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09


   ​
   ​
   ‘아으… 멍청한 놈아… ’
   ​
   ​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공터, 리안은 모포를 덮은 채 욕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
   ‘왜 이렇게 바보처럼 행동하는 거야…’
   ​
   ​
   노아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리안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말을 붙이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
   ​
   알고 있음에도 행동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
   [ 훗훗훗… ]
   ​
   ​
   그때 허벅지에서 피를 쪽쪽 빨아먹던 마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
   [ 나는 알겠군, 알겠어! ]
   ‘뭘 알겠다는 거야?’
   [ 파트너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알겠다고! ]
   ​
   ​
   마검은 연신 ‘후훗’거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분명 저번에 헐벗은 여자의 몸을 본 이후부터 그리된 것이라 그랬지? ]
   ‘아… 가르간도아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
   ​
   상담할 사람이 없었던 탓에 리안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없는 마검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
   ​
   그때는 너무 답답해서 그랬던 것인데, 마검의 적나라한 말을 듣고 있으니 과거가 후회되었다.
   ​
   ​
   [ 후훗, 그런 문제라면 해결법은 간단하지! ]
   ‘해, 해결법이 있어?’
   ​
   ​
   리안이 작은 기대를 안고 마검의 말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말은 리안의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
   ​
   [ 익숙해질 때까지 보면 되는 것이다! ]
   ‘…’
   ​
   ​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리안은 깔끔하게 마검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
   ​
   [ – 해서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 되는 거지. 듣고 있나 파트너? ]
   ‘어, 그래 듣고 있어. 응.’
   [ 후훗, 파트너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이 몸 가르간도아로군! ]
   ​
   ​
   마검이 기세등등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
   ​
   ‘내일도 종일 걸어야 하니까 이만 자야겠다.’
   ​
   ​
   리안은 허벅지에 꽂힌 마검을 뽑아낸 후 곧바로 역소환하려 했다. 그 순간, 마검이 동그란 구 형태로 바뀌었다.
   ​
   ​
   평소였다면 곧바로 손등으로 돌아갔을 녀석이 형태를 바꿔버리자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매끈한 구를 내려다보았다.
   ​
   ​
   ‘누가 본 건 아니겠지?’
   ​
   ​
   리안은 슬쩍 모포 밖을 살펴보았다. 노아를 비롯한 일행들은 전부 잠든 상태였고 멀찍이서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
   ​
   무리 하나당 하나씩 피워진 모닥불이 타닥타닥 빛을 내는 것도 보였다.
   ​
   ​
   리안은 모포를 다시 머리 위로 뒤집어쓰며 고개를 돌려 마검 쪽을 바라보았다.
   ​
   ​
   ‘너 왜 갑자기 형태가 둥글게..’
   ​
   ​
   손에 쥐고 있는 마검에게 시선을 돌린 순간,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
   ​
   손에 들려있던 검은 색 구가 어느새 고운 손으로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
   ​
   끼기긱.
   ​
   ​
   리안은 녹이 잔뜩 슬어버린 로봇처럼 눈동자를 굴려 제 옆을 차지한 온기를 바라보았다.
   ​
   ​
   [ 어떤가 파트너? ]
   ​
   ​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헐벗은 여성이 눈웃음치며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
   ​
   “크..헙!”
   ​
   ​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명을 오른손으로 겨우 틀어막았다. 리안은 돌처럼 굳어 새 하얀 살결을 내보인 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
   ‘왜, 왜 다 보이는 거지?’
   ​
   ​
   가르간도아가 몸을 옆으로 누워 있어 중요한 부분은 다 가려진 상태였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상태였다.
   ​
   ​
   보통 이런 상태에선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해 노출된 부위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딱딱하게 굳어버린 뇌는 끼긱거리며 그럴듯한 대답을 겨우 찾아냈다.
   ​
   ​
   ‘설마… 인간이 아니라 마검이라서…?’
   ​
   ​
   마검은 사람이 아니라 무기였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
   ​
   ‘..일리가 없잖아!’
   ​
   ​
   개그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노출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
   ​
   머리를 굴려 어떻게 된 일인지를 생각해 보려 해도 눈앞을 어지럽히는 장면 때문에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
   ​
   [ 익숙해지면 해결될 일이니 자, 어서 이 몸을 만져봐라! ]
   ​
   ​
   그리 말하며 마검이 리안에게 몸을 붙였다. 크고 말랑한 것이 팔뚝에 닿는 순간.
   ​
   ​
   “커흑…”
   ​
   ​
   푸하학! 하고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리안은 당장 기절할 것 같았지만,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입가에 튄 핏물을 할짝거리는 마검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나고 말았다.
   ​
   ​
   뭔가… 여러 의미로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만 같았다. 리안이 두 손을 휘저으며 모포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마검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자연스럽게 노출된 상체가 훤히 시야에 들어왔다.
   ​
   ​
   “커흐흑..!”
   ​
   ​
   다시 한 번 더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러자 마검이 얼굴을 사랑스럽게 붉히며 리안에게 다가왔다.
   ​
   ​
   [ 인간들은 식사 후 디저트를 먹는다지? ]
   ​
   ​
   마검은 딱 봐도 위험한 말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그녀의 백옥같은 얼굴에 튄 핏물만큼 붉은 혀가 리안의 시선을 현혹했다.
