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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베니! 우리가 이겼어요!”

       

       “…앗, 응.”

       

       어쩐지 질린 표정의 베니가 내 시선을 피했다.

       

       너무해.

       

       시무룩해져서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우웅-

       

       나를, 정확히는 내 품의 여신상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던 신성력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새하얀 공간을 밀어내던 성역 또한 점점 쪼그라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

       

       강화되었던 신체 능력과 재생력이 사라지며 돌연 무겁게 느껴지는 몸. 활력이 부족해 숨 쉬는 것조차 힘겹다.

       

       일종의 역체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빰빠카빰! 요나는 비싼 스태프를 손에 넣었다!”

       

       고전 RPG 게임 풍으로 말하며 모르가나의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투명하게 빛나던 보석이 붉게 물들긴 했지만, 아무튼 겁나 비싸 보이는 마도구.

       

       실제로 마탑의 장로가 쓰던 물건이니 팔면 어마어마한 골드를 받을 수 있겠지. 만약 너무 비싸서 안 팔리더라도 내가 쓰면 그만이고.

       

       별다른 주문도 없이, 공간을 제 것처럼 주무르던 모르가나의 위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히히 웃으며 이젠 열 수 있게 된 아공간 반지에 스태프를 집어넣었다.

       

       베니도 같이 싸우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슬그머니 베니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추, 축하해?”

       

       베니는 잔뜩 겁먹은 사람처럼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아니,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거야?

       

       “베니. 저 좀 서운해요.”

       

       “뭐, 뭐가?!”

       

       “왜 저를 피하시나요? 저는 베니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는데!”

       

       “피하는 거 아냐! 그냥….”

       

       “그냥 뭐죠?”

       

       “그냥 몸이 좀 이상해. 눈을 못 마주치겠어. 억지로 마주치려 하면 막 떨려서….”

       

       “헉! 설마 저한테 반하신 건가요?! 아이 참. 곤란하네요. 저한테는 엘리가 있는데.”

       

       “그런 거 아냐! …근데 진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전체적으로 예민해졌다고 해야 하나 말랑해졌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안 그래도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가 땀에 젖어 한층 더 노골적인 윤곽을 내보인다.

       

       어느 정도였냐면 옷 위로 배꼽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

       

       당연히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얼마나 베니의 가슴이 아담한지 알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 베니가 속옷 대신 니플 패치만 붙이고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빵디가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 주장하던 것이, 지금은 티팬티를 입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뇌내에 기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의 몸은 원래 말랑말랑하고 예민했던 것 같은데요?”

       

       “???”

       

       갑자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벙찐 베니.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 일단 주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지금의 베니는 심리적 자극에 취약하다는 소리죠?”

       

       “응…마지막에 모르가나가 공간 절단을 시전했지? 뭘 베어냈는지 알아?”

       

       “공간 절단? 설마 등 뒤에 가만히 있던 그 단두대가 공간 절단 마법이에요?”

       

       “응.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그게 발동한 이후로 내 상태가 이상해진 것 같아.”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말랑평평납작 가슴을 쭈욱 펴다가도, 이내 흠칫하며 쪼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베니.

       

       그래서야 마치 자랑할 것도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문제의 해결이 더 중요하니까. …절대 지적했다가 더는 못 보게 될까봐 그런 게 아니다!

       

       “정신계 마법이려나요.”

       

       “글쎄. 그건 아니지 않을까? 모르가나는 어디까지나 공간 마법 전문이었고, 겸사겸사 관련이 깊은 시간 마법이나, 회춘에 관한 연구도 하긴 했지만 정신계는 파고든 적이 없거든.”

       

       “…시간 마법이요?”

       

       “으응. 공간과 시간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마법을 쓰진 못할 거야. 기껏해야 자기 자신에 한해 시간의 흐름을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정도?”

       

       타인은 물론이요 물건에도 적용하지는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의 시간에 한해 약간의 조작을 가하는 것.

       

       그게 필멸자에게 허락된 시간 마법의 전부다.

       

       무슨 제약이 있다거나, 위험한 힘이라 금지되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순수하게 너무 어려운 나머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이상을 해낸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마 모르가나가 별다른 영창 없이 바로 마법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일 거야. 자신의 시간을 가속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식 계산을 보조한 거겠지.”

