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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9

   카이란의 비기와 크라슈의 연이은 비기로 쑥대밭이 된 아레나 훈련장 안.

   그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응시생 크라슈와 입학시험 총관 카이란의 전투 탓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훈련장 위에 두다리로 서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크라슈였고.

   바닥에 쓰러진 이는 해적 여제로 이름을 드높인 카이란이었기 때문이다.

     

   응시생이 부교수를 꺾어 버린 전대미문의 상황.

     

   카이란이 제시한 세 번째 시험은 아카데미 재학 중인 이라면 모두 안다.

   애초에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험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 시험에서의 수준을 확인하여 특급과에 넣는 것이 본래 목적인 시험이었다.

   하지만 그 세 번째 시험을 지금 통과한 이가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발하임 가문의 직계이자 과거 반푼이라 취급받던, 올해 성인이 된 소년이었다.

     

   “미친.”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재학생 중 한 명이 무심코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은 그런 욕설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오로라 석을 크라슈가 깨트렸을 때도 이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오로라 석의 경우 그저 타고난 오러가 무진장 많다고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교수에 가까운 부교수 카이란을 꺾었다는 건.

   논하는 것 자체가 달랐다.

     

   라헬른 아카데미를 넘어, 시대를 뒤흔들 폭풍의 눈이 나타났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재학생들의 눈빛이 변했다.

   라헬른 아카데미에 모인 이들은 가문의 미래를 이끌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크라슈가 이 순간 어떻게 비췄을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시대를 바꿀 이는 어린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일화를 남긴다.

   그들은 지금 그 일화 중 하나를 두 눈으로 본 것이었다.

     

   [ 그대로 콱 죽지 그러더냐? ]

     

   그러나 정작 그 일화와 달리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에게 구박받고 있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다.

     

   카이란은 크라슈에게 진심을 다해 응수했다.

   그리고 그 응수를 정면에서 받아낸 크라슈 또한 전력을 쏟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즉, 크라슈는 처음부터 끝까지 멸화침식을 한계까지 끌어 올려 계속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쓰러진 것은 카이란이었으나 크라슈 또한 실상은 엉망이었다.

     

   달궈진 육체가 월음지체로 조금이라도 식을 수 있게 호흡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 하아, 그래도 꼴에 약속은 지키겠다고, 그건 쓰지 않은 건 좋게 봐주겠다마는. ]

     

   입학식에 오며 처음 약속해둔 걸 언급한 크림슨가든은 언짢은 눈으로 크라슈를 봤다.

     

   [ 그래서 결과는 만족하느냐? ]

     

   크라슈는 멸화침식으로 인해 지끈거리는 몸을 느끼며 관객석 쪽을 보았다.

   미래의 창공의 세대 놈들이 아주 눈이 커지다 못해 빠질 지경이었다.

     

   과거 자신을 한없이 도구 취급하던 그놈들이 말이다.

     

   이거면 누가 뭐래도 만족할만한 일이겠지.

     

   “어.”

     

   그러니 크라슈 짧게 대답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악으로 버티던 정신이 끊겼다.

     

   왜 마지막은 늘 이런지 모르겠다.

     

     

   * * *

     

     

   카이란에 이어 크라슈까지 쓰러지고, 2차 시험은 잠시 중단됐다.

     

   둘의 전투를 본 아이들이 제정신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할 거란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아이들은 서로 너도나도 앞선 전투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부교수를 꺾은 응시생.

     

   덕분에 크라슈의 이야기는 라헬른 아카데미 내에서 일파만파 퍼져갔다.

     

   그렇게 크라슈의 이야기가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때.

   어느새 해는 저물고 하루가 꼬박 지났다.

     

   스륵-

     

   크라슈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느꼈다.

   거기에 코에 닿는 특유의 싸한 향은 이곳을 병실임을 인식시켰다.

     

   천살성을 통해 멸화침식의 허용치가 올라갔음에도 기절할 때까지 사용했다.

   입원하지 않고서야 회복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죽겠네.’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농담을 할 만큼 몸이 꽤 쑤셨다.

   더군다나 왜인지 품이 허전했다.

     

   크라슈가 왜 자신이 허전함을 느끼는지 몸을 더듬거리다 이내 깨닫고, 헛웃음을 삼켰다.

   그가 지금 허전함을 느끼는 건 다름 아닌 비앙카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 꼴로 누워 있으면 그녀가 침대에 붙어 있곤 했으니까.

   그런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다.

     

   하얀 병아리가 괜히 눈앞에 아른거렸다.

