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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두 명과 한 기.

         나이와 체격, 경험 차를 생각하면, 내 기준에서는 대하기 쉽다고 말하기 힘든 게 우리 조합이긴 했으나… 모니터를 통해서긴 해도 자주 뵙던 기억이 있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단지, 나를 탈주한 기업 직원 정도로만 알고 있을 슈나이더 씨가 무슨 의도로 꺼낸 말인지만 궁금 했을 뿐.

         

         그러니 잡생각은 그만하고 얼른 대화 주제로 돌아가자.

         내막을 자세히 들어보지 않는 이상 종잡을 수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종업원이요…?”

         

         “음식 다 식겠군. 어서 들지.”

         

         그렇게 복잡한 얘기가 아니니 편하게 있으라는 듯, 그가 먼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달그락거리며 식사 개시를 알렸다.

         

         제로는 거취를 정하는 문제에 따로 제시하고 싶은 의견이 없는지, 침묵을 유지한 상태로 내 곁을 지키기만 했기에. 나도 별 수 없이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을 한 입….

         

         …아, 맛있다.

         원체 재료가 좋았던 건지, 적절한 조리법이 더해져서 그런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진한 육향으로 인해 코끝이 먹먹해지는 감각이 피로한 몸을 쫙 이완시켜주었다.

         

         오죽하면 슈나이더 씨도 한쪽 눈을 치켜 뜨고 놀람을 표출하셨다.

         좋은 식사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나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새삼 체감하니 조금 기분이 미묘해졌다.

         

         머리는 아득바득 노력해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아도, 머리 밑부분이 이렇게 향락에 취약해서야 원.

         

         “그 무한궤도 달린 서빙 로봇은 어쩌고 따로 종업원을…?”

         

         왠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게 느껴지는 제로 녀석을 시야 밖으로 치워버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다녀봤던 웬만한 식당에 전부 구비되어 있던 걸 상기해보면 부담되는 가격도 아닐 것 같은데, 굳이 나를 권유하실 필요가 있나 싶었다.

         

         으적!

         인공 치아? 아니면 그냥 태생적으로 건강하신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연골까지 호쾌하게 씹어 먹은 그가 뚱한 내 표정을 보고는 이유를 덧붙여 주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던 주정뱅이 소굴과는 업종부터 다르다. 분위기 있는 바(Bar)에서 그런 걸 쓰면 좋은 소리도 안 나올뿐더러, 저출력 모델을 써도 귀가 민감한 인간은 모터 소음에 마시던 술잔도 집어 던진다.”

         

         “어… 그래요?”

         

         전문가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내가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얌전히 수긍해야지.

         게다가 머리속에서는 게임 때 수없이 들락날락했던 가게 인테리어를 되새겨보느라 바빠 이의를 제기하기도 힘들었고.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조명과 고아한 원목 가구들. 은은하게 깔린 배경음악은… 재즈였나?

         단체석이 따로 없는 건 아니었지만, 거기를 굴러다니면서 술을 제공하는 게 따분한 원통 로봇이라 생각하니 확실히 분위기부터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쪽은 나름대로 납득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기대했던 적극적인 수락을 돌려받지 못한 게 신경 쓰이셨는지, 슈나이더 씨는 한층 더 관대한 취직처를 꺼내 들으셨다.

         

         “혹시… 질 나쁜 놈들과 엮이거나, 접객하는 게 불편하다면 집에서 실비아를 도와주던가. 아니면 메리의 보모 역할만 해줘도 좋다네. 아니, 오히려 그쪽을 더 부탁하고 싶군.”

         

         “네?”

         

         그거 완전 궁극의 홈 프로텍터-백수-아닌가요.

         

         심지어 이 대목에서 그는 슬쩍 제로 쪽을 훑어보며 뜻밖의 사은품에 대한 기대까지 표했으니. 예상치 못한 덤에 기꺼워하시는 느낌이 강했지만… 결국 이 뜬금없는 구직 권유의 실체는 심각한 이유 따위는 없는 배려였다.