       

       “생각해 보면 주문이나 수인을 맺은 적은 없었네요. 마법진도 이미 그려둔 걸 불러오기만 했고요.”

       

       “응. 사고 가속으로 이미 머릿속에서 완벽한 계산이 끝난 상황이라 가능했던 일일 거야. …잠깐 이야기가 새긴 했는데 아무튼 모르가나는 정신계 마법에 무지해.”

       

       “그럼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

       

       “괜찮아. 일단 지상에만 올라가면 이런 뭔지 모를 상태이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해 주는 마법사와 사제들이 있으니까. 나가기만 하면 돼……길은 알지?”

       

       “물론이죠! 저만 따라오시면 이번에야말로……어, 음. 잠시만요.”

       

       “왜, 왜?”

       

       목소리를 내리깔자, 하염없이 바닥만 내려다보던 베니가 움찔한다. 무언가 불길함이라도 느낀 것처럼.

       

       “저기. 베니. 이거 어떻게 해요?”

       

       “뭐를?”

       

       “모르가나가 죽었는데 이 이상한 공간이 해제되질 않아서요.”

       

       “……어?”

       

       베니가 펄쩍 뛰며 제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정신을 집중하며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전방위로 뻗어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공간 전체를 더듬으며 윤곽을 유추하는 느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뜬 베니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해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르가나가 마지막에 뭘 절단했는지 알것 같아.”

       

       “뭔가요?”

       

       “여기.”

       

       “???”

       

       “우리가 있는 이 공간 자체를 잘라서 격리해 둔 거야.”

       

       “어…처음에 저희가 영문도 모른 채, 갇혔을 때랑 비슷한 상황인 거죠?”

       

       “맞아. 시작과 끝을 이어 반복되는 통로에 가뒀느냐, 모르가나의 마법으로 만든 영역에 가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무튼 갇혔다는 점은 똑같아.”

       

       “휴우. 다행이네요. 그럼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요. 물론, 베니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의 일이겠지만요.”

       

       “…그게 안 되니까 문제인 거야.”

       

       베니가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는 자세를 취했다. 슬쩍 드러난 발목이 동글동글하니 귀여웠다.

       

       “공간 채로 격리당하면서 샤도우와 떨어졌어. 연결이 끊어지진 않았는데,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샤도우가 안 보이네요.”

       

       “거기서 2번째 문제. 이 공간은 애초부터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야. 물론, 모르가나가 죽었으니 위험하지는 않겠지만…내 힘을 제약하는 성질마저 사라지지는 않았어.”

       

       한숨을 푸욱 내쉰 베니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내 마법은 내 과거에서 나와. 갇혀 지냈기에 무언가를 박살 내는 마법에 능하고, 인체실험 과정을 많이 봐서 신체 일부를 활용하는 마법을 자주 쓰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고 보니 베니의 마법은 꽤 징그러운 게 많았었죠. 전 개성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고마워. 근데 이 공간은 그런 내 마법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야. 여긴 일체의 추악함을 인정하지 않아. 그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마력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야.”

       

       “어, 음. 그러니까 그건….”

       

       “맞아. 처음에 그러했듯 억지로 부수고 나갈 수 없다는 소리야. 순수한 힘을 집약한 마법은 제약이 없겠지만 내 마력 자체가 부자유스럽고, 심지어 어찌어찌 균열을 일으키더라도 이를 찢어발기며 확장시켜줄 샤도우는 밖에 있어.”

       

       베니가 파르르 몸을 떨며 세상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 내 정신이 불안정해진 것도 샤도우가 너무 멀리 떨어져서겠지. 아핫. 웃기지 않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샤도우의 침식 덕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였어.”

       

       “…….”

       

       “미안 요나. 기껏 다시 돌아와 줬는데. 모르가나를 쓰러뜨리기도 했는데. 하지만 나 때문에 갇혀서 굶어 죽는다니…리디아에게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히끅.”

       

       이제는 아예 훌쩍이기까지 하는 베니.

       

       음. 확실히 정신이 불안정해지긴 했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벌써부터 울음을 터뜨리다니.

