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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눈을 부릅뜬 채 살기를 마구 뽑아냈다.

         

       살기를 뽑아낸다는 행위 자체가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냥 저 새끼들 다 죽일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습격자들을 노려봤다.

         

       다행히 살기가 잘 통했는지 습격자들이 주춤거린다.

         

       “흠.”

         

       이번에도 진의 본능에 맡기면 알아서 되겠지.

         

       ‘감각도 뛰어나니까.’

         

       일단 칼자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게 쥐었다. 꾸욱.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마쳤다.

         

       습격자들의 숫자는 총 열다섯. 반면, 우리 쪽의 기사는 여덟. 저 습격자들의 수준은 잘 모르겠다만, 그냥 평범한 도적 떼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판타지 세상이라도 그렇지, 어떤 도적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습격을 하겠나. 굳이 뒤집어쓴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신원을 가리기 위함이겠지.’

         

       그렇다면 누군가 프란체 데카르트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들이다. 내 머릿속에 왜? 라는 의문 부호가 생겼다.

         

       ‘굳이 프란체 데카르트를 암살할 이유가 있나?’

         

       이제 파티에 참여한다는 것은 메인 스토리의 시작 전. 아직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때다.

         

       에덴과 라인이 프란체를 골칫덩이로 생각해 보낸 암살자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들이 뭐가 부족할 게 있어서 암살자까지 보내겠나.

         

       ‘그럴 거면 진작에 가문에서 내쫓았겠지.’

         

       아무튼. 이 습격의 배후는 에덴과 라인은 아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다 썰어버리고 정보를 캐낼 놈만 남겨두면 되겠지.

         

       나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정리한다! 공녀님을 호위해라!”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감히 우리한테 명령 질을 해?”

       “건방진 새끼가!”

         

       지금이 그런 걸 트집 잡을 때인가. 당장 눈앞에 적들이 있는데.

         

       “나는 멸망해버린 바렌베르크 왕국의 제1 왕자다. 비록, 지금 노예라는 신분으로 이곳에 있지만 적어도 한때 강자로 군림했던 자로서 너희들에게 조언을 하나 하지.”

         

       묵직한 내 음성에 기사들이 움츠러들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도록.”

         

       꼴깍.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그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무거웠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생긴 목 넘김.

         

       “너희들이 공녀님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기사도를 가진 자들이라면 여기서 포기하거나 도망치진 않겠지. 자존심이 상할 테니.”

         

       기사들이 오만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네가 뭘 안다고 우리를 가르치려 들어?”

       “노예라는 신분을 잊었나 보군.”

       “우리가 고작 저런 놈들 상대하는데 도망갈 거 같나?”

         

       일단 그들의 공통의 적을 만듦으로써 하나로 뭉치도록 만들었다. 이걸로 프란체를 버리거나 방관하진 않겠지.

         

       “그럼 다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부탁한다.”

         

       나는 진각을 밟았다. 파악!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하늘을 향해 비산했다.

         

       ‘뭐여, 이거?’

         

       나도 놀랄 정도의 가속력이었다. 불완전했던 몸이 안정되어서 그런지 넘치다 못해 제어도 제대로 못할 정도의 힘이 느껴진다. 이게 소드 마스터 진? 정말 웅장하다…….

         

       어쩌다 보니 한순간에 암살자들 코앞까지 도착해버렸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암살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일단 가만히 있기도 뭐 하기에 검을 휘둘렀다. 스각!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지나간 검. 그저 단순히 베어낸 게 아니었다.

         

       사람을 가로로 두 동강 내버렸다…….

         

       암살자의 내장이 허공에 흩뿌려지며 피가 튀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려 몸이 더러워지는 걸 막았다.

         

       “…….”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마음에 큰 동요가 생기고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광경이지만, 내 마음은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흘렀다. 이 또한 진의 인격이 섞여서 그런 거겠지.

         

       ‘뭐, 지금 상황에 생각할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반면, 내가 휘두른 검격을 두 눈으로 목격한 암살자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미, 미친! 단번에 몸을 두 동강 내버렸어!”

       “저런 놈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암살자 전문 단체에서 제대로 훈련된 암살자는 아닌 듯했다.

         

       ‘이 세계에서 암살자를 전문으로 하는 길드가 있긴 한데.’

         

       뭐, 이건 나중의 이야기고.

         

       자세한 건 놈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방금 놈처럼 몸이 두 동강 나고 싶으면 계속 덤비고, 그게 아니라면 누가 보냈는지 실토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암살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한다. 하지만 우리 쪽의 기사들은 전혀 참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데카르트 공작가를 건드린 것을 평생 후회해라!”

       “최소한의 호위만 남겨라! 돌격!”

         

       기사들이 검을 들고 달려든다. 프란체가 있는 마차에는 두 명의 기사 말곤 보이지 않았다.

         

       ‘아, 저 새끼들, 그냥 프란체나 지키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미친놈들. 이 틈을 타서 저놈들이 프란체를 노리면 어쩌려고.

         

       ‘공작가의 기사 새끼들은 대가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가?’

         

       괜히 내가 나선 것 때문에 흥분한 걸지도. 그들의 자긍심은 하늘을 찔렀으니까. 공작가의 마차를 습격한 놈들인데, 그걸 노예한테 맡긴다는 것 자체로 자존심이 상했겠지.

         

       ‘그래도 두 명 정도 호위를 붙여둔 거 보니 생각은 있네.’

         

       흥분하며 달려나간 기사들이 암살자들에게 거의 도달했다.

         

       “시건방진 것들, 본때를 보여주마!”

