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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나는 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왜 애들이 체육 시간만 되면 그렇게 뛰어나가서 공을 차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취미가 조깅이라는 사람들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즐겁다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만 나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은 특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자기 몸을 가꾼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건 안다.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근육 같은 걸 기르면 보기도 좋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내가’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는 못했다.

       

       막말로 원래의 나는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거기에서 어떻게든 근육을 단련한다고 해도—물론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애인이 생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딱히 잘 보일 사람도 없으니 가꿀 이유도 없다. 그게 내가 운동을 굳이 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건 원래 사서 고생하는 거니까. 나는 고생하는 게 싫었다.

       

       싫었는데—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가.

       

       “자, 조금만 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흐느적거리며 다리를 움직이는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란 머리 선배, 남다운이었다.

       

       내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체험조차 거절해버린 다른 동아리 부장들과는 다르게, 남다운은 나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칫’ 하는 소리를 낸 것 치고는 날 엄청나게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거절을 하라고!

       

       왜 이렇게 진심인 건데!

       

       설마 내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의 모습이 보였나? 소매 넣기 하는 고인물마냥 열심히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라도 들었나?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뛰고 있는 거지?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서 뛰고 있는 것은 남다운뿐만이 아니었다. 유하늘과 이수아도 흐느적거리는 나의 보조에 맞춰 함께 뛰고 있었다. 내가 뛰기 전에 나름대로 체력 테스트를 마친 그녀들은 남다운처럼 열심히 소리를 지를 힘은 없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나를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느리다는 소리겠지.

       

       수치스럽다.

       

       저 멀리서 축구부 부원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모두 수군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마 쟤네들도 나에게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애들이겠지.

       

       남다운에 대한 설정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스트리머가 공략했던 캐릭터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if you wish’를 플레이했던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보통 미연시 남주인공들에게 붙는 설정이 있지 않던가. 잘생기고, 돈이 많건 적건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보통은 인망도 좋다.

       

       뭐, 예사라가 그 타이틀에 전혀 근접하지 못할 캐릭터는 아니다.

       

       돈이 많기는 하다. 사실 돈은 그냥 많은 수준이 아니라 초월적인 수준이었다. 예사라가 상속받을 5.7 퍼센트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재계 2위 그룹을 쌈 싸 먹는 것이 가능하다.

       

       호명 그룹이 그 개인 상속분‘만’을 노리고 약혼을 성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사실 예사라라는 미친 타이틀에 비교하면 호명 그룹 ‘황태자’라는 윤다호의 별명은 웃길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난번에 한 ‘서민이나 너나’라는 말에 윤다호가 입을 닥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쁘기도 예쁘다. 솔직히, 몸매를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다른 인물 중 외모는 내가 매일 거울을 통해 볼 수밖에 없는 예사라의 외모보다 뛰어난 예는 없었다. 유하늘이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판단하기 어려웠고, 히로인 중 하나인 이수아쯤 되어야 예사라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수아나 유하늘이나 예사라보다 훨씬 뛰어난 몸매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어쩌면 인기도 많을지 모른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예사라 주변의 인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예사라 옆에 접근하지 못할 뿐, 멀리서 예사라를 흠모하는 이가 몇 명쯤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절벽 위에 핀 도도한 꽃이라고 생각하면 신비롭기까지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게 ‘인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사라는 교류하는 이가 극히 적었으니까. 아니, 아마 내가 이 몸에 들어와 유하늘과 이수아가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친구 하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라도 예사라를 도와줄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도와주고 있다.’

       

       “자, 조금만 더! 진짜 앞으로 몇 걸음만 더 가면 돼!”

       

       헥헥거리면서 뛰고 있는 내 옆에서 열심히 소리를 치고 있는 남다운의 태도에선, 정말로 나의 체력을 길러주겠다는 생각만이 느껴졌다. 딱히 건성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까 나를 보고 “칫.”하는 소리를 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물론 나는 그게 전혀 기쁘지 않았지만.

       

       “아, 더, 이상은, 못…….”

       

       결국 완전히 힘이 다한 나는, 움직이던 다리를 멈췄다. 그리고 털썩 바닥에 꿇어앉았다. 바닥은 모래가 아니라 우레탄 재질이었기 때문에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대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엎드렸다.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지만 닦을 힘이 없었다.

       

       “흠.”

       

       옆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남다운은 지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달려도 속력이 나오질 않았으니까.

       

       “그래도 한 바퀴는 돌았네.”

       

       ……그렇게 뛰었는데 겨우 한 바퀴였다고?

       

       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남다운과 눈이 딱 마주쳤다.

       

       “칫.”

       

       그리고 남다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또 그런 소리를 냈다.

       

       아니, 왜? 이유가 있으면 좀 이유를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원작 남주인공이라면 예사라의 파멸 원인 중 하나다. 자꾸 그런 태도로 나오면 불안해진다.

       

       “뭐, 좋아.”

       

       남다운은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유하늘과 이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너희는 몰라도 이 녀석은 절대로 입부 시킬 수 없어. 축구는 고사하고 이렇게 뛰는 것도 제대로 못 하니까.”

