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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당연하게도, 그 포효는 해츨링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우우우우!

       

       ‘늑대?’

       

       아직 몸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위험 요소가 감지되자 생존 본능에 눈이 번쩍 떠졌다. 

       

       “큐우우…. 뀨….”

       

       해츨링은 아직 내 품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나는 자는 해츨링의 등을 끌어당겼다.

       해츨링은 기분이 좋은지 발을 꼼지락거리며 좀 더 내 쪽으로 파고들었다.

       

       평소 같으면 가만히 그 귀여움을 즐겼겠지만, 지금의 나는 바깥쪽에 신경을 기울이며 천천히 해츨링을 안은 상태에서 일어났다.

       

       ‘이 동굴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늑대가 출몰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단순한 늑대가 아니다. 

       언뜻 들으면 비슷할지 모르지만, 보통 ‘늑대의 포효’라고 하면 생각나는 소리보다 음이 낮고 굵은 게 특징인 저 소리는….

       

       ‘커먼 울프의 울음소리가 분명해.’

       

       소름이 확 돋으며, 남아 있던 잠마저 확 달아났다.

       

       게임에서는 저 낮고 굵은 사운드를 들으면 ‘오케이, 저 방향에 있었구만. 기다려라. 잡으러 간다. 알림음이 아주 편리하고 좋네.’였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신의 목소리와도 다름없는 울음소리였다.

       

       -그루우우우!!

       

       그리고 저 소리는 먹잇감을 감지했을 때 내는 소리.

       아까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걸 봐선….

       

       “조졌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기라고는 내가 정말 혹시 몰라서 나뭇잎 가져올 때 같이 주워 온 두꺼운 나무 막대 몇 개가 전부였다.

       

       ‘젠장. 게임에선 한 번도 안 나타나던 놈들이 왜 하필….’

       

       분명 게임에서는 동굴에 마물은커녕 야생 동물조차 온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바위산 너머에 서식하는 커먼 울프들 때문에 그 근방에 야생 동물이 없는 거긴 했지만.

       

       그래서 애매하게 바위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면 야생동물이 찾아올까 봐, 커먼 울프 때문에 야생동물은 없으면서도 막상 커먼 울프들은 멀어서 잘 안 찾아오는 산 반대편의 흙동굴에 잘 곳을 마련한 거였다.

       

       ‘근데 왜 커먼 울프가 여기까지 나온 거냐고. 억울하네.’

       

       게임에서야 죽어도 다시 하면 그만이지만, 지금 나는 여기서 죽으면 끝이다. 

       

       나도 안다. 모든 일에 백 퍼센트는 건 없다는 걸. 

       게임에서 이 동굴을 써먹은 것도 주인공 서부 파견 루트 때가 전부였지, 이 동굴에 백 번 천 번 와서 아무것도 안 나오나 실험까지 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나는 안전할 ‘확률’이 높은 쪽에 걸었을 뿐이고, 정말 운이 나쁘게도 그게 틀려먹었을 뿐이었다. 

       

       -그루우우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울음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뀨우…?”

       

       품에서 자고 있던 해츨링이 졸린 눈을 부스스 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얘야, 아무래도 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쀼우?”

       

       그리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짙은 어둠 속에서 커다란 맹수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그리고 그림자가 몇 발짝 앞으로 다가오자 휘영청 뜬 달빛이 커먼 울프를 환히 비추었다.

       

       “쀼우?!”

       

       거대한 늑대를 발견한 해츨링은 화들짝 놀라 발을 버둥거리더니, 자기를 안고 있는 내 손을 꾸욱 잡았다. 

       잡은 손이 떨리는 걸로 봐서, 본능적으로 마물이라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그르르르르르…!”

       “쀼우우…!”

       

       나는 덜덜 떨고 있는 해츨링을 한 번 내려다 본 후, 최대한 침착하게 전방의 커먼 울프를 주시했다. 

       

       꿀꺽.

       

       ‘…언젠가 한 번은 각오했어야 하는 일이다.’

       

       마을로 가는 동안 위기가 한 번쯤 찾아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지금이 될 줄 몰랐을 뿐이지.

