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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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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버스터가 어지간한 컴퓨터 이상의 성능과 현존하는 모든 Ai를 찍어 누르는 성능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사람들은 곧장 이 네모버스터가 어떻게 그런 성능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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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은 간단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 실물이 없다면 모를까 네모버스터는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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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 유튜버, 유명 대학의 교수, 정부 조직의 과학자까지. 

    수많은 과학도들이 네모버스터를 손에 넣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도 이 자그마한 태엽 로봇이 어떻게 그런 성능을 내는 지 이해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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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어째서 이런 손바닥만한 회로로 그런 성능을 낼 수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이건 물리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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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들은 기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손바닥만한 장난감에서 대체 어떻게 그런 성능을 낼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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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을 발견한 중세 시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눈앞에 결과물이 있고 그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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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재현하려는 시도 또한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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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에 실패했다고?”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공장 직원을 매수해서 설계도도 빼돌렸지, 설계도대로 완성된 실물도 있지. 그런데 재현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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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자의 말에 과학자는 면목이 없다는 듯 목덜미를 계속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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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설계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특별한 제조 과정이 있는 듯 하여서…….”

    “그걸 알아내란 말이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에서 제작 순서를 숨긴 거라면 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까짓 재현이 뭐가 어렵다고?”

    “물론 설계도와 현물이 있으니 무작정 따라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그걸 위해서 필요한 숫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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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된다 안 된다 말만 하는 과학자들을 본 책임자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문과였던 그가 과학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가 이해한 건 누구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걸 설계도 갖고도 따라하지 못 하는 과학자들이 무능하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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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동력은? 그만한 에너지가 어떻게 태엽에서 나왔는지는 알아냈나?”

    “태엽 자체는 저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태엽과 크게 차이 나지 않더군요. 최대한 돌려봐야 LED에 잠깐 불 키우는 게 한계인…….”

    “잠깐. 그러면 대체 어떻게 그런 동력을 낸다는 건데? 안에 내장된 회로는 어떻게 작동시키고?”

    “아마도 회로에 숨겨진 기능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회로에 필요한 전력이 고작해야 그 정도 수준이라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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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D 전구를 아슬아슬하게 킬 정도의 저전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형 그래픽카드를 넘어서는 고연산력과 로봇을 움직이는 고출력기.

    그 말을 들은 책임자는 그제야 장난감 로봇에 들어가 있는 회로가 어떤 수준의 물건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만든 이블스 기업이 얼마나 괴물 같은 기업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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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만든 이블스 기업은 뭐 하는 녀석들이라냐?”

    “글쎄요. 외계인이라도 잡은 게 아닐까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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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자는 히어로 협회에 이블스 기업 안에 불쌍한 외계인이 감금되어 있는 거 같으니 빨리 구하러 가라고 신고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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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하는 녀석이길래 이런 걸 만들었는지, 얼굴 한 번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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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나는 대뜸 아일레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

    “과, 과학자 씨…… 저, 저랑 같이 쇼핑 가시지 않을래요?”

    “응? 좋아. 언제?”

    “지, 지금요!”

    ​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일레가 쇼핑을 가자고 하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아일레를 따라 쇼핑몰로 향한 나는 의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아일레는 양손 가득 마법소녀 굿즈를 들고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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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헤헤헤. 가, 감사합니다. 과학자 씨.”

    “갑자기 웬 쇼핑인가 했더니…….”

    “호, 혼자서 오면 다 못 사거든요…… 한 명당 구매 제한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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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리 말하며 품에 든 마법소녀 굿즈를 가득 끌어안았다. 그게 그렇게 좋은 지는 둘째치고서,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구하지 못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악의 마법소녀. 악의 조직 간부이지 않은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보스한테서 뜯어내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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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로 사면 되지 않아? 리셀로 구하면 못 구하는 건 없을 거 같은데.”

    “주, 중고라니…! 제 마법소녀가 남의 손에 닿는 꼴은 못 봐요…!”