       

       잠시 고민하다 베니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마녀 모자를 벗기고 땀에 젖은 보라색 정수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베니.”

       

       “…응.”

       

       “저는 베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

       

       “왜냐면 그런 이유라면 내일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

       

       고개를 번쩍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베니. 하지만 심약해진 탓인지 눈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고개를 홱! 돌린다.

       

       “내, 내일 나갈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모르가나의 마법을 어떻게 무효화시켰는지 기억하시나요?”

       

       “…기적의 힘?”

       

       “맞아요. 작게나마 여신님의 성역을 열었거든요. 그 안에서 여신님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정상적인 형태로 고정시킨 거예요.”

       

       “성역?! 그거 고위 성직자 여럿이 며칠에 걸쳐 고행에 가까운 기도를 올려야 간신히 하루 열 수 있는 거잖아!”

       

       “넹. 근데 저는 혼자라 15분 정도밖에 못 열어요.”

       

       “15분이라도 혼자 여는 시점에서 말도 안 되는 건데?!”

       

       콩.

       

       기겁한 베니가 쪼그려 앉은 채, 엉덩이로 폴짝 뛴다는 뭔지 모르겠지만 재밌는 기예를 펼쳤다.

       

       “하, 하지만 이번에 한 번 열었으니, 다음에 열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래 걸리겠지? 좋아. 그럼 그동안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겠네. 가지고 있는 식량은….”

       

       “하루에 한 번씩 열 수 있는데용?”

       

       “……?”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만 끔뻑이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었다.

       

       “제가 누구?”

       

       그리고는 엄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여신님이 편애하시는 예비 성자.”

       

       성역의 쿨타임이 돌기까지. 앞으로 약 24시간.

       

       벙찐 베니를 향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뭐 하고 놀까요? 뭐 하고 놀까요?”

       

       하루는 길다.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ㅇㅅ하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는 방…

    무엇을 생각하셨나요?

    야스도, 임신도, 심지어는 원신도 아니라 야숙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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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EP.109





       “베니! 우리가 이겼어요!”


       


       “…앗, 응.”


       


       어쩐지 질린 표정의 베니가 내 시선을 피했다.


       


       너무해.


       


       시무룩해져서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우웅-


       


       나를, 정확히는 내 품의 여신상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던 신성력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새하얀 공간을 밀어내던 성역 또한 점점 쪼그라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


       


       강화되었던 신체 능력과 재생력이 사라지며 돌연 무겁게 느껴지는 몸. 활력이 부족해 숨 쉬는 것조차 힘겹다.


       


       일종의 역체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빰빠카빰! 요나는 비싼 스태프를 손에 넣었다!”


       


       고전 RPG 게임 풍으로 말하며 모르가나의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렸다.


       


       투명하게 빛나던 보석이 붉게 물들긴 했지만, 아무튼 겁나 비싸 보이는 마도구.


       


       실제로 마탑의 장로가 쓰던 물건이니 팔면 어마어마한 골드를 받을 수 있겠지. 만약 너무 비싸서 안 팔리더라도 내가 쓰면 그만이고.


       


       별다른 주문도 없이, 공간을 제 것처럼 주무르던 모르가나의 위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히히 웃으며 이젠 열 수 있게 된 아공간 반지에 스태프를 집어넣었다.


       


       베니도 같이 싸우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슬그머니 베니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추, 축하해?”


       


       베니는 잔뜩 겁먹은 사람처럼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아니, 아직도 저러고 있는 거야?


       


       “베니. 저 좀 서운해요.”


       


       “뭐, 뭐가?!”


       


       “왜 저를 피하시나요? 저는 베니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는데!”


       


       “피하는 거 아냐! 그냥….”


       


       “그냥 뭐죠?”


       


       “그냥 몸이 좀 이상해. 눈을 못 마주치겠어. 억지로 마주치려 하면 막 떨려서….”


       


       “헉! 설마 저한테 반하신 건가요?! 아이 참. 곤란하네요. 저한테는 엘리가 있는데.”


       


       “그런 거 아냐! …근데 진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전체적으로 예민해졌다고 해야 하나 말랑해졌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안 그래도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가 땀에 젖어 한층 더 노골적인 윤곽을 내보인다.