   ​
   ​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리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붉은 입술과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
   ​
   “리안!”
   “…!”
   ​
   ​
   모포 밖에서 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눈앞에 있던 가르간도아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
   ​
   급변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리안이 눈을 끔뻑거리는 것과 동시에.
   ​
   ​
   펄럭, 머리까지 덮고 있던 모포가 훅하고 잡아당겨졌다.
   ​
   ​
   “…! 역시…”
   “아…”
   ​
   ​
   노아가 심각한 얼굴로 피범벅이 된 모포를 바라보았다. 리안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검이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방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침 형태로 변한 마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
   [ 아무리 그래도 그런 추한 꼴을 다른 인간에겐 보일 순 없지. ]
   ​
   ​
   의미를 알 수 없는 마검의 말에 리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아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에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뜨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리안은 눈앞에 야릇한 혀의 움직임과 새 하얀 살결이 둥둥 떠다녔지만, 지금은 그런 걸 떠올릴 때가 아니었기에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
   ​
   “미안 노아. 소란을 피워서. 나는 괜찮아.”
   “윽…”
   ​
   ​
   노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
   “…피 냄새가 나면 숲속에 있는 몬스터가 몰려올 수 있으니까 피를 토할 것 같으면 미리 말해줘.”
   “아! 미안…!”
   ​
   ​
   리안은 곧바로 노아에게 사과한 후 시선을 이리저리 마구 굴렸다. 조금 전에 봤던 장면이 노아의 몸 위로 겹쳐서 보인 탓이었다.
   ​
   ​
   “그, 다른 사람들이 깬 거 같은데 괜찮다고 말해줄래? 나는 이 피 좀 치울게.”
   “….알았어.”
   ​
   ​
   노아는 몇 번이고 호통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 노아가 리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
   ​
   “밤에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
   ​
   ​
   ​
   그 말에 노아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다랗게 떠졌다. 그녀의 얼굴 위로 읽어낼 수 없는 감정이 몇 번이고 그려지다가 이내 흩어져버렸다.
   ​
   ​
   “그래, 뒤는 나한테 맡겨.”
   “응.”
   ​
   ​
   노아는 몽롱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며 자신을 쳐다보는 일행에게 별일 아니라며 더 자라는 뜻을 전했다.
   ​
   ​
   그 사이 리안은 피로 젖은 모포를 가방에 넣고 새로운 모포를 꺼냈다. 피로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거친 천에 물을 묻혀서 얼굴을 박박 닦아냈다.
   ​
   ​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말끔한 모습이 되었다.
   ​
   ​
   상황이 진정되자 리안은 깨어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노아를 훔쳐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시선이 땅바닥을 향했다.
   ​
   ​
   리안은 전보다 더 노아를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 가던 말랑하고… 부드럽고… 새 하얀 것에 대한 NEW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버린 탓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피부에 닿기까지 했다.
   ​
   ​
   ‘이러다가 꿈에 나오기라도 하면…’
   ​
   ​
   리안은 창백한 얼굴로 새벽에 몰래 강가에서 빨래하는 제 모습을 떠올렸다. 죽어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
   ​
   [ 흠, 역시 한 번의 경험으론 부족했군. 내가 앞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아니! 하지마! 그냥 하지마!’
   [ 후훗, 역시 부끄러워서 그런가? 확실히 이 몸은 인간 형태가 되었어도 위대함을 숨기지 못하는군. ]
   ​
   ​
   평소였다면 무심한 얼굴로 ‘그래, 그래..’하며 넘어갔을 리안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검의 말대로 ‘그것’은 웅장하고… 위대했기 때문이다.
   ​
   ​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리안은 겨우겨우 부정의 말을 머릿속에 담았다.
   ​
   ​
   ‘아, 아무튼! 앞으로는 인간 형태로 변하지마!’
   [ 파트너 자신의 약점에서 도망치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 멋지게 부딪치고 뛰어넘는 것이 진정한 남자라는 걸 알고 있지 않나! ]
   ​
   ​
   소년 만화에 나오는 멋진 대사처럼 들리지만 정작 뜻은 헐벗은 자신을 통해 여자에 익숙해지라는 저속한 말일 뿐이었다.
   ​
   ​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평소에는 여기저기 잘도 만지면서 형태가 바뀌었다고 난리군. ]
   ​
   ​
   아직도 붉은 눈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카만 흑발의 미녀가 눈앞을 아른거리는 탓에, 가르간도아의 말이 야하게 들렸다.
   ​
   ​
   리안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으으..”하는 소리를 흘렸다.
   ​
   ​
   ‘떠올리지 말자. 떠올리지… 잠깐만…’
   ​
   ​
   리안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
   ‘그러고 보니 가르간도아 너… 여자였어?’
   [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성별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다. ]
   ‘그럼 그 형태는 그냥 임의로 변한거겠…’
   [ 하지만 여성체는 맞다. ]
   ​
   ​
   리안은 그대로 모포 위에 엎어졌다.
   ​
   ​
   ‘아까 그 모습은…’
   [ 내 모습 중 하나다. ]
   ​
   ​
   그 말은 곧, 리안의 팔에 닿았던 그 무시무시한 것 또한 실제 마검의 몸이라는 말과 같았다.
   ​
   ​
   리안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
   ​
   ​
   ​
   ​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 세 요 :8