       

       ‘한 가지 다행인 건…. 놈이 한 마리라는 것.’

       

       커먼 울프는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마물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강한 마물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내 스탯인데.’

       

       힘6에 민첩 7, 체력 5, 마력 3.

       

       게임 초반부터 모든 스탯이 10이 넘어가는 주인공에 비하면 내 스탯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치였다. 

       

       ‘게다가 무기도, 방어구도 아무것도 없고.’

       

       가진 거라곤 나무 막대 몇 개뿐.

       

       아무리 봐도 불리하기 짝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해츨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조심스레 해츨링을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쀼, 쀼우?”

       

       해츨링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팔을 허공에 휘저었지만,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잘 들으렴. 난 지금부터 저 녀석이랑 싸울 거야.”

       

       사실 지금 나에게는, 여기에서 내가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이 하나 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해츨링을 늑대에게 던져 주고 나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것.

       

       커먼 울프는 한 번 어그로가 제대로 끌리면 그 사냥감에만 집중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확실하게 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쀼, 쀼우우우….”

       

       세상에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는 녀석이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

       아무리 목숨이 중하다지만 그런 인간 말종 쓰레기짓을 어떻게 하겠는가.

       

       까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해츨링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뿌에에에에엥!

       -들어봐. 얘야. 이걸로 널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니까? 유노?

       -뿌에에엥, 히꾹!

       

       기상천외했던 첫 만남부터.

       

       -뀩.

       -얘야, 나 여기 있어, 여기!

       -쀼우, 쀼!

       

       내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무서워하고 울려고 하던 모습.

       

       -괜찮아, 너 먹어.

       -쀼우우…!

       -허어, 녀석. 은근 고집이 있네. 알았어, 먹을게.

       -쀼우!

       

       배가 고파 감자떡 하나를 다 먹어도 모자랄 판에, 남은 감자떡을 나 먹으라며 한사코 눈을 꼭 감고 밀어내던 모습.

       

       -그럼 출발할까? 그게 편해?

       -쀼!

       

       내 어깨 위에 올라타 옷자락을 꼭 잡고, 때론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던 모습.

       

       -얘야, 저기 저거 보여? 우린 살았어!

       -쀼? 쀼우!

       

       성을 발견하고 함께 기뻐하던 모습.

       

       -괜찮아, 괜찮아.

       -뀨웅….

       -이제부터 조심히 먹으면 돼.

       -뀨….

       

       목에 가시가 걸려 눈물을 펑펑 흘려 달래 줘야 했던 일.

       

       -음냠, 천천히 먹어.

       -뀨우…!

       

       그리고 함께 불을 쬐면서 생선구이를 마구 먹어치웠던 것. 

       

       그 모든 시간들이, 빙의하자마자 집을 잃고 도망쳐 나와 혼자가 된 나에게는 벌써 소중한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과연 혼자서 버틸 수 있었을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레키온 사가」에 대한 지식으로 매 순간 최선의 판단을 해 살아남는 일.

       

       그건 빙의 소설 속 먼치킨 주인공들에게는 가능한 일일지 몰라도, 서울 토박이 소시민인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어떻게 보면 녀석에게 조금씩 의지하고 있었던 거지.’

       

       옆에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었기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녀석을 굶기지 않기 위해 잡은 물고기로 내 배를 함께 채웠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바냐스 마을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녀석 덕분이었고.’

       

       그때 드래곤 레어의 결계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면, 운이 나빴을 경우 난 지금쯤 하무트교 놈들의 손에 잔인하게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쯤은 목숨을 빚졌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소리다.

       

       ‘그러니, 적어도 이 녀석만큼은 살려야 한다.’

       

       물론 나도 살면 더 좋고.

       

       그러니, 싸운다. 

       

       “내가 저 늑대랑 싸우는 동안, 너는 이 동굴을 나가. 그리고 어느 정도 벗어났으면 날이 밝을 때까지 나무 뿌리 밑이 파여 있는 곳을 찾아서 들어가 있어. 그게 제일 안전할 거야.”

       “쀼, 쀼우…!”