         

         혼자서도 괜찮다며 헤어졌던 애가 고작 반년만에 마땅히 머물 곳도 못 구한 채로 네오 헤이븐에 찾아왔으니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방안을 찾아주겠다는 거겠지.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신다면…!”

         

         나도 모르게 주절거리려던 입을 황급히 다물었다.

         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쑥스러워하면서 수락하려는 거야. 시발, 정신 좀 차려라 아나스타샤!

         

         슈나이더의 술집이면 헬레나를 비롯해 온갖 네임드 캐릭터들이 출몰하는 원작 로케이션 그 자체거늘. 지금 내가 제 발로 거길 걸어 들어가면 향후 스토리나 퀘스트나 얼마나 개같이 꼬일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리고 편하게 지낼 길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약해지려는 의지 또한 얼른 다잡았다.

         

         아무리 당장의 평온함이 달콤해도 치열함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

         

         더럽게 복잡한 차원 간섭기의 재료도 구하면서 주인공의 행보에도 조금씩 간섭하려면 다방면에서 계속 노력해야 한다.

         

         무시 못할 금권, 확고한 인맥, 적당한 거점 등등.

         하나같이 단번에 얻기엔 어려운 조건들인 만큼 차근차근 준비해야지.

         

         “죄송하지만… 사양할게요. 집세라도 넉넉하게 내드리려면 제 전공 관련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애당초 원작 개시까지 여기서 그대로 장기 체류할지 말지도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는데, 상상만 해도 어지러운 취업 걱정이라니!

         괜히 나까지 머리속이 꼬여버렸다.

         

         “집세는 무슨. 한데… 전공 일? 따로 자신 있는 분야를 말해주면 기꺼이 알선해줄 수 있네만.”

         

         “실은 저도 의뢰를 받아서 왔어요. …원래는 인사나 드릴 겸 온 건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보니, 머물라는 실비아 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만. 네….”

         

         마침 거실 건너편에서 메리를 방에 집어넣고 나오는 그녀가 보였길래, 음식이 끝내준다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아무튼지간에. 차분한 태도로 식사를 끝마치신 슈나이더 씨는 실례했다는 듯 내 거절을 수긍하셨다.

         

         “이거… 내가 오해를 했나 보군? 곁에 괜찮은 드로이드는 생겼는데, 정작 차림새 여기저기에서 고생한 흔적이 보여서 말이지. 생활이 많이 어려운데 내색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오지랖을 좀 부렸네.”

         

         “그…… 아닙니다.”

         

         조용히 시선을 내려 내 행색-이라기보단 몰골-을 살폈다.

         

         수도의 공업 위성 도시로부터 갓 올라온 시골(?) 출신 소녀.

         

         그 외형은 피곤하답시고 간단히 소독과 응급처치만 마친 후, 제공된 기내식을 먹고 그대로 잠들었던 탓에 피부 군데군데에 남은 옅은 핏자국과 먼지가 안타까움을 더했으며.

         이물질은 모두 흘러내렸지만, 착용한 상태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기에 정말 엉망으로 구겨진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객실에 방치된 덕분에 비교적 멀쩡했던 짐 가방마저 메리가 원하는 과자를 밑에서 추출해내느라 낱낱이 분해 당한 채로 발치에 찌그러져 있었고.

         

         …십, 이게 다 오는 길에 열차강도를 만나서, 멱살 잡고 모래바닥을 구르느라 발생한 부차적 피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호버크래프트를 팔아 치웠던 고물상 주인. 그 인간의 성질머리를 겪어본 우리 둘이서 함께 뒷담화를 나누면 재미야 있겠지만… 시간도 충분히 늦었고, 실비아 씨도 돌아오셨으니까.

         

         유혈낭자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자.

         

         “그래서! 아나스타샤 양은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요? 메리가 언니랑 놀겠다며 일주일 치 계획표까지 짜고, 미리 공부도 끝마쳤는데.”

