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9

       이제 안전한 걸까?

       소녀는 그만 맥이 탁 풀려 그대로 잠들어버릴 뻔했다.

       그런 그녀의 정신을 간신히 붙든 것은 옆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였다.

         

       “정신 차려. 아직 안 끝났어.”

         

       감기려던 소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를 쫓아오던 괴물은 이제 없었지만, 확실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골목 너머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들렸다.

       짐승의 것과 같은 으르렁거림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인간을 구기고 꺾어 놓은 것 같은 실루엣이 건물 사이로 그림자를 흩뿌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소녀는 오늘 아침이 그리웠다.

       모두가 저주 역병에 걸려 끙끙 앓고 있던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았다.

         

       그때는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녀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도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녀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소녀는 그녀의 옆에 선 마법사를 올려다봤다.

       그녀 나이의 2배 정도 되었을까?

         

       머리카락도, 피부도 온통 하얀색이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머리에는 붉은색 베레모를 썼다.

       이목구비가 모두 날카롭고 또렷한 것이 인형처럼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소녀는 그녀를 본 기억이 있었다.

       자신을 치료해준 잘생긴 마법사 아저씨의 일행이었다.

         

       그녀는 그 아저씨처럼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 자리에서 엄마에게 뜯어먹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마야에게 반가운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괴물들의 출현을 두려워하지도, 사람들의 죽음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마야의 정신은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그녀가 목격한 장면들을 토대로 얻은 정보를 정리하고 있엇다.

         

       1. 감염자는 다른 역병 환자와 접촉해서 그를 감염자로 만들 수 있다.

       2. 감염자는 시체에는 관심 없다. 살아있는 것만 먹으려 한다.

       3. 감염자의 신체 능력은 살아 있을 때와 유사하나 필요에 따라 목적을 가지고 변형되기도 한다.

         

       생각에 잠긴 마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무심한 태도가 방금 부모님을 잃은 소녀의 눈에는 괴물만큼이나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 엄마…….”

         

       마야는 자신을 보며 벌벌 떠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두려움은 익숙한 것이었다.

         

       별종, 귀신, 정신병자.

       자신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눈빛.

         

       마야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엄마에게 살해당할 뻔했는데, 왜 나를 두려워하고 엄마를 찾고 있냐고.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학습한 사회성’에 따라 그녀는 행동했다.

         

       “일어서. 염동력은 해제했어.”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소녀는 밀쳐진 것처럼 뒤로 넘어졌다.

       마야에게서 멀어지려고 몸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야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빤히 바라봤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저 소녀가 운동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그녀의 싸늘한 시선이 어떠한 강요나 압박으로 비쳤다.

       소녀는 허겁지겁 옷을 털고 일어섰다.

         

       마야는 그녀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하고는 텅 빈 골목을 가리켰다.

         

       “얼른 도망쳐. 지금이라면 이쪽 길로 성당까지 달릴 수 있을 거야.”

         

       마야는 두 번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녀를 지나쳐 성당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곧 그녀의 등 뒤로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멀리 보이는 교회 언덕을 향해 달렸다.

         

       마야는 뒤를 흘끗 돌아봤다.

       그녀도 소녀의 뒤를 따라 성당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더스타인과 발렌티나의 치료 경쟁이 20명째를 넘겼을 무렵, 그녀는 거기서 나왔다.

       그곳에 있어봤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환자를 치료해나갈 때마다 위태해져 가는 단장님의 상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발렌티나라는 수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자신과 달리 고생하고 있는 단장님 옆에서 그분이 하는 일을 함께 거들 수 있었다.

       그녀와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는 단장님에게는 이유 모를 야속함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그것은 마야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머릿속에 멤도는 단어는 많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그녀와 평생 관련 없는 단어들이었다.

         

       다시 비명 하나가 들려왔다.

         

       그녀는 가능성 낮은 추론을 전부 지워버리고 가장 유력한 후보 하나만 남겼다.

         

       답은 명확했다.

       자신은 단장님의 제자였다.

         

       -웨엥.

         

       월리는 그녀가 내린 결론에 뭔가 불만이 있는 듯 울음을 토해냈다.

         

       조용히 해.

       지금은 이런 고민할 때가 아니야.

         

       마야는 요동치는 마력을 갈무리했다.

         

       그래. 나는 그분의 제자야.

         

       그녀는 다시 성당쪽을 바라봤다.

       스승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이니까.

         

       거기다 그 옆에는 무지막지한 신성력을 보인 그 수녀가 붙어 있었다.

       그녀의 도움이라면……안전하겠지.

         

       제자인 자신이 할 일은 하나였다.

       바로 스승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가 여기 있으면 어떤 일을 하길 원했을까?

         

       답은 뻔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마야는 환상 마법 여러 개를 동시에 시전 했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형상이 나타났다.

         

       감염자가 환상에 속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이들을 통해 감염자들을 유인할 것이다.

         

       마야는 그들을 감염자 무리에게 쫓기고 있는 주민들 뒤로 달리게 했다.

         

       환상 주민들이 마을 대로를 질주했다.

       그들의 두려워하는 표정은 실감났다.

       감염자들이 주민들을 내버려 두고 그들을 쫓았다.

         

       “키아아악!”

       “먹는……다!”

       “퀘에에!”

         

       겁에 질린 주민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능숙하게 진흙탕을 뛰고 울타리를 넘었다.

       그들은 어차피 환상이었기에 원래 신체상 불가능한 동작도 능숙하게 해냈다.

         

       마야는 그렇게 감염자들에게 쫓기는 마을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환상을 이용해 그들을 구해냈다.

