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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검을 뽑아 들며 자세를 취하려던 순간 수풀을 뚫고 바루가 나타났다.

       다급히 달려온 듯 거친 숨을 내쉬던 그녀는 한 가운데에서 사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신령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게 무슨.”

       “강제로 인신공양을 받게 만든 것 같더구나.”

       

       내 말을 들은 바루는 자신의 두 손으로 지팡이를 강하게 쥐었다.

       

       “혈교주라는 놈은 인간의 정도에서 벗어난 자로구나.”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동료였던 이가 다른 누군가의 놀잇거리가 된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

       

       “마음은 알겠다만 일단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지.”

       “…그래. 그래야겠지.”

       

       탕.

       

       

       바루가 지팡이로 한 번 땅을 내리치자 주변에 퍼져 있던 사기가 사라지고 그것들이 정순한 기운으로 바뀌어 우리를 감쌌다.

       

       탕.

       

       바루가 지팡이로 두 번 땅을 내리치자 나의 몸에 축복이 내렸다.

       

       숨을 쉬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내공을 다루는 것조차도 편안해졌다.

       

       탕.

       

       마지막으로 바루가 땅을 내리치자 화산에 머무르던 여러 혼들이 몰려와 바루의 주변을 지켰다.

       

       그 혼들은 하나 같이 고강한 기운을 가진 자들이었으니 그들의 존재만으로 바루는 군단이 될 수 있었다.

       

       확실히 신령이 쓰는 도술은 경이롭군. 괜히 산의 수호자라 불리는 게 아니야.

       

       앞으로 시선을 돌리니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던 도마뱀이 성장을 멈췄다.

       

       그 모양새는 기다란 몸을 가졌으며 얇달 막한 다리와 호랑이보다도 사나운 얼굴이 합쳐졌으니 동양의 용이라 할만 했다.

       

       기이한 것은 서양의 용마냥 등에 날개를 지녔단 점이었으나 특유의 사악한 기웃이 맞물려 그것대로 어울린단 느낌을 주었다.

       

       외적인 부분을 제하고 이야기를 하자면 신령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독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퍼지는 것은 한 가지 종류의 독이 아니었다.

       

       어떤 독은 닿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만물을 썩게 만들었다.

       

       심지어 돌산의 바닥마저도 독이 닿는 순간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니 강기를 두르지 않으면 인간의 피부가 얼음마냥 녹아내릴 터였다.

       

       어떤 독은 공기 중으로 퍼져 생기를 빼앗았다.

       

       주변의 푸르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져 고목이 되었으니 인간이 닿으면 어찌 될 지는 분명했다.

       

       또 어떤 독은 순식간에 피부로 스며들어 내 안에 있는 내기를 휘젓기 시작했다.

       

       몸 안의 길을 따라 움직이던 내기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으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내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강기를 겉에 두름으로써 신령의 독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내공의 양이 너무도 부족했다.

       

       이럴 때는 이류의 육신이 참으로 거슬리는 구나. 본디 내 몸이었다면 이까짓 것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을 터이거늘.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 정도일까.

       

       뭐어. 그 정도면 충분하지.

       

       내가 살아남는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어째 본인은 게임 속에서 싸움을 벌일 때마다 공멸을 각오해야 하는 것 같구나.

       

       가볼까.

       

       숨을 막으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검선이 주었던 검은 독기에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형체를 유지했다.

       

       과연 검선이 제 이름을 걸고 선물한 검답구나.

       

       이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리 본인이라 하여도 독이 내뿜어지는 신령의 육신에 직접 손을 대는 건 꺼려져서 말이다.

       

       내가 앞으로 발을 내딛은 순간 나보다 먼저 바루가 불러낸 혼령들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혼령들은 영악했다.

       

       그들은 분명 고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지만 신령보다는 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전력을 다해 적과 맞붙는 대신 상대의 공격이 닿을까 말까하는 거리를 유지하며 신령을 거슬리게 했다.

       

       본래 신령은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기에 저런 수작에 당해줄 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령은 지성을 잃은 강시와 다름없었으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자를 내버려 두지 못했다.