       “공작가의 마차를 습격하다니,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구나!”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이 틈을 타서 마차의 곁으로 이동했다.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프란체를 지키는 것이지, 저 암살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프란체가 깨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얘는 지금 자기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암흑가의 경매장에 왔을 때도 그렇고.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배후를 알 수 없는 습격입니다. 고개 들이밀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깨진 유리 파편에 긁히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아까처럼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릅니다.”

         

       프란체가 눈썹을 좁혔다.

         

       “…유리 파편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화살은 네가 막아줄 거잖아? 그래서, 상황은 어떻게 가고 있는데?”

       “공작가의 기사들이 암살자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력을 보았을 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암살자는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궁금한 게 풀리셨으면 이제 고개를 집어넣으시지요.”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굴에 들어가는 다람쥐처럼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볼까.’

         

       상황을 지켜보니 공작가의 기사들 실력은 진퉁이었다. 여섯의 숫자만으로 열다섯의 암살자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으니.

         

       ‘근데 대체 누가 암살을 시도한 거지?’

         

       저런 하찮은 인력에 의뢰를 넣을 정도면 배후에 대귀족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럼 하급 귀족이나 평소 프란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귀족이라는 뜻인데.

         

       “흠.”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뭐, 이제부터 알게 되겠지.

         

       “공작가를 무시한 자들에게 천벌을 내려라!”

         

       생채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기사들. 반면, 숫자가 많이 줄어든 암살자들은 줄행랑을 친다.

         

       ‘개 같은 놈들아, 저러면 배후를 캐낼 수 없잖아.’

         

       나는 옆에 있던 기사에게 말했다.

         

       “공녀님 잘 지켜라.”

       “뭐? 이 새끼가…!”

         

       그가 계속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그냥 무시해주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소드 마스터의 힘은 굉장했다. 저 멀리까지 벗어난 기사들과 암살자들이 있는 곳에 단번에 도착했으니.

         

       “멈춰.”

       “뭐?”

       “지금부터 정보를 캐낸다.”

       “네가 뭔데 우리한테 명령 질이지?”

       “꼬우면 나중에 결투를 신청해라. 나는 주인님의 명만 따를 뿐이니 내 앞에서 거들먹거릴 생각은 하지도 말고.”

         

       검을 들고 눈을 얕게 뜨자 움찔거리며 물러서는 기사들. 그러게 왜 까불어?

         

       나는 눈앞에 있는 암살자들에게 말했다. 남은 인원은 총, 세 명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희에게 명령을 내린 인물이 누군지 말해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들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걸 말할 것 같으냐…!”

       “그냥 죽여라!”

       “우리에게 있어서 신뢰는 생명줄과도 같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버티네.

         

       “네놈들의 수준을 봤을 때 이름있는 암살자 길드에서 온 놈들은 아닌 것 같으니 말하는 거다. 너희들에게 있어서 목숨이 가장 소중하지, 그깟 신뢰가 소중한가?”

         

       오러를 활성화했다. 푸른빛이 맴돌며 검신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몰랐다만, 그냥 생각하니 사용할 수 있었다. 몸과 영혼이 안정돼서 그런가.

         

       “오, 오러를 검에 흘려 넣었다고?!”

       “소드 마스터인가!”

       “역시 단순한 놈이 아니었군…….”

         

       오러를 보여주자 사기가 꺾인 암살자들. 나는 다시 물었다.

         

       “말해라. 배후가 누구지?”

         

       암살자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눈치를 살핀다. 가운데에 있는 놈이 대장 같은데, 나는 그에게 검을 겨누며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배후가 누구냐.”

       “크윽…….”

         

       마스크로 가려졌음에도 그가 이를 악물었다는 게 느껴졌다. 빠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셋… 둘…”

       “마, 말하겠다!”

         

       결국,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반발하는 부하들.

         

       “의뢰자를 배신하실 생각입니까!”

       “여기서 의뢰자의 신상을 실토하고 살아 돌아가 봤자 죽은 목숨이라고요! 애초에 저희에겐 선택지가 없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멍하니 부하들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군…….”

         

       뭐지. 얘네들 개그라도 하는 건가? 덕분에 내 표정도 오묘해졌다.

         

       “말할 생각은 없는 건가?”

       “없다! 그냥 여기서 죽여라!”

       “알겠다.”

         

       스각! 단번의 검격으로 세 명을 동시에 베었다. 오러를 흘려 넣은 검이라서 그런 것인지 세 명 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지금부터 이 암살자들의 품을 다 뒤져라. 배후를 알 수 있을 만한 증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시건방지게 우리에게 명령하지 마라.”

       “네가 그러지 않아도 할 생각이었다만.”

       “기사를 무시하는 거냐?”

         

       거 참. 반응이 한결같다. 나는 고개를 휘저은 뒤 암살자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증거라고 할만한 물품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나온 것은 몇 자루의 단검, 의뢰의 내용이 담긴 서신, 시계와 지도.

         

       ‘이러면 도움이 안 되는데.’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도 딱히 수확은 없는지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장의 품에서도 배후를 유추할 수 있는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꽝인 건가.

         

       ‘하긴, 함부로 의뢰자를 특정할만한 물건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마지막으로 혼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암살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의 품을 뒤졌다.

         

       나온 것은 단검 하나와 편지. 그리고 목걸이 하나.

         

       “흠.”

         

       일단 편지를 뜯어봤다. 뭐라도 나오겠지.

         

       편지를 열어봤다. 내용은 이러했다.

         

       「엘다스 후작가가 주최하는 파티에 프란체 데카르트가 올 것이다. 그녀를 암살해라.」

         

       그리고 아래에 적혀있는 마차의 경로까지.

         

       다른 내용은 더 없나 싶어 이리저리 둘러봤다. 편지지 아래에 찍혀 있는 작은 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

         

       나는 이 인장을 알고 있다.

         

       그녀는 믿었던 자에게까지 미움받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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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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