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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야외에서 같이 캠핑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는 이어졌다. 빅토르는 연신 고기를 뜯고 보드카를 털어놓는 행동을 반복했고, 진성은 잘게 찢어진 고기조각을 허공으로 띄워 간간이 입안에 고기를 털어 넣으며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동물과 자그마한 동물이 그릇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과 닮았다.

         

       “이봐, 보드카 한잔하지.”

       “나는 아직 성년식을 치르지 아니하였으니, 술을 마시면 아니 된다네.”

       “허, 성인이 아니라고?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군.”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동안 빅토르는 진성의 나이에 관한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거 고기 이름이 뭔가?”

       “카피바라라네.”

         

       자신이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고기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났을 때.

         

       빅토르는 앞서 던졌던 질문 두 개는 잽에 불과했다는 듯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좋게 본다면 진성에 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나쁘게 본다면 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선별하기 위한 과정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빅토르의 질문은 취조에 가까운 것이 되었고, 많이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도 한 줄기의 살기가 날카로운 검처럼 세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름은 무엇인가?”

         

       다만 이는 취조에 가까운 것이지 취조는 아닌 바.

       그가 던지는 질문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정보를 얻기 위한 행위임은 분명했다.

         

       “박진성.”

         

       그렇기에 진성은 기분 나쁜 내색 없이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옅은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더 던지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나이는 어떻게 되지?”

       “성인식을 치르기까지 몇 개월 남지 않은 몸이네.”

       “자네가 온 곳은 어디지?”

       “통일 대한민국.”

         

       빅토르는 진성의 대답에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하, 하하하하하하! 이런 빌어먹을! 어느새 내 육감도 개판이 되었군!”

         

       얼마 전 빅토르는 인신공양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주술사를 조사해오라고 했을 때 진성의 보고서를 보지도 않고 내팽개쳤었다.

       그 이유는 주술의 불모지가 되어버린 통일 대한민국 출신의,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인신공양 주술과 연관이 있을 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찌 보면 이는 상식선에서 당연한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다만 상식이라는 것은 그것을 깨부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쓸모가 없는 법.

         

       그의 눈앞에 상식을 모조리 박살을 내버린 괴물이 있었으니 이는 분명한 실책이었다.

       

       빅토르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고는 진성을 향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 인신공양이 일어났을 때 내 공격을 막은 것이 네놈인가?”

       “그러하니라.”

       “첫 번째 만남은 인신공양이 일어났던 곳에서 나와 마주쳤던 것을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겠지?”

       “그렇다.”

       “그렇다면 말이야.”

         

       빅토르는 그를 날카롭게 보며 물었다.

         

       “그곳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응?”

         

       그러자 진성은 그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진하게 웃었다.

         

       “인신공양을 방해했다네.”

       “인신공양을 방해했다?”

         

       되묻는 빅토르의 말에 진성은 다시 과장된 몸짓을 보였다. 마치 옛 극단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그러하듯이, 혹은 저잣거리에서 민중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처럼.

         

       “어리석은 주술사가 있어 크롬 크루어히를 섬기니, 제물을 바쳐 제 운명의 길을 잡으려 했음이라. 앞을 보며 걷기보다는 피 냄새를 따라가기를 원했으니 목줄을 맨 개와 다름이 없으며, 거울을 끼고 살았으되 자신의 얼굴을 보는 대신 다른 것을 투영하였으니 자신이 파멸로 나아가는 것조차도 모르는 가련한 존재로다.”

         

       진성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그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연상케 만들어 신경을 쏠리게 하였고,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몸짓이 더해져 말이 귀가 아닌 뇌에 직접 꽂히는 듯한 효과를 냈다.

         

       “다만 들개가 제 삶을 사는 것이야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어도, 그 들개가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가족을 물려고 한다면 마땅히 나서서 벌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흐.”

         

       빅토르는 비유가 가득한 진성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열이 받았다?”

         

       그는 돌아오는 답을 들으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이빨을 드러내는 개는 두들겨 패야지. 하지만 말이야. 이 우연이라는 게 참 공교로운 것이거든. 마침 러시아로 온 주술사가 자네랑 자네와 관련이 있는. 그래, 어쩌면 가족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건드리려고 해서 열 받아서 나섰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그것을 방해했는데 우연히 나와 마주쳤다?”

       “그러하니라.”

       “우연히 나와 마주쳤는데 그게 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빅토르는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사납게 물었다.

         

       “이게 무슨 옛날 싸구려 연극도 아니고, 말이 되나?”

         

       진성은 못 믿겠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빅토르의 시선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해주었다.

         

       “당연히 말이 되네. 그것이 삶이 아닌가.”

       “말이 된다?”

       “의심하지 말게. 왕이라는 것은 사람의 위에 있는 사람이며, 이는 사람을 발밑에 두고 이끌며 통치하는 이를 말하는 것이니. 왕이라는 단어는 시대마다 변화해왔으되 그 본질은 변함이 없었네. 부족밖에 없는 시절에는 부족장이었으며, 왕국이 있을 때는 왕이라는 이름이었고, 제국이 있을 적에는 황제라는 이름이 되었네. 망치와 낫을 휘두르는 인민의 지도자는 서기장이라는 이름이었고, 어느 나라에서는 총리라는 이름으로 군림하였고, 어느 나라에서는 현인신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사람 위에 섰으니.”

         

       단어가 바뀌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어져 온 것 역시 바뀌지 않는다.

         

       “자네는 왕이 될 것이네. 자네가 원하였고, 이루어질 운명이야. 다만 그 명칭은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되겠지만 말이네.”

         

       이르기를, 왕은 하늘이 점지해준다고 하였다.