         

         “……걔가 그런 걸 만들었어요?”

         

         삐걱거리며 되물어봐도 대답을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기 아이의 활동력은 목동견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는 토막 상식이 스쳐 지나가자, 목덜미를 타고 한 줄기 식은 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래도 그건 제로를 보기 전에 만든 물건이니까, 심경의 변화가 좀 생기지 않았을까?

         

         – 책임 전가는 심히 올바르지 못한 행위라고 조언 드리겠습니다. –

         

         “…야.”

         

         아니, 요놈이??

         

         옆에서 무심하게, 시크하게. 툭 말을 내뱉고는 다시 모른 척을 하는 케어봇을 노려봤다.

         실비아 씨는 어느 기업에서 나온 로봇이길래 이리도 인간미가 넘치냐며 마냥 웃으셨지만, 날 지키는 게 사명이라던 녀석의 배신을 겪으니 골치가 다 아팠다.

         

         조카의 습격도 좀 책무를 나눠서 분담하면 어디가 덧나냐 이 매정한 놈아…!

         

         “그런데… 일을 의뢰받아서 왔는데 그 내용도 모른다는 건 조금 불안하군. 중개인이 하베스트 플래닛에 있다면 이쪽에 있을 의뢰인은 만나봤나? 아니면 그것도 아직인가?”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은 슈나이더 씨가 업계 종사자로서 의구심이 들었는지 턱을 매만지며 꺼림칙한 듯 중얼거리셨다.

         

         반면에 나야… 경험해본 브로커라곤 그 어설픈 아저씨뿐인 데다가. 이번 건은 정보료 대신 갑자기 떠맡게 된 문제인지라 판단 근거가 전혀 없었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떠맡았다고는 해도, 사실상 중개인 수수료도 따로 안 내는 지명 의뢰인 셈이라 보수가 너무 탐났고.

         

         “저쪽에서 알아서 접선해온다고 했으니, 저야… 그냥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 말에, 전문가께서는 그렇냐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알찬 야식과 인사도 무사히 완료. 생각 이상으로 널찍해서 감히 불평할거리도 없는 손님방으로 안내까지 받은 나는 가정집의 온기를 만끽하며 숙면에 들었고.

         

         

         

         

         “그래서. 접선책인지 나발인지는 대체 언제 오는 건데에에…!!”

         “우으….”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쌍욕을 박으며 시간을 짓뭉개는 상태로 메리와 놀고 있었으니.

         내 배에 얼굴을 대고 한창 새근새근 낮잠을 주무시는 조카님 때문에 욕조차 크게 못하는 신세가 서러움을 더욱 부추겼다.

         

         당당하게 네오 헤이븐에 입성한지 일주일하고도 하루. 자그마치 스페셜 놀이 계획표가 한 바퀴 지나갔거늘,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이 집 구성원과 배달 드론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다른 부업이라도 받아서 해결하면서 지냈지. 바보같이 기다리기만 했겠냐고요…!

         

         “…야, 재밌냐?”

         

         – 메리 양을 돌보는 것보다는 훨씬 적성에 맞다고 사료됩니다. –

         

         앞치마는 물론, 머리에 삼각 두건도 두른 상태로 청소에 여념이 없는 진짜 바보에게 물어봐도 기운 빠지는 대꾸만 돌아오지 아무것도 수습되지 않았다.

         

         더는 못 참아주겠다.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망할 중성 마녀한테 손해 배상을 청구하던가 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 나 메리야, 지금 네 뒤에 있어!

    로우라가 님의 응원의 100코인!
    효도왕여포 님의 무언의 50코인! 관대한 후원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탈자를 수정하다가 눈치챘는데, Blind Contest 1화 (EP107)에 제가 표시만 해놓고 정작 업로드할 때 삽화를 안 넣었더군요.
    네오 헤이븐의 우중충하면서도 아련한 일부 풍경이 궁금하시다면 거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바쁘신 와중에도 추천, 댓글 남겨주셔서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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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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