       


       어느 정도였냐면 옷 위로 배꼽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


       


       당연히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얼마나 베니의 가슴이 아담한지 알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 베니가 속옷 대신 니플 패치만 붙이고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빵디가 얼마나 작고 귀여운지 주장하던 것이, 지금은 티팬티를 입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뇌내에 기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의 몸은 원래 말랑말랑하고 예민했던 것 같은데요?”


       


       “???”


       


       갑자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벙찐 베니.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 일단 주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지금의 베니는 심리적 자극에 취약하다는 소리죠?”


       


       “응…마지막에 모르가나가 공간 절단을 시전했지? 뭘 베어냈는지 알아?”


       


       “공간 절단? 설마 등 뒤에 가만히 있던 그 단두대가 공간 절단 마법이에요?”


       


       “응.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그게 발동한 이후로 내 상태가 이상해진 것 같아.”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말랑평평납작 가슴을 쭈욱 펴다가도, 이내 흠칫하며 쪼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베니.


       


       그래서야 마치 자랑할 것도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문제의 해결이 더 중요하니까. …절대 지적했다가 더는 못 보게 될까봐 그런 게 아니다!


       


       “정신계 마법이려나요.”


       


       “글쎄. 그건 아니지 않을까? 모르가나는 어디까지나 공간 마법 전문이었고, 겸사겸사 관련이 깊은 시간 마법이나, 회춘에 관한 연구도 하긴 했지만 정신계는 파고든 적이 없거든.”


       


       “…시간 마법이요?”


       


       “으응. 공간과 시간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마법을 쓰진 못할 거야. 기껏해야 자기 자신에 한해 시간의 흐름을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정도?”


       


       타인은 물론이요 물건에도 적용하지는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의 시간에 한해 약간의 조작을 가하는 것.


       


       그게 필멸자에게 허락된 시간 마법의 전부다.


       


       무슨 제약이 있다거나, 위험한 힘이라 금지되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순수하게 너무 어려운 나머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이상을 해낸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마 모르가나가 별다른 영창 없이 바로 마법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일 거야. 자신의 시간을 가속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식 계산을 보조한 거겠지.”


       


       “생각해 보면 주문이나 수인을 맺은 적은 없었네요. 마법진도 이미 그려둔 걸 불러오기만 했고요.”


       


       “응. 사고 가속으로 이미 머릿속에서 완벽한 계산이 끝난 상황이라 가능했던 일일 거야. …잠깐 이야기가 새긴 했는데 아무튼 모르가나는 정신계 마법에 무지해.”


       


       “그럼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는데요….”


       


       “괜찮아. 일단 지상에만 올라가면 이런 뭔지 모를 상태이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해 주는 마법사와 사제들이 있으니까. 나가기만 하면 돼……길은 알지?”


       


       “물론이죠! 저만 따라오시면 이번에야말로……어, 음. 잠시만요.”


       


       “왜, 왜?”


       


       목소리를 내리깔자, 하염없이 바닥만 내려다보던 베니가 움찔한다. 무언가 불길함이라도 느낀 것처럼.


       


       “저기. 베니. 이거 어떻게 해요?”


       


       “뭐를?”


       


       “모르가나가 죽었는데 이 이상한 공간이 해제되질 않아서요.”


       


       “……어?”


       


       베니가 펄쩍 뛰며 제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정신을 집중하며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전방위로 뻗어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공간 전체를 더듬으며 윤곽을 유추하는 느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뜬 베니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해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르가나가 마지막에 뭘 절단했는지 알것 같아.”


       


       “뭔가요?”


       


       “여기.”


       


       “???”


       


       “우리가 있는 이 공간 자체를 잘라서 격리해 둔 거야.”


       


       “어…처음에 저희가 영문도 모른 채, 갇혔을 때랑 비슷한 상황인 거죠?”


       


       “맞아. 시작과 끝을 이어 반복되는 통로에 가뒀느냐, 모르가나의 마법으로 만든 영역에 가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무튼 갇혔다는 점은 똑같아.”


       


       “휴우. 다행이네요. 그럼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요. 물론, 베니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의 일이겠지만요.”