       

       또한 바루는 혼령을 보낸 채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술법으로 점차 짙어지는 독기를 흩어버리고 있었다.

       

       바루의 노력 덕분인지 이전보다 숨을 쉬는 것이 한층 더 편해졌다.

       

       이래서야 바루가 도움이 되지 않았단 소리는 못하겠구나.

       

       앞으로 달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지금 내 몸의 내기는 통제를 잃어버렸다. 억지로 본래의 길을 따라 움직이게 만들고는 있었지만 그게 한계였다.

       

       또한 독에 좀 먹혀 가는 육신은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조차도 의식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

       

       이런 육신으로 극상의 무공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괜한 시도를 해봐야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몸이 망가지는 걸 가속화 시킬 뿐이겠지.

       

       그러니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자꾸나.

       

       삼재검이라. 이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무척이나 오랜만이구나.

       

       위에서 아래로 벤다.

       

       좌에서 우로 벤다.

       

       뒤에서 앞으로 찌른다.

       

       검을 든 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세 가지의 움직임을 담은 검법은 흔히 시정잡배나 배울 삼류의 무공이라 여겨진다.

       

       허나 이 가벼워 보이는 무공에 담긴 이치는 검법의 진리일 지어니. 극에 도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베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내가 앞에 도달한 순간 신령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진순한 독기가 모여 들었다.

       

       저기에 당한다면 본인은 녹아내릴게 분명했으니 당해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두 손으로 검을 쥔 채 좌에서 우로 휘두른다.

       

       나를 향해 쏘아지던 독기가 반으로 갈라지며 주변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휘두른 검의 여파는 독을 가르고도 이어졌으니 신령의 비늘을 뚫고서 상처가 새겨졌다.

       

       신령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미친 듯이 날뛰는 신령과 육탄전을 벌이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혼령들이 해 줄 일이다.

       

       신령의 시선이 혼령들에게 향한 것을 확인한 후 옆으로 내달렸다.

       

       앞에서 접근하기엔 독기를 내뿜는 게 거슬리니 뒤로 다가가고 싶다만 꼬리가 거슬리는 군.

       

       그럼 베어야지.

       

       앞에서 신령들과 투닥거리느라 신경을 빼앗긴 틈을 타 뒤로 향한다.

       

       검을 위로 치켜 들어서 아래로 내리쳤다.

       

       신령의 비늘은 분명 단단했지만 단단한 것만으로는 내리쳐지는 검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

       

       꼬리가 베여 땅에 떨어졌다.

       

       비명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신령의 등을 밟고 그 위에 올라탔다.

       

       신령이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지만 아래에서 혼령들이 몸을 붙잡은 탓인지 그 저항은 그리 거세지 못했다.

       

       신령이니 뭐니 해도 이 놈도 결국에 생물이다. 그리고 생물인 이상 머리가 약점이 될 수 밖에 없지.

       

       이를 악물고 신령의 머리에 도착한 나는 신령의 뒤통수에 검을 조준한 후에.

       

       찔러 넣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신령의 몸이 앞으로 기우는 걸 확인한 나는 비늘을 걷어차고 신령의 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신령의 죽음과 함께 통제를 잃어버린 독기가 점차 신령의 몸을 좀먹어 간다.

       

       점차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며 쇠해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산을 수호하는 신이 맞이하기엔 너무도 허무한 결말이구나.

       

       그런 감상을 하다 속에서 기침이 올라와 다급히 입을 가렸다.

       

       몇 번이나 거세게 기침을 내뱉은 후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리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각혈을 하고 나니 영 기분이 미묘하구나.

       

       꼭 본인이 병약한 소녀가 된 것 같지 않나.

       

       “민가야!”

       

       이런 내 모습이 걱정스러웠던 건지 저 멀리에 있던 바루가 다급히 달려왔다.

       

       “왜 부르는 게야.”

       “괜찮으냐?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더냐?”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구나.”