AI 열심히 배우는 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아으… 멍청한 놈아… ’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 공터, 리안은 모포를 덮은 채 욕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바보처럼 행동하는 거야…’

노아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리안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말을 붙이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행동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훗훗훗… ]

그때 허벅지에서 피를 쪽쪽 빨아먹던 마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알겠군, 알겠어! ]

‘뭘 알겠다는 거야?’

[ 파트너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알겠다고! ]

마검은 연신 ‘후훗’거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 분명 저번에 헐벗은 여자의 몸을 본 이후부터 그리된 것이라 그랬지? ]

‘아… 가르간도아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상담할 사람이 없었던 탓에 리안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없는 마검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 답답해서 그랬던 것인데, 마검의 적나라한 말을 듣고 있으니 과거가 후회되었다.

[ 후훗, 그런 문제라면 해결법은 간단하지! ]

‘해, 해결법이 있어?’

리안이 작은 기대를 안고 마검의 말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말은 리안의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 익숙해질 때까지 보면 되는 것이다! ]

‘…’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리안은 깔끔하게 마검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 – 해서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 되는 거지. 듣고 있나 파트너? ]

‘어, 그래 듣고 있어. 응.’

[ 후훗, 파트너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이 몸 가르간도아로군! ]

마검이 기세등등해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내일도 종일 걸어야 하니까 이만 자야겠다.’

리안은 허벅지에 꽂힌 마검을 뽑아낸 후 곧바로 역소환하려 했다. 그 순간, 마검이 동그란 구 형태로 바뀌었다.

평소였다면 곧바로 손등으로 돌아갔을 녀석이 형태를 바꿔버리자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매끈한 구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본 건 아니겠지?’

리안은 슬쩍 모포 밖을 살펴보았다. 노아를 비롯한 일행들은 전부 잠든 상태였고 멀찍이서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무리 하나당 하나씩 피워진 모닥불이 타닥타닥 빛을 내는 것도 보였다.

리안은 모포를 다시 머리 위로 뒤집어쓰며 고개를 돌려 마검 쪽을 바라보았다.

‘너 왜 갑자기 형태가 둥글게..’

손에 쥐고 있는 마검에게 시선을 돌린 순간, 리안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손에 들려있던 검은 색 구가 어느새 고운 손으로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끼기긱.

리안은 녹이 잔뜩 슬어버린 로봇처럼 눈동자를 굴려 제 옆을 차지한 온기를 바라보았다.

[ 어떤가 파트너? ]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헐벗은 여성이 눈웃음치며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헙!”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명을 오른손으로 겨우 틀어막았다. 리안은 돌처럼 굳어 새 하얀 살결을 내보인 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왜 다 보이는 거지?’

가르간도아가 몸을 옆으로 누워 있어 중요한 부분은 다 가려진 상태였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상태였다.

보통 이런 상태에선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해 노출된 부위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뇌는 끼긱거리며 그럴듯한 대답을 겨우 찾아냈다.

‘설마… 인간이 아니라 마검이라서…?’

마검은 사람이 아니라 무기였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일리가 없잖아!’

개그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노출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머리를 굴려 어떻게 된 일인지를 생각해 보려 해도 눈앞을 어지럽히는 장면 때문에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 익숙해지면 해결될 일이니 자, 어서 이 몸을 만져봐라! ]

그리 말하며 마검이 리안에게 몸을 붙였다. 크고 말랑한 것이 팔뚝에 닿는 순간.

“커흑…”

푸하학! 하고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리안은 당장 기절할 것 같았지만,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입가에 튄 핏물을 할짝거리는 마검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나고 말았다.

뭔가… 여러 의미로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만 같았다. 리안이 두 손을 휘저으며 모포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마검에게 손목이 붙잡혔다. 자연스럽게 노출된 상체가 훤히 시야에 들어왔다.