   평소 머리를 자주 쓰다듬던 손이 갈 곳을 잃어 침대를 눌렀다.

     

   ‘보고 싶은 건가.’

     

   스승인 제나에게 잘 배우고는 있을는지.

     

   입학시험 탓에 떨어진 지 고작해야 며칠 안 됐건만, 벌써 이런 근심걱정이라니.

   크라슈는 새삼 자신이 비앙카와 많이 붙어 다녔다고 생각했다.

     

   있다가 입학식 이야기를 해줄 겸 편지라도 한 장 부쳐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크라슈가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당신 저번처럼 훈련 갈 속셈이라면 얌전히 누워있어.”

     

   그 순간 크라슈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침대 앞에 놓인 의자.

   그곳에 잡지 같은 종이를 넘겨 보고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태양을 연상케 하는 주홍빛 머리카락과 또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몸매.

   거기에 이지적인 눈동자는 그녀에게 묘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그런 그녀를 마주한 크라슈가 뒤늦게 의문을 보였다.

   멸화침식을 무리하게 사용한 대가로 감각이 엉망이라 그녀가 방에 있음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아스트리아?”

   “성녀의 이름을 막 부르는 건 불경하지 않아?”

     

   농담 삼아 말한 그녀가 잡지에서 눈을 떼고, 크라슈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곧 눈을 슬쩍 피했다.

     

   “당신 옷 흐트러져 있어. 방금 일어난 건 아는데 제대로 입어 주면 안 될까.”

     

   과거에 꽤 자주 들어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는 저 말이 자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임을 아는 크라슈는 옷을 대충 여미었다.

     

   ‘어쩐지 멸화침식을 썼는데도 평소보다는 움직일 만하더니.’

     

   아스트리아가 치료해준 모양이었다.

   그보다 그녀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신성 왕국이 그녀를 라헬른 아카데미를 보내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내가 왜 라헬른 아카데미에 있는지 의문인 거지?”

   “눈치 빠르네.”

   “교단에서 지내려면 늘 수밖에 없는 게 눈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그 탓에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으나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당신이 준 정보를 이용했어. 내가 성녀 직을 내려놓는다면 난리가 날 거니까.”

     

   아무래도 아스트리아는 이전 회차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던 모양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시기가 상당히 빨랐단 거겠지.

     

   “그리고 당신 가문 이름도 좀 들먹였어.”

     

   이쪽까지 써먹었나.

   역시, 교단이 괜히 허락해준 게 아니었다.

     

   “그래봤자 기껏해야 아카데미에 다니는 정도의 성과긴 한데. 나름, 새장이 헐거워지긴 했어. 참고로 나는 신학이야. 특급 전형이거든.”

     

   하지만 크라슈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왜 하필 라헬른 아카데미였냐.”

     

   그녀라면 아카데미가 아니어도 어디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크라슈가 의문을 가지자 그녀는 버릇처럼 옆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꼬았다.

     

   “그야, 여기만큼 인재가 많은 곳도 없잖아. 나는 교단을 완전히 빠져나오는 게 목표니까. 내 뒷배가 돼줄 사람을 좀 모을 거야. 물론 그 뒷배에는 당신도 들어가 있으니까 알아둬.”

   “그거야 어렵지는 않긴 한데.”

     

   크라슈는 살짝 게슴츠레 눈을 떴다.

     

   “너 밤새 여기 있었냐?”

     

   아스트리아가 옆 머리카락을 꼬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다.

     

   성녀의 능력상, 치료만 하고 돌아가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녀는 구태여 다른 이들에게 경과를 봐야 한다며 크라슈가 쓰러진 이후, 줄곧 이 병실에 그가 눈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스트리아가 슬쩍 내린 손으로 잡지를 닫았다.

     

   “무, 무사한 모양이니까. 난 갈게. 당신도 몸 좀 아껴. 아무리 본인 힘이라도 그렇게 쓰면 수명을 깎아 먹어.”

     

   크라슈에게 예전에 속마음을 한 번 들킨 탓인지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벌떡 일어났다.

   마음속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그와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있을 수가 없었다.

     

   ‘왜 하필 얼굴이 내 취향이어서는.’

     

   ……취향이라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결국 그녀가 달아나듯 방을 나가 버렸다.

   문틈 사이로 그녀의 호위 성기사 디오나가 이쪽에 잠시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크라슈는 그쪽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뜻밖의 만남이긴 했지만, 아스트리아가 이곳에 온 건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몸을 좀 막 굴려도 회복은 확실하다는 소리니까.