       


       “…그게 안 되니까 문제인 거야.”


       


       베니가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는 자세를 취했다. 슬쩍 드러난 발목이 동글동글하니 귀여웠다.


       


       “공간 채로 격리당하면서 샤도우와 떨어졌어. 연결이 끊어지진 않았는데,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달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샤도우가 안 보이네요.”


       


       “거기서 2번째 문제. 이 공간은 애초부터 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야. 물론, 모르가나가 죽었으니 위험하지는 않겠지만…내 힘을 제약하는 성질마저 사라지지는 않았어.”


       


       한숨을 푸욱 내쉰 베니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내 마법은 내 과거에서 나와. 갇혀 지냈기에 무언가를 박살 내는 마법에 능하고, 인체실험 과정을 많이 봐서 신체 일부를 활용하는 마법을 자주 쓰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고 보니 베니의 마법은 꽤 징그러운 게 많았었죠. 전 개성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고마워. 근데 이 공간은 그런 내 마법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야. 여긴 일체의 추악함을 인정하지 않아. 그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마력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야.”


       


       “어, 음. 그러니까 그건….”


       


       “맞아. 처음에 그러했듯 억지로 부수고 나갈 수 없다는 소리야. 순수한 힘을 집약한 마법은 제약이 없겠지만 내 마력 자체가 부자유스럽고, 심지어 어찌어찌 균열을 일으키더라도 이를 찢어발기며 확장시켜줄 샤도우는 밖에 있어.”


       


       베니가 파르르 몸을 떨며 세상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 내 정신이 불안정해진 것도 샤도우가 너무 멀리 떨어져서겠지. 아핫. 웃기지 않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샤도우의 침식 덕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였어.”


       


       “…….”


       


       “미안 요나. 기껏 다시 돌아와 줬는데. 모르가나를 쓰러뜨리기도 했는데. 하지만 나 때문에 갇혀서 굶어 죽는다니…리디아에게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히끅.”


       


       이제는 아예 훌쩍이기까지 하는 베니.


       


       음. 확실히 정신이 불안정해지긴 했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벌써부터 울음을 터뜨리다니.


       


       잠시 고민하다 베니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는 마녀 모자를 벗기고 땀에 젖은 보라색 정수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베니.”


       


       “…응.”


       


       “저는 베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


       


       “왜냐면 그런 이유라면 내일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


       


       고개를 번쩍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베니. 하지만 심약해진 탓인지 눈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고개를 홱! 돌린다.


       


       “내, 내일 나갈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모르가나의 마법을 어떻게 무효화시켰는지 기억하시나요?”


       


       “…기적의 힘?”


       


       “맞아요. 작게나마 여신님의 성역을 열었거든요. 그 안에서 여신님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정상적인 형태로 고정시킨 거예요.”


       


       “성역?! 그거 고위 성직자 여럿이 며칠에 걸쳐 고행에 가까운 기도를 올려야 간신히 하루 열 수 있는 거잖아!”


       


       “넹. 근데 저는 혼자라 15분 정도밖에 못 열어요.”


       


       “15분이라도 혼자 여는 시점에서 말도 안 되는 건데?!”


       


       콩.


       


       기겁한 베니가 쪼그려 앉은 채, 엉덩이로 폴짝 뛴다는 뭔지 모르겠지만 재밌는 기예를 펼쳤다.


       


       “하, 하지만 이번에 한 번 열었으니, 다음에 열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래 걸리겠지? 좋아. 그럼 그동안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겠네. 가지고 있는 식량은….”


       


       “하루에 한 번씩 열 수 있는데용?”


       


       “……?”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눈만 끔뻑이는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었다.


       


       “제가 누구?”


       


       그리고는 엄지로 내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여신님이 편애하시는 예비 성자.”


       


       성역의 쿨타임이 돌기까지. 앞으로 약 24시간.


       


       벙찐 베니를 향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뭐 하고 놀까요? 뭐 하고 놀까요?”


       


       하루는 길다.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ㅇㅅ하지 못하면 나가지 못하는 방...

    무엇을 생각하셨나요?

    야스도, 임신도, 심지어는 원신도 아니라 야숙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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