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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나는 말랑콩떡이 된 아르를 안고 마차로 돌아갔다. 

       

       “이런. 생각해 보니 버트 씨가 있었네요.”

       

       다행히(?) 버트 씨는 마차 안에서 기절을 한 상태였다. 

       

       “생명에 지장은 전혀 없어요. 언제부터 기절하신 걸까요?”

       

       일찍 기절한 것일수록 우리에겐 좋았다. 

       

       아르가 거대한 드래곤이 되었던 건 나와 실비아 이외의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었으니까. 

       

       “흐음. 아마 아르가 변신하기 전에 삐유우웃! 소리 내면서 마나 파동이 퍼져 나갔을 때지 않을까요?”

       

       몸에 충분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마법사나 검사들은 이런 격한 마나 파동이 지나가도 버틸 수 있지만, 힘 없는 일반인은 이보다 훨씬 약한 마나 파동에도 쉽게 충격을 받는다. 

       

       실비아조차도 일순 굳게 만들었던 파동이니, 버트 씨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전에….

       

       “푸, 푸흣….”

       “…왜 웃어요?”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앞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프흐, 아, 그게…. 방금 레온 씨가 아르 성대모사 한 게 너무 귀여우셔서…. 푸흡….”

       “아.”

       

       방금 내 입으로 ‘삐유우웃!’이라고 말한 게 웃겼던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창피하긴 하네.

       

       실비아는 웃음을 참다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다가 손부채질로 겨우 진정한 뒤,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그럼 걱정할 필요 없겠죠? 적어도 변신 이후 모습은 못 봤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변신하기 전에 아르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셨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네요.”

       

       간부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거나 받아치느라 우리는 더 이상 쀼레임 캐논 같은 걸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각자 따로 마법을 썼었는데, 만약 그 모습을 버트 씨가 봤다면 아르가 평범한 와이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거다. 

       

       “그러네요…. 게다가 지부장이 ‘용을 깨울 자’라는 말도 했으니 그걸 들었다면 드래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실비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버트 씨에게 손을 뻗었다. 

       

       “실비아 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죄 없는 버트 씨한테 그러시면 안 돼요.”

       “…제가 무슨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인 줄 알아요?”

       

       실비아는 손을 뻗은 채 눈을 감고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파앗.

       

       그러자 은은한 빛무리가 버트 씨를 감싸더니, 곧 스며들어 사라졌다. 

       

       실비아가 눈을 떴다. 

       

       “됐어요. 일단 최근 여섯 시간 정도의 기억을 지웠으니 아마 유적지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 못 하실 거예요. 깨어나시면 저희는 이미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 나왔고, 버트 씨는 왜인지 잠들어 있었다고 말하면 되겠죠.”

       “실비아 씨, 기억 지우는 마법도 쓸 줄 아셨어요…?”

       

       솔직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부장에게 튀어 나갈 때, 블링크라는 영창을 들은 것 같긴 했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검술이 저렇게 뛰어난데 7서클 마법인 블링크에다 기억에 간섭하는 마법까지 쓸 수 있다니….

       

       이 사람, 대체 어디까지 완벽한 거야?

       

       “제가 운 좋게 마법에도 재능이 좀 있어서요. 속성 마법은 못 쓰는 대신 잡다한 일반 계열 마법은 좀 쓸 줄 알아요.”

       “잡다하다니…. 일단 블링크부터가 잡다한 마법이 아닌데요.”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실비아 씨는 그럼 몇 성 검사인 거예요? 아까 말 안 해 주신 것 같은데.”

       

       자신이 엘프고, 지금까지 정체를 숨겼었다고만 했지 정확히 어느 정도 실력인지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실비아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9성이요.”

       “네?”

       

       나는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그럼 마법은…?”

       “마법은 8서클이에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검술이랑 마법 둘 다 9성에 9서클이라고 하셨으면 이번엔 버트 씨가 아니라 제가 기절할 뻔했어요.”

       

       아니, 사실 지금도 어질어질하다.

       

       ‘평생 한쪽만 파도 9성은커녕 8성도 도달하는 게 기적이라고 하는 마당에.’

       

       애초에 7성부터는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재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마법 쪽에서는 더더욱 7서클의 마법사부터는 귀족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9성에 8서클이라니.

       

       ‘대체 재능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해야 가능한 거야?’

       

       밥만 먹고 몇백 년 동안 검술이랑 마법만 연마해도 안 될 것 같은데.

       

       ‘잠깐. 몇백 년?’

       

       나는 실비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내 또래, 혹은 기껏해야 나보다 몇 살 정도밖에 안 많아 보이는 외모다.

       

       ‘하지만 엘프라면….’

       

       엘프는 기본 수명이 2천 년 이상에, 수명이 다할 때는 숲의 순환에 따라 자연히 환생하며 살아 간다고 알려진 종족.

       

       게다가 거의 평생 동안 젊은 외모를 유지하기 때문에 겉모습만 봐서는 몇 살인지 유추하기가 힘든 종족이다. 

       

       ‘그렇다면 지금 실비아 씨의 나이는….’

       

       9성의 검술에 8서클의 마법. 이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면 최소 천 살 이상은….

