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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고귀한 황녀 전하께서, 이 척박한 남부에 관심을 다 보이시는군.”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서랍에서 오래된 와인을 꺼내 따랐다. 잔이 두 개임을 확인한 순간, 구석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눈치가 빠르군. 혁명가.]

       “귀족 나리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

         

       혁명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번들거렸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건 본체인가, 아니면 그림자인가?”

       “본체다. 거물을 만나는데, 그런 결례를 범할 수는 없지.”

         

       암주는 보란 듯이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복면을 벗자, 검고 긴 머리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번 생에서는 초면이군.”

       “엮일 인연은 아니었지.”

         

       혁명가가 냉정하게 답했다. 그는 대륙 최고의 암살자를 눈 앞에 두고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혁명가는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내 조건부터 말하겠다. 내가 원하는 건 대륙의 절반이다. 넓은 아량으로 황궁이 있는 서쪽은 양보하겠다.”

         

       터무니없는 조건이다.

       그가 추구하는 혁명은, 말 그대로 귀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신분제에 정점에 위치한 황녀라면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못 받아들이겠으면, 썩 꺼져라.”

         

       축객령에, 암주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황녀의 전령 취급하는 건 그럴 수 있다. 암주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모욕감? 암살자에게 그따위 감정이 남아있을 리가.

         

       그가 웃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는 황녀의 그릇을 모른다.”

         

       암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혁명가가 내건 조건은, 황녀가 예견했던 것과 토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릇?”

       

        암주는 대답하는 대신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통신용이 아닌, 녹음용이었다. 혁명가는 의심스러운 얼굴을 짓다가,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황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잠시 후.

         

       “……빌어먹을.”

         

       혁명가는 그런 말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황녀의 말은,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절반으로 나누지 말고, 그냥 다 가져가라.

       어차피 필요 없으니.

         

       “받아들이겠나?”

        “……마음대로 해라.”

         

       암주는 머리를 끄덕거리고서는 수정구를 품 속에 집어넣었다. 혁명가는 허탈한 듯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천재는 한 수를 앞서 보고,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자는 세 수를 앞서 본다.

         

       ‘숫제 괴물이었군.’

         

       도대체 몇 수 앞을 보고 있단 말인가?

         

       이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그만큼 올리비아를 증오한다는 뜻이었으니.

         

       “……올리비아는 내가 죽인다.”

       “그건 안된다. 대기 순번이 있어서 말이지.”

       “빠르군. 몇 명이나 모은거지?”

        “너까지 다섯이다.”

       “다음은 악마사냥꾼이겠군.”

         

       암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 년은 지금 제국에서 쫓겨났다는 마녀를 쫓고 있다. 지금쯤……잿더미의 땅에 있겠군.”

         

       혁명가가 내민 종이엔, 마녀의 몽타주가 그려져 있었다.

         

         

       *****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바깥에는 황량한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독기가 서린 모래에 닿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두껍게 싸맸고,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 바깥으로 꺼내놓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행은 총 셋으로, 외지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뽀얀 살결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빨리 문 닫으쇼.”

         

       일행이 들어오기 무섭게 시끌벅적하던 여관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방 하나. 식사는 필요 없다.”

       “사람 셋에 방 하나, 맞소?”

         

       올리비아는 쓰고 있는 로브를 벗으며 금화를 튕겼다. 알아서 처신하란 뜻이다.

         

       “아…….”

         

       여관 주인은 올리비아의 외모를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지만, 저런 얼굴은 난생 처음이었다.

       백옥같은 피부,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남자 수천 명을 홀렸다는 몽마조차도, 눈 앞의 여성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뭐하나? 안 받고.”

       “아, 예!”

         

       생각이 있는 여자라면, 제 안전을 위해서라도 저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멍청하거나, 아니면 제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어디 몰락 귀족 출신이오?”

       “남부에 귀족이 있을 리가. 마법사다.”

         

       올리비아의 손 끝에서 화염구가 일렁거렸다. 여관 주인은 마법에 일가견은 없었지만, 올리비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힘깨나 쓰는 마법사였을 것이다.

         

       “화(火)계 마법사셨군. 감히 충고 하나만 드리자면, 사막으로 가지는 마쇼. 개죽음 당하기 딱 좋으니까.”

         

       여관 주인은 열쇠 한 개를 가져다 놓았다.

         

       “3층 끝방이오. 상태가 좋으니 셋이서 자도 널럴할거요.”

       

       일행은 계단을 올라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이나는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고서 숨을 내뱉었다.

         

       “후아……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요.”

         

       바로 어제까지 북부에 있다가 태양이 내리쬐는 남부로 오니, 모래폭풍은 그렇다 쳐도 더워서 미칠 것 같았다.

         

       “스승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

         

       아라미스가 로브를 걸치며 그렇게 말했다. 올리비아는 정화 마법으로 몸을 가볍게 씻어내며 답했다.

         

       “화(火)의 마경.”

       “……말씀하셨던 수련이 그거였군요.”

         

       올리비아는 제이나와 아라미스만 남부로 데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네 명 전부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눈에 띈다.

         

       설령 회귀자를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둘 정도면 무난하게 대피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엔딩의 조건이 마신 퇴치라면, 지금부터라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옳다.

