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들은 마족에게서 순수한 어둠의 마나를 제공받는다네.”
영감님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어둠의 마나를 조금이라도 쌓는 순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네. 실제로 망가져가는 마법사를 본 적이 있지.”
영감님들이라면 별일을 다 겪은 사람들이다.
저런 경험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어둠에 물들 수록 그 사람의 인격이 사라지고 결국엔 광인이 되어 버리는 게 그들의 결말일세.”
일반적인 마나가 세상을 이루는 기운이라면, 어둠의 마나는 부정적인 것들을 이루는 기운.
그런 걸 몸에 쌓기 시작하면 어느누구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이다.
“오직 힘에 집착하는 광기에 이끌려 마족에게 영혼을 내주고 계약하게 되지.”
“왜 그렇게까지하는 거죠?”
“굉장히 쉽고 빠르기 때문이네. 오랜 수련이 필요 없이 미치기만 하면 경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네.”
“수련이 필요 없다고요…?”
“물론 마법을 쓰는 능력은 따로 배워야하지만, 써클을 빨리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처음 네크로맨서를 마주친 건 엘프의 숲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경지가 낮은 네크로맨서들의 실력이 마법사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5써클까지는 시간만 허락 된다면 무조건이라 할 만큼 성장이 가능하다네.”
네크로맨서들이 수가 많지 않아도 강하던 이유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시간만 있으면 마법사들을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이 모두 언데드를 다룬다고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을 전력이었다.
“사람을 죽여 언데드로 만들고, 그 언데드로 또 사람을 죽이네.”
그것의 반복.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아 마족을 소환하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그렇게 더 상위의 마족이 소환되고….
“마왕의 소환까지 갔던 것이 수십년 전에 있었던 대륙 전쟁이지.”
“허…”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왔다.
“우습게도 마족들은 대륙을 지배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네. 그저 살육이 주는 쾌감을 음미하는 듯했지.”
“완전히 미친놈들이네…”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영감님이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들에겐 그게 정상이네. 착한 마족이 있다면 그게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네크로맨서들이 마족을 불러내는 목적이 뭔가요?”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영감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세레나가 무언가를 회상하며 슬픈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생이에요.”
“…영생?”
더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세레나가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로셀 영감 역시 고개를 저었다.
“조사된 이유 중 가장 큰것이 영생이네. 마족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끝없이 강해지는 것.”
“웃기는 족속들이네요.”
“딱 한 명. 그것을 비슷하게 해낸자가 있지.”
“리치인가요?”
라이프 포스 베슬.
영혼을 가두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마법.
그곳에 영혼을 가두어 놓았으니 마족에게 빼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역시 마탑의 일원이었다고 전해지네.”
영감님의 말에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기록이 남아 있었으면 확실한 사실이었을 텐데, 저건 두루뭉실하지 않은가?
무슨 전설도 아니고 말이다.
“세상은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록 하지 않는다네.”
“음…”
“후대가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워 버리지. 지금 제국의 역사에도 왜곡된 부분이 많을 것이네.”
본래 역사란 승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엔 승자에게 유리하도록 기록되는 것.
“여하튼, 그 리치가 되는 방법부터가 문제일세.”
“또 사람들의 영혼을 끌어모아서 하는 건가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영감님이 고개를 저었다.
“리치가 되려면 8써클의 경지를 이루어야 하네.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인간의 몸으로는 8써클의 마나를 감당할 수가 없네.”
“…그러면 어떻게 리치가 된 거죠?”
말의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리치가 되려면 8써클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마나를 감당할 수가 없다.
“확실한 건 네크로맨서들을 심문해 봐도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네. 오직 그자만 알고 있지.”
돌연, 영감님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호기심을 잔뜩 내뿜을 때의 얼굴이었다.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네.”
이 영감탱이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리치의 존재를 아는 마법사들은 나름대로 추측을 하고 있을 것이네. 사안이 무거워 말을 꺼내지 않은게지.”
“….?”
“자네가 머무는 신당의 근처에 왜 그렇게 많은 마법사들이 있겠는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나?
유난히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많이 모이긴 했다.
줄곧 나를 따라다니기도 했고.
“리치와 자네가 다루는 힘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네.”
영혼과 관련이 있다?
순간, 조각들이 딱딱 들어맞기 시작했다.