       

       “…레온 씨. 무슨 생각 하시는지 다 보여요. 저 아직 300살도 안 됐거든요? 인간 나이로 치면 성인식 이후 5년 정도 지난 셈이에요.”

       

       내 생각을 읽은 듯, 실비아가 초롬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크흠. 그, 그렇군요…가 아니라. 300년도 안 돼서 9성이랑 8서클을 달성하셨다고요?”

       

       맙소사. 

       

       레키온 다음 가는 먼치킨이 바로 내 옆에 있었네.

       

       ***

       

       물론 실비아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9성의 초입에 들어온 이후부터 검술이 늘거나 깨달음이 오는 빈도가 크게 줄었고, 마법 역시 속성 마법을 익히지 않아서인지 9서클로 가는 벽에 막혔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실비아는 엄청난 먼치킨임에 틀림없었다. 

       

       마왕과 일대일…까지는 무리더라도, 아직 마왕이 부활하기 전에 그의 수하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을 정도는 충분히 된다.

       

       ‘실제로 이번에도 제일 강해 보이던 녀석이 엄청난 양의 마력석까지 동원했는데도 겨우 겨우 실비아 씨를 붙잡아 두는 게 전부였으니까.’

       

       지부장은 분명 그럴 능력만 있었다면 실비아의 목숨을 노렸을 터.

       

       그러지 못하고 바인딩 마법을 쓴 건, 첫 공격에서 실비아가 까마득한 실력자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력석으로 묶어서 시간을 벌고 나와 아르를 죽인 후에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가지고 도주하려 했겠지.’

       

       어, 잠깐만.

       

       마력석?

       

       나는 아르를 안은 채 버트 씨의 마차에서 나와 놈들이 쓰던 마차 쪽으로 달려갔다. 

       

       놈들이 쓰던 마차의 짐칸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석을 본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이 정도였구나….”

       

       아마 이 마력석은 놈들이 이 유적지 내부의 결계를 깨거나 왜곡하기 위해 가져온 걸 거다. 

       

       우리는 드래곤인 아르 덕분에 문양에 말랑한 손바닥을 대는 것만으로도 출입할 수 있었지만, 놈들은 아닐 테니까. 

       

       이걸 전부 챙겨 갈 수 있다면, 다음 도시에서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 근데 이쪽 마력석은 색깔이 벌써….”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력석의 절반 이상이 마치 텅 빈 것처럼 빛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앗, 그건.”

       “설마 실비아 씨,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시킨 거예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거기서 아르가 변신해 쓸어버릴 줄 알았으면 좀 아끼는 건데.”

       

       실비아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마력 폭풍에 연결 고리가 끊어졌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기 있는 거 몽땅 다 소모시킬 뻔했어요.”

       “후우. 어쩔 수 없죠.”

       

       전체 양의 4할 정도 되는 마력석만이 온전하게 남았지만,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뚝 떼어놓고 보면 엄청난 양이었다. 

       

       게다가 하나 하나가 전부 최상급 마력석이지 않은가. 

       

       “제가 옮겨 놓을 테니 레온 씨는 먼저 마차 가 계세요.”

       “감사해요.”

       

       내가 말랑콩떡이 된 아르를 꼭 안고 마차로 가는 동안, 실비아는 블링크를 연속 사용해 마력석 상자를 우리 마차 짐칸에 옮겼다. 

       

       ‘저렇게 큰 에너지를 품은 물체를 들고도 블링크를 아무렇지 않게 쓰다니….’

       

       잠깐 나도 빨리 아르를 마차 좌석에 내려 두고 도와줘야 하나 생각했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뀨우웅….”

       “그래, 그래. 아르. 졸리면 자도 돼. 이제 다 끝났으니까.”

       

       안 그래도 마법을 많이 썼는데, 천 년 후의 모습으로 변신까지 했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뀨우….”

       

       아르는 졸린 와중에도 ‘아르, 잘해써? 헤헤.’라고 물었고.

       

       “그럼. 우리 다 아르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아르야.”

       “뀨우우…!”

       

       내 답은 들은 아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레온 님. 실비아 님! 제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버트 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유적지에서 우리가 돌아올 동안 잠시 쉬다가 깜박 깊은 잠에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비아 님이 직접 말을 모시다니요…! 어서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유적지 앞, 아르가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현장은 대충 ‘어스’ 마법으로 파인 곳만 복구를 시켜 놨고, 혹시 몰라 마차는 버트 씨가 깨어나기 전에 실비아가 몰아서 근처를 벗어난 뒤였다. 

       

       모든 걸 제자리로 되돌려 놓은 우리는 좌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아르 모습이야 24시간이면 돌아온다고 하니 그동안만 버트 씨한테 안 보이게 숨기면 될 거고.’

       

       몸이 안 좋은 거 같다고 하면서 가방에 들어가 있으면 될 거다. 

       

       “후우….”

       

       긴장이 풀린 나는 등받이에 몸을 쭉 기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메시지가 뭐라고 더 떴던 것 같은데.’

       

       한창 정신이 없어 최소화시켜 뒀던 메시지를 불러 오자, 곧 나는 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40을 달성했습니다. 사역마 ‘아르젠테’의 성장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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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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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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