         

       빛 속성인 로 페르난디를 데려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훈련은 어려워야 의미가 있으니까.

         

       “내가 너희들을 데려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당연히, 마기에 잠식된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배려 따위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제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열어, 이 새끼야!”

       

       문 너머에는 1층에서 보았던 남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도적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말 없이 마법을 전개했다. 사나운 마력이 요동치며, 불꽃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푸푹!

         

       순식간에 문을 꿰뚫고 날아간 화살이 남자들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커헉!”

        “아주 준비를 단단히들 하고 오셨구만.”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마법 저항 주문이 새겨진 무구가 밀려드는 마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나갔다. 놀란 남자들이 눈을 치켜뜨기도 전에, 올리비아는 그들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두 번째는, 인간을 상대로 한 실전 전투다.”

       “켁, 케엑…….”

         

       올리비아는 그들의 얼굴이 붉어질대로 붉어지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올리비아는 손을 툭툭 털면서 질문했다.

         

       “자, 방금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내 제자들한테 설명해.”

        “그, 금품을 갈취하려고…….”

        “지랄.”

         

       올리비아가 내뱉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어느새 불화살들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머리다.”

       “저, 적당히 즐긴 다음에 노예로 팔아넘길 생각이었습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쟤들은? 로브로 얼굴도 가리고 있었는데.”

       “외지인은 그 자체로 돈이 됩니다. 마녀나 흑마법사들에게 팔아넘기면 비싼 값을…….”

       

       올리비아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콰직! 강타 마법이 그들의 손을 뭉개버렸다. 고기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고통스런 비명이 울려퍼졌다.

         

       “꺼져.”

       

       올리비아는 꽁무니 빠져라 도망가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먼저 정신을 차린 아라미스가 말했다.

         

       “저대로 풀어준다면, 분명 일행을 데리고…….”

         

       거기까지 말한 순간, 아라미스는 올리비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데리고 오면? 그런다고 우리 스승님을 이길 수 있나?’

         

       역으로 그쪽이 당할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제부터 도적단이랑 싸우면 됩니까?”

       “……그러면 너무 쉽지 않아?”

         

       제이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도적단이 통째로 몰려오더라도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북부의 몬스터들과 싸워보며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올리비아나 멜리나나,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으니까.

         

       분명 이걸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마인, 어쩌면 악마와 싸우게 시키신다면 모를까.”

       “으음…….”

         

       아라미스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뱉어냈다. 악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은 그 정도였다.

         

       “너희들이 상대할 건, 마녀다.”

       “마녀……말씀이십니까?”

       

       마녀라는 말에 제자들이 움찔했다.

       올리비아를 마녀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그녀가 마녀가 아니라, 그저 괴팍한 마법사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예카테리나 크라우치. 한 때 4대 공작가의 한 축을 담당하던 크라우치 공작가의 여식이었지. 지금은, 척살령이 떨어져 도망치는 신세지만.”

         

       996년, 제국 아카데미.

       서쪽 마계의 주인, 벨페고르의 계약자가 바로 예카테리나였다.

       그리고, 몰살 회차 때 아라미스와 제이나, 그리고 로를 살해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읽어 봐.”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서류를 놓았다. 밤까마귀들이 밤을 새가며 정리한 자료였다.

         

       “……예카테리나라면, 꽃의 공녀 아닙니까?”

       “꽃의 공녀인지, 사탄의 자식인지는 모르겠고. 올해 초에 마녀라는 사실이 발각되서 쫓겨나기는 했지. 아무튼, 읽어봐서 알겠지만 예카테리나가 계약한 악마는 대악마 벨페고르다.”

         

       아라미스는 입을 살짝 열었다가 꾹 닫았다.

         

       금탑주 멜리나와의 인연도 그렇고, 최고위층과 연이 닿아있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는 이런 정보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알려주는 것도 그렇고.

         

       왜 이런 사람이, 북부에서 은거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마녀라는 불명예를 짊어지면서까지.

         

       “……대악마요?”

         

       제이나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악마도 아니고, 대악마란다.

         

       “대악마와 계약한 마녀는 얼마나 강한가요?”

       “대마법사보다 강하지. 빛의 대마법사라면 얼추 전투가 성립되기는 하겠지만, 다른 속성들은 버티는 게 고작이야.”

       “그러면 저희는…….”

       “절대 못 이기지.”

         

       올리비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닐거야. 악마는 실패한 마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거든. 그게 대악마 벨페고르라면 말 할 것도 없지. 곧바로 계약을 제 휘하 악마에게 떠넘겼을거다.”

         

       올리비아는 자료에 새겨진 계급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격이 최소한 두 단계는 낮아졌을테니……아마 백작급 악마 정도로 낮아졌겠지.”

         

       제이나가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그러면……얼마나 강한거죠?”

       “상위 마탑의 탑주 정도. 그것도 속성 상 상성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올리비아의 말에, 제이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언제 출발하나요?”

       “내일 새벽. 고된 여정이 될 테니 푹 자둬라.”

       

       올리비아는 지도의 한 점을 찍으며 말했다.

       

       “잿더미의 땅으로 갈테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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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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