“커흐흑..!”

다시 한 번 더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러자 마검이 얼굴을 사랑스럽게 붉히며 리안에게 다가왔다.

[ 인간들은 식사 후 디저트를 먹는다지? ]

마검은 딱 봐도 위험한 말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할짝거렸다. 그녀의 백옥같은 얼굴에 튄 핏물만큼 붉은 혀가 리안의 시선을 현혹했다.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리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붉은 입술과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리안!”

“…!”

모포 밖에서 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눈앞에 있던 가르간도아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급변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리안이 눈을 끔뻑거리는 것과 동시에.

펄럭, 머리까지 덮고 있던 모포가 훅하고 잡아당겨졌다.

“…! 역시…”

“아…”

노아가 심각한 얼굴로 피범벅이 된 모포를 바라보았다. 리안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검이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방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침 형태로 변한 마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런 추한 꼴을 다른 인간에겐 보일 순 없지. ]

의미를 알 수 없는 마검의 말에 리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아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에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뜨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안은 눈앞에 야릇한 혀의 움직임과 새 하얀 살결이 둥둥 떠다녔지만, 지금은 그런 걸 떠올릴 때가 아니었기에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미안 노아. 소란을 피워서. 나는 괜찮아.”

“윽…”

노아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피 냄새가 나면 숲속에 있는 몬스터가 몰려올 수 있으니까 피를 토할 것 같으면 미리 말해줘.”

“아! 미안…!”

리안은 곧바로 노아에게 사과한 후 시선을 이리저리 마구 굴렸다. 조금 전에 봤던 장면이 노아의 몸 위로 겹쳐서 보인 탓이었다.

“그, 다른 사람들이 깬 거 같은데 괜찮다고 말해줄래? 나는 이 피 좀 치울게.”

“….알았어.”

노아는 몇 번이고 호통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 노아가 리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밤에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

그 말에 노아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다랗게 떠졌다. 그녀의 얼굴 위로 읽어낼 수 없는 감정이 몇 번이고 그려지다가 이내 흩어져버렸다.

“그래, 뒤는 나한테 맡겨.”

“응.”

노아는 몽롱한 얼굴로 무슨 일이냐며 자신을 쳐다보는 일행에게 별일 아니라며 더 자라는 뜻을 전했다.

그 사이 리안은 피로 젖은 모포를 가방에 넣고 새로운 모포를 꺼냈다. 피로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거친 천에 물을 묻혀서 얼굴을 박박 닦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말끔한 모습이 되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리안은 깨어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노아를 훔쳐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시선이 땅바닥을 향했다.

리안은 전보다 더 노아를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 가던 말랑하고… 부드럽고… 새 하얀 것에 대한 NEW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버린 탓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피부에 닿기까지 했다.

‘이러다가 꿈에 나오기라도 하면…’

리안은 창백한 얼굴로 새벽에 몰래 강가에서 빨래하는 제 모습을 떠올렸다. 죽어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 흠, 역시 한 번의 경험으론 부족했군. 내가 앞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아니! 하지마! 그냥 하지마!’

[ 후훗, 역시 부끄러워서 그런가? 확실히 이 몸은 인간 형태가 되었어도 위대함을 숨기지 못하는군. ]

평소였다면 무심한 얼굴로 ‘그래, 그래..’하며 넘어갔을 리안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검의 말대로 ‘그것’은 웅장하고… 위대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리안은 겨우겨우 부정의 말을 머릿속에 담았다.

‘아, 아무튼! 앞으로는 인간 형태로 변하지마!’

[ 파트너 자신의 약점에서 도망치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 멋지게 부딪치고 뛰어넘는 것이 진정한 남자라는 걸 알고 있지 않나! ]

소년 만화에 나오는 멋진 대사처럼 들리지만 정작 뜻은 헐벗은 자신을 통해 여자에 익숙해지라는 저속한 말일 뿐이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평소에는 여기저기 잘도 만지면서 형태가 바뀌었다고 난리군. ]

아직도 붉은 눈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카만 흑발의 미녀가 눈앞을 아른거리는 탓에, 가르간도아의 말이 야하게 들렸다.

리안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으으..”하는 소리를 흘렸다.

‘떠올리지 말자. 떠올리지… 잠깐만…’

리안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르간도아 너… 여자였어?’

[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성별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다. ]

‘그럼 그 형태는 그냥 임의로 변한거겠…’

[ 하지만 여성체는 맞다. ]

리안은 그대로 모포 위에 엎어졌다.

‘아까 그 모습은…’

[ 내 모습 중 하나다. ]

그 말은 곧, 리안의 팔에 닿았던 그 무시무시한 것 또한 실제 마검의 몸이라는 말과 같았다.

리안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