       왕이 될 자는 타고난 운명이 있어 마침내 옥좌에 오른다고 하였으며, 이를 천명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이 있고, 덕행을 행하며 태만하지 않게 살아간다면 마침내 천명을 거머쥐어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이르기를, 왕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라 하였다.

       사람에게는 주어지는 고귀함의 정도가 있어 그것이 사람의 운명을 정한다고 하였다. 핏줄에 흐르는 고귀함은 푸른 피라는 이름으로 특권이 되었고, 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니. 이 역시 날 때부터 부여받은 운명이나 다름이 없는바.

       이 역시 왕의 자리는 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라 할 수 있으리.

         

       “운명은 산비탈에 구르는 바퀴와 같다네. 얼핏 규칙이 없이 내려가는 것 같아도, 교묘하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고 가속도를 붙이니. 이는 사막에서 헤매는 여행자를 인도하는 별과 같은 것이며, 망망대해에서 하늘을 보는 선원들에게 길을 속삭이는 것과 같다. 하니, 자네가 왕이 될 운명이라면 왕이 될 것을 알아보는 이를 만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네.”

       “그래…. 입담 하나는 끝내주는군.”

         

       빅토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아무런 정보도 없이 대화하다간 내가 말리겠어.”

         

       그는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중얼거리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진성을 내려보았다.

         

       “그래. 일단 네놈이 내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줄 의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러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킹 메이커가 그렇듯, 나에게 원하는 것 역시 있을 테고.”

       “그러하니라.”

         

       빅토르는 오른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태양처럼 타오르는 대관람차는 찬란하게 빛날 빅토르의 미래를 말하는 것 같았고, 앞으로 그가 러시아 전역에 펼칠 권세를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불이라는 것은 뜨겁고, 밝게 빛나며, 흐느적거리며 사람을 현혹하는 힘도 있어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 하게 만든다.

         

       미래와 관련된 것에는 감정으로 다가가서는 안 되는 법.

       순간순간에는 끝없이 타오르는 고양과 광기가 필요하지만, 오랜 여정에는 차갑게 내려앉은 이성이 올바른 길을 만드는 법이다.

         

       빅토르는 이 자리에서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특히나 사람을 현혹하는데 재주가 있어 보이는 진성과의 대화는 더더욱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그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더 냉철한 정신으로, 더 꼼꼼하게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

         

       “오늘은 여기서 끝을 내지.”

         

       쓸데없이 현혹당할 것 같을 때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쳐내고, 문장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면 오직 진실만이 남는 법이다.

         

       박진성이라는 괴이한 주술사가 있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빅토르를 도울 의향이 있으며.

       그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려 한다.

         

       빅토르는 오직 그것만을 머리에 담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다 먹고 텅 비어버린 접시를 손에 들었고, 손가락 끝에 기를 씌워 날카롭게 만들어 접시에 무언가 적었다.

         

       『 청탁권 』

         

       그는 청탁권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접시를 진성에게 집어 던졌다.

         

       “자, 네놈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복채를 주겠다.”

         

       빅토르는 진성이 접시를 받고 품 안으로 집어넣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으로 점괘의 가격은 지불했다. 맞나?”

       “그렇다. 청탁권이라…. 충분하지.”

       “그리고 저 불은 좀 끄도록. 어차피 나를 부르려고 피운 것 같은데, 내가 가면 태울 이유도 없을 테니까.”

       “그리하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끄도록. 지금이야 내가 눈감아 줄 수 있지만, 뉴스에 뜨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말이야.”

         

       진성은 빅토르의 재촉에도 바로 불을 끄려고 하지 않았다.

         

       “철두철미하기는.”

         

       빅토르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수하라는 고성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차량이 움직이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진성은 그들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움직였다.

       그는 제단으로 다가가 완전히 타버린 숯을 집어 들었고, 그것을 다시 대관람차에 집어 던지며 말했다.

         

       “간신히 제 형상을 유지하는 장작이 그러하듯.”

         

       숯은 대관람차에 부딪히자 소리 없이 터지며 까만 재를 대관람차 전체에 퍼뜨렸다.

         

       “타오르는 것은 언젠간 꺼지게 되리라.”

         

       그러자 재는 불꽃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하늘하늘 움직이며 대관람차에 붙은 불꽃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리고 모든 불꽃을 먹어치우고 나서야 불똥의 형태가 되어 하늘에 부유하였고, 반딧불이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대관람차는 앙상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놀이공원 전체를 밝히듯 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는 코를 맴도는 재의 향기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다가 품 안에 넣었던 접시를 꺼냈다.

         

       『 청탁권 』

         

       그는 기름기가 잔뜩 남은 접시를 한 차례 쓰다듬고는, 자신의 왼팔을 태우려 하는 불똥을 손톱으로 강하게 긁어 치워버렸다. 근육의 안쪽부터 피어난 것인지 피가 날 정도로 깊게 긁고 나서야 불똥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하늘에 널린 별을 보며 물었다.

         

       “사자 몸속의 벌레는 자리 잡았는가?”

         

       그러자 별이 그에게 답해주었다.

       말 대신에 빛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주었고, 흐름으로써 의지를 전해 그에게 알려주었다.

       정신의 불 속에서 열에 대한 저항을 획득한 벌레가 살아남았음을 말을 해주었고, 그것이 진성의 몸이라는 아늑한 둥지를 떠나 또 다른 터전에 자리 잡았음을 말해주었다.

         

       다만 정이 있어 옛 고향과 어미를 그리워할 것을 말해주었으니.

         

       이는 빅토르의 삶과 죽음이 진성의 손에 달렸음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

         

       “몸속의 폭탄과 청탁권. 복채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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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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