지금 네크로맨서들이 찾고 있는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나 말고는 알아채지 못했던 이상한 마법들도 있었다.
세계수에 씌워 놓았던 만들어진 허주.
그리고 잡혀갔던 오크샤먼들.
“영감님, 그 책 가지고 있어요?”
“음?”
“오크샤먼이 읽을 수 있다는 그 책이요.”
그놈들이 썼던 해괴한 방법들은 주술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영혼을 타락시켜 허주로 만든 것도 말이다.
실제로 푸른 불꽃을 이용했던 놈들이니까.
떠억 –
영감님들의 입이 벌어졌다.
허겁지겁 아공간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는 손.
낡은 책이 모습을 드러내자 굴락이 격하게 반응했다.
“취이이익!”
펄떡- 펄떡 –
“괴,괴물인간 그건 어디서 났나?”
“크리스가 찾았네만?”
“인간샤먼! 대단하다! 존경한다!”
“….?”
아니, 영감님들은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다.
대충 단어 몇개만 던져도 그 뜻을 다 알아들을 정도로.
살아온 경험은 어떠한가.
닳고 닳아 연륜의 정점을 보이는 영감님들.
그런데.
“이걸 생각 못하신 건가요?”
“당연하지 않은가!”
“….?”
“어느 누가 오크가 굿을 하며 영혼과 접촉한다고 생각하겠는가! 한낱 몬스터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오크가 이런 종족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곳에 와서 제일 처음 만난것이 굴락이기도 하다.
딱 맞는 시기에 그 근처에서 깨어났고, 굴락의 형제를 만났으니까.
“취익! 이, 읽어봐도 되겠나?”
영감님의 손에서 굴락에게로 책이 넘어갔다.
순식간에 진지해지는 분위기.
떨리는 손이 책자를 넘기고, 참다못한 영감님이 입을 열었다.
“험험, 굴락이라 했는가?”
“그렇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가?”
굴락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괴물인간.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것도 모르나?”
저 오크새끼가 미친게 확실하다.
영감님한테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야 이새끼야, 빨리 말 안 해?”
“취,취익! 인간샤먼은 공짜다. 말해 준다.”
당당해졌던 굴락이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신성한 불꽃을 피워내는 방법이 적혀 있다.”
그거라면 이미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름 활활피워내고 있으니 말이다.
“오크샤먼만의 방법이다! 인간샤먼에게 배운 거랑은 전혀 다르다!”
“음?”
다르고 말고가 큰 문제가 아니라….
저 말대로면 저놈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불꽃을 재현해 냈다는 소리.
일렉기타로 굿거리를 연주하는 느낌이란 것이다.
즉, 재능이 굉장하다는 것.
굴락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 책을 넘겼다.
“취익! 인간샤먼에게 배운 게 더 효과적이다! 옛날방법 낡았다.”
“…의외로 사고도 개방적인데?”
“오크들 변해야 한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굴락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내어 읽어보라고도 해봤지만, 불가능하단다.
읽을 순 있지만 말로 할 수는 없는 글자라나….
“취익! 불꽃의 활용 방법이 적혀 있다.”
모두의 관심이 굴락에게로 쏠렸다.
“영혼을 전사의 땅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
“나도 처음 알았다! 오크의 영혼은 돌아갈 곳이 존재한다.”
굴락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저거….
복 받쳐 오르는 얼굴인가?
아니면 위협을 하는 건가?
“오크의 영혼도 갈 곳이 존재했다…취이익…!”
굉장히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성한 불꽃으로 영혼을 태운다.”
“….?”
“그곳으로 오크의 영혼이 사라진다!”
성불을 시키는 천도제와 비슷하기도 하다.
“샤먼의 영혼도 보내야 한다.”
“저번에 봤던 그 영혼?”
“그렇다. 그래야 완전해진다고 적혀 있다.”
굴락이 다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샤먼의 영혼이 불꽃 속으로 사라지면…”
굴락에게서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조차도 무심하게 넘겼던 일.
그걸 다시 듣게 될 줄이야.
“푸른 보석이 생겨난다. 오크의 보물! 인간샤먼, 복채 갚는다!”
여러분 공지로 한번 올렸지만 제가 오른손을 다치게 되었습니다.
왼손으로만 집필을 하게되어 당분간 새벽이나 아침에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손으로 쓰니 시간이 너무 늘어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