    “제 마법소녀라니, 네 게 아니잖아…….”

    “그, 그리고 되팔렘 하는 새, 사람들도 싫어요…! 마법소녀한테 이득이 간다면 모를까…!”

    “아, 그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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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 와중, 지나치던 가게 안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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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버스터가 왜 없어!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왔는데!”

    “죄송합니다 손님. 그 제품은 이미 다 팔려서…….”

    “아니! 여기 있는 거 다 안다고! 빼돌릴 생각 말아! 당장 내놓으라고!”

    ​

    이블스 사의 신작. 네모버스터를 찾는 사내를 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기업에서 만든 물건을 사주려는 마음은 정말이지 고맙지만, 딱 보기에 저 사내가 장난감이 필요해서 그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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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많네요…… 네모버스터.”

    “인터넷에서 가격이 확 올랐으니까.”

    “아, 그럼 저 아저씨도…….”

    “되팔이 목적이겠지.”

    ​

    네모버스터 안에 내장된 회로가 어지간한 최신형 그래픽카드보다 낫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재고로 남아있던 네모버스터를 순식간에 싹쓸이해가기 시작했다. 

    ​

    덕택에 지금 네모버스터의 시장 가격은 1천 달러 이상. 판매가가 10달러도 안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10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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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말이지만 이 가격이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내려갈 일은 없었다. 이블스 기업에서는 이미 네모버스터의 생산·판매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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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회수는 안 해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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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회수까지 했더라면 더 큰 소란이 일어났을 텐데. 다행히 레갈리아는 회수가 아닌 판매 중단만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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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에 아무런 문제도, 하자도 없는데 성능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이유만으로 회수를 결정했다간 기업 이미지가 바닥을 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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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데없이 회수를 했다간 이번 사태를 이블스 기업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1회성 한정판 느낌으로 내놓았단 태도를 고수하면 사람들이 이블스 기업의 기술력을 찬양하리란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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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는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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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곳 과학 기술이 그토록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진 못 했다. 무기의 수준이 무척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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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속의 20배로 관성 기동하는 전투기나 인공위성에서 사람을 떨어트려도 안전한 우주복 등등…… 어지간하게 발전하기 않고서야 성공시킬 수 없는 기술들이 여럿 있길래 이곳 기술력도 나름 쓸만하구나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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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아보니까 그거 다 초능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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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다 초능력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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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초능력 공학. 일단 그럴싸한 겉모습만 만들고 나머진 몽땅 다 초능력자의 초능력에 의존하는 말만 공학이지 공학의 틀을 쓴 차력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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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초능력 없는 지구에서 온 나는 그런 공학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 했고, 덕택에 이런 오해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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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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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태로 내가 가진 지식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탐스러운 물건인지, 그 지식들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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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부로 풀었다간 세계대전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킬 수 있는 기술들…… 레갈리아가 그토록 호들갑 떨던 이유도 대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

    “저, 저기- 과학자 씨?”

    “응? 왜?”

    “생각 중에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어울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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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레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한들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아일레는 내 답변에 웃음을 짓더니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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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여기 근처에 마법소녀 콜라보 카페가 있거든요! 펴, 평소엔 인싸들이 가득한 곳이라 가보질 못 했는데…….”

    “아, 웬일로 말을 다 건다 했더니만.”

    “보, 보통은 친구나 애인이랑 같이 간다는데, 저는 둘 다 없어서…….”

    “그럼 오늘은 내가 아일레 애인이네?”

    “네, 네에엣-!? 노, 농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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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건드리니 화들짝 놀라는 아일레를 보며 끅끅 웃음 터트린 나는 그녀의 토닥거림을 맞아주며 같이 마법소녀 콜라보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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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길에 돈이 다 떨어진 아일레가 은행에 들리자고 말해서 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 카드를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마법소녀에게 가는 돈은 1%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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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들린 은행에서 강도를 만났다. 초능력 쓰는 은행 강도를.

