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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역시 병원부터 찾아가는 것이었다.

        

       내 마지막 기억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운 거였다. 그리고 아마, 그 사람의 첫 기억은 침대 위에서 눈을 뜬 기억일 것이다.

        

       그 직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양혜인에게 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아가씨를,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등 전체에 퍼진 멍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 문제가 있지는 않다고 했었습니다.”

        

       양혜인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등에 멍이……?”

        

       등에 멍이 들 이유가 있나? 혹시 몸부림치던 내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아뇨, 아가씨는 침대 위에 계셨습니다.”

        

       양혜인은 딱 잘라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말을 백 퍼센트 믿어도 될지 의문이다.

        

       양혜인을 인간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나는 양혜인이 얼마나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 나에게 보여준 모습만 보면 그런 이미지이긴 했다. 사사로운 감정 없이,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굳이 주인에게 참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내가 기억하던 양혜인의 모습이었다.

        

       이미지만 보면 냉철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인 것 같아 보인다. 어머님이 내 옆에 심을 사람으로 아무나 골랐을 리도 없고.

        

       하지만, 나는 양혜인과 인간적인 교류를 한 기억이 없다.

        

       내 쪽에서 몇 번 말을 걸어본 적은 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아무리 익숙해져 있어도,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경우는 있는 법이다. 나는 양혜인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몇몇 사소한 요구를 한 적은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요구들.

        

       양혜인은 그때마다 내 요구를 깔끔하게 처리한 뒤 다시 자신의 할 일로 돌아갔다.

        

       그랬기에, 우리 사이에 개인적인 대화가 오가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3년간 나와 붙어 다니긴 했지만,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느 지역의 출신이고 가족은 몇 명이나 있는지, 쉴 때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하나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고 믿지도 못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 정도만 해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하긴, 침대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등 가득 멍이 드는 것은 힘들다. 내가 억지로 바닥에 부딪혔으면 모를까.

        

       내 몸을 차지하고 있던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기억을 잃은 나’라고 가정하는 것이 옳겠지.

        

       성격이나 행동이 ‘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르긴 했지만.

        

       그렇기에, 그 사람이 어째서 등에 멍이 한가득 생길 정도로 몸부림을 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건 본인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겠지.

        

       ……아니면 내가 ‘기억’해내거나.

        

       이유를 딱 잘라 말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기왕이면 전자였으면 좋겠다.

        

       “경찰이 왔었다고요?”

        

       “예, 아가씨의 등에 생긴 멍이 가정폭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 의사가 신고해서…….”

        

       가정폭력이라.

        

       아동에 대한 정서학대도 가정폭력에 해당하던가? 적어도 아동학대에는 포함되었겠지. 만약 몸에 난 상처가 남에게 맞아서 난 상처가 아니었더라도 경찰이 엮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경찰은 돌려보냈겠죠?”

        

       “……예, 그렇습니다.”

        

       내 질문에, 양혜인은 한순간 망설이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건 조금 놀라운 모습이었다.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양혜인은 나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뭐가요?

        

       그렇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경찰을 돌려보내서 미안하다고? 지난 3년 동안 아동학대를 방치해서 미안하다고? 그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일해서 미안하다고?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머님까지 끌려 나오겠지.

        

       내 몸에 있던 사람의 성격이 나와 섞인 탓인지, 아니면 그 희미한 기억의 잔재 덕분인지, 나는 이전의 나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종이에 글을 쓰거나 옆에 바싹 붙어 앉아야 겨우 들릴 작은 목소리 정도밖에 내지 못했을 거다.

        

       아니면 음정 박자 모두 이상한 해괴한 목소리를 냈던지.

        

       ……내가 빚진 것이 너무 많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딸려 나와, 나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냈다.

        

       일단은 다시 그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그 사람을 찾았던 것처럼.

        

       그래야 어째서 이런 일을 했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확인할게요.”

        

       이야기를 다 듣고 생각을 정리한 내가 물었다.

        

       “약은 여전히 가지고 있나요?”

        

       나의 말을 들은 양혜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주 잠깐 침묵한 뒤, 그녀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요. 계속 보관해주세요.”

        

       “……예.”

        

       양혜인의 옆에 서 있던, 양혜인의 ‘후임’이라는 신소희가 눈을 떨었다.