       

       …….

       

       저렇게 듣고 보니까 열받네. 사실이긴 하지만.

       

       “하긴, 너희들이 얘를 데리고 온 걸 보면 딱히 입부할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지만.”

       

       남다운은 그렇게 말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열받기는 하는데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얘 데리고 학원 청춘 연애 드라마 만들면 스토리상 개연성 같은 거 따로 생각할 필요 없겠네. 누가 물어보면 ‘얼굴이 개연성’이라고 말하고 넘어가 버리면 될 테니까.

       

       윤다호? 걔는 아마 성격 때문에 드라마 나오기도 전부터 입방아에 오를걸.

       

       “그래도 만약 본인이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기초 체력 기르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매일 와서 이렇게 달리기만 해도 체력이 붙을 테니까.”

       

       이런 걸…… 매일……?

       

       날 죽이겠다는 소리인가?

       

       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유하늘과 이수아를 올려다보았지만—

       

       “잘 됐다!”

       

       “우리랑 매일 같이 연습하자!”

       

       그런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다운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눈 마주칠 때마다 대놓고 싫어했잖아. 왜 이상한 쪽으로 친절한 건데?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남다운은 시선을 슬쩍 피할 뿐이었다.

       

       아니, 진짜 뭐냐고.

       

       *

       

       결국,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는 매일 이곳으로 와서 체력단련을 받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제 발로 찾아온 격이었고, 이 학교 내에서 나와 ‘대화’라는 것을 해주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남다운은 나름대로 선한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덕에, 내 육감에 대해서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인간 중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은 예사라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 뿐이었다. 물론 따지자면 윤다호나 양혜인같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윤다호는 누가 봐도 ‘선하다’라고 할 인물은 아니었고, 양혜인은 내 전속 메이드였으니까.

       

       아니면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의 얼굴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아니, 그러면 예사라가 유하늘을 적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면 그 ‘육감’을 무시할 정도로 유하늘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

       

       …….

       

       뭐, 지금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인제 와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나 자신이 예사라인 상황이니까.

       

       “그럼, 감사했습니다.”

       

       별로 감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예의상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어쨌거나 운동을 도와준 것은 사실이니까. 예전에 인터넷에서 헬창들에게 교육 당하는 뉴비 이야기가 나오면 꼭 따라붙는 게 ‘나도 저렇게 공짜 PT 받고 싶다’같은 말들이었으니까. 헬스랑은 다르지만, 이것도 분명 고마워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인 건 확실하겠지.

       

       ……아직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어깨가 뻐근했지만, 아무튼 내 육감에 대해서 대충은 알 수 있었으니 그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수아와 유하늘도 힘차게 대답했다.

       

       “어, 그래.”

       

       남다운은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시선을 슬쩍 다른 쪽으로 돌린 채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은 아직도 교복 차림이네. 체육복이 없기라도 한 건가?

       

       “…….”

       

       “…….”

       

       잠깐 어색한 침묵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어, 그래. 그래라.”

       

       남다운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바로 돌아섰다. 물론 돌아서다가 살짝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 직전이었으니까. 다행히 유하늘과 이수아가 옆에서 살짝 부축해주어서, 고작 트랙 한 바퀴 돌았다고 픽 쓰러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육상부도 아니고 축구부에 와서 달리기라니.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나는 돌아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

       

       “야, 다운아!”

       

       예사라의 뒷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마치 겁이라도 먹은 듯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축구부 부장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너, 너, 지금 제정신이냐!? 예사라를 여기에 끌어들이면 어떡해? 동아리 채로 날아가고 싶은 거냐?”

       

       부장은 남다운보다 덩치가 더 컸다. 누가 함부로 말을 걸기도 무서워할 것 같은 거대한 덩치를 하고도, 고작 1학년 소녀 하나가 무서워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부장은 1학년 꼬맹이가 그렇게 무서워요?”

       

       다운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부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장과 함께 먼 곳에 있던 다른 부원 중 하나가 말했다.

       

       “그야 당연히 무섭죠! 걔랑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죄다 불행하게 됐는데! 부모님께서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구요!”

       

       “걸어 다니는 불행의 화신, 못 들어봤어요?”

       

       “…….”

       

       남다운도 초등학생 때부터 화영재단의 학교를 다녀온 학생이었다.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니, 그보다는, ‘알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는 커다란 눈으로 불안하게 떨면서 자신을 바라보던 한 소녀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어지긴 했지만.

       

       “아, 됐고, 아무튼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알고 계세요. 약골인 애들은 눈앞에 있으면 짜증 나잖아.”

       

       “얌마, 너! 에이스라고 그렇게 막 나가면……!”

       

       “뭐, 진짜 불행의 화신인지 어떤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죠.”

       

       “얌마—!”

       

       “아, 안 들린다, 안 들려, 부장, 우리 연습 안 해요? 이제 개학했다고 너무 빠진 거 아닌가?”

       

       결국 부장은 고3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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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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