         

         

       ***

         

         

       치료를 재개하고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에는 순번을 기다리는 데 지쳐 우격다짐 식으로 치료를 요구하는 인간들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가 이미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놀라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우리 단원들이 마을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병사를 시켜 먼저 저녁이나 들고 있으라고 전령을 보냈지만, 그들이 꼭 내 말을 따른다는 법이 없었다.

       특히 엘라라면 내가 무슨 짓을 꾸미는 건 아닐까 의심해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미치광이로 변한 가족과 이웃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들이 산 사람의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그들이 몸을 변형해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저주 역병이 다시 진행된 것은 아닐까요?”

         

       이바넨코 경의 말에 발렌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바로 알아챌 수 있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주 역병은 그저 몸이 아픈 병일 뿐입니다! 사람을 마귀로 만드는 힘 같은 건 없습니다!”

         

       발렌티나는 사람들이 날뛰는 원인을 몰랐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정도 단서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들의 묘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광신도.

       그들이 분명했다.

         

       TTT에는 각 시리즈의 테마에 맞게 몇 가지 종류를 갖춘 양산형 적들이 등장했다.

       

       TT1에는 곡예사들이었고, TT2는 가장행렬, TT3는 광신도였다.

         

       광신도는 원더스타인의 추종지들이었다.

       TT3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용사들과 원더스타인을 숭배하는 종교단체와의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광신도들은 매스테이지마다 지겨울 정도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의 힘에 당한 일반인 피해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체 일부분이 일그러지고 변형됐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의 특기인 ‘맨튤라의 칼날’이나 ‘본호그의 창’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들이 갑자기 여기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TT3의 내용은 6, 7년 뒤의 이야기였다.

         

       설마 벌써부터 나를 숭배하는 자들이 이곳에 어슬렁거린단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TTT의 내용과 달랐다.

       아무리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교주인 내가 여기 있는데, 만들지도 않은 신도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뭔가가 작용한 게 틀림없었다.

       게임 속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광신도.

       원더스타인이 그들을 어떻게 만들어냈더라?

       분명 설정 상에는 의식을 통해 그의 피를 마시고…….

         

       “원더스타인 씨, 괜찮은 겁니까?”

         

       커다란 꽃장식이 시야를 가렸다.

       발렌티나가 핑크빛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내 앞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미소까지 지어보였으나 발렌티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원더스타인 씨는 쓰러져 죽으려 할 때도 그렇게 웃고 있었단 겁니다! 당신 같은 숙련된 거짓말쟁이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겁니다!”

         

       그녀는 반쯤 농담으로 건넨 말 한마디였다.

       그러나 나는 광신도의 출현 때문에 원더스타인의 정체가 드러나리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서 자조적인 말을 내뱉고 말았다.

         

       “후후, 그렇겠지요. 저 같은 마도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발렌티나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제, 제 말은 그런 말이 아닙니…….”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원목으로 만든 문이 닫혔다.

       마지막 마을 사람이 들어오고 성당 정문에 걸쇠가 걸렸다.

       창을 든 병사들이 그앞을 경계했다.

         

       나는 마야가 어딨는지 찾았다.

       그렇게 눈에 잘 띄는 하얀 머리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녀 정도 되는 마법사가 고작 광신도 따위에게 당할 리는 없겠지만 걱정이 되었다.

         

       상태창만 회복되었어도 명성치 150을 달성해 얻은 새 능력을 쓰면 되는데…….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젊은 남자 한 명이 걸어나왔다.

         

       “잠깐만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내 옆에 선 병사가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자네는 아까 마법사님의 서커스단에 전령으로 가지 않았나?”

       “맞습니다. 다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거기서 어떤 끔찍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보고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설명했다.

         

       괴물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까, 어떻게 죽이는게 재밌나 떠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괴물 무리라고?”

       “당신이 하던 게 괴물 서커스였소?”

         

       이바넨코 경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청년이 말한 내용을 듣자마자 나는 그것이 대본의 대사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침착하게 웃으며 이 ‘오해’가 얼마나 황당한 건지 설명했다.

         

       마을 사람들 다수의 얼굴이 풀어졌으나, 전령으로 보낸 젊은이와 이바넨코 경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괴물 단원인 것은 사실이라는 것 아닙니까?”

       “네. 하지만 그저 그들은 외모가 조금 특이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 그렇겠죠!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외형을 타고 났을까요? 여러분! ‘저주 받은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청년이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바넨코 경이 나를 향해 씁쓸한 눈빛을 던졌다.

         

       대다수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저주 역병은 풍문으로만 듣던 끔찍한 것이었고, 그 증상이나 후유증에 대해서는 그들 같은 촌 사람들이 잘 아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청년은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스산한 표정을 지었다.

         

       “저주 역병은 증상도 증상이고, 치사율도 치사율이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불안한 예감을 느꼈다.

         

       “바로 역병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불임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데볼루트가 몸을 헤짚어 놓은 상처라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임신을 한다해도 문제입니다. 아니, 어찌보면 더 심각한 문제죠.”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결정적인 정보를 풀어놓았다.

         

       “저주 역병에 걸렸던 사람들의 자식들은 높은 확률로 기형아로 태어납니다. 난쟁이이거나 피부병이 있는 정도면 약한 편이죠. 보통은 머리나 팔이 여러 개 달리거나, 혹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끔찍한 모습을 한 아기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의 말에 대다수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저주 역병, 데볼루트, 괴물 단원.

       설마 그런 식으로 모든 게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