    ​

    “─모두 움직이지 마!”

    ​

    화르륵-!

    순식간에 경비를 불태워버린 강도는 손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협박했다. 

    ​

    “전부 다 엎드려라! 너희들도 이렇게 무가치하게 죽고 싶지는 않겠지!?”

    ​

    “어, 어어……”

    “꺄아아아악-!”

    “가, 강도다!”

    ​

    사람들은 잽싸게 바닥에 엎드렸다. 이미 사람을 한 명 불태워죽인 강도의 말을 무시했다가 똑같이 불타 죽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나도 아일레를 끌어 안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

    품 안에 껴안기며 강제로 끌어내려진 아일레는 은행 강도를 이글이글 노려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일레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

    “하지마.”

    “……그치만-! 가만히 두고만 보라고요…!?”

    “여기서 변신했다간 네 정체를 들킨다. 네 정체가 들키면 같이 있는 나도 의심받을 테고. 무엇보다 우리는 히어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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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일레는 손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일레는 얼마 전까지 무능력자였다가 악의 마법소녀로서의 힘을 손에 넣은 소녀. 제 힘을 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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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녀는 정의의 마법소녀가 아니다. 히어로도 아니었다. 그녀는 악의 조직 간부. 악의 마법소녀. 이른바 빌런이었다.

    ​

    “하지만…… 가만히 두면 시민들이-.”

    “괜찮아.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

    이곳은 이블스 기업과 거래하는 주 은행. 즉, E 시 최중요시설이었다. 이런 곳이 고작 경비 하나만 두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

    과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깥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은행 강도도 그 발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틀었지만, 달려든 경찰의 속도는 감히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치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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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강도를 제압하고 바닥으로 찍어누른 경찰은 그대로 강도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아차 하는 사이에 제압당한 은행 강도는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

    “윽-!? 뭐, 뭐야! 이거 놔!”

    ​

    마지막 발악이라는 걸까, 수갑 찬 손으로부터 불길이 쏘아져 나왔다. 과연 기민했던 경찰도 근거리에서 쏘아대는 불꽃은 피하지 못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그 불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던 불꽃이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꺄아아악-! 비명을 내뱉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경찰은 그 불길을 얻어맞고도 살아남아선, 강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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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컥-!”

    ​

    주먹 한 방에 기절한 강도를 내려다보며 경찰은 퉤- 하고 침을 뱉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제 상의가 모조리 불타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잽싸게 제 가슴팍을 가렸다.

    ​

    “─흠흠, 시민 여러분. 강도는 제압했습니다! 이제 안심하시고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면 되겠습니당.”

    “우, 우와아아아아-!”

    ​

    경찰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 박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주다가, 잠시 후 들어온 동료 경찰이 건네주는 겉옷을 걸쳐입고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앞섬만 대충 여민 채 이쪽으로 다가오는 경찰을 본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설마 아까 훔쳐보던 게 걸렸나……?

    ​

    “아일레-!”

    “레, 레비탄 씨.”

    “이런데서 만나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넹!”

    ​

    그러나 경찰은 내가 아닌 아일레 쪽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분명 쇼핑 같이 올 친구도 없다고 했던 아일레가 아는 사람이라니?

    ​

    나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찰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과 같은 눈빛이었다.

    ​

    “이게 그 소문의 과학자양?”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엥-? 보스가 말 안 해줬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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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그리 말하며 제 머리 위에 자란 제 토끼 귀 옆으로 손을 가져다대며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

    “뿅뿅- 악의 조직 간부. 레비탄이라고 행! 레비땅이라고 불러줭-!”

    ​

    토끼귀를 쫑긋거리며 그리 외치는 경찰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도시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

    대체 누가 알겠는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숨 걸고 강도로부터 시민의 목숨을 지켜낸 경찰이 빌런이라니?

    ​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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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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