       

       신령을 쓰러트렸음에도 독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몸 안을 휘저은 독기는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죽었다가 돌아오도록 하자꾸나.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그건 나중에 쓰는 편이 낫지 않겠나.

       

       “어디 안전한 곳에 숨어 있거라. 죽었다 다시 올 테니.”

       “…정말 돌아올 것이냐?”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딜 가겠느냐.”

       

       바루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준 후 독기의 통제를 풀려던 순간 하늘 위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사기는 분명.

       

       곤란하게 되었군.

       

       “바루야. 움직일 준비를 해라.”

       “벌써 눈치를 채셨습니까? 나름 감춘다고 감춘 건데 대단하신 분이군요.”

       

       하늘 위에서 내려온 남자는 계단을 내려오듯 가벼이 착지를 하고서 느긋이 말을 했다.

       

       검은 면사를 쓴 남자에게선 일말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강시를 자신의 몸마냥 부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혈교주.

       

       내가 상대했던 적 중에서 가장 빌어먹을 자식이라 할 수 있는 놈이었다.

       

       “외부인이라 아쉽네요. 무림인이었다면 여러모로 실험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품평하듯이 나를 살피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냥 박수를 쳤다.

       

       “맞다. 인질을 잡으면 되겠네요. 당신 옆에 있는 신령 정도면 당신을 협박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곧 죽으실 것 같은데 유기된 신령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혈교주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루였다.

       

       “니 놈. 감히 나를 물건 다루듯 말을.”

       “너한테 묻지 않았다. 축생아.”

       

       강시의 몸에서 생겨나는 끝없는 내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그 기운은 평범한 내공과는 달랐다. 질척하고 끈적한, 한없이 피와 닮은 무언가였다.

       

       거기에 짓눌린 바루가 한 걸음 물러서자 혈교주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당신입니다. 이 정도론 반응도 안하시는 군요.”

       “…놀라는 척이라도 해주랴?”

       “배려에 감사하지만 안 그려서도 됩니다. 나중에 놀랄 만한 일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눈웃음을 짓는 혈교주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끓었다.

       

       이래서야 죽을 수는 없겠구나.

       

       바루가 저 놈의 손 안에 들어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

       

       내 평생을 들여서 겨우 찾은 직접 쓰다듬을 수 있는 동물이거늘. 감히 그를 내게서 뺏어갈 생각을 하다니 실로 괘씸하기 짝이 없구나.

       

       품 안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공청석유는 그 자체로 막대한 내기를 지닌 환단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어떤 액체보다 뛰어난 치유력을 지닌 약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를 마신다면 지금 내 몸을 어지럽히는 독을 치유함은 물론이요.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뚜껑을 열어 안에 든 것을 입 안에 털어 넣으니 공청석유에 들어 있던 정순한 기운이 내 몸안에 있는 독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단전에 막대한 양의 내공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공청석유라! 과연 그게 있으면 독의 영향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죠.

       허나 그런 상태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 사라진 독 대신 공청석유의 기운이 당신을 위협하고 있을 텐데요.”

       

       혈교주의 말은 옳았다.

       

       공청석유의 막대한 내공은 적절한 조치가 뒤따르지 못한다면 독이나 다르지 않다.

       

       평범한 무인이었더라면 몇 날 며칠을 세워가며 내공을 다스리는 데 심을 다해야하겠지.

       

       그렇지 않으면 주화입마가 찾아와 죽은 것만도 못한 몸이 될 테니.

       

       허나 본인은 평범함의 범주에서 한참은 벗어난 인간이었다.

       

       왜 몰아치는 내기를 다스릴 생각을 해야 하는가.

       

       모든 걸 집어 삼켜 나의 아래에 두면 그만인 것을.

       

       숨을 들이 쉬자 나의 몸 안에 있는 기운이 방향을 되찾았고.

       

       숨을 내쉬자 강대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 주변을 짓눌렀다.

       

       “검선의 인정을 받은 분 답네요.”

       

       그를 본 혈교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태풍이 온다는 데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크리슴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멋지게 에피소드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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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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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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