        

       얘는 내 돈으로 고용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아마 몇억……단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판단할 단서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뭐, 나를 24시간 따라다니면서 돌봐줄 만한 수준의 돈은 되는 모양이지.

        

       ……이것도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만들어둔 장치일까?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메이드를 만들어 붙여서,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

        

       “…….”

        

       병원에 오긴 했지만, 그날 나를 진료했던 의사를 바로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따지자면 우리는 방해꾼이었다.

        

       내가 그날 왔던 곳은 대학병원의 응급실이었고, 의사도 그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행히 일하는 곳을 옮기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응급실이라는 곳이 원래 언제나 사람이 부족한 곳이라고 한다. 업무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이 퇴근할 때쯤에나 제대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민폐일 것 같아, 우리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4월에 가까워서, 6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날씨도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병원 이름이 ‘화영대학교병원’이었다.

        

       ……기부금 명목으로 나를 빼냈다고 하더니,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날 왔던 경찰분들의 연락처는 없겠죠?”

        

       “……그렇습니다.”

        

       뭐, 그렇겠지.

        

       그쪽도 연줄 때문에 빠졌을 테니까.

        

       “여기서 계속 기다리시겠습니까?”

        

       “…….”

        

       나를 바라보는 양혜인의 저 표정은, 걱정하는 표정일까? 태도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표정 변화가 극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웃을 줄은 아는 사람일까?

        

       하긴, 웃는 방법은 나도 잘 모른다.

        

       그 사람은 자주 웃는 사람이었을까?

        

       당장 나를 따라온 세 아이에게 물어본다면 대답을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본인에게 듣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사람을 믿지 못했으니까.

        

       내 가슴속 한구석에 틀어박힌 외톨이가 계속 속삭인다.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고.

        

       ……그렇기에, 나는 나를 위해 희생해준 그 사람을 계속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나를 위해 처음으로 희생해준 사람이기에.

        

       뭐,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한 명씩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의 사람은 믿어도 되겠지.

        

       누가 보면 정신병자라는 말을 하겠지만.

        

       “정말 우리를 만난 뒤의 기억이 없는 거야?”

        

       신소희가 그렇게 물어왔다. 내가 돌아온 다음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가장 열심히 나와 붙어 다니던 아이였다. 그만큼 상심이 크겠지.

        

       다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금 ‘기억이 없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인격이 다르다는 것은 유하늘 혼자만 알고 있었다.

        

       들킨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일부러 그걸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알고 나면 이런 생활이 깨질지도 모르니까.

        

       그래, 이것도 내가 저 사람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진실을 말하더라도 저 사람들의 생각이 그대로일 거라는 걸 믿었다면, 나는 다 말해줬을 테니까.

        

       유하늘에게 나를 부탁하고 스스로 몸을 넘겨줬던 그 사람처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한 사람이었다.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신소희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이수아.

        

       두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는 이유도, 그 사람과의 인연 때문이겠지.

        

       ……방해꾼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렸다.

        

       “일단 진단서라도 먼저 끊을까요?”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애초에 그날 검사 결과도, 내 몸에 난 상처를 제외하면 모두 정상이었다니까. 뭔가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내가 추가적인 검사를 받기 전에 나를 병원에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돈을 주는 VVIP의 자식을 그냥 내보냈다가 생명에 지장이 있으면 큰일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죽은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걸까.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워? 어디 안에 들어가 있을까?”

        

       추워서 떤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떤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또 다른 가능성을 등질 수 있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다시 눈을 뜬 지 고작 일주일이었다.

        

       그 일주일간의 일들이, 내가 너무나도 바라던 그 일주일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주제에, 나는 계속 그 일주일을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건 나의 삶이 아니라고 부정하다니, 참 이중적이기도 하지.

        

       하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무언가 비어있는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 다녀갔기 때문일까?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계속 내 옆에 있어 줬던 건지도 모르겠다.

        

       “병원 안에 카페테리아가 있습니다. 안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서 주변 아이들을 보았다. 전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얼굴들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 이 아이들을 전부 밖에 서 있게 둘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렇게 해요.”

        

       별로 춥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마 처음으로, 내가 어머님 이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선택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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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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