     

   방금전 수명 깎아 먹는다는 이야기는 까맣게 잊은 채 크라슈가 병실 밖을 나오려던 찰나였다.

   크라슈는 병실 복도 쪽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각자 물이 든 쟁반과 수건을 들고 오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런 둘은 둘 다 하녀 복 차림이었다.

     

   한쪽은 크라슈의 시종으로서 따라온 알리샤였고.

   다른 한쪽은 전혀 생각 못 한 뜻밖의 인물이었다.

     

   “……리리나 씨?”

     

   아슬란 이그리트의 직속 시녀, 리리나였다.

   그녀가 왜 알리샤와 함께 오는지를 몰라 의문을 보이자 두 사람이 이제야 이쪽을 보았다.

     

   “아, 크라슈 님, 일어나셨사옵니까.”

     

   여전히 너무 극존칭을 쓰는 알리샤의 옆에 리리나가 특유의 입꼬리만 올리는 웃음을 그려 보였다.

     

   “저번에 쓰러지시고, 이번에 다시 만날 때도 쓰러져 있으시다니. 크라슈 님은 잠자는 왕자님이신가 봐요.”

     

   그녀다운 여전한 입담이었다.

     

   “리리나 씨가 왜 여기 계신답니까?”

   “그야, 알리샤 양이 크라슈 님이 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길래. 도와주고자 함께 왔죠.”

     

   그랬었나.

   알리샤는 알리오드에게 교육받긴 했지만, 아직 돌발 상황에는 익숙지 않다.

     

   주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었겠지.

   신세를 좀 졌다.

     

   “그보다 생각보다 멀쩡하신 모양이네요. 걱정해주신 제 마음의 보답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돈이라도 지불 할까요.”

   “비싸게 쳐주세요.”

   “아, 아닙니다. 신세를 진 건 접니다. 제가 내겠사옵니다!”

     

   그녀와의 농담에 당황한 건 알리샤였다.

   서둘러 치마 안쪽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는 알리샤에게 리리나가 농담이라고 전했다.

     

   “그보다 아슬란은요?”

   “마학 시험을 끝마치시고, 기숙사 방을 배정받으셨죠. 아슬란 님도 크라슈 님을 빨리 다시 만나고 싶으셔야 하셨으니. 있다 기숙사로 가면 인사드려 주세요.”

   “그러죠. 알리샤, 내 기숙사 방도 나왔겠지?”

   “아, 그렇사옵니다. 짐도 다 들여놨습니다.”

     

   기숙사가 나왔다는 건 역시 합격이라는 소리였다.

   총입학 시험관인 카이란을 꺾었으니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합격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은 조금 뻔뻔해 보이네요.”

     

   그러자 리리나가 크라슈의 표정을 이야기해왔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정말, 못 본 사이에 순진하던 크라슈 님은 없어진 걸까요. 아쉬워요.”

     

   그러면서 리리나는 크라슈의 옆에 다가와 슬쩍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는 크라슈가 이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성장기 아이 중에서도 유달리 빨리 크는 편인 크라슈는 어느새 리리나와 한참 키 차이가 났다.

     

   “그래도 늠름해지셔서 보기는 좋네요. 아슬란 님만큼은 아니지만, 여자 좀 많이 울리시고 다니시겠어요.”

   “딱히 울린 여자는…….”

     

   없다고 말하려다 크라슈는 비앙카를 떠올렸다.

   이래저래 울리긴 많이 울렸구나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지금 약혼자분 생각하시죠?”

     

   그러자 슬쩍 눈을 가늘게 뜬 리리나가 말해왔다.

     

   “팔불출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랬어요.”

     

   그냥 떠오르는 사람이 그 녀석인 것뿐이었으나.

   리리나는 괜히 심통 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전 아슬란 님께 돌아가 볼게요. 이거 받으세요.”

     

   들고 온 수건을 크라슈의 손에 텁하니 쥐여준 리리나는 그대로 가버렸다.

   여러모로 폭풍 같은 그녀였다.

     

   그녀가 아슬란의 직속 시녀인 만큼 앞으로도 볼 일이 꽤 많겠지.

     

   “알리샤, 입학식은?”

   “입학식은 내일이라 하옵니다.”

     

   그래도 입학식 전에 일어나서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 창문에 크림슨가든의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크라슈를 물끄러미 보다가 생각을 전했다.

     

   [ 영웅호색. ]

     

   크라슈에게는 참 난감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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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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