 당연하다.

     

    “여기부터는 맡겠습니다. 옥체에 손을 대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부탁하오. 책임은 내가 지겠소.”

     

    앰브로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상태를 살핀다.

     

    진단으로 나온 증상은 복통과 구토, 동공축소, 근섬유성연축이었다.

     

    부상은 중독이 분명하다.

     

    “아트로핀 정맥주사.”

     

    “네엣.”

     

    클로에가 금방 세팅을 마친다. 곧장 팀원들이 기록에 들어간다.

     

    동공을 살핀다. 상태가 나아지면 확대될 것이지만, 아직 반응은 없다.

     

    “시간 당 2mg로 맞춰서 미량 주사 계속 실시해.”

     

    단순한 중독이 아니다. 현상을 일으키는 저주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MRI 검사가 필요하겠어.”

     

    나는 양손을 비벼 손바닥을 황제의 몸 위에 가져갔다.

     

    5센티미터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다.

     

    전신을 훑으며 천천히 팔을 내려간다.

     

    아셀라는 이 검사를 받으며 굉장히 질겁했었지.

     

    결과가 상태창에 나왔다. 수정구 출력 기능을 터치해 띄워낸다.

     

    “부상 부위는 위. 폐색 상태야. 운 좋게 유문이 경련으로 닫혀서 독성물질이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진 않았어. 휴고.”

     

    “데이터에 없는 형태입니다. 최소한 상급 이상의 저주입니다.”

     

    아뮬렛으로 이미 씌인 저주를 조종하려면 어떤 종류인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휴고가 모르는 중급 이하의 저주는 거의 없으니 상당한 놈일 확률이 크다.

     

    저주를 꺼내 감염자에게서 떨어트리면 그땐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내시경은?”

     

    “아직 시험품이라 불안정합니다.”

     

    장비팀에서 오토마타를 제작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내시경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직 실전에 투입할 레벨은 아니다.

     

    나이가 많은 황제이니 개복보다 내시경 쪽이 안전하긴 하다.

     

    다만 이런 케이스에선 내시경 수술이 추후 암 발생률을 높이기도 한다.

     

    판단을 마치고 앰브로시아에게 말했다.

     

    “자매님, 지금부터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리는 소리를 할 텐데,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폐하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무, 무슨 말이길래 그러시오.”

     

    나는 긴장하는 앰브로시아에게 준비동작도 없이 폭탄을 투하했다.

     

    “폐하의 옥체에 칼을 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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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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