       

       내 말을 들은 해츨링의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쀼우…!”

       

       해츨링이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가기 싫다는 뜻이다. 

       

       “걱정 마. 나도 곧 따라 나갈 거야. 먼저 가 있는다고 생각해.”

       “쀼우우…!”

       

       그리고 그때, 커먼 울프가 한 걸음씩 이쪽으로 다가왔다. 

       

       꽈악.

       

       나는 나무 막대 하나를 집어,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그리고 해츨링에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도록, 일부러 늑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젠장, 떨리네. 떨면 안 되는데.’

       

       늑대 쪽으로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벌써 다리가 떨려 왔다.

       나는 나무 막대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르르르르…. 컹!”

       

       타앗.

       

       그리고 그 순간 커먼 울프가 나를 향해 도약했다.

       

       나는 즉시 해츨링의 반대쪽 방향으로 유인하듯 힘껏 뛰었다.

       놈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나를 빗겨 나갔다.

       

       ‘패턴은 알고 있다.’

       

       크르르르르.

       

       ‘첫 정면 도약 이후 물기.’

       

       늑대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주둥이를 들이밀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나무 막대를 가로로 눕혀 놈의 아가리 쪽으로 내밀었다.

       

       콱!

       

       늑대가 나무 막대를 물자마자, 나는 해츨링을 향해 있는 힘껏 외쳤다.

       

       “지금! 어서 나가!”

       “쀼, 쀼우…!”

       

       하지만 해츨링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크르르륵….”

       “으읍.”

       

       나는 늑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나무 막대를 움켜쥐었다.

       

       “네가 있으면 싸우는 데 방해만 돼. 그러니까 얼른 나가! 꺼지라고!”

       “쀽!”

       

       내가 거칠게 외치자, 해츨링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일순 멈추었다.

       

       “쀼우, 쀼우우우!!”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짧은 다리로 동굴 밖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아, 됐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이것만 어떻게 하면 되는데…. 크읍….”

       

       패턴을 알아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문제는 역시 스탯이었다. 

       

       나무 막대를 물게 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힘이 밀려 도저히 다른 행동을 할 틈이 나지 않았다. 

       

       “크르르륵!”

       

       그리고 그때.

       

       콰직!

       

       “어?”

       

       커먼 울프의 치악력이 나무 막대를 두 동강 냈다. 

       

       “이런 미친…!”

       

       나는 재빨리 왼손에 있는 막대 조각을 늑대의 아가리에 던져 넣어 물게 만드는 동시에, 오른손에 든 부러진 막대로 놈의 눈을 힘껏 찔렀다. 

       

       “커어엉!”

       

       커먼 울프의 한쪽 눈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퍼억!

       

       “컥!”

       

       분노한 늑대가 휘두른 앞발을 막으려 몸을 웅크렸지만,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나는 곧바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허억, 헉.”

       

       또다시 물기.

       

       나는 근처에 있던 나무 막대를, 이번에는 두 개를 겹쳐 내밀었다. 

       

       콰악!

       

       겨우 막아냈지만, 늑대가 그륵거릴 때마다 나무가 빠르게 우그러지는 게 보였다. 

       

       ‘끝인가.’

       

       조금의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은 도리어 편해졌다.

       

       ‘이쯤 되면 해츨링도 꽤 멀리 도망갔겠지.’

       

       그래도 시간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빙의한 다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근데 돌아간다고 해도 쬐그만 해츨링 녀석은 다신 못 보겠지.

       

       아까 그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을….

       

       “어?”

       

       내 눈이 커졌다. 

       

       “야, 도망 안 가고 뭐 해!”

       

       어느새 돌아온 해츨링이 손을 달달 떨면서도 커먼 울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여기서 시간을 더 끌 수는 없는….’

       

       콰직!

       

       그 순간, 내가 들고 있던 마지막 나무 막대가 부서졌다. 

       

       최후를 감지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쀼우우우우우우!!!”

       

       해츨링의 포효 소리와 함께 주위가 밝아졌다.

       

       조심스레 눈을 뜬 내가 미처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시뻘건 화염이 늑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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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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